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82)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라.
한슬로 진의 두 번째 작품, [빈센트 빌리어스>가 완결 났다는 소식에 런던 시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엔딩에 가슴이 후련해지는 이들도 있었고, 자신도 빈센트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겠다는 이들도 있었으며, 굳이 마지막에 미국으로 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도 있었다.
그리고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아쉬워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젠장, 딱 1년만 더 연재하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페이비언 협회, 조지 버나드 쇼의 말에 에디스 네스빗은 혀를 차며 그의 철없는 소리를 타박했다.
‘이래서 연재를 해 보지 못한 작가들은.’
같은 작가라곤 하지만, 조지 버나드 쇼의 주 활동처는 희곡. 반대로, 에디스 네스빗은 지금도 스코틀랜드 월간 잡지인 [굿 워즈(Good Words)>를 비롯한 여러 연재처에서 20년 가까이 아동문학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버나드 쇼가 말하는 1년만 더 연재해 달라는 말이 얼마나 개같······ 아니,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쉬지도 않고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한슬로 진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것에 눈을 흘길 정도.
하지만 조지 버나드 쇼 역시 할 말은 있었다.
“헹, 웃기는 소리. 그보다는 이 [빈센트 빌리어스>가 우리 페이비언 협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시구랴.”
“끙, 그건 그렇지만요.”
1893년에 연재를 시작한 [빈센트 빌리어스>. 동양인이 쏘아올린 이 작은 스노우볼이 이 런던에 끼친 ‘선한 영향력’이 어느 정돈지는 일목요연했다.
‘베어링스 스캔들’을 까발려 보수당의 당수인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을 엿 먹이고, 경영자들에게만 유순한 양이 되는 위정자들을 엿먹였다.
독성이 강한 납을 산업 현장에서 퇴출시키며, 노동자들이 제 한 몸을 더욱 오래 건사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했지.
절대 나올 거 같지 않던 반독점법까지 이끌며 국가 경제를 더욱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했고.
심지어 화이트 채플의 재개발 사업이 [빈센트 빌리어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풍문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경영에 대해 너무 몰랐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여러분, ‘님’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그리운 이름입니다. ‘님’은 바로 빈센트 빌리어스와 같은 올바르고 정직한 경영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우운!
부르주아의 위치에 있지만, 그 속내는 여전히 이스트엔드 출신 코크니로 생각하는 빈센트.
그는 수평적인 노사관계를 지향하고, 사내 노동 조합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양심적이고 건전한 경영자였다.
페이비언 협회가 지향하는 건전하고 비폭력적인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주장하는 데에 있어, 이보다 더한 간판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영향으로 페이비언 협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성세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 기세 덕에 노동당은 차기 총선에서 충분히 원외 입성을 노려 봄 직해졌을 정도였다.
“결국 중요한 건 대중이지.”
조지 버나드 쇼는 그렇게 정리했다.
대중이야말로 표. 그리고 그 표가 의회에서의 승리를 만들며, 더 나은 노동 환경을, 그리고 아일랜드의 독립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게 만든다.
그러니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동지를 늘려야 하는데······ 이러니 [빈센트 빌리어스>의 완결이 얼마나 아쉽겠는가.
제발 1년······ 1년만 더 했으면······.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에디스 네스빗이 기죽지 않고 말했다.
“안 그래도 까마득한 후배한테 의지만 해서 미안해 죽을 지경 아니었나요? 우리도 이젠 우리 스스로 여론을 설득할 방법을 찾아 봐야죠.”
“쩝, 그것도 맞는 말이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버나드 쇼였다.
어쨌든, 그 역시 한슬로 진에게 업혀 가는 게 마냥 마음에 들진 않았으니까.
‘다음에는 반드시.’
그런 열망으로, 두 작가는 슬며시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는 동지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집필이란 고독한 것.
서로의 작품 중에 무엇이 더욱 성공할지 겨루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본성에 가까웠다.
그렇게 두 작가 사이에서 잠시 몇 초간, 호승심이란 전류가 흘렀다. 그러다 먼저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에디스 네스빗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템플 바>에는 [빈센트 빌리어스>의 후속작도 실리죠?”
“아차, 그렇지.”
[피터 페리>, [빈센트 빌리어스>, [던브링어>, 그리고 [딕터 박사>에 이은 다섯 번째 장편.매번 다른 색채를 뽐내는 한슬로 진의 신작에, 에디스 네스빗은 기대감을 안고 [템플 바>를 다시 열었다.
기대감에 빛나는 에디스 네스빗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용이 흐르는 바다(The Sea Where Dragons Flow)>라는 제목이었다.***
본래, 장르소설은 대중문화에서 문학을 담당하며, 대중의 ‘니즈’에 따라서 그 형태를 바꾸고 분화하고, 또 통합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적응이다.
대중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거스르면 좆 된다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러니 웹소설이 남성향과 여성향으로 급격히 분화된 것 역시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뀌는데 대중이라고 그대로겠나? 그냥 뭘 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타게팅을 하면서 나뉘었다고 해야 하나?
왜, 보아 씨 내려와 봐유! 하는 그 양반도 그러지 않았나.
장사를 하려면 선택과 집중, 확실히 노려야 할 고객층을 선택하고 잡아야 한다고.
그와 비슷한 일환인 거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일본 만화가 60~70년대에 소년 만화와 소녀 만화(순정만화)로 갈라졌던 것을 되돌아보자.
거기 어디에 갈등이 있었겠나? 그냥 틈새시장의 공략과 특정 기호(嗜好), 취향이 구체화하는 데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아무튼 양 진형은 각기 다른 타겟팅을 한 만큼 각자 다른 생태계를 꾸미며 성장해 왔다.
작게는 데뷔 방법이나 계약 조건에서부터, 크게는 작법까지 차이가 생긴 거다.
뭐,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런 게 아니라······ 내가 데뷔했을 때는 이미 이렇게 확실하게 시장이 나뉜 뒤였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결론은.
“로맨스는 도저히 못 써먹겠다는 거죠······.”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양심 고백했다.
아니, 나도 메리를 비롯한 여자아이들이 진짜로 좋아할 만한 판타지, 그러니까 로맨스 판타지를 모르는 건 절대 아니다.
원래 명작은 성별을 안 가린다고 하고, 실제로 정말 말도 안 되는 메가 히트를 한 작품들은 각 영역을 넘어 다른 독자들마저 빨아들이는 마성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서로의 영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었다.
대표적으로 보자면, 한때 남성향에서 여성 독자들을 잡아 보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한 거라든지, 아니면 여자 주인공 판타지나 로맨스 판타지에 ‘무협’이 섞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자극을 원하고, 제일 좋아하는 자극은 잘 아는 맛인데 조금 다른 색다름이니까.
사실 나도 그래서 나름 연구는 해 봤다. 웹소설 작가란 직업은 끊임없이 트랜드를 연구하지 않으면 금세 파묻히고 마는 직업이니까.
정령물이나, 할리퀸 로맨스. 일본산 악역 영애물이나 무협 로맨스물까지 여럿 섭렵했었다.
아무튼 그런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나도 메리를 위해 로맨스 판타지에 도전해 봤다는 말이다.
뭐, 결과는······.
“역시 누에는 뽕잎을 먹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이지요.”
당연히 폭망이지.
내가 봐도 못 봐주겠더라.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뿐이었다.
하긴 제아무리 무협을 잘 써도 판타지를 잘 쓰라는 법이 없고, 판타지를 잘 쓴다고 스포츠 소설을 잘 쓰라는 법이 없는 게 이 업계다.
같은 남성향이라는 테리터리 안에서도 이 정돈데, 감히 어딜······.
“자네가 그렇게까지 자학하는 건 또 처음 보는군. 그건 그거대로 재밌는데?”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들은 아서 코난 도일이 재밌다는 눈으로 그렇게 말해 왔다.
그 표정이 매우 고까워서, 나는 그런 그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거들스톤 회사(The Firm of Girdlestone)>.”
“윽.”
“[도시 저편(Beyond the City)>.”
“알겠네, 알겠어! 빌어먹을, 사람 약점을 잘도 파헤치는군.”
대체 그걸 어떻게 안 겐가······ 라고 중얼거리시는데, 크흐흐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습니까?
참고로 저 두 소설은 코난 도일 선생님이 썼던 로맨스 소설들이다.
나도 이 시대에나 와서 안 소설들답게, 둘 다 망했다. 그런 주제에 뭘.
“애초에 이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제인 에어(Jane Eyre)>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을 이겨야 하잖아요. 못 이기죠, 그런 거.”
“무슨 한니발인가? 산맥을 넘어도 알프스(Alps)를 넘게.”
아서 코난 도일은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흐음, 히말라야산맥이나 에베레스트산이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시대라서 그런가? 비유가 알프스로 넘어가네.
물론 저 두 소설은 그만큼 드높은 소설이긴 하다.
나중엔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에 밀리지만, 그것도 문학적 평론으로 재평가된 거고.
이미 이 시절, 훗날 백 년 뒤에도 촌스럽지 않다 여겨질 정도로 로맨스의 ‘근간’을 정립한 소설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대신 쓴 게 이거란 건가?”
“예, 그렇죠.”
[용이 흐르는 바다(The Sea Where Dragons Flow)>.어쩌다 보니 그냥 정통 판타지에 가깝게 되긴 했지만, 내 나름대로 헌터물의 클리셰를 담아보려 애썼다.
굴욕, 기연, 복수의 3요소가 그것이다.
고도로 발전된 사회조차 나서기 힘든 ‘대격변’이라는 위기. 그 앞에 당당히 서는 개인.
귀환이든, 회귀든, 성좌와의 계약이든,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한 이능.
소시민 주인공의 욕망에 충실한 언동까지.
21세기, 이 지구라는 지옥 같은 행성을 살아가는 히치하이커들이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는 클리셰들이다.
이것이 바로 헌터물이 한국 웹소설의 가장 큰 기둥이요, 아이덴티티이자 스터디셀러 장르가 된 원동력이다.
뭐, 진짜 너무 탄탄한 클리셰라 너도나도 쓰다 보니 본진은 역으로 레드오션이 되긴 했지만.
여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라면, 광고계의 치트키인 3B.
즉, 아기(Baby), 미인(Beauty),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Beast)이다.
한때 판타지에 아기 드래곤, 고양이, 펜니르는 국룰이었지.
물론, 이 역시 너무 남발하며 독자들에게 믿고 거르는 목록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것도 클리셰가 썩어 버린 이후의 얘기다. 지금은 아니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저 아기 켈피 ‘뀨뀩이’다.
귀여운 동물들과 이를 다루는 주인공, 그리고 몬스터들이 성장하면서 주인공도 성장하고, 그 능력을 더 잘 다루는 구조는······ 펫이 적폐가 된 이후에도 잘 살아남았으니까.
뭐,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이 장르는 현대 정통 판타지와 게임 판타지 장르가 쌓아 놓은 기반 위에서 성공한 장르였으니까.
그걸 과연 이 시대 사람들이, 이 장르에도 따라올 수 있을까?
씁, 모르겠다.
어쩔 수 없지. 이 작품은 일단 전적으로 메리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만든 거였으니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어떻게든 사업성을 넣어서 만들긴 했지만······.
그때였다.
─자, 자자자자작가님!!
“무슨 일이세요, 벤틀리 씨.”
─대, 대박입니다! 대박이에요!
“에······.”
이거.
내 생각보다 너무 잘 먹혔다.
[ 헌터물(2) >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