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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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데뷔(2)
앞서 말했듯, [피터 페리와 요정의 숲>은 유명한 영국 아동소설이자 판타지 작가의 유작인 [헨리 포터> 시리즈의 분위기에 K판타지식 정령의 클리셰를 섞은 책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먼 친척 집에 맡겨져 학대를 당하던 10살 소년 피터 페리는 어느 날, 집 뒤편의 숲에서 길을 잃어 요정의 숲(Fairy‘s Forest)에 휘말린다.
숲속에는 땅속의 땅딸막한 드워프(Dwarf), 물속에서 사는 님프(Nymph), 나무를 가꾸는 엘프(Elf), 몸집이 작은 실프(Sylph). 이렇게 네 종류의 요정과 이들을 양육하는 요정학교 ‘오베론 아카데미아’가 있었다.
소년 피터는 부모나 현실 따위는 전부 잊고, 이 요정학교의 유일한 인간으로서 요정 친구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러던 어느 날, 고대 요정왕 오베론이 아카데미아 지하에 봉인했던 어둠 요정이 풀려나며 위기가 닥쳤고, 피터는 이에 맞서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구한다······ 라는 내용이다.
미래인인 내가 보면 정제된 클리셰로 점철된 왕도 그 자체.
하지만 19세기 말의 영국에서는 어떠한가.
“정말 참신하고 순수한 동화 그 자체지요, 작가님!”
신문을 가져다줬던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가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재라면 단연코 요정! 그런 요정들에게도 학교가 있고 교육을 받는다는 참신한 발상도 그렇고, 요정을 네 종류로 구분해서 취향에 따라 골라잡을 수 있는 각양각색의 매력까지 뽐내게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피터 페리는 또 어떻고요! 이런 아이를 싫어하는 어른들은 없을 겁니다!”
호들갑 떨기는······.
나는 좀 진정하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옆에 있던 밀러 씨가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든다.
“내 생각도 그렇다네, 핸슬. 나도 책으로 읽어 봤네만, 아주 재기발랄하면서도 선량하고 모범적이기 그지없는 소년이야. 우리 몬티도 본받았으면 좋겠군.”
“에이, 몬티도 그만하면 착한 애죠.”
“주인공뿐이겠습니까! 친구인 이루릴이나 윙키도 톡톡 튀는 맛이 있는 캐릭터들이죠. 검은 머리라는 이유로 배척받은 순진무구한 엘프에, 장난스럽지만 속이 깊은 실프라······ 정말 보기만 해도 매력적인 캐릭터들 아닙니까?”
이게 그 정도인가?
나는 벤틀리의 극찬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하던 대로 웹소설 식의 갭모에형 캐릭터 조형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대상 독자가 어린 매지나 몬티라서 알기 쉽게 하려고 그 색을 약하게 준 면도 있다.
이 정도는 웹소설은 물론, 대중 문학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 시대는 아직 대중 문학이 개발 도상 중이다. 평면적인 캐릭터 상이 일반적이었지?
“게다가, 솔직히 말해 동화라는 것들 대부분이 영······ 요즘 보기엔 꺼림칙하고, 좀 지저분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거지. 푸른 수염 같은 프랑스 개구리 놈들 동화를 보게. 그게 무슨 동화인가?”
그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들용이라고 하면서 애들을 위한 동화가 없는 게 빅토리아 시대의 현실이었으니까.
거 왜, 인터넷 짤방으로도 자주 돌아다니지 않았던가, 과거의 세계 명작 동화(절망 편) 같은 거.
헨젤과 그레텔을 내쫓은 건 사실 친모고, 마녀를 죽인 게 사냥꾼이 아니라 그레텔이 뒤에서 민 거며, 신데렐라는 유리구두에 맞춰 언니들 발을 잘랐지.
백설 공주는 친모였던 왕비를 달군 쇠 구두를 신겨 태워 죽이고.
빨간 두건은 그중에서 TOP다.
대놓고 식인과 강간을 집어넣어? 그림 형제 아재들 정신에 무슨 문제 있었나 싶을 정도다.
클라라 밀러 부인이 애들한테 책 읽히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다니까?
이런 시대에 내가 쓴, 한국 장르문학계 기준에선 아무리 낮게 잡아도 라노벨 정도의 글조차 건전한 아동문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진짜 대단하구나, 낭만(쑻)의 시대!
그런 걸 보고 자라니 아이들이 제국주의 아니면 전체주의 같은 인간 말종들로 자라는 거지.
“그래서 이렇게 잘 팔렸다는 거군요.”
“그렇지요, 작가님!”
“좋습니다.”
나는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담당 편집자로 정식 발령받은 이 차기 사장님의 시장 분석은 내가 들어도 꽤 납득이 갔고,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이 사람, 생각보다 유능할지도?
“그러면 일단 여기 월간연재용 원고입니다.”
난 생각난 김에 완성된 원고를 내밀었다.
하지만 원고를 받지 않고 멍하니 내 얼굴만 쳐다보는 그.
잠시 침묵이 있고 난 뒤에, 그는 깜짝 놀란 듯 튀어 오르며 입을 열었다.
“그, 계약한 지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잖습니까? 벌써요?”
“한 달‘이나’ 있었죠. 게다가 생각해 둔 게 없진 않았으니까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 양은······.”
뭘 이 정도로······.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은 일일 연재를 해야 살아남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1화 분량은 최소 5천 자.
요컨대 한 달에 최소 15만 자 정도는 써야 그 빡빡한 연재 일정을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시기 월간 연재는 우리 기준으로 친다면 대략 7~8화 정도 분량 정도니까······.
즉, 내가 30일 연재하는 속도면 이 시대에선 반년 치를 족히 쓰고도 남는단 소리였다.
되려 오랜만에 각 잡고 글을 쓰는지라 예전 속도는 안 나오더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벤틀리에게 한 달 동안 쓴 원고 봉투를 꺼내 통째로 넘겼다. 그러자 얼떨떨한 편집자가 경악하며 말했다.
“아, 아니······ 이거 너무 많은데요?”
“그렇습니까? 이 정도는 다들 하지 않아요?”
“다들 하다니······ 그게 가능했다면 런던의 모든 윤전기(輪轉機)가 폭발했을 겁니다.”
꿈만 같은 일입니다. 라는 그의 말에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가진 이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긴, 나도 어렸을 때 출판 서적을 읽을 때는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년 단위로 기다리긴 했지.
그런데 지금은 100년도 훨씬 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차이였다.
게다가 나야 타자기로 두들기지만, 이 시대 작가면 아직 펜과 잉크로 쓸 때 아닌가.
손목 작살 안 나나?
내가 그렇게 다른 의미로 감탄하고 있을 때, 벤틀리가 원고를 가만히 넘기며 물었다.
“이번 원고는 피터의 모험보다는 학교에서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군요.”
“옴니버스 방식으로 썼으니까요.”
피터 페리와 요정의 숲은 태생부터가 단편에 맞춰진 내용이었던지라, 연재를 늘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완전 처음부터 쌓아 가자니 내 기준으론 전개가 생뚱맞고 너무 느려졌기에, 잽을 날리듯 에피소드마다 복선을 깔아 시간을 번 뒤 새로운 전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에피소드 사이에 힘 빼기 위한 내용을 넣는, 장기 연재를 위한 꼼수지.
“좋군요! 확실히 빠른 전개가 일품이던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맛이지만, 이건 이거대로 재미있네요!”
“그렇죠?”
“예. 소소한 매력으로 요정들의 세계를 더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게, 오히려 이쪽이 좋다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군요. 아니, 분명 있을 겁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다행히 잘 통한 모양이네.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이 방식은 진입 장벽이 낮은 대신 서사 구조와 설정 체계가 약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원고 뭉치를 벤틀리에게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이쪽은 2권 단행본 분량입니다.”
“예? 2권이요? 단편집이 나오려면 아직 최소 2~3화는 더 주셔야 하는데요?”
“단행본이 아니라, 스토리 진행용입니다.”
“······진행이라구요?”
“예, 이쪽은 피터 페리가 요정학교의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길 또 다른 요정들과의 갈등 스토리입니다.”
“허어어어.”
벤틀리는 그렇게 탄식하며 천천히, 하지만 이내 빠르게 원고를 넘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넘겼을까, 중간 부분까지 빠르게 넘긴 벤틀리는 눈에 불을 켜고 흥분하더니 소리치듯 말했다.
“이, 이놈들이 이거!!”
“어떻습니까?”
“굉장합니다! 이게 더 박진감 넘치고 재밌군요! 어째서 이쪽을 우선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진정하세요.”
나는 흥분하는 담당 편집자를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그건 단편으로 드린 옴니버스 에피소드들이 다 소진되면 연재해 주시면 됩니다.”
“바로바로 출판하는 게 더 잘 팔리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밀당······ 밀고 당기기가 안 되잖아요.”
“예? 뭘 밀고 당깁니까?”
음, 이것도 아직 개발 안 됐나? 나는 벤틀리 씨가 이해하기 쉽도록 천천히 말했다.
“벤틀리 씨, 방금 빠른 전개가 일품이라고 하셨죠?”
“그랬지요.”
“거기에 독자들이 익숙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거기에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리가요.”
사이다 전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동서고금 어느 시대고 먹히겠지.
하지만 동시에 쉽게 물릴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있다. 괜히 사이다패스가 욕먹는 게 아니지.
물론,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식의 사이다 마케팅을 한다면 나도 더 강한 사이다로 달릴 수밖에 없겠지만······ 이 시대에 사이다 공장을 가진 건 나 하나잖아?
그렇다면.
“굳이 독자들이 너무 일찍 적응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쪽 원고는 적당히 텀을 두고 게재해 주세요. 독자들이 빠른 전개의 맛을 조금씩 잊어 갈 때쯤 말입니다.”
“······작가님.”
그런 내게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가 진지하게 말했다.
“작가님은······ 악마십니까?”
“무슨 실례되는 말씀이세요. 이래 봬도 모태신앙입니다.”
농담은 아니다. 어머니가 성당 다니셨거든, 중학교 때 이미 냉담자였지만, 아무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악마적인 발상이 자연스럽게 나오십니까?!”
너무하네, 진짜.
난 그저 독자님들의 재미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선량하고 모범적인 대중 문학가로서 말이다.
“그건 그렇고.”
그런 나와 벤틀리를 향해, 밀러 씨가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이제 시간이 나는 건가?”
“그렇죠, 아마?”
“예. 몇 달 치 분량을 먼저 받았으니, 교정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이 날 겁니다.”
“험험, 그럼 잘됐군. 다음 달 일정엔 맞출 수 있겠어.”
“뭐를요?”
“이거지.”
밀러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팸플릿 하나를 건넸다.
이건 또 뭐야?
나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 초대장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조지 왕세손이 테크(Teck: 독일의 지명)의 메리 공녀와 결혼식을 올린다는군. 대대적으로 퍼레이드도 하고, 작지만 박람회도 열릴 예정이야.”
“왕족의 결혼식이요?”
그것도 그냥 왕족이 아니다. 왕세손이면 왕위 계승 서열 2위잖아? 그냥 고급도 아니고 초고급 호화 결혼식이 펼쳐질 거란 소리다.
여기에 로망을 느끼지 않으면 판타지 장르 못 쓰지.
하물며 미래처럼 권위 다 빠진 왕실도 아니고 전제왕권 수준의 빅토리아 시대잖아? 화려할 게 분명했다.
“어떤가? 나는 오랜만에 지인도 만나 볼 겸 구경 갈 생각인데, 같이 가겠나?”
런던이라······ 지금 내 소설이 유행하고 있다는 도시.
“저야 영광이지요.”
“잘됐군요! 저희 출판사에서도 한번 대대적으로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함께 보면 좋을 겁니다.”
밴틀리도 신이 나서 말한다.
난 터질 듯 부푼 기대감을 간신히 누른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