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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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5)
“헉, 헉······.”
어렴풋이 보이는 빅 벤의 침은 어느새 4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버렸다.
딸랑─! 딸랑─!
부셔질 듯이 거칠게 연 문. 그 끝에는 그렇게 기다리던 청년이 앉아 있었다.
난 가쁜 숨을 애써 삼키며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미안하네. 내가 좀 많이 늦었······.”
“그래서, 셜록은 왜 죽이셨죠?”
“군······ 어?”
“왜 죽이셨냐고요.”
“어어?”
***
오랜만에 만난 의사 아저씨와의 재회는 최악······ 까지는 아니었지만 썩 좋지도 않았다.
뭐, 약속 시간을 정해 준 사람이 늦게 나온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막상 만난 당사자의 행색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머리는 마치 며칠은 못 잔 듯 산발이 되어 있고, 얼굴에 묻은 땀은 비라도 온 듯 범벅에 수염도 제대로 정돈이 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말쑥한 런던 신사’의 모습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모습.
오죽하면 펍의 마스터가 놀라서 그에게 달려갔을까.
“아니, 코난 도일 선생님!! 강도라도 만나신 겁니까?”
“아, 아닐세. 짐. 걱정하지 말게. 미안하지만 물수건 좀 가져다 주겠나?”
“물론이지요.”
지금까지 봤던 이 양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긴 한데······ 그래도 말할 건 해야지.
그래서 바로 박아 버린 거다.
‘왜 셜록을 죽였냐고.’ 수많은 셜로키언의 대변자로서 말이지.
그러자 그는 잠시 ‘어? 어어?’ 같은 느낌으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침묵하였다.
자, 어떻게 나올까? 화를 낼까? 아니면 울음을 터트릴까? 그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조용히 타이를지도······.
그런데.
“그래. 그게 바로 나의 죄악이었지.”
“······예?”
뭐지, 이 반응은?
나는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도 푸근한. 단 한 점의 분노도 조바심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얼굴에, 되려 놀라 버렸다.
뭔가 악에 받쳐서 홈즈를 죽였다는 ‘그’ 아서 코난 도일이라기보단, 달라이 라마나 법정 스님 같은 대선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표정.
그러면서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뭐지? 대체?
“청년, 솔직히 말함세.”
“아, 예.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유혹에 빠져 있었네.”
어, 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며 그저 멍하니 아서 코난 도일을 바라만 보았다. 무슨 종교 체험이라도 듣는 기분인데, 이거.
“······유혹이요?”
“그렇다네.”
나는 슬쩍 물수건을 갖고 온 마스터를 흘낏 보았다.
따끈따끈한 물을 적신 천을 갖고 온 우락부락한 대머리 마스터는, 통나무 같은 팔뚝으로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천을 올려놓더니······ 그대로 도망쳤다.
아무래도 나처럼 귀찮아질 거 같은 분위기를 간파한 모양이다.
“아, 짐이 가져다줬군. 미안하네. 잠시 세수 좀 하겠네.”
“예, 예. 마음껏 하시죠.”
아니, 도망칠 거면 나도 같이 좀······ 다시 몰래 마스터에게 신호를 보내 봤지만, 그는 아까 닦았던 잔을 다시 열심히 닦는 척을 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였다.
음, 어쩔 수 없지.
난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는 숨을 고르고 있는 대작가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말이신가요.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흠. 그렇지. 내가 설명이 부족했군.”
간단하네.
아서 코난 도일은 내가 슬며시 주문해준 진저에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저 내가 어리석었다, 그뿐인 이야기일세.”
역사 소설을 쓰겠다는 건 결국 자기만족에 불과했는데······.
아서 코난 도일이 씁쓸하게 말했다.
“거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큰 실수를 하고 말았네. 그······ 아이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만들었던 건······ 결국 내가 공들여 쌓았던 탑을 스스로 무너뜨린 거나 다름없는 선택이었지.”
“음,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 자네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지성과 냉철함으로 형형히 빛나는 눈을 똑바로 뜨며, 아서 코난 도일은 선언했다.
“셜록을 죽인 것은 내 실수였다네. 쓸데없는 아집으로 독자들에게 상처만을 남겨 주었군.”
그야 그렇겠죠. 미래엔 그런 일로 자살하는 팬까지 나왔을 정도니까······ 다행히 아직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뉴스는 안 나온 걸 보면, 다른 셜로키언들도 이래저래 나처럼 작은 희망을 품고 있던 모양이다.
“음, 그 말씀대로라면?”
“셜록 홈즈를 부활시켜야겠어.”
“지, 진짜로요?!”
“선생님, 그게 정말이십니까!?”
“암, 물론이지.”
나는 물론이고, 주의 깊게 듣고 있던 마스터까지 놀라 아서를 보았다.
아니, 물론 나는 알고 있긴 하다. 그가 결국 [빈 집의 모험>을 썼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왜지?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아서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부활시키는 건 성화를 못 이겨 프리퀄 한 편을 내서 진화(鎭火)하려다 실패한 뒤, 결국 셜록이 죽은 10년 뒤 미국 출판사가 초고액의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돈으로 고집을 꺾은 탓에 이뤄진 일이었는데?
실제로 얼마 전 경찰서에서도 역사 소설 소재를 얻었다고 좋아라 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고집을 꺾은 거지?
사실, 난 오늘 그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안고 왔었다.
어떻게든 셜록을 다시 써 보라고 설득하려 했단 말이지.
그런데 갑자기? 어째서?
내가 의아해하자 그는 마치 고해성사하듯 경건하게 말하였다.
“나는 그간 왜 소설을 쓰는지를 잊고 있었다네.”
“소설을 쓰는 이유요?”
“음, 혹 내가 우리 아버지, 찰스 앨터먼트 도일(Charles Altamont Doyle)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
“아, 아뇨.”
얼핏 뭔가가 떠올랐기에 난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셜록 홈즈에서 등장하는 존 왓슨과 그의 부친에 관한 이야기가 맞다면.
그리고, 존 왓슨에 코난 도일이 자신을 투영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건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아서 코난 도일은 잠시 눈을 감더니, 천천히 말했다.
“부끄러운 인간이었지. 어머니처럼 강인하고 아름다운 분께 어울리지 않는 정신병자였고, 허영심만 가득한 예술병자였어.”
“······예.”
“물론 그림을 못 그리진 않았다네. 내 [주홍색 연구>의 삽화를 그려 주시기도 했고. 전시회를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못 나진 않았어. 다만······ 실패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었을 뿐이지.”
아서 코난 도일은 잠시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보았다.
입으로는 험한 말을 했지만, 나는 그 시선에서 아버지에 대한 애도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가셨나 보군요.”
“작년에. 올해 10월이 기일일세.”
“애도를 빕니다.”
“고맙군.”
아무튼, 이라며 아서 코난 도일은 말을 이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남을 해치는 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역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네만······ 아이러니하군. 아무래도 도일 가(家)에는 예술가의 굴레가 있는 거 같네. 이리 돌고 돌아 글쟁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 할아버지, 존 도일도 아일랜드에서 풍자화(諷刺畵)로 유명한 화가였더랬지.”
오, 그런 또 몰랐네. 그렇다면 홈즈의 외할머니가 프랑스의 화가 가문 출신이라는 설정은 혹시 그런 점을 반영한 거려나?
“[셜록 홈즈>를 쓰게 된 이유도 결국 생각해 보면 이 런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였지. 내가 원래 향하던 것은 대중이라는 소리네. 그런데 어느샌가 인기 작가라는 위명에 젖어, 그들을 저버리고 평론가들의 평가에 좌지우지하려 하다니, 내가 초심을 잃은 것이었어. 중요한 것은 그런 극소수의 높으신 분들이 아닌데 말일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만 같아서는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으로.
뭔가 너무 극적인 심경의 변화긴 했으나, 아무렴 어떠랴.
이제 마음 고쳐먹고 셜록 홈즈를 다시 쓴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였다.
“그걸 내게 가르쳐 준 책이 이걸세.”
아서 코난 도일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뛰어온 탓인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나로서는 모를 수 없었다.
그야.
“[던브링어>. 새벽을 가져오는 자라······ 정말 잘 지은 이름이야. 내게도 새벽을 가져다준 책이나 다름없으니 말일세.”
“······어.”
다름 아닌, 내가 쓴 책이었으니까.
얼이 빠져 있는 나에게 아서 코난 도일은 열성적으로 말했다.
“한슬로 진, 그자를 만난다면 꼭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더군. 어찌 보면 잘못 가던 나를 일깨워 준 은인이니 말일세.”
“어, 음······.”
그렇군요.
“혹시 읽어는 보았는가? 정말 굉장한 작품이라네! 비록 허구적인 요소가 많이 섞였으나, 내가 셜록 홈즈로 이야기하고자 하던 내용이 담겨 있더군. 한슬로 진, 그는 사실 나에게 다시 셜록을 쓰라고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네.”
“네, 그게 맞긴 한데요······.”
“역시 자네도 그리 생각하는가?”
“어, 음, 뭐······ 그런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흐음? 뭐라고?”
어, 그러니까······ 부끄럽긴 한데 말해야겠지?
“다시 셜록을 써 주셨으면 했던 게 맞다고요.”
그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그 눈이 점점 커지더니.
“잠깐, 그 말투는 마치······ 아니, 설마.”
“네, 맞습니다.”
난 턱을 긁으면서 겸연쩍게 답하였다.
“······제가, 그 한슬로 진입니다.”
***
며칠 전, 런던의 치안을 담당하는 런던중앙경시청.
별칭, 스코틀랜드 야드의 중앙 회의실에는 경감(Police Captain) 이상의 베테랑 경찰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누구 하나 긴장하지 않은 얼굴이 없다. 간간이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흔드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이는 런던 경시청의 위신이 걸린 문제이자, 길게는 잉글랜드 전체의 치안이 걸린 문제로,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의제였다.
그것은 바로.
“나왔다, 나왔어!”
무엇이 나왔는가.
바로.
“[스트랜드 매거진>에 한슬로 진이 ‘추리 소설’을 연재했다!!”
“실화냐!?”
“와, 마참내!!”
“흑흑, 이제 조인트 까이는 일도 끝이다!!”
첩보대로였다. 드디어 조지 뉸스가 해냈다!
경찰들은 모두 서로를 얼싸안고 축배를 들었다.
스코틀랜드 야드는 최근, 실적 부진으로 영국 내무부에게 까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돈 안 줘도 알아서 홍보 매체가 되어 주는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가 주인공의 죽음을 핑계로 완결을 냈기 때문이다.
‘소설에선 경찰이 까이는 게 일상인데, 홍보가 되는가?’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천만의 말씀.
런던은 오래전부터 연이은 혁명과 이에 따른 군의 개입으로, 시민들이 군에 대해 불신하고, 불안감이 큰 도시다.
이에 따른 치안 공백은 우려할 만한 사항이었고, 이를 잘 아는 내무부는 경찰에서 최대한 군대 냄새를 빼 왔다. 시민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이다.
그들이 국군의 레드코트와 정반대인 푸른색 계통 옷을 입고, 군대와는 전혀 다른 계급체계를 만든 것도 그 일환이었다.
비록 셜록 홈즈는 이런 경찰들을 업신여기고 깔아뭉갰지만, 적어도 성실하게는 일한다는 이미지를 만들며 친근감을 올리는 데 성공했으니.
이는 수천 파운드의 혈세를 쏟아붓고도 할 수 없었던 쾌거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럼 뭐 하나.
그딴 식으로 완결을 내버려서 오히려 폭동만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되어버렸는데.
이후 일어난 폭동으로 늘어난 업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지!!”
“암, 코난 도일 선생도 잘 써 주긴 했지만, 요즘은 한슬로 진이 최고야!!”
“아니라고 생각하면 셜록 홈즈를 부활시키라그래!!”
이미 그가 셜록 홈즈를 부활시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경찰들은 그렇게 아서 코난 도일을 씹었다.
어쨌든 [셜록 홈즈> 얘기만 들으면 경기 걸린 것처럼 반응하는 그 양반을 설득하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이후, 이 한슬로 진의 [던브링어> 때문에 빅 벤에 오르려 하거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침입하거나, 자경단을 만드는 등의 극성 팬보이들 때문에 또 다른 방향으로 골치를 앓게 되지만, 일단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자, 자! 그럼 남은 의제만 처리하고 끝냅시다!”
“그래, 이것만 끝내면 드디어 우리도 정시 퇴근이야!!”
그렇게 그들은 남은 사건들의 배분을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안건이 쉽게 풀렸으니, 분배도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자, 다음은 데번 주 다트무어(Dartmoor)의 연쇄 실종 사건에 대한 협조 공문입니다만······.”
“거긴 늪이랑 황무지뿐인 데잖소?”
“그런 곳에 출장이라니, 유배인가?”
“아, 그래도 중한 일입니다. 그쪽에서도 나름 오래 묵은 귀족 가문의 대가 끊겼대요. 상속 문제로 여러모로 복잡하답니다.”
“그럼 더 싫은데.”
“아, 그러지들 마시고.”
“잠시만.”
그들 중 한 명, 중년의 배불뚝이 존스 경감이 손을 들었다.
얼마 전, 런던증권거래소 사건을 맡아 한슬로 진의 홀보이를 상대하기도 했던 사람으로, 그 두툼한 배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나 키우고 있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금, 데번 주에 귀족 가문 대가 끊겼다고 했나?”
“응? 그러네만.”
“데번 주, 귀족 가문이라······.”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데번 주는 아직 향토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곳이지?
─오랜 부를 축적한 지방 귀족. 그리고 주변의 농지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한다. 그 땅에서 작은 왕국의 왕처럼 살아왔던 귀족들은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딱 한 명의 후손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숨겨진 방계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암약을······.
“······누굴 보낼 수 있을지 감이 오는군.”
스코틀랜드 야드의 능구렁이, 존스 경감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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