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78)
스위스, 베른.
국제 지적 재산권 보호국, 줄여서 BIRPI의 당분간 받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 것을 받게 되었다. 다름아닌 영국 런던에서 보내진 편지였다.
당연하지만 행운의 편지가 아니라 공문서였으므로, 새로운 편지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BIRPI는 그 편지를 돌려 봤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당찮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기들 보시오. 영국에서 자기들 저작권이 침해당했다고 프랑스 작가를 제소했군.”
“허, 이런 뻔뻔한 작자들을 봤나.”
“가입은 해 놓고 비준도 안 하고 있던 놈들이 인제 와서?”
기본적으로 베른 조약에 맨 처음 가입한 11개국은 벨기에, 프랑스, 독일, 아이티, 이탈리아, 라이베리아, 스페인, 스위스, 튀니지, 영국이다.
이 중 ‘문명화되지 않은’ 식민지이자 보호국인 튀니지, 아이티는 사실상 프랑스였고.
라이베리아는 그나마 독립국이지만 그래 봐야 미국 식민지에 가까운 동네에 아프리카니까 제외.
골골대서 사람도 잘 보내지 못하는 스페인도 제외.
즉, 주요 국가만 추리면 결국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정도였으며. 그나마 기계적 중립이 뼛속까지 배긴 스위스를 제외하면 이들은 전원 영국이 고까울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이걸 굳이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암요. 자기들이 아쉬우니까 인제 와서 해 달라는 심보가 매우 불순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거, 캐릭터 도용이라면 도용이긴 한데······ 우리 협약엔 아직 이걸 명시적으로 보장하진 않고 있죠?”
“애초에 값싼 양산형 잡지에 무더기로 튀어나오는 것들 아닌가. 그런 놈들이 잡지에 배설하는 것까지 봐줘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이상으로, ‘창작물’의 개념이 애매한 것도 있었다.
21세기조차 인터넷 소설 사이트에서 무료 연재된 습작들의 저작권을 하나하나 돌봐 줄 수는 없다.
여기서 2차 창작과 같은 음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그러하다.
19세기나 21세기나, 문학계의 기득권이 하위문화(서브컬쳐)를 보는 눈은 매한가지다.
음성적이어서든, 행정이 미발달한 영향이든,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까지 똑같았다.
근본적으로, 예술업계의 권위가 없지 않은가.
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 최후의 낭만주의 대하소설인 [레 미제라블>을 남기고 떠난 성인,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유고를 받드는 그들이 이런 하잘것없는 사사로운 일에 연관돼야 쓰겠는가.
······만은.
모름지기 모든 권위에는 상하 관계가 있는 법.
“어라? 함께 들어온 게 있는데?”
“보자, 이 편지는······ 어허?!”
죽은 성인의 유산관리인에 불과한 그들로서도 살아 있는 이의 권위에는 눌릴 수밖에 없었다.
“에, 에밀 졸라가 작가 연맹에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맥도널드?! 이 양반, 아직 살아 있었어!?”
기존에도 사실주의 문학의 대종사이자, 자연주의 문학의 개파조사이며, 이제는 살아 있는 양심으로서 진보 성향 작가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에밀 졸라.
그리고 영국 출신이지만 이탈리아로 와, 여러 문인과 친교를 다졌던 유럽 문학계 전체의 원로인 조지 맥도널드.
이들의 친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출신 보호국 위원들의 의견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흠흠, 다시 보니 이 또한 우리 베른 협약의 일이 아닌가 하오.”
“자세히 읽으니, 이 작가 연맹이란 곳이 나서서 영국 의회에 제도를 고쳐 달라 상주할 것이라 하지 않소? 그럼 우리도 더 적대할 이유는 없지요.”
“아니, 방금 전까지 굳이 나설 필요 없다고 해 놓고는!”
“크흠, 큼. 그거야, 에밀 졸라 선생님 편지가 있는 줄 몰랐을 때고.”
“뭐, 그야 그렇지.”
“그러면 대략, 이 프랑스 잡지 쪽으로 수정 권고를 보내는 걸로?”
“그렇게 처리하지요. 자, 다들 의견들 모아 봅시다.”
프랑스 찬성, 이탈리아 찬성. 스위스 중립, 벨기에 반대.
마지막으로 독일의 경우.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영국과 별개로 기왕 이렇게 된 거. 캐릭터······ 저작인격권에 대한 개념도 협약에 명시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소이다.”
“흐음. 하긴, 장 발장이 여기 나오고 저기 나오면 조금 그렇지.”
“이렇게 합시다. 저작인격권을 명시하는 판례를 만드는 겸, 벌금형을 좀 세게 먹이는 걸로.”
“그런 거라면 나도 찬성이오.”
“좋소.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그리고.
보호국의 권고가 도착하기 전, 파리.
“······진짜 갔다올 생각인가?”
“예.”
몇달치 원고를 뭉탱이로 받아 든 입장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피에르 라피트는 결국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가시게. 물론 출장비는 챙겨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사장님!”
“아, 그리고 현지 잡지에서 재밌는 거 있으면 더 챙겨 오고.”
“사장님······.”
부하 직원이었을 때도 생각했던 거지만, 정말 사람 잘 부려 먹는 편집장이다.
모리스 르블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칼레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
나는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복기했다.
메리가 글을 써 보고 싶단다.
메리 밀러, 올해로 여덟살이 되는 애거사 메리 클라리사 밀러가 말이다.
즉,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그녀가 글을 쓰겠단다.
“어······ 잠시만요.”
나는 잠시 고개를 돌리고 숨을 가다듬었다.
후, 하, 후. 아니, 이건 라마즈 호흡법이잖아.
소수, 소수를 세자. 2, 3, 5, 7.
소수는 1과 자기 자신으로 밖에는 나누어지지 않는 고독한 수. 나에게 용기를 주고, 각오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각오한 사람은 행복하다······.
음, 됐다. 행복감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는 메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아가씨?”
“웅.”
아직은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그래서 여전히 치유력 최고인 말투로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차분하게 무릎을 꿇고 재차 물었다.
“글이라면, 어떤 글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실,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일단 메리 본인부터가 내 글을 비롯해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클라라 여사가 책을 싫어하시다 보니 주로 내가 말로 이야기를 풀어 주는 상황이었지만, 메리는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그녀는 애거사 크리스티니까.
작가, 그것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대문호 중 한 명이 될 사람인 이상, 이야기를 탐닉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좋은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에 파고들다, 결국 자기 마음에 완벽하게 드는 작품이 더 없다는 갈증에······ ‘답답해서 내가 쓴다’가 된다.
이게 기초적인 작가의 길이다.
기초적이기에, 웹소설이고 장르문학이고 순수문학이고 참여문학이고 뭐고 없다.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비대한 내면세계를, 어떻게든 현실 세계에 구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상황이란 뜻이니까.
자, 그렇다면.
우리 어린 메리, 애거사 크리스티가 되어야 할 8살짜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기대 반, 아직 영글지 못한 대문호의 싹이 벌써 개화해도 되는가, 라는 불안 반으로 메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거.”
“그건······!?”
나는 경악하며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한슬.”
나는 맑디맑아 투명한 메리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이제야 그 눈이 단순히 순수해서 맑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메리는 지금.
“왜, 이런 거 더 안 써?”
“아, 아니 그게!”
매우 격렬한 분노와 함께, [피터 페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
다행히 메리가 구체적으로 ‘[피터 페리 시리즈> 2부’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피터 페리>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어려워.’
메리가 칭얼거리면서 한 말이었다.
‘한슬 책, 보고 싶은데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 피터 같은 게 좋아.’
으음······ 사실 이건 내가 할 말이 없는 부분이긴 했다.
살짝 성인 취향으로 썼던 [빈센트 빌리어스>는 물론이고, [던브링어>도 [딕터 박사>도 결국 끽해야 10대 중반, 그것도 몬티 같은 남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소설로 쓴 거니까.
만화로 치면 소년 만화 스타일이란 얘기다.
어느 쪽도, 갓 여덟짜리. 심지어 천재성을 갖추어 문학에 눈뜬 애거사 크리스티가 좋아할 만한 글은 아니다.
[바바 야가>는 더더욱 손대게 하면 안 되고.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승리의 여왕>인데······ 이거 단편이잖아? 만족스럽지 못할 만하다.
그래서 결국, 어린 소년이 우당탕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모험하는 팬─터지 학원물이란 얘기.
하긴, 이 장르는 성별에 따른 성향 차이가 심한 21세기 한국에서도 그나마 범 성향의 장르이긴 했지. 애초에 개파조사부터 여류작가였고.
애거사 크리스티도 추리소설 작가로서 유명하지만, 사실 그 작품 성향은 일반적인 퍼즐러(Puzzler)라기보단 섬세한 심리 묘사와 치밀한 구조를 잘 엮어 내는 서스펜스(Suspense) 특화형에 가깝다.
실제로도 ‘10계’나 ‘20칙’ 같은 규칙도 잘 안 지켰고.
즉, 이쪽을 써도 그 클라스가 어디 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장르소설이 늘 그렇듯 클리셰 덩어리인 만큼, 그 클리셰를 가르치면 아마 동서고금 유례없는 최연소 작가로서 흥할 것도 확정적이고.
······확정적이긴, 한데.
“가르치면 되지, 뭐가 문젠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잖아요.”
오랜만에 밀러 씨와 함께 애쉬필드의 호숫가를 거닐며, 나는 그렇게 하소연했다.
메리 밀러는, 애거사 크리스티다.
19세기가 낳은 추리소설의 여왕.
인류 역사상 최고의 여류작가 중 한 명.
아서 코난 도일과 달리, 자기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80여 편의 작품을 써 내려간 장르문학의 대문호.
그런 사람으로 성장해야 할 메리 밀러에게, 21세기에서 운 좋게 트립했을 뿐인, 그것도 웹소설 작가인 내가 글을 가르쳐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쭉 밀러 씨에게 늘어놓자(당연히 미래나 웹소설 부분은 쏙 빼고), 밀러 씨는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메리가 진짜로 작가의 소질이 굉장한가 보군.”
“예?”
“매지랑 몬티가 글 쓰고 싶다고 했을 땐 그런 소리 안 했잖나.”
“앗.”
그건······ 그렇지.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이야 각자 다른 길로 갔지만, 예전엔 매지랑 몬티도 글을 써 보고 싶다고 했었다.
지금은 관둔 이유? 별거 없다.
몬티는 몇 줄 쓰다가 못 버티고 읽는 것만 하겠다면서 포기. 매지는 열심히는 쓰는데, 너무 판에 박힌 전개라······ 결국 취미로만 즐기기로 했었지.
“그때는 걱정이 안되고, 메리는 걱정이 되는가?”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뭔가 차별하는 것 같잖아요.”
“차별이 맞지. 그럼 아니라고 생각했나?”
“······엄.”
저렇게 대놓고 말해 버리면 할 말이 없는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밀러 씨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주게.”
“그래도 됩니까?”
“허튼짓만 안 하면 셋 다 손자까지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그것도 자네가.
밀러 씨는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안심하고 원하는 대로 해 주게.”
“······밀러 씨.”
그 웃음에서 나는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원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 했다.
밀러 씨에게 보은할 수만 있다면, 까짓거 함 해 보죠!
“······.”
후일 돌이켜 보면.
절대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