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80)
우선, 미리 말해 두자.
나는 범부(凡夫)다.
딱히 내가 있던 시대에 손가락 스물 달린 누군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손가락 열 개 뿐으로도 천하를 오시하고 대중을 매료하며 문단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신시대의 신필(神筆)급 웹소설 작가들은 있긴 했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그냥 내 재능이 딱 범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19세기 영국 트립이 아니라 10살 시절 회귀했다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그냥 코인 아니면 주식 해서 빠른 탈조선이나 했겠지.
게다가 난 사파(邪派) 아닌가.
오로지 독학으로 바닥부터 올라갔었다.
글쓰기라는 것은 그 흔한 백일장에도 나간 적이 없다.
뭐, 나중에야 나름 작법서도 읽고 이런저런 경험이 쌓이면서 그것을 대략적인 이론화를 할 수 있게 되긴 했으나, 흑도 양아치들이 어디 좋은 스승이던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메리를 직접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빠른 실전으로 메리의 근골부터 다지려 했다.
여러 가지 작품들을 보고 장르문학의 ‘장르’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스스로 플롯과 스토리,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익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더 없어?”
“어, 음.”
벽을, 느꼈다.
내가 쌓다시피 가져온 책들이 전부 예의 깜지 수준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전부, 메리가 그 특유의 관찰안(觀察眼)으로 분석을 끝낸 메모였다.
내가 주문한 것은 각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장르. 즉, 배경/사건/역할 등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좀 적나라하게 말하면 물고 씹고 뜯고 맛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너무나······ 너무나 쉽게 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반호>에는 ‘소꿉친구’, ‘권선징악’, ‘정당한 왕권’, ‘적대 관계 속의 연애감정’ 등이 붙어 있다.
이는 왕권 부분을 제외하면 완벽히 [로미오와 줄리엣>과 부합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007시리즈>에도 닿아 있는 서사 구조다.
이걸 이렇게 간단하게 파악해 낸다고?
당연한 소리지만 작품의 분석은 간단하면서도 꽤 어려운 일이다.
사람에겐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필터를 통해 보기에 그 구조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거다.
이 작품이 성공한 원인이, 내 취향에 안 맞고, 그래서 장점으로 안 보이는 일은 흔한 일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걸 그다지 잘하진 못했다. 그냥 알고 있었을 뿐이지.
그런데, 이걸 메리는 너무나도 쉽게 소화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퍼거슨 감독님처럼.
“이게 재능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전율하며 중얼거렸다.
이미 말했지만 애초에 난 범부다. 당연히 벽을 느끼던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완성된 무언가를 통해서였다.
누군가의 성장을 보면서 그러한 감상을 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슬······?”
“······.”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입꼬리가 들썩인다.
그래,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나 명쾌하게 알아 버렸다.
그것은 ‘희열’.
나는 지금 참을 수 없는 거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미친 듯이 자라나는 이 재능 덩어리를 보면서, 마치 하루아침에 자라나는 잭의 콩 나무를 보며 이 위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지를 상상하며 전율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은 기본기다.
초절 기교까지는 어렵지. 거기는 나도 꼼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까. 괜히 잘못하다가 이상한 쿠세(버릇)이 들면 그건 그거대로 무리다.
그럼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역시 하나밖에 없지.’
난, 이미 성현들로부터 배워서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잠시, 런던 좀 함께 가 주시겠습니까?”
“우웅?”
고개를 갸웃거리는 메리를 어깨에 태우고, 나는 밀러 씨에게 허락받으러 갔다.
겨울이었다.
***
“······그래서.”
아서 코난 도일은 잠시 머리를 짚었다.
요즘은 그래도 좀 덜 사고를 친다 싶었는데, 갑자기 이런 짓을 하다니.
“주인집 딸인 메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겐가?”
“뭐, 그렇죠.”
나는 히죽 웃으면서 한창 저 중앙에서 조지 맥도널드 대표님과 에밀 졸라 작가님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는 메리를 보았다.
특히 에밀 졸라 작가님은 프랑스인이라 그런가? 가정생활을 좀 개판으로 해서 자식 관계가 좀 애매모호해서 그런지, 아장아장 걸으면서 ‘할부지(grandpa)’라고 하는 메리의 모습에 아주 자지러지고 있었다.
둘뿐이 아니다. 아닌 척해도 주변의 다른 작가들도 알게 모르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모두 동네 꼬마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삼촌들이 되어 저러고 있지만, 저 하나하나가 세기를 대표할 만한 천재들이다.
세계 환상 문학의 조부고,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개파조사고, 연문의 천재이자, 하다 하다 비평문의 천재까지!
그래, 내가 내린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예부터 무협에서부터 유서 깊게 내려오던 것으로 바로······.
“흐흐흐. 저 혼자 가르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가르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동전인(共動傳人)!
먼치킨의 클리셰 그 자체다.
아, 물론 공동 전인이라는 게 쉬운 개념은 아니긴 하다.
누가 자신의 진전을 잇는 제자를 공유하고 싶겠는가.
제아무리 부탁한다 해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서는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니, 나이가 몇이라고?”
“여덟 살이요.”
“이럴 수가!”
난 따로 부탁도 하지 않을 거다. 그냥 보여 주기만 할 거라고!
당장 내일이라도 검강을 쭉쭉 뽑아낼 거 같은 천무지체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는데 백도고 흑도고 간에 이를 가만히 둘 고수가 있겠는가?
“허허, 참.”
그런 내 속내를 들은 코난 도일, 차후 추리소설의 중시조이자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의 칭호를 얻게 될 장르문학의 절정고수는 그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원래 동아시아 농촌사회에는 공동육아라는 개념이 있었다고요.
아들아, 네가 태어났을 때 온 마을이 네 이름을 속삭였단다······ 같은 거.
“그래도 너무 섣부르게 데려온 것 아닌가? 매지랑 몬티도 어느 정도 재능은 있었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았나.”
“음, 뭐.”
아서 코난 도일의 시선이 대충 이해가 간다.
아마 대충 ‘이 팔불출이 또오’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메리는 다를 겁니다.”
“확신하는가?”
“뭘 쓰고 싶어지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무엇을 쓰든 메리는 브론테 자매나 제인 오스틴을 뛰어넘는 최고의 여류 작가가 될 겁니다.”
“······놀랍군.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처음 보는데.”
내가 호언장담하자, 코난 도일 선생님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는 말이 단순한 팔불출의 허언이 아님을 대충 눈치를 챈 것이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조금 가르쳐 볼까······.”
흐흐흐 그래요,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말로는 싫다, 싫다, 해도 추리물의 고금제일인으로 우뚝 섰던 사람이 코난 도일이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의 필력을 받아들이고 신필합일(身筆合一)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래다.
그렇다면 그 무학은 얼마나 고절할 것이며, 그것을 ‘추리소설의 여왕’이 이어받는다면 대체 얼마나 쩌는 책이 튀어나올 것인가? 나는 기대감에 가볍게 몸이 떨릴 정도였다.
자, 그러면.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굽니까?”
나는 나와 아서 코난 도일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으면서 쭈뼛거리던 사람을 가리켰다.
사실 사진으로 몇 번 본 얼굴이긴 한데, 진짜 그 사람일 리가 없어서 물어봤다.
아서 코난 도일은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사람에게 턱짓해 말했다.
“인사하게. 이 친구가 한슬로 진일세.”
“하, 한슬로 진이 동양······ 아, 반갑······ 소이다. 모리스 르블랑이오.”
“······진짜로 모리스 르블랑이요?”
아니, 형이 여기서 왜 나와?
나는 의아한 눈으로 모리스 르블랑을 보았다.
사실 아서 코난 도일이 추리소설 계의 정파제일인라면, 이 양반은 사파제일인 아닌가.
그런 사람이 뜬금없이 영국에서 튀어나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잠시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
“······영어 잘하시네요?”
“그,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잠시 유학한 적이 있소이다······.”
“아하······.”
뻘쭘해진 나와 모리스 르블랑의 갈 곳 잃은 눈이 잠시 교차했다.
아서 코난 도일은 그사이에서 파이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말했다.
“사과를 하러 왔다더군.”
“사과요?”
“그, 그렇지! 죄송했습니다, 한슬로 진 작가님!!”
모리스 르블랑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 그렇지? 역사가 달라져서 그런지 이 양반, [셜록 홈스>뿐만 아니라 [던브링어>도 도용했었지?
뭔가 이미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라 미처 생각지 못했다.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그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흐음.”
나는 그런 모리스 르블랑의 말을 쭉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아서 코난 도일 선생님은 이미 사과한 것 같고, 그럼 나는 더 할 말 없지.
“됐습니다. 르블랑 작가님.”
“괘, 괜찮은가?”
“물론이죠. 저도 [아르센 뤼팽> 꽤 재밌게 봤습니다. [유대식 등잔>, 훨씬 좋던데요?”
“아, 아아······!”
어허, 운다.
보아하니 이 양반도 은근히 심약한 부분이 보인단 말이야.
흠, 가만히 있어 보자.
“그러면 혹시 모리스 르블랑 작가님, 작가님도······.”
“아, [젠틀맨 클럽>을 함께 쓰잔 이야기라면 이미 했다네. 아무래도 비정기인 데다 수익 부분이 애매하긴 하겠지만, 비공식이니까 괜찮겠지?”
“······작가 연맹 가입은요?”
“이미 끝났네.”
“않이이.”
뭐 이렇게 빨리 끝내셨어.
나는 잠시 아서 코난 도일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의문의 의기양양하신 얼굴이 은근히 열 받네.
뭐, 아무튼 이미 끝났다니. 그러면 그쪽은 어쩔 수 없고.
“그럼 오신 김에 메리한테 조금 가르침이라도 주고 가시죠.”
“어, 음. 진짜로? 그래도 되는 거요?”
“물론이죠.”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레기옹 도뇌르상까지 받게 되는 작가가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메리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겠지.
그리고 아까부터 이리저리 제 재능을 뽐내며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신나게 팬을 놀리고 있는 메리를 향해 시선이 떨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 양반에게도 흥미가 없진 않은 모양이었다.
자, 그럼 그건 그렇고.
나는 잠시 작가 연맹 궁극의 아이돌이 되어 가고 있는 메리를 보며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새삼,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굉장히 소홀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피터 페리>를 썼던 이유가 무엇이었나. 다름 아닌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나.물론 처음엔 그저 내가 밀러 씨의 눈에 들기 위해서였지만, 그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진심으로 변했다.
그래서 매지와 몬티가 좋아할 만한 글을 썼던 거고.
[던브링어>와 [딕터 박사>도 그 연장선상이었지만, 어찌 보면 [빈센트 빌리어스>도 비슷할 수 있겠다.자수성가든 뭐든 잘 배운 서민이 귀족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함의가 담긴 글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메리가 거기에 취향이 안맞았다고 한다면, 거기에 취향이 맞는 글도 쓰는 것이 사람된 도리.
그리고 여자아이가 좋아할, 웹소설에서 흥했던 소설이라면······ 흠.
“역시 그것뿐인가.”
“응? 무슨 말인가?”
“아, 차기작 생각을 좀 했습니다.”
“오?”
아서 코난 도일이 눈을 크게 떴다.
“차기작이라니, 무엇을 쓸 생각인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