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6)
아직 쥐머리를 단 저작권의 악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시점이지만, 그래도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는 존재한다.
그러니 당연히 저작권법도 존재했다. 국제법도 존재한다. 없는 것은 단 하나.
‘국제저작권법’이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자국의 저작권을 타국에서도 보장받는 법률이 없단 뜻이다.
당장 이번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대 셜록 홈스> 사건을 봐도 확연하다.
이는 명백히 ‘셜록 홈스’라는 캐릭터를 당당히 도용한 것이었는데, 코난 도일과는 연관도 없던 프랑스 잡지사가 이걸 당당히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나?
당연히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에 대한 저작권’이, 프랑스에선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 역사에서 대충 스펠링만 바꿔서 ‘헐록 숌즈(Herlock Sholmès)’라고 했던 거?
그건 그냥 셜로키언들에게 욕을 진탕 먹어서 어쩔 수 없이 바꾼 거다. 저작권이 그렇게까지 쉽게 넘어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프랑스의 저작물은 다르지. 독일에서 저작권의 보호가 가능하네. 반대 경우도 그렇고.”
“베른 협약 덕분이죠.”
“바로 그렇지.”
뒤마 부자와 동시대를 풍미한 대문호이자, [레 미제라블>의 작가로서 한국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진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
한국에는 대충 장발장 작가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빅토르 위고는 그 외에도 존경할 만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 작가다.
[레 미제라블>만 봐도 빈부 격차와 엄벌주의를 철학적으로 비판한 명작 아니던가. 장발장은 그 [레 미제라블>이 말하고자 하던 이야기와 비교하자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듣기로 1848년 혁명 때 좀 빨간 맛 나는 분들하고도 많이 만났다던데······.
아무튼 그 빅토르 위고는 말년에 같은 작가들의 권리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대표적으로 저작권 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협약의 필요성을 제시했고, 그 필요성에 따라 1886년에 스위스 베른에서 체결된 저작권 관련 협약이 바로 베른 협약이다.
여기서 처음부터 가입한 나라가 벨기에, 프랑스, 독일, 아이티, 이탈리아, 라이베리아, 스페인, 스위스, 튀니지, 그리고 영국인데.
그래서 왜 영국은 이 조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느냐고 하면······.
“그야 당연히 영국이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지.”
“바로 그렇죠.”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내가 지금 영국에 받은 게 많다고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이 해적 놈들은 협약을 비준해 놓고는 제대로 법을 만들 생각도 안 했다. 아무리 원칙적으로는 법문이 작성되지 않는 불문법주의라지만!
그래서 지금은 대충 ILO에 가입해 놓고도 강제노동을 멈추지 않은 대한민국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거다.
물론 그거 자체보단, 프랑스나 독일 등에 대한 국가적 불신 같은 감정의 문제도 있긴 하겠지만, 아무튼.
“저는 이번 기회에 영국의 여론을 움직여, 베른 협약을 준수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아서 코난 도일이 저작권 피해를 입은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평상시라면 뭐? 바게트 개구리 놈들의 것을 훔쳐 올 수 있다고? 그거 칭찬받을 일 아닌가? 라고 할 사람들도 반기를 들어 줄 테니까.
여론을 ‘아무튼 아서 코난 도일이 피해를 입은 건 베른 협약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프레임을 짤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이 프레임을 짤 때, 협약 기구하고도 합을 잘 맞춰 봐야겠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를 집행하는 기구인, ‘국제 지적 재산권 보호국’과 말이다.
“흐음······ 무슨 말인지 알겠군.”
그 말에 에밀 졸라는 히죽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이번 일을 보호국에 제소할 생각이군 그래?”
“바로 그렇습니다.”
역시 말이 통하는 작가님들은 편해서 좋다니까.
나는 마주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젠틀맨 클럽>을 보낸 뒤에 나온 뤼팽의 시리즈. [유대식 등잔>이 내 기억과 전혀 다른 훌륭한 단편이 된 걸 확인했다.
그 덕에 모리스 르블랑이 내 의도대로 개심했으며, 장르 문학가로서 한 꺼풀 벗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개심한 건 르블랑뿐이지, 내셔널리즘에 불타는 프랑스인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문학답게 또 다른 누군가가 ‘르블랑이 포기했으니, 내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 제3의 저작권 괴도 놈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거다.
그 꼴은 내가 못 보지.
그러니 이번 기회에, 나와 아서 코난 도일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게 판례를 하나 만들긴 할 생각이다.
단, 지금 맛탱이가 가 있는 프랑스 법원은 못 믿으니까 대신 국제기구를 이용하는 거고.
“일단 여기까지가 간단한 계획이긴 하네요.”
다만 법이라는 것에는 ‘소급효 금지의 원칙’이 있다. 현재 제정된 법이 과거의 죄를 판결할 수 없는 원칙.
그러니 여기서 에밀 졸라가 필요한 것이다. 보호국과 연줄이 있는 에밀 졸라가.
‘연줄이 이래서 중요하지.’
그렇지 않았다간, 잘못하다가 기껏 보호국에 끌고 간다고 해도, 영국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 일이라 르블랑에게 잘못 없음, 같은 판결이 내려질 수도 있으니까.
너무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네, 원래 전쟁은 시작하기 전에 이미 승패를 정해야 한다니까 말이다.
“알겠네. 베른으로 편지 한 통 써 주지.”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그, 자네가 만들었다던 그 붉은 닭요리나 좀 더 가져오게. 아니, 해협 하나 건넜을 뿐인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요리’랍시고 팔고 있는 게야?”
내 굶어 죽기 싫어서라도 빨리 돌아가야지, 원.
프랑스 출신의 대문호는 그렇게 말하며 영국 요리의 끔찍함을 성토했다.
물론,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괜히 내가 억지로라도 비싼 재료들을 사 와서 오므라이스, 양념치킨, 콘치즈 같은 걸 만든 게 아니라니까?
아무튼, 이번 일을 기회로 저작권 개념을 제대로 박을 수 있다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없는 것이다.
“어라.”
작가 연맹에 도착한 나의 눈에, 런던 하늘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내려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1898년의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
대박 이벤트인 에밀 졸라의 망명, 파쇼다 사건, 모리스 르블랑의 캐릭터 도용 사건이 줄줄이 이어지다 보니, 1898년 한 해는 뭔가 되게 정신없이 돌아간 느낌이다.
응? 왕립 문학회의 찐빠? 그런 건 뭐, 그냥 늘상 있는 사소한 일 아닌가.
장르에 우열은 없고 문학은 모두 가치 있는 것이라지만,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사람이니까, 자연스럽게 우열을 찾고 감정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늘 그랬다. 순수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전두엽이 빠개지는 기분이라며 장르문학의 인기가 이해가 안 간다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넋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뭐, 하긴 어쩔 수 없지. 배부른 것 대신 자기 작품 하겠다는 사람들 아닌가. 배고픈 사람들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 왕립 문학회의 사소하고 저열한 찐빠 짓은 솔직히 언제나 있었던 순수(웃음) 문학가들의 귀엽고 저급한 겐세이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남이 번 돈으로 지 밥그릇 채워달라며 정치권에 징징대는 강도 짓은 안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작권법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하려면, 일단 왕립 문학회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게 아니겠나?”
“그렇지! 애초에 정치 권력은 저 치들이 더 많이 갖고 있는데, 왜 저들은 놀고 있고 우리가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겐가?”
“이번 기회에 우리 작가 연맹이야말로 영국 문학의 주류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이 시대의 동료 작가님들에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면역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나는 떨떠름한 눈으로 조지 메레디스를 비롯, 작가 연맹에서 나름대로 입지가 있던 작가님들이 마치 죽지 않는 에어맨을 보며 열불을 터트리는 것처럼 소리쳐 말했다.
“애초에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작가 연맹을 설립한 것은 저 빅토르 위고가 그러했던 것처럼, 저작권을 비롯해 작가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만약 저 왕립 문학회가, 영문학의 보존을 위해 힘을 쓴다는 단체가 애초에 제대로 일을 했으면 우리가 설립될 일이 있었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협약에 가입해 놓고 가만히 있었던 놈들을 왕립 문학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옳은 말이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우리 발목밖에 안 잡는 주제에, 심지어 에밀 졸라와 같은 대문호를 모독하기까지 했으니! 대체 그놈들을 우리가 인정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분위기 되게 살벌하네요, 이거······.”
나는 옆에 있던 아서 코난 도일에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서 코난 도일 작가님 역시,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발심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파쇼다 사건이 억누르고 있었던 거지. 사실 우리도 얘기는 많이 나왔소.”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거든 것은 버나드 쇼였다.
그러고 보니 버나드 쇼를 비롯한 아일랜드 독립운동 파벌은 아무래도 파쇼다 사건에 적극적으로 얘기를 꺼내기 애매해서 그런가, 비교적 조용했었지.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상식적으로 왕립 문학회랍시고 나선 놈들이 우리를 견제하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설마 에밀 졸라 대선배까지 뒤통수 칠지는 몰랐으니까.”
버나드 쇼, 평론가로서 더욱 입지가 높은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했다.
하긴, 나나 아서 코난 도일이 개차반 취급받는 건 익숙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진 작가들이고, 아무래도 ‘캐피탈리즘’과 ‘섹슈얼리즘’을 대표하는 대중문학의 선구자니까.
하지만 그에 반해, 에밀 졸라는 어떤가?
그는 사실주의를 더욱 깊게 파고든 자연주의 작가이고, 그 영향을 받은 영국 작가도 수도 없이 많다.
그 입지는 왕립 문학회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여 개파조사로서 인정해야 하는 수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왕립 문학회는 그러지 않았지.
오히려 뒤통수를 치듯, 저열한 방법으로 핍박을 부추겼고, 이는 어찌 보면 유럽 전체에 이어져 온 문학적 전통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왕립 문학회의 권위가 개박살 날 수밖에 없는 거지.
보수적인 성향의 순수문학 단체가 보수주의도, 순수주의도, 문학도 내다 버린다? 그게 존재가치가 뭐가 있는 거지?
“그래서.”
그런 의지를 모아, 조지 맥도날드 대표가 일어나 말했다.
“뭘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겐가, 메레디스?”
“당연한 것 아니겠소이까, 맥도날드 선배.”
조지 메레디스는 당당히 말했다.
“선배께서 왕립 문학회장이 되어야 하오.”
“······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