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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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빌리어스(2)
서걱, 서걱―
“이보게들.”
끼이이이익― 콰직―!
“한 번만 살려 주게.”
잘 차려입은. 아니, 잘 차려 ‘입었을’이라는 말이 어울리겠지. 옷 자체는 런던의 명품이었으나, 이제는 찢기고 더럽혀져 걸레짝이 되었으니.
아무튼, 신사는 고개를 푹 수그리며 그리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잡역부······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위장한 하인들이 잠시 멈칫했으나, 그뿐이었다.
그들은 여태 하던 행동을 다시 시작했다.
서걱, 서걱―
작업을 계속하는 그들을 본 신사는 고개를 쳐들어 소리쳤다.
“제발 부탁일세! 존, 해럴드! 내가 술도 여러 번 대접하지 않았나? 이대로라면 내가 죽고 말아!”
“빈센트, 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러나.”
“그걸 원하는 게요, 변호사 나리.”
존과 해럴드의 차가운 말에 변호사, 빈센트는 그 모습에 이를 악물고 물었다.
“1공자인가?”
“······.”
맞구나.
빈센트는 지금도 선명했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1공자, 그레고리 빌리어스가 했던 말이.
─내가 아내는 못 믿지만 빈센트, 자네는 믿잖아. 그 자금, 맡아 줄 사람은 자네뿐이야.
─부탁하네. 알잖나? 그걸 들고 아시아 어느 식민지 구석에라도 숨으면 평생 귀족 행세하며 살 수 있는 돈이야. 그런데도 이걸 자네에게 스스럼없이 맡기는 건, 내가 그만큼 자네를 신뢰한단 뜻일세.
─걱정 말게, 스코틀랜드 야드는 평생 모를 거야. 사라진 자금으로 끝내기로 했네. 여왕······ 아니지, 그 할망구의 번견들이라도 자넨 못 찾아.
그야 당연히 못 찾겠지.
존과 해럴드의 작업이 끝나, 그가 저 구멍 뚫린 보트에 타면······ 영원히 저 검푸른 카리브해 밑바닥에 가라앉아 물고기 밥이 될 테니까.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빈센트는 이를 악물었다.
“6만 파운드(약 140억 원)일세! 6만 파운드야. 내 몫은 필요 없어, 자네들끼리만 나눠 가지게!”
“······.”
“손자들까지 떵떵거리고, 화장실(toilet)을 몽땅 황금으로 도배해도 썩어남을 돈이라고! 정말로 필요 없겠나?”
“빈센트 씨.”
묵묵히 듣던 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왜 안 도망쳤소?”
“······.”
빈센트는 입을 열 수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말 그가 도망치려면 진작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내, 더 말이 필요하오?”
그 답은 뻔했다. 빌리어스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여왕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2백 년간 권세를 이어 온 영국의 대귀족가.
그런 그들이 이스트엔드 출신 변호사 하나 따위가 숨는다 해서 찾아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건 그처럼 공부하지 않은, 더 거친 일을 하는 하인들이라도 쉬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 됐군.”
“태워.”
“자, 잠깐만! 제발, 제발 살려 줘!”
“그만하시게. 변호사 양반.”
존이 차갑게 말했다.
“이 정도면 술값은 충분히 치렀어.”
“야, 이 개자식아!!”
“어차피 부모도, 처자식도 없잖나? 그냥 속 편히 가게.”
그게 말이 되냐?!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해럴드가 더 빨랐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갈빗대 몇 개가 부러진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존의 말대로였다.
어쩌면 이대로 고요히,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임당하는 것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편히······.
‘웃기지 마라.’
빈센트가 생각했다.
‘내가 이대로 죽을까 보냐? 웃기지 마라! 그럴 거라면 그 이스트엔드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오지도 않았다!!’
‘빌리어스, 저주받을 빌리어스! 절대 나 혼자 가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네놈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물이 차올랐다.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그리고.
“허억!!”
“세상에, 비니(Vinny)!! 괜찮니?!”
“의사, 의사 불러 와! 제기랄, 이 무능한 놈들 같으니라고!!”
빈센트는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그를 껴안은 미부(美婦)의 분내가 코를 찔렀다. 듣기 싫은 중년의 새되고 갈라진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이 애가 누군 줄 아느냐?! 우리 빌리어스 가문의 소중한 막내란 말이다! 조금이라도 후유증이 있다간 전부 죽여 버릴 테다!!”
“무, 물론입니다. 물론입니다, 공자님!!”
그리고.
빈센트는 미부와 중년, 그러니까 부모들 사이에서 그를 보며 비웃는 작자의 얼굴을 보았다.
틀림없었다. 반평생 동안 그를 모신 빈센트는, 살짝 어려졌다 하더라도 그를 몰라보지 않았다.
그레고리 빌리어스.
버킹엄 공작가의 장자.
그리고 그의 원수.
‘나약한 놈. 우습기 짝이 없구나. 너 같은 놈이 내 막냇동생이라니.’
입술로 들리지 않게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빈센트는 역으로 비웃어 주고 싶었다.
아아, 정말로 우습기 짝이 없다.
원수의 집안에 다시 태어나게 될 줄이야.
이 영문 모를 조화를 일으킨 것이 신인지 악마인지, 빈센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네놈이 소중히 생각하는 것들.’
재산. 영광. 권력.
전부 빼앗아 주마. 빈센트 빌리어스는 그렇게 조용히 다짐했다.
***
[피터 페리>는 런던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아동소설이다.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이 [피터 페리>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아동소설 자체를 유치하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고, 근본적으로 [피터 페리>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세상에 완벽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명작의 이데아’ 같은 것은 최소한 현세에는 존재할 수 없다.
피터 페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다양했다.
어떤 사람들은 피터 페리가 기존 영문학에서 선호하던 운율의 아름다움이나 고도로 정제된 문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체로 귀족주의자들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피터 페리가 지나치게 주제가 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여 정말 중요한 사회 문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대체로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둘 모두를 충족하는 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이렇게 비꼰 적도 있었다.
“학대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자기가 꾼 꿈을 두서없이 지껄일 때 필요한 것은 의사와 위로뿐이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게 진짜 경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셰익스피어조차 조롱하는 척하면서 패러디한 소설을 몇 편이나 써낸 사람이 버나드 쇼였기 때문이다. 평소 그가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오히려 극찬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그는 [템플 바>는 물론, 몇 달 전부터 [피터 페리>를 옮겨 연재하기 시작한 [위클리 템플>도 꾸준히 애독 중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지 버나드 쇼가 독설가로서 동종업계 종사자를 존중하는 방식일 뿐, 어쨌든 [피터 페리>를 싫어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이자 고향 후배,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그런 버나드 쇼의 견해를 매우 안타까워했고······ 아침 발간된 [템플 바>를 보자마자 당장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오랜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가정부도 그를 말리지 않았고, 쇼는 독신이었다.
즉, 혼자 있었단 소리다.
“버나드, 버나드 씨!! 계십니까?”
“으음······ 무슨 일인가, 윌리엄. 지금 시간이······.”
아직 해도 뜨지 않았다는 것을 안 버나드 쇼는 순간 예이츠를 후려 팰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도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윌리엄 예이츠는 자신의 9살 위인 동향 작가 선배를 흔들어 깨우려 들었다.
“시간이고 자시고, 이걸 좀 봐주십시오!”
“정말 미안한데······ 나 진짜로 피곤하네. 어제도 노동당 간부들이랑 열심히 토론하고 왔단 말일세······.”
“토론은 무슨, 술이나 퍼마셨겠죠.”
아일랜드인으로서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작가는 술빨로 글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정치인들은 술을 먹는 게 생업이다.
이 셋이 겹쳐졌으니 버나드 쇼도 술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매일매일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흔들어 깨우려는 예이츠를 정말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별일 아니기만 해 봐라.’
정말 눈물 쏙 빼게 해 주겠다.
쇼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이츠가 그 난리를 피운 것이 [템플 바>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차라리 한 대 패고 계속 잘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이 개자식아. 네가 애들이나 보는 요정 같은 거에 진심이란 것과 그걸로 아일랜드의 고유문화를 되살려 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겠는데, [피터 페리>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아일랜드 식이 아니라······.”
“버나드, 형님! 그게 아니에요. 이건 [위클리 템플>이 아니잖습니까!?”
“엉?”
버나드 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래도 안 보이자, 눈을 좀 비비적거려 눈곱을 떼고 책상 위에서 안경을 찾아 꼈다.
그래, 분명 이건 [위클리 템플>이 아니라 [템플 바>였다.
그렇다면.
“······신작인가?”
제목, 빈센트 빌리어스.
작가, 한슬로 진.
‘아니, 이미 하나 연재하고 있으면서.’
그것도 부담이 어마어마할 주간 연재로.
그런데도 신작이라니······ 손목이 남아날 순 있는 건가?
아니면 이 작가는 무슨, 그 인도의 신상들처럼 팔이 넷이라도 된단 말인가?
버나드 쇼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피터 페리와는 전혀 다른, 암울하고도 강렬한 복수극 특유의 분위기가 그를 덮쳐 왔다.
게다가······.
“······물.”
“예?”
“가서 가정부한테 물 한 잔 갖다 달라고 하게. 어서!”
“아, 예!”
예이츠가 가져온 물을 한입에 털어 넣은 조지 버나드 쇼는 숨도 쉬지 않고 문장을 읽기, 아니 숫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이게 정말 그 [피터 페리>의 작가가 쓴 소설이 맞나? 버나드 쇼는 스스로 자문하면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피터 페리>에서 느껴졌던 지나치게 짧은 문장과 운율을 쌩 무시하는 무식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어휘, 어휘가 정확해.’
다른 사람도 아닌 조지 버나드 쇼는 그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본디, 하류층이 쓰는 언어와 상류층이 쓰는 영어가 다른 것이 영국식 영어다.
이른바 ‘파든 잉글리시(Pardon English)’라는, 계층에 따라 어휘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다. 화장실을 ‘toilet’이라고 쓰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이제까지 한슬로 진은 [피터 페리>에서 이런 어휘를 마구잡이로 섞어 써 왔다.
괜히 그가 미국 사람이라는 의혹이 번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소설, [빈센트 빌리어스>에서 주인공 빈센트는 이스트엔드 출신이라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는 이유로, 성공한 뒤에도 파든 잉글리시를 사용했다.
심지어 환생한 뒤에는 이 두 계층 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이를 이용해 하인들을 포섭하는 장면도 나온다.
언어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할 줄이야?
놀라운 글이다.
자유로운 발상, 매혹적인 전개, 직조된 분위기가 순식간에 버나드 쇼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더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
이건 혹시 노동자들의 영원한 우상, 찰스 디킨스, 아니면 그의 후계자라고 일컬어지는 윌키 콜린스가 부활한 것이 아닐까?
일순 긍지 높은 사회주의자이자 무종교인으로서 해선 안 될 이단적인 생각을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어떻습니까, 버나드.”
“······대단하군.”
어떻게 이런 글을 숨겨 왔나 모를 정도야.
조지 버나드 쇼는 그렇게 탄식했다. 월간 연재 분량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음에도, 지금 당장 다음 화를 읽고 싶었다.
물론 그 전에 “그렇지요?”라고 말하는 듯,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자신만만하고 있는 예이츠부터 참교육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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