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81)
「거대한 여객선 위. 그저 끝없이 잔잔히 검푸른 카리브해가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새파란 수평선뿐. 어디나 비슷하게 보일 뿐이지만, 빈센트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이다.
변호사 빈센트가 죽고, 빌리어스 공작가의 막내 빈센트가 잉태된 곳.
“30년 걸렸나.”
모든 걸 불태우고, 모든 걸 손에 넣어, 다시 모든 걸 내려놓기까지.
더 이상 빌리어스 대공이 아닌, VV 사(社)의 회장으로서.
빈센트는 천천히 품에서 싸구려 3급 에일 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뒤집었다.
“이제 편히 자라.”
고개를 돌려, 반대쪽 수평선을 보았다. 하얗게 보일 정도로 백열 하는 태양이 뜨고 있었다.
죽은 자의 시간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산 자의 시간.
새로운 출발로 돌아갈 때였다.
부우우우─.
항구에 다다르는 뱃고동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END」
벤틀리 출판사의 사장,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는 가만히 [빈센트 빌리어스>의 마지막 원고를 보며 눈물을 삼켰다.
원수 그레고리 빌리어스를 쳐내고, 당당히 후계자 자리에 오른 빈센트.
그리고 후계자로서 당당히 빌리어스 가문의 노괴들을 하나하나 제압하여, 마침내 가주가 되었으나.
가문의 부는 전부 미국에 있는 VV사로 이전, 껍데기만 남은 가문은 백치 상태인 사촌 동생에게 넘겨 버리고, 왕위 계승권을 버린 공주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서 새 출발.
카리브의 여명 위에서 전생의 빈센트에게 자신만의 장례식을 치러 주는 그 모습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버금가는 깔끔하고 확실한 수미상관이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
“하하,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다소 통속적이긴 합니다만, 충분히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감동적인 엔딩이라고 자신합니다!!”
아니, 그건 너무 금칠해 주시는 거 같은데······.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마를 긁적였다.
그런 한편, 벤틀리 씨의 눈을 보았다. 양옆으로 흔들리는 두 근 반 세 근 반이 여기까지 전해져 온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요즘 벤틀리 씨보단 작가 연맹이나 [스트랜드 매거진> 관련으로 일을 더 많이 했지. [셜록 홈스> 코믹스부터 [아르센 뤼팽>에 대한 대처까지 말이다.
아무리 예정된 일이었다곤 하지만, [빈센트 빌리어스>의 완결은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괜히 과거, 여기로 치자면 미래의 만화책 잡지에서 잘 나가는 작품의 연재를 이어가고 장기화했던 게 아니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 장기화 작품들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암흑기가 찾아왔었지.
아무튼, 사실 그것은 비단 출판사만의 일도 아니긴 하다. 작가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긴 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이미 쓸 수 있는 것을 다 쓴 작품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 그것은 작가에게 있어 더더욱 괴로운 일이니까.
없는 물기를 쥐어 짜내는, 집필이 작업이 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다행히도 내겐 양쪽 모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다음으로 이어질 이야기는 무척이나 간단하겠지.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벤틀리 씨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면, 차기작 이야기를 해 볼까요.”
“차기작······ 해 주시는 겁니까, 작가님!?”
“뭐, 딱히 쉬거나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요.”
원래라면 완결을 낸 이후 조금 텀을 내야겠지만, 내게는 큰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안 그래도 원래 웹소설로 매일 연재하던 때에 비하면 천국과도 같은 일정이다. 그 덕에 이런저런 잡다한 것에도 손댈 수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 그 공백기라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거든.
체력을 회복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중요한 과정이긴 하지만, 반대로 글을 쓰는 것을 멈췄다간 되려 퇴보하기도 한다.
괜히 오래 쉬었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작가가 생기는 게 아니란 말이지······.
아무튼 양쪽 모두 내게는 큰 상관이 없는 내용이긴 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배경으로 수도 없이 영감이 떠오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이번엔 그 목적 역시도 뚜렷했으니까.
‘메리가 보고 싶을 법한 작품’.
이 확고한 주제 덕에 집필 시간도, 전에 비해 많이 걸리지 않고 슉슉 써졌다.
그야말로 그것 ‘하나만’ 본 글이니까.
“작가님, 이건······!”
“오랜만에 기본으로 돌아가 볼까 해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판타지. 말하자면, 음······ 사냥물(Hunter), 이라고나 할까요?”
***
샛노란 소년의 머리카락 위로 바람이 불었다. 소금기가 짙게 스민, 특유의 바닷바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열하고도 네 시간 전, 소년은 작은 항구 마을에서 그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여객선에 탑승했다.
당연히 돈은 없었지만, 대신 아버지의 친구라며 이등석 승선표를 던져 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추가로 악의 섞인 조언도 하나 주었다.
‘내가 아는 한 네가 탈 수 있는 가장 좋은 배일 거다. 이대로 이 배가 내리는 바로 다음 항구에만 내려. 그러면 대충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야. 뭐, 안심해. 최소한 가다 아사하거나 동사하진 않을 거고, 네가 세수하다 잠들지만 않으면 익사할 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
“지X!”
입 안으로 들어오는 머리카락을 뱉으며 소년은 크게 중얼거리듯이 외쳤다.
확실히 식사는 맛있었고 난방 역시 훌륭했지만······ 지금 소년은 아사, 동사, 익사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었다.
빌어 처먹을 폭풍우가 배를 두 쪽 내 버렸기 때문이다.
‘제기랄,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공짜에 맛 들이지 말라더니. 아버지가 했던 말에 틀린 것 하나 없던 것이다.
심지어 대충 가라앉을 때 들어보니까 이 배는, ‘노예 무역선’이었던 거 같다.
어쩐지 험한 항로만 골라간다 싶더라니······.
‘하,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그런 와중, 조금이라도 힘이 빠지면 그대로 흘러가 버릴 것 같은 판자를 아직까지 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생존 욕구에서 나오는 경이적인 에너지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후욱, 후욱.”
점점 손끝이 저려 온다.
벌써 얼마나 지났을까. 하루? 이틀? 설마 몇 시간 안 지났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이미 입가는 바싹바싹 말라오고 배도 고파오고 있었으니까.
이상한 일이다. 아까 빠지면서 바닷물을 그렇게나 많이 들이켰는데 목이 마른다는 사실이 말이다.
“젠······ 장······.”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그러자 그의 뚜렷한 생존 욕구에도 점차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힘들잖아, 너도 쉬고 싶을 거야······ 그치?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없잖아? 과연 이런 곳에 누가 도와주러 올 거 같아?
게다가.
어차피 살아 봤자─
“젠장, 닥쳐!”
소년은 거칠게 소리쳤다. 판자에 소년의 주먹이 내리쳐졌다. 소리에 섞인 절규는 오기와 함께 폭풍을 향해 내질러졌다.
“난 살아남을 거야! 살 거라고! 난 죽지 않아! 젠장, 이따위에 죽으면, 난 뭐가 되는 거냐고!! 그러니까 난 죽지 않을 거란 말이다!!”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소금물과 비가 목젖을 때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년의 절규는 더욱 날카롭게, 더욱 폭발적으로 터져 나갔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는 굳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좋게 표현한다면 용기라고 할 수 있겠고, 패기라고도 할 수 있겠으며, 나쁘게 말하면 광기라고 표현해도 문제가 없을 그 무언가는 살벌하기까지 한 의지로 수렴했다.
그리고 그 의지 덕분일까? 무언가가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보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소년은 한 치 앞도 허락하지 않는 빗발과 먹구름과 소금투성이 바람 사이에서 그것을 보았다.
‘빛?’
소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등대였다.
하지만 등대가 아무리 길잃은 배나 표류자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것이라 해도 직접 다가와서 도와주는 부류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배였다. 휩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떻게 하지? 팔다리라도 움직여서 피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폭풍을 헤치고, 광원이 다가왔다. 소년은 눈을 크게 떠야 했다.
그것은─.
“헉!!”
소년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환상이라도 본 것일까? 널빤지가 잠깐 기우뚱하였으나, 작은 몸집 덕인가 다행히 뒤집히지 않았다.
둘러본 바다는, 언제 폭풍우가 지나갔냐는 듯 잔잔했다.
널빤지를 디딘 손바닥 아래, 흩어지는 물보라 소리만이 그의 귀를 간질일 정도로 고요했다.
“살아······ 난 건가?”
방금 그 폭풍우는? 아니, 내가 잠들었던 걸까? 잠들어 있었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혼란스러워서 어지러울 지경.
하지만, 그 생각도 길지는 않았다.
─크롸라라라!!
“······윽!!”
널빤지 아래, 바닷속에서 무언가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하늘로 떠오른 소년은,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크라켄······!’
저것이었다.
폭풍우와 함께 나타나, 그를 실은 노예 무역선을 무참히 갈라 버렸던 거대한 괴물(monster)이.
수십, 수백 개의 촉수-다리를 꿈틀거리던 그것이, 이제는 기어코 소년마저 잡아먹으려 이 자리까지 찾아온 거다.
풍덩!!
“으으윽!!”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그런가, 물에 떨어졌음에도 몸이 아팠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촉수가 뻗어올 것을 생각하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시이이익!
“으악!!”
요동치는 수면에 몸이 물속으로 잠겼다. 숨이 턱 막혀왔다.
‘안돼, 제기랄!’
물속에서, 소년은 생각했다.
그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여기서 죽으라고?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여기서 죽어선 안 되는, 기필코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목숨보다 중요한 사명이!
하지만 크라켄은 그따윈 알 바가 아니라는 듯 다리를 뻗어, 그것을 소년을 향해 여러 번 휘둘렀다.
너무 커서 그런가, 맞지는 않아도 그의 몸이 마치 장난감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린다.
“으으으윽······!”
그리고 마침내, 크라켄의 다리가 그에게 육박하려는 순간.
“뀨뀩!”
‘······어?’
그 직전, 그것을 끊고 무언가가 발아래로 튀어나왔다.
물속에서,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물 자체가 굳어진 듯한 투명한 몸체.
말과 닮았지만, 훨씬 작고 말끔한 머리와 물보라처럼 흩어지는 갈기.
물고기와 같은 미끈한 하체.
‘케, 켈피(Kelpie)?’
“뀨육.”
드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환상종(cryptid)이었다.
이런 작고 여린 형태는 더더욱 그랬다.
‘뭐해, 어서 도망을······!’
“뀨귝?”
그때였다. 크라켄의 집채처럼 커다란 다리가 또다시 덮쳐 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켈피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켈피는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손가락을 물고는 빨아댔다.
“뀨우우욱!”
‘······뭐, 뭐야?!’
그때였다.
‘어······?!’
몸속에서 일순, 어쩐지 어디선가 본 듯한 빛이 반짝이고.
품에 있던 새끼 켈피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숨이······ 쉬어진다?’
기이한 기분이었다.
물이 마치 공기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몸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을 움직이듯, 다리를 움직이듯. 몸 표면에 닿은 물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이이이이익!!
뻗어오는 다리에, 가만히 팔을 움직여 보았다.
마치 잘 드는 칼처럼, 물은 뻗어나가.
─시이이익!?
크라켄의 수십 개의 다리 중 하나를 잘라 냈다.
됐다.
소년은 생각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라면,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돌아갈 수 있다.’
우선, 저 오징어부터 한 끼 식사로 만든 다음의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