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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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아니고 트립
좋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말하자.
내 이름은 진한솔. 직업은 웹소설 작가다.
몇 년간 작품도 꽤 냈고 나름대로 먹고살 만한 기성 작가.
이번에는 모처럼 길게 휴가를 얻은 김에, 취재 여행 겸 성지 순례를 위해 영국 여행을 왔는데─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 이동이라니.”
게다가, 하필이면 1.5세기 전 영국이라니.
빅토리아 시대이자 벨 에포크. 1차 세계 대전 직전, 그나마 유럽에 마지막 평화와 번영 분위기가 감돌던 문자 그대로의 세기말 시대······ 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는 것.
그것은 곧 웹소설 작가로서 내가 쌓아 온 필모가 전부 무의미한 곳이란 뜻이다.
아니, 인터넷도 컴퓨터도 없는 곳에서 웹소설 작가가 뭘 하라고 이런 데에 떨어진 거란 말인가.
게다가.
“어이, 쿨리(苦力: 영미권에서 활동한 아시아인 저임금 노동자)! 뭐 해!?”
“잡생각 할 시간 있으면 나르던 거나 날라!!”
“아, 예! 갑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한 것은 환생이나 빙의가 아니라 트립, 즉 전이(轉移)다.
“세상에. 철 다 지난 전이라니······.”
요즘 트렌드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그것도 나 같은 작가가 떨어진다면 자기 작품 속인데 말이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제 자식 같은 작품 속에 빠져 발목을 수도 없이 많이 찍혔더란 말이냐.
아니, 사실 내 작품 속이 아니어도 괜찮다.
다만, 기왕 19세기 영국에 온다면 최소한 귀족가 망나니나 부유하고 행복한 중산층 막내아들로 환생, 혹은 빙의당하는 게 국룰 아닌가?
연고도 치트도 없이 제국주의와 백인우월주의의 종주국이자 총본산에 떨어진 동양인이라니······.
뭐, 원숭이 취급당하다가 노예로 말라 죽으라고?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 시대에도 일만 잘하면 피부색이 뭐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다행인 건, 날 주워 준 고용주가 이런 케이스였다는 것이고.
“핸슬로(Hanslow)! 핸슬로, 어디 있나?”
“예, 주인마님! 여깁니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약한 미국 억양의 영어를 듣고 달려갔다. 핸슬로라는 건 사실 카투사 있을 적에 친하게 지낸 미군 부대에서 적당히 붙은 이름이다.
한솔, 핸슬, 핸슬로, 핸슬로.
뭐 이런 식으로 적당히 발음만 꼰 거지만, 꽤 유용하게 쓰고 있다.
“뭐 하고 있길래 이렇게 늦었나?”
“죄송합니다. 밀러 씨.”
미국 보스턴 출신의 지역 유지, 프레데릭 알바 밀러.
취미는 미술상(美術商)이다.
직업이 아닌 이유는 암만 봐도 이 양반, 본직은 그냥 한량 같거든.
내가 부름에 당장 달려오자, 한가롭게 시가나 뻐끔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짐 나르는 걸 돕다 보니 늦었습니다.”
“그런 건 괜찮아. 어차피 시간도 많고, 오늘 내로 다 옮길 필요 없다네.”
이거 봐, 이러니 내가 상인 아닌 것 같다고 하지.
내가 허허로이 웃고만 있자, 밀러 씨는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빼고 보고 있던 그림을 가리켰다.
족자에 그려진 깔끔한 한 폭의 동양화였다.
“그보다, 이거 좀 봐주겠나? 중국어 같은데, 이게 무슨 글씬지 통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자네 말고 알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어쩌겠나. 자네가 봐야지.”
사람은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금수저라 그런가, 아니면 진짜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사람이 순수하다.
봐라, 나 같은 일개 잡역부한테도 서슴없이 이 비싸 보이는 그림을 보여 주잖아.
나 역시, 그런 밀러 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 정확히 말하면 족자를 확인했다.
그건 전형적인 동양풍으로 그려진 풍경화였다. 커다란 산과 폭포로 이뤄져 있는.
그것만이었다면 나도 이게 뭔지 알 방도가 없었겠지만, 다행히 그 여백을 채우는 시는 내가 적당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건 이태백(李太白)······ 그러니까, 1200년 전의 중국에서 활동했던 시인이 쓴 시입니다.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라고, 중국 내륙에 있는 아미산이란 산의 풍광을 찬양하며 쓴 시지요.”
“허어, 1200년 전이라니! 굉장히 오래됐군.”
맞나? 솔직히 잘 모른다. 사실 내 한자 실력은 초딩 때 마술 천자문 빨로 딴 3급이 전부니까. 그 외의 한자는 무협 쓰다가 눈에 익은 거고.
“그럼 같이 있는 산의 풍경화도 그 시대 그림인가?”
“수묵화라고 합니다. 먹선만으로 산의 외곽선을 그리고, 먹의 농도에 따라 질감을 구분하는 기법이지요.”
“굉장하군. 매우 독특해.”
이것도 마찬가지.
현대인에 빙의한 화가를 쓰면서 조사했던 자료들 덕이었다.
적당히 기억나는 것을 그대로 머릿속에서 짜 맞춰서 읊는 것일 뿐이지만, 이걸로 밥 빌어먹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지.
체계적인 지식의 보고, 파라과이위키 만세다!
물론 아마추어 수준도 안 되는 지식이니 틀린 것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뭐, 틀리면 지들이 어떠냐?
밀러 씨 말마따나 19세기 말 영국 촌구석에는 아시아인이 드물다. 그것도 대부분은 인도인이며, 극소수의 중국인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까막눈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좀 틀려도 알아차릴 사람은 없다. 적당히 꾸며 내면 그만이지.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자신감이다.
“그러면 이건 어떤가? 내가 보기엔 아주 귀한 도자기로 보이네만. 일본에서 비싸게 주고 사 왔지.”
“예, 제가 자세히 아는 바는 없지만 이건 일본이라기보단 그 옆의 나라, 조선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 아래쪽에 있는 인장이······.”
이런 식으로.
그런 일이 계속되자 밀러 씨는 점차 나를 신임하게 되었고. 내게 동아시아 관련 가구, 도자기, 그림 등을 전담시켰다. 비정규직 잡역 알바생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됐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신임을 기회로, 나는 다른 쪽으로도 손을 뻗었다.
“핸슬로, 성공일세!! 네덜란드에서 그, 고흐? 고우? 인가 하는 화가의 전시전이 열렸어! 그림값이 오르고 있단 말일세!”
“축하드립니다, 밀러 씨!”
“이럴 때가 아냐. 당장 네덜란드에 가서 자네가 사들이자고 했던 그림들을 다 팔아치워야겠군! 같이 가겠나?”
“얼마든지요.”
“좋아, 이번 출장에선 약속했던 대로 원하던 그림을 인센티브로 주지!”
“감사합니다, 밀러 씨!!”
21세기에는 교양을 넘어 상식의 영역에 있지만, 1890년대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았거나 잘 쳐 줘도 그냥저냥인 거장들의 그림.
200년 뒤에는 억대로 치솟는 그 예술품들을 이 시기에는 휴지나 다름없는 가격에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데, 정말 겨우 그 정도 작품으로 되겠나? 자네라면 훨씬 더 비싼 걸 말해도 사 줄 텐데······.”
“어휴, 아닙니다. 전 이게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해바라기 하나만 덩그러니 그린 그림이라니. 뭐, 독특한 맛이 있긴 하네만.”
당연히 풀 매수 들어가야지.
코인이 별거냐? 이게 원시 코인이지. 몇 년만 묵혀 두면 이게 가격이 수십만 배는 뛴다.
이 해바라기 그림 하나가 무려 수백억짜리라고!?
“흐흐흐.”
그렇게 정당한 뒷돈을 차곡차곡 챙겨 가면서 노후 준비까지 확실히 챙겨 갔다.
언젠지 정확진 않지만, 결국엔 떡상할 운명의 물건들이니 확실하겠지.
그때까지는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핸슬, 핸슬!!”
“놀자! 목말 해 줘! 목말!”
“한 명씩, 매지 아가씨! 몬티 도련님!! 한 명씩 올라타세요! 한 명씩!!”
갑자기 와다다 달려온 두 아이가 날 향해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두 아이를 받아든다.
초등학생 나이인 밀러 씨의 딸 마가렛 밀러. 그리고 그 한 살 아래 아들인 루이스 몬티 밀러.
두 아이가 내 어깨를 한쪽씩 차지하고 매달린다.
밀러 씨는 미술상을 당신의 저택인 애쉬필드(Ashfield) 저택에서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정규직이란 얘기는, 동시에 애쉬필드 저택의 사용인이란 소리기도 하다.
처음이야 좋았지.
밀러 씨가 날 중용하던 시기와 둘과 놀며 친해진 시기가 귀신같이 일치했거든.
나이 차 많이 나는 사촌 동생들이랑 놀아 주던 경험을 살린 보람이 있었달까?
근데, 얘들이 날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초등학교 3~4학년이면 다 큰 애들 아닌가. 목말은 이제 좀 무리지. 허리 나간다, 허리······!
“마침 잘됐군. 핸슬로, 잠시 애들이랑 집 좀 보고 있어 주겠나.”
그렇게 애들한테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밀러 씨가 말했다.
“시내로 나가십니까?”
“음. 클라라의 요양이 아직 안 끝났으니, 아내 곁에 있어 줘야지.”
참 정력도 좋은 양반이다.
나는 애들이 이렇게 컸는데도 부인에게 셋째를 임신시킨 정력가 고용주를 힘겹게 배웅하곤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제 슬슬 일어납시다.”
“싫어! 더 할래!”
“그럼 오늘은 이것만 하고 이야기는 넘어갈까요?”
“피······ 핸슬! 그럼 대신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많이 해줘!”
“네네, 그럼 모두 손잡고 들어가죠.”
“와!”
최근 이런 일이 많아서 그런지, 내가 보모 겸 집사 겸 가정교사까지 맡으며 두 아이와 함께 집을 보는 일이 늘었다.
당연히 근무시간 외 업무이긴 했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이 애쉬필드 저택은 굉장히 드넓고 광활한 사유지를 가진 대저택이었고, 거기에 딸린 정원은 거의 숲에 가까웠다.
끝자락 절벽에 가면 요트가 떠다니는 강가 경치도 끝내준다.
푸르른 초원에 앉아서 그림책을 읽어 주면 까르르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
내 취향은 좀 더 비즈니스호텔 같은 편리성 위주라 생각해 왔지만, 이런 곳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토끼 같은 애들 둘과 영화 속 휴가 같은 나날을 즐기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생각이 싹 날아가는 상쾌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 김밥과 라면까지 있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어쩔 수 없지.
베이컨 샌드위치와 말린 과일로 대신하자.
조리법이 단순해서인지, 영국에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하루하루에 만족감을 느끼는.
이렇게 모두가 행복한, 애쉬필드에서의 목가적인 생활로 달력이 서서히 넘어갈 무렵.
“실례합니다. 여기에 한슬로 진(Hanslow Jene) 선생님이 계신단 말씀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
어느 날 토키에서 보기 드문, 전형적인 영국 도시 신사다운 남자가 찾아왔다.
아니, 그보다······ 뭐라고?
“핸슬로는 접니다만······ 선생님이요?”
“오, 오오! 오오!!”
그 순간이었다.
신사라고 생각했던 양반이 갑자기 풀썩 무릎을 꿇더니 내 발밑에 키스할 듯 기어 왔다.
아니, 애들 보이기 민망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선생님!! 아니, 작가님!! 이제야 찾아뵙습니다!!”
“······작가님이라고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 있는 내게 그는 눈을 빛내며 과장된 몸짓을 해댔다.
“네, 작가님이 이 소설의 저자 아니십니까!?”
그는 곧 품에서 얇은 책 하나를 꺼내 보였다. 나는 그 책의 제목을 못 박힌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피터 페리와 요정의 숲(Peter Perry and Fairies’ Forest)>.“이, 이건.”
직업상, 나는 이 시대에 출판된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내 미래 지식 안에, 이 시기 이런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없다.
그야 그럴 수밖에.
“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여기 와서 애들 보라고 써 준 책이었으니까!
근데 이게 왜 저 양반 품에서 나오는 거지? 그것도 번쩍번쩍한 금박으로 장식된 멋들어진 필기체의 제목까지 더해서?
아직도 멍하니 있는 나에게, 신사가 마치 천둥처럼 소리쳤다.
“왜 그리 당연한 걸 물으십니까? 지금, 런던에게 제일 인기 있는 소설 아닙니까, 선생님!”
“······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