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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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1)
대영제국이 사랑하는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은 최근 사는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제기랄, 도대체 왜!! 왜 내 역사소설의 재미를 아무도 몰라 주는 거냐!!”
홈즈를 죽인지도 어언 1년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괴롭히는 대중의 광기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약해지지 않고 있었다.
스트랜드 매거진은 매상이 10분의 1로 떨어졌다면서 단편이라도 내 달라고 발광하고 있었으며, ‘홈즈를 부활시킬지 네가 죽을지를 고르라’는 괴문서도 매일같이 날아들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집 앞에서 셜록 홈즈의 장례식을 한 멍청이까지 출몰했으니······.
아서 코난 도일이 오늘도 그를 설득하기 위해 온 스트랜드 매거진의 편집장, 헐버트 그린호프 스미스의 멱살을 잡고 하소연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망명자들> 썼잖나!? 그거나 좀 읽으라고!!”
“어, 음······ 선생님. 그게 재미는 있습니다만······.”
“근데 왜!!”
“솔직히 셜록에 비하면 영.”
“으아아아아!!”
이러니 아무리 강고한 영혼과 빛나는 지성을 가진 아서 코난 도일이라 할지라도, 매일 같이 정신이 깎여 나가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왕립문학회와도 연락이 끊겼긴 했지만, 솔직히 그 동네가 영 도움은 안 됐으니 그렇다 치고.
가장 큰 문제는.
“아서, 시끄러우니까 밥이나 먹으렴.”
“어머니! 어머니도 말씀 좀 해 주세요. 제 글이 그렇게 재미가 없습니까!?”
“아서.”
아서 코난 도일의 어머니, 메리 조세핀 도일 여사는 장남을 측은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셜록을 왜 죽였니.”
“끄으으으으으읅!!”
가장 큰 아군이 되어 줘야 할 그의 어머니조차 그의 편이 아니었다는 것.
결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소설의 저자, 19세기의 호메로스가 되겠다는 그의 야망은 이대로 좌절될 것인가!?
“아니! 절대 그럴 순 없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한번, 역사소설에 도전한다.
그리고 이 대영제국에 다시금, 추리소설 같은 하잘것없는 화장실 낙서와 다른, ‘문학’의 진면목을 보여 주리라!
“얘, 아서. 오늘도 놀 거면 장이나 좀 봐 오렴. 셀러리가 떨어졌네.”
“······경시청 다녀오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일단은, 머리를 좀 비우고 나서.
삐졌다는 기색을 대놓고 내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메리 도일은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하여간, 솔직하지 못해서는.”
정말 심각하게도.
그녀의 자랑스러운 큰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
도망치듯 빠져나온 것이긴 했지만, 아서에게 스코틀랜드 야드에서 볼일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역사소설이 아닌 빌어먹을, 그리고 또 빌어먹을 화장실 낙서 같은 추리소설에서나 쓰이고 있지만, 그의 빛나는 지성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었다.
그것도 더없이 짜증 나게도 역사학계가 아니라 수사학계(搜査學界)에서.
솔직히, 역사소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아닌 것 같지만······ 뭐 어쩌겠는가, 런던의 품위 있는 시민으로서 동료 시민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이 아서 코난 도일이 말 한두 마디 거드는 것쯤이야 당연히 할 수 있는 봉사였다.
물론, 소정의 보상금이 나온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지만.
그런데.
“자, 자네?”
“어······ 의사 선생님?”
“이런 곳에서 뭐 하는가? 아니지, 정말 오랜만이로군!!”
일전, 펍에서 만나 그 신선하기 짝이 없는 충격을 선사해 주었던 조선인 청년.
그가 런던 경시청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아서 코난 도일은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에게 달려갔다.
“세상에, 대체 어디에 있던 겐가?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아니면 본국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네!!”
“아뇨, 그냥 영국에 있었는데요. 그, 데번의 고용인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서.”
“데번? 데번이라고? 허허허! 그랬군. 그러니 내가 몰랐을 수밖에.”
데번이라고 하면 콘월과 함께 영국 남서부 끄트머리를 이루는 곳이다.
코난 도일 자신도 언젠가 가 볼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인연이 닿지 않다 보니 가 본 적은 없었고.
그런 깡촌에 있다면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러고 보니, 데번 주는 아직 향토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지?”
“아, 그렇긴 하죠. 제가 묵고 있는 집도 꽤 오래된 명가(名家)입니다. 지방 귀족이라 잘 모르시겠지만요.”
“지방 귀족, 오래된 명가. 그리고 향토적인 땅이라······ 재미있군, 흥미가 솟아.”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란 감정.
아서 코난 도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오랜 부를 축적한 지방 귀족. 그리고 주변의 농지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한다. 그 땅에서 작은 왕국의 왕처럼 살아왔던 귀족들은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딱 한 명의 후손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숨겨진 방계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암약을······ 으음! 아니지, 아냐.”
“선생님?”
경시청에 와서 그런가? 그는 자신이 또다시 역사소설이 아닌 쓸데없이 추리소설 스토리나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이래선 안 된다.
좀 더 문학적이고, 런던 시민들의 역사관을 고취시킬 수 있는 글을 쓰리라 마음먹은 자신을 다잡았다.
“미안하네, 내가 요즘 일이 전혀 안 풀리다 보니 좀 머리가 복잡해.”
“아,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래, 자네는 그간 어떻게 지냈나? 그러고 보니, 데번 주에 있었다면 자네 고향에 관한 얘기가 가볍게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겠군.”
“제 고향이요?”
고향이라면, 조선을 이야기하는 건가? 어엉? 하며 깜짝 놀라는 청년의 얼굴을 보니, 아서 코난 도일은 자신의 머릿속에 쌓여 있던 미혹이 풀려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런 청량한 만남이야말로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래, 작년이었나? 왕실 지리학회에서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제출한, 그 뭐더라? ‘몽골리안 민족들의 국가와 지리, 민족적 특징을 연구하기 위한 프로젝트’ 연구 제안서를 발표한 적이 있네. 그중에서 자네가 왔다는 그, 조선인가 코리아인가 하는 나라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지.”
“코리아든 조선이든 같은 말입니다. 고려는 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그 지역에 있었던 나라거든요.”
“흐음, 그러면 조선인이 다른 곳에서 와서 고려를 정복한 건가? 갈리아 지방을 게르만 민족이 정복한 것처럼?”
“아닙니다. 고려 말기에 왕가가 크게 실정을 했거든요. 길게 설명하긴 힘들고, 아무튼 이런저런 문제가 있던 와중에 아마 그, 흑사병(Black Death)이었나? 그거 때문에 민심이 크게 흉흉해지고 북방에서 크게 힘을 기른······ 뭐, 변경백쯤 되는 양반이 쿠데타를 일으켰지요. 그래서 나라 이름을 고친 게 조선입니다.”
“흑사병이라! 흥미롭군.”
아서 코난 도일의 눈이 보석을 발견한 듯 반짝였다.
그래, 이런 역사적인 비밀이야말로 그의 흥미를 자극하는 진짜 진실이었다.
저질 종이로 찍어 내는 싸구려 소설(pulp fiction) 말고!
“흑사병은 우리 유럽에서도 큰 피해를 입힌 질병이지. 자네 나라에서도 흑사병이 유행한 건가? 하지만 그 나라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었다면서? 아무리 유럽을 휩쓴 전염병이라지만, 어떻게 아시아까지 감염시킬 수 있지?”
“아, 그건 간단합니다.”
청년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서는 마치 눈앞에 벼락이 치는 듯한 명쾌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고려도 몽골의 침략을 받았거든요.”
“아하! 몽골! 그렇지, 몽골은 동쪽 끝에서 와서 서쪽으로는 러시아와 동유럽까지, 남쪽으로는 인도를 지배한 대영제국 이전 세계 최대의 대제국이었지!”
가만, 그렇다면.
아서 코난 도일의 풍부한 상상력은 19세기의 단편적인 아시아에 대한 지식을 금방 조각보처럼 꿰맬 수 있었다.
“놀랍군. 그렇다면 대제국 몽골을 무너트린 건 내부의 혼란도, 외부의 침략도 아닌, 그야말로 신의 철퇴였던 것인가!”
좋아, 아주 좋다.
이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와 신선한 시각이라면, 아마 같은 세계에서 제일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지금의 대영제국에 경종을 울릴 만한 역사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서는 마치 아이처럼 기뻐하며 조선인 청년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고맙네, 청년! 자넨 정말 훌륭한 나의 뮤즈(muse)로군! 지난번엔 런던의 평화를 위한 발상을 제공하고, 이번엔 내게 훌륭한 글감을 주었으니!”
“그, 남자가 듣기엔 좀 거시기하긴 한데요.”
“그건 나도 마찬가질세.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이번에야말로 런던을 감동시킬 역사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역사소설요? 의사 선생님이 아니셨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설명을 안 했나?
아서 코난 도일은 머쓱하여 머리를 긁적였다.
지난번에도 의사로서의 경력만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이름이 뭐고 직업이 뭔지도 듣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미안하네. 내가 너무 설명이 부족했군.”
“아, 아뇨. 괜찮습니다.”
“뭐, 그래. 난 의사이긴 했네만, 지금은 병원을 접었다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영 사람이 안 와서 말이야.”
“아······ 죄송합니다.”
“아냐. 그래도 대신 부업이 잘돼서 말일세.”
“아하, 그 부업이라는 게 역사소설인가 보죠?”
“뭐,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역사만 쓰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이번엔 제대로 된 걸작을 쓸 수 있을 거 같아. 자네가 준 이 소재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네!!”
아서 코난 도일은 당당히 말했다.
물론 전작이 망했다는 얘기를 솔직하게 하지 못한다는 시점에서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긴 했지만, 어쨌든 태도 자체는 당당했다.
그리고 조선인 청년은 그런 아서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짓고는 물었다.
“그렇군요. 괜찮으시면 혹시 어떤 책을 썼는지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저도 소설 쪽엔 나름의 조예가 있는지라, 한번 읽어 보고 싶군요.”
“아······ 하하하! 그래, 알려 줄 테니 나중에 읽어 보게나······ 아. 그게.”
못 알려 주겠다.
솔직히, 어떻게 홀딱 망해서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과반수인 소설 이야기를 하겠나.
그런 생각에 아서 코난 도일이 슬쩍 눈길을 피하던 그때였다.
“코난 도일 선생님! 여기 계셨습니까?”
“아, 홉킨스 형사!”
“아니, 오신다고 해놓고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어쩌자는 겁니까!”
“응?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군.”
어쩔 수 없지.
아서 코난 도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고는 이상하게 벙찐 표정의 조선인 청년에게 건넸다.
“청년,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군. 혹시 시간이 되면 꼭 이곳으로 오도록 하게. 알겠나? 꼭 찾아와야 하네!”
“예? 아, 예. 어, 알겠습니다.”
“선생님, 빨리요!”
“아, 알겠네! 미스터, 명심하게! 무조건 기다리게!!”
아서 코난 도일은 그렇게 소리를 치며 홉킨스 형사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자리에서, 조선인 청년 진한솔─ 한슬로 진은 경악을 섞어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조선 말로 크게 소리쳤다.
“아니, 저 양반이었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