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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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2)
“······미, 미국, 이요?”
“그래.”
마크 트웨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내가 영국에서 오래 살긴 했어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미국 오란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게 ‘니가 가라 하와이’라니.
물론 저 양반이 그런 의미로 말한 건 당연히 아닐 테지. 무엇보다 하와이는 아직 미국 땅이 아니다.
······아니겠지?
아무튼.
“······말씀하시는 걸 보면 잠깐 오라는 얘기는 아닌 것 같군요.”
“음, 아예 넘어오란 이야기 맞네.”
뉴욕에 좋은 자리가 있다고, 마크 트웨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당장 필요한 게 없더라도, 작게는 생활용품부터 크게는 집이나 인맥까지, 자신이 지원해 줄 수 있다면서.
그거 자체는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긴 했다.
아니, 뉴욕 땅값 비싼 건 지금이나 미래나 그대로인데, 그 땅을 내 돈도 아니고 남의 돈으로 미리 선점해 둔다? 꼴리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글쎄······.
갑자기 듣기엔 너무 좋은 이야기라, 솔직히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
그래서, 차분히 차를 마신 뒤에······ 그래도 이해가 되지를 않아서 물었다.
“왜요?”
“흠. 내가 설명이 부족했군.”
그걸 이제 아셨수?
그렇게 쏘아붙이려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마크 트웨인은 그 용광로 같은 성격에 걸맞지 않게, 머리를 긁적이며 천천히 말을 골랐다.
“흠······ 그래. 일단 첫 번째로는, 자네 글이 있겠군.”
“제 글이요?”
“우선, 자네 글은 영문학이라기엔 너무 이질적일세. 그건 알지?”
“그야, 뭐······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도 여러 번 들은 말이니까.
인기와 별개로, 내 글의 형식은 여전히 웹소설의 그것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주제 의식은 약하고, 묘사는 최소화했으며, 운율의 섬세함 따위는 대부분 생무시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시대의 영문학과는 상극이 맞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책을 사주시는 독자님들껜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만.
“하지만, 미국 문학은 다르지.”
마크 트웨인은 팔을 벌리며 말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뒤 미국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네.”
“혹시 자화자찬하시려고······.”
“그럴 리가.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미국 문학이 지금 창조의 과정에 있다는 걸세.”
마크 트웨인은 설명했다.
경향이라는 것은 돌고 도는 법이다.
독자들이든 작가들이든 어떤 형식에 맛을 들이면, 그 형식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한동안 대세가 된다. 유행을 타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형식은 바뀔 수밖에 없지.”
“사람은 적응하면 질리는 생물이니까요.”
“바로 그렇지!”
먼저 질리는 건 작가일 수도 있고, 독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언젠간 질리고, 그 유행하는 형식은 대개 그 전의 형식에 거스르는 형태가 된다.
“어찌 보면, 그런 형식의 앞 형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네.”
“패러다임(Paradigm) 말씀이시군요.”
“범례 말인가? 뭐······ 크게 다른 의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다고 보기도 애매한데.”
음, 이 시대에는 아직 안 나온 용어인가?
마크 트웨인은 아무튼, 이라고 운을 떼며 마저 말을 이었다.
“내가 본 예술사조의 역사는 대충 이렇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다르네. 그래, 언어만 같지 영문학과는 기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문학 형식이 태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네.”
“그래서 저를 미국으로 초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는 영국보다 미국에서 더 성공할 사람이야. 내 눈엔 그게 보여.”
“······저 같은 황인종이요?”
“돈 많으면 그딴 소리 하는 놈들, 그냥 금괴로 후려 까 버리면 되네.”
아니, [도금 시대(Gilded Age)> 같은 책을 쓰신 분이 그런 소리를 하셔도 되나?
그 책이 그거 맞지? 아메리칸 프론티어를 이끄는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모건, 철강왕 카네기가 1황 자리 차지하려고 대강도 귀족 시대를 여는 그거.
그런 속내가 담긴 내 눈빛에 자기도 말해 놓고 멋쩍었는지, 마크 트웨인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뭐, 솔직히 나도 북부 강도 귀족(Robber Baron) 놈들이 남부 노예주 놈들만큼이나 마음에 안 들긴 하네. 급성장하며 번드르르하게 성공은 하고 있지만, 그 디트로이트 공업지대의 빈부격차와 노동인권은 얼마나 처참하던가.”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셔도 돼요?”
“돈을 어떻게 버느냐가 문제지,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가 아니니 말일세. 그리고 이게 두 번째 이유이긴 하네만······ 오히려 자네 같은 인물이 미국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 우둔하신 백인 하류층도 좀 대가리가 깨지지.”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요컨대.
미국에 새로운 대문학 시대가 펼쳐지려는 지금, 나와 손을 잡고 원피스를 찾아 보자! 같은 거다. 그리고 그 해적선에 유색인종인 명왕, 한슬로 진이 탄다는 거지.
기본 골자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겸사겸사 자신이 원하는 사상의 사료로써 요긴할 테니까.
그의 말처럼 일종의 컬쳐 쇼크가 되기 충분할 것이다.
자체만 따지고 보면, 확실히 나쁘진 않은 제안이다.
미국에 간다고 해서 지금의 내 생활이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내 글이 잘 팔리고 있다는 얘기는 충분히 들었고, 미래나 시장의 크기를 봤을 때 미국에 직접 파는 게 나을 것이고.
인구는 지금도 미국이 훨씬 많으니까.
사적으로 친해진 지인들과 멀어진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내가 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성인인데 인제 와서 주머니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게다가, 무엇보다······ 유럽에 있다 보면,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세계 1차 대전.
유럽을 중심으로 4천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킬 대전쟁.
1914년이 이제 겨우 20년 남은 걸 생각해 보면, 일찌감치 미국에 건너가서 자리 잡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흐음, 싫다는 겐가.”
“아직 영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요.”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국행의 장점이 크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국에 있는 것도 만만찮게 크다.
미국의 문학 패러다임이 0에서 시작하는 거라면, 영국은 신구의 융합 속에서 장르문학이라는 매력적인 하이브리드가 태어나고 있는 셈이니까.
물론 나는 웹소설 작가고, 돈을 위해 글을 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돈만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셜로키언이었고, 앨리스와 피터 팬을 보며 자랐다.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웅장해졌으며, 열차를 타고 터널을 뚫자 펼쳐진 호숫가의 마법 학교를 보며 꿈을 키웠다.
장르문학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과 그걸 만들어 준 선인들에 대한 리스펙트가 있는 이상, 이 시대의 영국에서 아직 떠날 수는 없다.
뭐, 아직 밀러 씨에게 받은 호의를 다 갚지 못한 것도 있고, 내가 집 나간다고 하면 울고불고할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한다.
요즘엔 메리도 많이 자라서 벌써 옹알이하며 몸을 뒤집고 있으니까.
이렇게 보니까 할 일이 참 많기도 하네.
그리고 아직 멀고 먼 이야기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순간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뭐, 대충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보니 셜로키언이라고 한 주제에, 아직 아서 코난 도일도 못 만나 봤네.’
뭔가 그냥 찾아가자니 사생 같기도 하고 말이지······ 이러다 죽기 전에 만날 수나 있으려나?
그도 그럴 게 그 양반, 그새 홈즈를 죽였더라.
그럴 낌새는 없었는데, 역시 홈즈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인가······ 이게 역사의 복원력인가 뭔가 하는 것이려나?
나중에 만나면 ‘그래서 셜록은 왜 죽였니’라고 갈겨야지 진짜.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마크 트웨인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자네가 싫다는 데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좋은 제안을 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아닐세.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크 트웨인은 아깝긴 아까운지, 그래도 혹시 모르면 연락하라고 자기 연락처를 건넸다.
난 그 연락처를 받으며 빙긋 웃어 보였다.
“사실, 위치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저희는 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지금은 ‘80일’이면 세계 일주도 할 수 있는 지구촌이잖습니까?”
“하하, 그래 그 말도 맞지. 흠, 지구촌이라······ 바로 옆 동네 같다는 건가? 하긴 전신(電信)이 깔리면 매일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 음, 생각할수록 재미있는 말이군. 마음에 들었네.”
“하하······ 네, 아무튼 저희의 레이블 건도 있으니까요.”
아, 이것도 아직은 없는 단어인가? 난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그가 건네준 종이를 품에 집어넣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뭐, 당분간은 쓸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미국에 가게 되면 가이드라도 부탁드려 봐야지.
누가 뭐래도, 미국 문학의 아버지. 마크 트웨인의 친분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
대영제국의 ‘공식적인’ 권력 구조는 내각책임제 의회 입헌군주정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권력기관이 그렇듯, 이런 공식적인 구조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삼권분립? 몽테스키외? 그거, 달팽이 새끼 아닌가. 신성한 대영제국에서 그런 무엄한 자의 이름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행정부의 일과 의회의 일이 섞였고, 의회와 추밀원의 일이 섞였으며, 추밀원과 행정부의 일이 섞였다.
구축한 지 겨우 30년밖에 안 된 관료제가 멀쩡히 돌아가길 바랐다면 그게 진짜 도둑놈 심보다.
하물며 권리 장전 같은 낡은 제도로, 연합왕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 폐하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외교와 군사 문제에서 가장 강경한 매파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으며, 그렇기에 의회는 의회대로 잘 돌아가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절대왕권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기묘한 관계에 있었다.
때문에.
재무부 산하 국세청(Inland Revenue)에 전달된, 같은 서머셋 하우스 내에서 오고 간 문건을 빼돌려 입수하는 것쯤은, 이름도 호적도 없는 어느 해군 장교······ 왕실의 직속 비밀 정보 요원들에겐 일조차 아니었다.
“문학회에서 벤틀리 출판사의 탈세를 고발하려 했단 말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하려고 작당하는 중이겠사옵니다.”
허. 여왕은 헛웃음을 지었다.
구색은 맞춰야 해서 살려 두고 있었더니만, 이런 가당찮은 짓을 하고 있었나.
“그래, 그래서 그 출판사는 진짜로 탈세를 하고 있었나?”
여왕이 서늘하게 말했다.
가당찮은 건 가당찮은 거고, 탈세는 탈세다.
여왕 자신이 국가의 심장이라면, 세금은 국가의 호흡이다.
세금을 먹지 않으면 국가는 말라 죽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세청이 가진 강제 집행력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 회사를 아주 박살 내고 그 잔망스러운 잔나비를 왕실 직속으로 들여올 수 있다면······ 여왕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해석하기에 따라 탈세라 해석할 수 있는 금액을 빼먹긴 하고 있다 하옵니다. 하오나 그 액수가 오차 범위라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적고, 그에 상응하는 기부금도 매년 내고 있사옵니다. 특히나 올해는 그 기부금의 액수가 상당한지라······ 아마 재판으로 넘어간다면 출판사 측의 승소 확률이 매우 높사옵니다.”
“요컨대 흑도 백도 아니라는 건가. 재미없군.”
그 정도 탈세는 어느 회사고 조금씩들 하고 있다.
심지어 올해 냈다는 기부금이 치명적이다. 그 금액은 여왕인 자신이 보더라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그 사용처가 참, 얄밉군.’
꼬투리를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겠지만, 아마 런던의 금융가가 들썩이겠지.
빈대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빅토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면 국세청에 그대로 전달하고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라 이르라.”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하면, 문학회는 어찌하오리까?”
“내버려 두라. 어차피 자리만 차지하는 패배자들 아니더냐.”
“받들겠나이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은 문득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가 나온 덕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채비하라.”
“어디를 이르시옵니까.”
“오랜만에 재밌는 구경을 하고 싶구나.”
감히, 할망구라고 했겠다.
나이가 들어 완고해진 여왕은, 은혜를 잊을지언정 사소한 원한은 결코 잊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