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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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데뷔(1)
[피터 페리와 요정의 숲>.내가 이 소설을 왜 썼는가 하면 별 이유는 없었다. 그냥 고용주님 애들하고 친해지기 위해서였다.
─핸슬, 책 읽어 줘.
─그건 재미없어. 벌써 다 읽었단 말이야.
─더 재밌는 거 보고 싶어!
한창 호기심 충만하고 학구적인 성향 충만한 부잣집 애들. 그게 우리 고용주인 밀러 씨네 남매였다.
자산가답게 밀러 씨도 꽤 많은 책을 갖고 있었다. 서재가 거의 무슨 도서관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것도 한~참.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는 아직 BIN 증후군이 없어서인지 작가들이 책 내는 속도가 느려 터졌단 말이지······.
웹소설 시대는 일일 연재가 기본이지만 이 시대는 월간 연재가 기본이다. 분량도 대략 4~5회 수준밖에 안 되고.
당연히 기억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어린애들로서는 감질날 수밖에 없는 속도다.
그래서 고용주 아들딸과 친해진다고 나쁜 것도 없었고, 매번 허리 아픈 목말을 태워 줄 수도 없으니. 그 고된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습작 겸 끄적여 본 것이 바로 저 책이었다.
영국 애들 취향에 맞춰서 [제인 에어>나 [헨리 포터>스럽게 썼다는 게 제목에서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내 감도 죽은 건 아닌지, 다행히 반응도 괜찮았다. 단편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지나 몬티는 하루걸러 하루꼴로 찾아와서는 더 써 달라고 크로스 어택을 날려 댔으니까.
덕분에 밀러 씨네 미술상 업무를 하며 틈틈이 이야기해 줬지.
분명, 업무를 보다 남는 질 나쁜 종이에 써서 대충 묶어 둔 게 전부였을 터. 심지어 그마저 요즘엔 바빠진 사업 탓에 뜸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뜬금없이 저 양반 손에서 나오냐고!
“아직 인사를 안 드렸죠? 실례했습니다! 저는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Richard Bentley Jr.)라고 합니다. 가문의 출판사를 잇기 위해 편집자로 일하고 있지요.”
“아, 예.”
신사는 웃으면서 명함을 보여 줬다.
나는 그, 리처드 벤틀리와 아들(Richard Bentley and Son) 출판사의 명함을 적당히 호주머니에 넣었다.
솔직히 잘 모른다.
이 시대 작가도 아니고 출판사 이름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그 순간 벤틀리의 얼굴에 잠깐 실망의 색이 번졌지만, 과연 영업직.
순식간에 원래의 비굴한 얼굴로 돌아왔다.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그래, 그래서 그 벤틀리 씨가 어떻게 제 개인지를 가지고 계신 겁니까?”
“예? 개인지라뇨? 그, 우편으로 저희 회사에 투고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전 그걸 출판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나는 진심으로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 개인지를 출판할 생각이 전혀, 일체, 절대 없었다.
당장 나 자신이 바쁘기도 했지만, 솔직히 영국에 온 지 몇 년밖에 안 된 토종 한국인인 내가 영어로 두드린 글이 잘 팔릴 리가 있겠냐고. 그것도 이 낭만(웃음)의 시대에?
차라리 왕립문학협회(RSL)에 조리돌림 되는 게 빠르겠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작권자로서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군요.”
내가 불쾌해하며 그렇게 말하자, 벤틀리 씨의 동공이 마치 리스본 대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는 당황한 듯, 자신의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하, 하지만 작가님. 작가님의 작품은 이미 저희 출판사의 월간 잡지인 [템플 바(Temple Bar)>의 최대 인기작입니다만.”
어쩌라고.
나는 심드렁하게 귀를 후볐다. 내가 대충 두드린 게 최고 인기작이라니, 그 잡지도 어지간히 인기 없는 잡지인가 보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이, 이걸 봐주십시오!!”
신사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속을 내보였다.
갖가지 향수가 뒤엉켜 섞인 진한 꽃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난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건 뭡니까?”
“작가님 앞으로 온 팬레터입니다!!”
“팬레터요?”
진짜 몰카 소재도 화려하게 만들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편지들을 꺼냈다.
그런데······.
“어?”
그런데 진짜였다. 그곳엔 한슬로 진 작가에게, 라고 보내는 무수히 많은 편지가 있었다.
이건 런던에서 보낸 거고, 이건 플리머스네? 세상에, 에든버러에서 보낸 것도 있다.
대체 내 글, 얼마나 팔리고 있는 거야? 대체 왜?
“실로 열화와 같은 성원 아니겠습니까? 저희 출판사에서도 이 열의에 맞춰 이번에 단행본 출판을 할 겸, 작가님 얼굴을 뵈려고 온 거였습니다.”
“그럼, 아직 책은 출판한 게 아닌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건 견본이지요. 작가님께 드릴 증정본을 겸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아직은 잡지 연재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미 팔리고 있는 시점에서 내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랜만에 저작권자로서의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진다.
자, 이제라도 이 벤틀리인지 맥밀란인지를 추궁해서 대체 누구한테 투고 받은 건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던 그 순간.
“핸슬? 무슨 일인가?”
“아, 밀러 씨.”
내 고용주, 밀러 씨가 귀가했다.
나는 벤틀리가 무어라 하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웬 도둑놈이 헛소리를 해 대고 있어서. 즉각 처리하겠습니다.”
“도둑놈?”
“자, 작가님! 그게 아니라니까요!!”
조용히 하세요, 이 도둑놈아.
어쨌든 제대로 계약도 안 하고 내 책을 팔아넘긴 건 사실이잖아? 뭘 잘했다고.
내가 모 성직자마냥 이 두꺼운 책으로 자칭 편집자의 두개골을 함몰시키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때였다.
밀러 씨가 다가오더니, 내 손의 두개골 함몰용 둔기를 넘겨받고는 말했다.
“그래, 이게 이제야 온 거로군.”
“예?”
잠깐만.
‘이제야’라구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 밀러 씨가 내 책이 나온 걸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건데?
나는 내 고용주를 보며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자 밀러 씨는 그런 내 시선에 피식 웃더니 파이프 담배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음, 실은 말일세. 매지가 나한테 자네를 좀 혼내 달라더군.”
“혼이라뇨. 제가 뭘 잘못했길래······.”
“핸슬, 자네가 쓴 책이 너무 재밌는데 다음을 안 써 줘서 화가 난다고.”
“······.”
뭔가 어처구니가 없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판타지 읽어 본 사람 중에 감나무 방화의 숙원을 품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물론 나로선 자네처럼 유능한 직원이 일에 집중해 주는 게 좋지.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매지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얼마나 재밌을까 생각했지. 그리고 봤네, 나도 재미있었네.”
“밀러 씨······.”
아이들에겐 언제나 듣던 말이었지만, 다 큰 어른인 그에게서 같은 말이 나오니 그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은 클수록 칭찬을 받을 일이 적어진다더니, 그래서일까? 가슴께가 묘하게 저리는 느낌.
“하지만 나는 상인일세, 그것도 미술상. 내 손에 있는 예술품의 제대로 된 가치를 알아야지만 직성이 푸는 직업. 자네도 잘 알고 있듯 말이야.”
“그래서 전문가에게 확인하려 했다는 거군요. 제게 미술품에 관해 물어보셨던 것처럼.”
답은 그의 입가에 빙긋 솟아오른 미소로 충분했다.
오랜 기간 함께 일한 나였기에 전해지는 순수한 호의, 그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어휴, 그럼 나한테 말이라도 해 주시지. 이 양반, 신사로서는 굉장히 어설픈데 은근히 정이 깊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문득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그러면 인세는요?”
“자네 통장 번호도 투고할 때 같이 보냈을 텐데? 혹시 출판사에서 안 보냈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요즘 너무 바빴잖아요.”
“그건 그렇지.”
휴대폰이 있는 시대도 아니니, 돈이 들어오는 걸 인터넷 뱅킹처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애초에 애쉬필드는 촌 동네라 은행이 없기도 하고.
제대로 확인하려면 데번주에서 제일 큰 엑시터까지 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 리처드 벤틀리가 벼락같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혹시 이런 일도 있을까 봐 작가님 앞으로 보냈던 인세의 전표를 끊어 왔습니다.”
“전표라구요?”
괜찮으려나······ 나는 살짝 밀러 씨를 보았다.
그러자 밀러 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었다. 한번 확인해 주겠다는 뜻이다. 나는 그에게 전표를 넘겨주었다.
품에서 외 알 안경까지 꺼내 쓰고 꼼꼼하게 확인한 그는 내게 그것을 돌려주며 말했다.
“확인했다네. 틀림없군.”
“금액은 얼맙니까?”
“300파운드 정도? 그럭저럭 괜찮군.”
300파운드!? 아니, 그럭저럭 수준이 아닌데요?
그 정도면 한화로 칠천만 원 정도 아닙니까? 겁나 많은데요?
그렇게 외치려던 나는 이 양반이 금수저에, 취미로 억대 미술품을 다루는 미술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더없이 큰 도움이었다.
“그, 그럭저럭이라니요! 저희 출판사에서도 상당히 무리한 인세입니다!”
“그래? 벤틀리 사의 이름값을 믿고 넘겼는데, 아무래도 상당히 힘든 모양이군. 이보게 핸슬, 혹시 조지 뉸스(George Newnes)라고 아는가? 처가와 인맥이 있는 언론인인데, 요즘 새로 잡지를 내려 준비 중이라더군. 이름이 아마, [스트랜드 매거진>이랬나······.”
“자, 잠시만요!!”
거 보게.
밀러 씨는 히죽 웃으면서 내게 눈웃음을 쳤다.
역시 밀러 씨야, 벗겨 먹을 때는 가차 없지.
난 그의 수완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그림보단 크리켓에 빠져 사는 날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자수성가해서 영국으로 건너오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상인으로서 잔뼈가 굵다면 굵지, 얇진 않단 뜻이지.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는, 그런 밀러 씨 앞에서 마치 도축되는 소처럼 구슬프게 조건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밀러 씨의 만족했다는 표정 아래, 벤틀리 출판사와 내 계약은 내게 굉장히 후한 조건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시대에 비해 작가의 인권이 훨씬 좋은 편인 미래의 한국 기준으로도 어지간한 대형 작가급 조건이었으니, 나로서도 군말할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밀러 씨.”
“고마우면 앞으로 열심히 쓰시게, 작가님. 매지가 그만큼 기대하고 있으니 말일세.”
“하하, 미리 사인이라도 해 드릴까요?”
“후하하하! 그래 주면 고맙지.”
리처드 벤틀리가 떠나간 뒤, 나는 밀러 씨와 너스레를 떨며 그가 두고 간 책에 적당히 필기체로 사인했다.
재질은 진짜 좋구만, 이거.
그날 이후, 난 미술상 일과 집필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어마어마하게 적어진 일이라는 밀러 씨의 호의 아래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게 됐다는 것에 가까웠다.
일이야 정말 급할 때나 가끔 감정에 도움을 주거나, 아이들 낮잠 시간 전까지 산책하는 정도.
그러면서도 급료는 줄이지 않은 것을 보면 정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좋아진 환경에서 시작한 집필이긴 하다만.
“흠, 이런 걸로 정말 괜찮을까?”
사실 내겐 아직도 약간의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런던에서 제일 인기 있다고 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그야 편집자들의 뻔한 의욕 고취용 단어가 아니겠는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엔 닳을 대로 닳은 몸.
게다가 경쟁자가 언터처블이다. 밀러 씨가 소개해 주겠다던 그, 뉸스인지 뉴스인지 하는 양반이 펴낸다는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이라고 했던가? 그게 바로 셜록 홈즈 단편이 연재되는 잡지다. 동서고금 최고의 탐정소설이 바로 내 경쟁자라고.
현대 문학에 있어선 나름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시기.
과연 정말로 내 글이 먹힐까? 작가로서 생기는 당연한 고민과 걱정.
“어휴, 고민해 봤자 마감만 늦어지지. 일단 쓰자.”
원래 글이 뜨느냐 아니냐는 하늘이 정하는 법.
이럴수록 머리는 비우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전까지 비축을 만드는 것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안 된다 해도, 내겐 소중한 유물 코인이 있으니까.”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겠지.
든든한 곳간을 떠올리며 타자기를 두드렸다.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피터 페리와 셜록 홈즈, 이 시대의 주인공들!> [리처드 벤틀리 출판사, ‘사상 최대 실적’ 연속 행진!> [루이스 캐럴 대극찬······ “내 학생들에게 꼭 읽혀야 할 책이 있다면, 다름 아닌 피터 페리다.”>“아니.”
나는 조용히 신문을 덮었다.
······이거. 너무 잘 팔리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