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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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4)
찢어진 종이가 마치 낙엽처럼 휘날렸지만, 그는 거기서 시상을 떠올리긴커녕 오히려 감각이 죽어 가는 느낌이었다.
벌써 열 번째.
기껏 글감을 받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글이 안 풀리다니.
“끄으으응.”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한때 구대륙을 통째로 지배했으나, 흑사병이라는 신의 철퇴를 맞아 몰락하는 몽골제국’.
그 자체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으나, 문제는······ 그가 몽골제국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천막에 사는지 건물에 사는지, 기본적인 계급 체계서부터 심지어 그들이 마시는 술이 마유주인지 와인인지까지.
기초적인 지식이 있어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그렇게 그린 그림을 문장으로 바꾸고, 그 문장을 문학적인 규칙에 맞게 배치해야 소설이 성립할 텐데.
‘내가 어찌 이런 기초적인 것조차 잊고 있었단 말인가.’
아서 코난 도일은 흰색의 지옥과도 같은, 공백의 종이를 보며 생각했다.
그 공백은 그의 두 손으로 다 덮을 정도로 작았으나, 동시에 세상에서 제일 넓은 미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싫어하던 [셜록 홈즈>를 집필할 때면, 하루에 3천 단어 정도는 예사로 쓸 정도로 빠른 속필을 자랑하는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3천 단어가 뭔가, 세 글자도 제대로 쓰기가 어려웠다.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지던 만년필의 잉크는 신화 속 가뭄만큼이나 메말랐고, 유려하게 내달리던 손목은 그저 돌덩이에 눌린 듯 무거웠으니······ 그야말로, 한 글자라도 제대로 나아가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후우우우······.”
대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역사 소설을 쓰는 것인데. 어찌하여 단 한 자도 발을 내디디며 나아갈 수 없는 것인지.
“······.”
아니, 정정하자. 아서 코난 도일은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쓴다고 해서, 과연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추리 소설 작가로서의 아서 코난 도일.
그건 역사 소설 작가로서의 아서 코난 도일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적이자 증오스럽기 그지없는 상대였다.
하물며 이미 네 번이나 패배했다.
한 번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도전이라 부른다.
두 번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은 용기다.
세 번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끈기라면.
네 번이나 쓰러졌음에도, 다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인가.
아서 코난 도일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자신만의 착각이 아닌가. 그 답이 아집(我執)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그 사실에서 구차하게 눈을 돌리고 있을 뿐이 아닐까.
“후······! 어쩔 수 없군.”
아서 코난 도일은 한번 크게 한숨을 쉬며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안 될 때는 안 되는 것이다.
의사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는 최대한 떨어져서, 처음부터 다시.
초심을 되찾아야만 했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마침 그 조선인 청년에게 건네준 쪽지에 적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청년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미리 기다리고 있어야겠지.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청년을 만나서 다시금 청량한 동양의 바람을 머리에 집어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문득, 집필을 위해 잠가 둔 방문 앞에 놓인 무언가가 보였다.
“응? 저건······.”
그것은 잡지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익숙한 제목과 형태의 잡지.
[스트랜드 매거진>.이젠 연재 계약이 끊겨 보내 줄 필요가 없는데도, 뉸스 사에선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한 부씩 보내오고 있던 것이다.
“흐음.”
이제는 애증의 대상이 된 물건이지만, 아서 코난 도일은 애독가로 서의 자신조차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번 표지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을 보면 새로운 작품이 연재되는 모양이다.
그것도 상당히 기대작이.
‘지난 호에서는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거늘······.’
왠지 모르는 음모의 냄새에 특유의 호기심이 자극됐다.
그렇게 흥미를 갖고 잡지를 넘기려던 그 순간.
“······한슬로 진?”
예상치 못한 필명에 아서 코난 도일은 어리둥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시기에 잡지 전속 계약이란 개념은 없다.
아서 코난 도일 자신도 가끔, [셜록 홈즈>에 포함되지 않은 단편을 [템플 바>에 한두 편 정도 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작품은 명백히 그런 궤에서 벗어나 있다. 표지도 바꾸고, 어두우면서도 분위기 있는 일러스트로 눈을 사로잡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으니까.
그래, 마치 간판 작품을 바꾸려는 듯한······.
그런 의구심을 품고, 읽기 시작한 [던브링어>는.
“이건······!”
아서 코난 도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에도 보인 적 있긴 하지만, 한슬로 진이 이번에도 완전 다른 방식의 작품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이번엔······ 고딕 소설인가?”
아니, 고딕 소설이라기엔 조금 암울한 느낌이 덜한가?
뭐랄까······ 고딕 소설에 추리 소설과 12세기 기사문학을 섞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피터 페리>와 같은 동화도 아니었고, [빈센트 빌리어스> 같은 교훈이나 사회 비판을 담은 책도 아니다.“이렇게 다른 걸 잘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구먼.”
뭔가 겹쳐지는 게 있다면 모르겠다만, 장르 하나하나가 파격적이다. 심지어 그렇게 다른 것에 자신의 색은 그대로 녹여낸 채 툭툭 던지듯 낸다니······.
“어떤 의미로는 부럽기도 하군.”
방금까지 그를 괴롭히던,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어두운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그는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흐음······.”
활자의 바다에 빠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피터 페리>와 같은 알기 쉬운 매력을 갖고 있었고, [빈센트 빌리어스>만큼이나 런던 시민들이 몰입하기 좋은 구조를 갖추고 있었으며, 둘에게는 없는 본격 활극으로서의 새로운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추리는 애매한 수준인가.”
물론, 추리라고 하기엔 사건의 진행과 과정이 지나칠 정도로 짧고 단조로웠다.
‘카니스 부인의 옷깃에 런던 비둘기의 깃털이 붙어 있었기에, 그녀가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과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부인과 잠시 동행하면서 깃털의 의미와 트릭을 더해 주는 게······.’
독자에게 사건의 범인을 추측할 틈을 주지 않고 궁금증이 팍 솟아오를 때쯤엔 바로 답을 알려 버린다.
이러면 범인을 찾아내는 추리하는 맛이 확 죽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한슬로 진, 설마 추리물은 본 적이 없는 사람인가?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추리의 기본 단계나 긴장감 등은 확실하게 잡고 있어. 복선을 이용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지. 이건 이쪽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 노트의 문장이 고쳐 써진다.
─한슬로 진은 아마 추리 소설을 많이 봤던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의문이 남는다.
“어째서, 이렇게 쓴 거지?”
이 작품은 추리 소설의 금기를 자연스럽게 어기고 있다.
근본적으로 사건의 해결에 초자연적인 수단을 쓰고 있다는 점도 그렇지만, 수단(How done it)보다는 사유(Why done it)에 집중하고 있으니.
마치, 원래부터 추리는 이 세계관에 대한 호소력이나 독자들의 긴장감을 유발시키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다는 듯이.
“그렇다면 원래부터 그렇게 여겼다는 건데······ 접근법이 기이하군, 틀이 완전히 부서져 있어. 광인(狂人)의 그것과 비슷해.”
본디 사람이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게 제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그러하다.
당연하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니까.
인간이 날개 끝 깃털의 감각이나 꼬리를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아마 그런 틀이 부서져 있는 광인이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새로운 틀을 ‘경험해 본’ 인간이리라.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진실이다······ 그렇다면 한슬로 진은 광인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군.’
그렇다고 하기에 그가 쓰는 글은 명백한 규칙을 지니고 있었다. 어떨 때 보면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일종의 답을 풀어내듯 진행된다.
단순히 영감이나 순간의 번뜩임으로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소리.
정신 이상자들 특유의 일그러진 밸런스도 없다.
마치.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온 사람처럼.
“······그렇군. 불가능하지 않았어.”
그의 머릿속에, 비슷하지만 다른 청량감을 주었던 한 남자가 떠오른다.
그 조선인 청년.
그는 영어로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생각 저변에 깔린 가치관은 유럽인인 자신과 크게 달랐다.
그렇다면.
그의 머릿속 노트의 문장이 하나 더 채워진다.
─한슬로 진은······ 유럽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확신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마, 유럽에서 자라진 않았을 거다. 그러기엔 지극히 이질적이니까.
그리곤 시야를 내려 표지 한편에 적혀 있던 단어를 확인하였다.
런던의 영웅(a hero of London).
이게 이 작품의 아이덴티티인 모양이다.
Hero, 영웅이라······ 솔직히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인물은 아니었다.
유치하고, 쓸데없이 진지한 척하고, 겉멋이 잔뜩 들었다.
변신 장면이라는 것도 그렇다. 쓸데없이 포즈를 취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전투 직전에야 환복 한다니. 어째서 미리 입고 오지 않은 것인가?
그리고 적은 대체 왜 그렇게 무방비한 상황에서 공격하지 않는 거지?
게다가 마지막, 적을 마무리하기 전에 취하는 그 요상한 자세는 또 무엇이고?
효용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하지만.
‘멋은······ 있다!’
이게 추리 소설로는 낙제에 가까운 어설픈 추리라는 것도 별 상관이 없었다.
스스로 셜록 홈즈를 쓰면서도 소재가 안 떠올라서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추리를 늘어놓던 적이 얼마였으며, 그걸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이불을 걷어차고 싶던가.
요는, 진짜로 현실적으로 맞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추리가 얼마나 탐정을 ‘있어 보이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보이느냐였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이 단편을 덮었을 때, 그는 이미 스스로가 ‘에드먼드 에어하트 남작’이라는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아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슬로 진의 신작 소설을 충분히 즐겼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자신은 분명. 이러한, 유치하고 쓸데없이 겉멋만 잔뜩 들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활약하는 작품엔 진절머리가 났을 터인데······.
그것은 그가 그간 보여 왔던 것과는 정반대의 스탠스였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하, 그래서였나.”
그는 그가 만들어 낸 피조물······ 셜록 홈즈와 닮아 있었다.
물론 하는 행동, 말투. 호색과 사치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경박한 귀족이라니. 겉의 행태는 셜록과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근본이 일치했다.
그런데도 셜록은 죽여 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싫어했으면서 ‘에드먼드 에어하트 남작’에는 호감을 느끼고 재미있어한다니. 이와 같은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정말 셜록 홈즈를 미워하긴 했던 것인가?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왜 셜록 홈즈를 썼는가.’
심심해서, 라는 대답은 오답이다.
물론 그 악랄한 세금징수원조차 고개를 젓고 돌아갈 만큼 손님이 없긴 했다. 여유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원래 쓰던 역사 소설이나 더 다듬었을 터, 추리 소설이라는 ‘외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외도를 저질렀다.
그 이유는.
‘그래. 단 하나였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의 심심한 시간을 달래 주는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 있는 소설 장르가 추리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재미는 전염된다.
그는 그 스스로도 그 전염의 보균자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답답한 런던. 허구한 날 터지는 범죄. 그 우중충한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힘들여 사는 세상, 구원은 없는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저 안개와 먹구름,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푸른 하늘 너머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그는 신의 대변인, 신을 대신하여 범죄를 밝히고 런던의 시민들에게 절친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젊은 고문탐정(顧問探偵)을 창조했다.
불의(不義)를 참지 못하지만 솔직하지 못해 그것을 ‘재미’로 포장해야 하며.
친구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지성을 날카롭게 다스리기 위해 냉정한 척해야 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감정에 충실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칼날과도 같은 매부리코의 남자.
그것은 아마 아서 코난 도일 자신일 수도 있었고, 존경하는 은사 조지프 벨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처음엔 두근거리던 마음으로 썼던 소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던 것은 언제였더라······.
기계적으로 플롯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기계적으로 장치를 짜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기계적으로 글을 쓰고.
그렇게 그는 흥미를 잃어 갔었다.
“영웅(Hero)이라.”
아서 코난 도일은 스스로 반추하다가, 우연히 떠올린 한 단어에 집중했다.
영웅.
그래. 그는 영웅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환부를 치료하는 의사처럼, 또는 바닷속에서 배를 노리는 고래를 오히려 겨냥하는 포경선처럼.
런던의 바다와도 같은 안개 뒤에 숨어 평범한 사람들을 노리는, 범죄자들을 노려보고 처단하는 영웅.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별이 되어 줄,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에게 아직 당신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노라 속삭이는.
그런, 영웅을 만들고 싶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순간 아서 코난 도일의 머리를 환희가 가득 채웠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 역사 소설 [아이반호>도, 위대한 기사 소설인 [돈키호테>도 결국은 형태가 다를 뿐,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재미있군.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어.”
눈을 가리던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머리를 헤집던 벌레가 사라진 것 같다. 아랫배에 꾹 눌려 있던 돌덩이를 부순 듯하다.
몸이 가볍다. 펜을 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
“늦네에······.”
아서 코난 도일과 맨 처음 만났던 예의 펍.
나는 여전히 엉뚱한 사람만 오고 가는 문을 보며 투덜거렸다.
먼저 만나자고 한 게 누군데 이렇게 늦는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