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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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무어 실종 사건(3)
다트무어. 영국 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지명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표현되곤 한다.
‘황무지(荒蕪地)’.
물론 겉으로만 보면 이 표현은 잘못됐다.
나름 푸르른 목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이름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야생마들이 활보하는 땅이며, 간간이 양 떼를 데리고 돌아다니며 별을 찾아 헤매는 목동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속지 말자.
괜히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 그 땅을 황무지라고 번역한 게 아니다.
목초지라고 생각하던 갈색 대지에서 자랄 수 있는 건 진짜로 억세고 질긴 잡초뿐이다. 사람이 먹긴 애매한데, 위장이 튼튼한 우제류만 어떻게든 먹는 그런 풀 말이다.
이런 땅이 영국 특유의 온난 습윤한 기후와 만나면 과연 어떤 풍경이 펼쳐지느냐.
“와아······.”
몬티가 자신도 모르게 새된 탄성을 내뱉는다. 난 그런 몬티와 함께 차창 밖을 바라봤다.
끝없이 펼쳐지는 검붉은 광야. 그 위에 넘실대는 암록색 벌판. 야트막한 숲 너머로 음산하기 짝이 없는 잿빛 구릉이 솟아 있다.
들쭉날쭉한 얕은 동산은 사시사철 내리는 비에 쓸려 모든 살가죽을 드러내 있었고, 그 위로는 브리튼 섬의 겨울을 상징하는 우중충한 먹구름이 물기 가득한 바람을 휘몰아치고 있다.
나와 몬티를 태운 마차는 이윽고 돌무더기 오르막길의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보자, 바위산 사이로 움푹 파인 분지 지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안에는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산에서 쓸려 내려온 양분들이 모인, 그나마 식물이 자라기 쉬운 곳. 옹기종기 모여 자란 떡갈나무나 전나무 같은 침엽수들이 만든 나무숲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치 마왕 성이라도 되는 듯 거대한 저택이 하나 솟아 있었다.
칼라일 가문의 저택, 스태플턴 저택이다.
아무튼 우리의 목적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슬, 왜 경매를 원래 주인집에서 하는 거야?”
오, 좋은 질문.
우리 작은 주인, 몬티 밀러의 말마따나 원래 경매는 따로 경매장을 잡아서 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때때로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건 바로.
“엑시터에는 경매장이 없습니다.”
“······아.”
“저택이 꽤 넓어서 경매장으로 쓸 만하니, 은행 입장에서는 매물인 저택과 토지까지 싸잡아서 팔아 버리잔 생각인 거겠죠.”
“그것참, 편리하네.”
“원래 세상 돌아가는 일이 다 그런 겁니다.”
“자라는 꿈나무에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하하 뭘 이 정도로······ 이건 이쪽 업계로 치자면 아주 조용하고, 뒤탈도 없으며, 무척이나 깔끔한 경우에 가까운데 말이지.
상속자나 피상속인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그리고 그 대상이 어디까지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 구해 와야 할 예술품은 대략 스무 점 정도 됩니다.”
“의외로 적네?”
“작고하신 칼라일 남작님은 동양화 전문이었죠. 그래서 현대화를 다루는 저희랑은 분야가 조금 다르니까요.”
“그럼 굳이 사들여야 할 게 있어?”
“최근에는 유럽에서 쟈포네스크(Japonesque), 그러니까 일본식 화풍의 영향을 받은 아르누보(Art Nouveau)가 유행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밀러 씨도 최근에는 이런 아르누보 화풍을 그리는 화가들을 찾고 있었다.
직접 본 감상으론, 뭔가 자라나는 덩굴처럼 굽이치는 형태의 곡선과 모자이크 같은 채색의 화려함 때문인지, 자작 타로 카드를 보는 듯했지만.
음, 뭔가 2D 일러스트 비슷한 느낌도 들어서, 언젠가 나도 신작의 표지나 삽화로 쓰고 싶다.
밀러 씨가 제대로 영입하면 진짜 한번 부탁해 보는 것도 좋겠네.
‘어디 보자, 이쪽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나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정도려나?’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한번 이 사람들의 소재나 파악해 봐야겠다 마음먹으며, 설명을 마저 이었다.
“저희가 자포네스크 자체를 다루진 않겠지만, 아르누보를 다루려면 그 기원이 되는 일본화도 어느 정도 수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흐음, 그런가?”
“네, 그런 겁니다.”
하지만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몬티는 이쪽, 미술업에는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뭐, 상관은 없겠지.
사업체야 꼭 물려받을 필요 없이 팔아도 되고, 혹은 대리인을 세워서 운영해도 괜찮으니까.
“억지로 이해하려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예술이란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고, 거기에 호오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는 거니까요. 제아무리 사람들이 명작이라 울부짖어도 스스로에게 맞지 않으면 그건 의미가 없습니다.”
애초에 취미로 시작한 사업인 만큼, 아마 밀러 씨도 웃으면서 그러라 하지 않을까?
당장 아르누보부터가 그 대표 격 아닌가.
지금이야 좀 유행하지만, 고작 20년 만에 빠르게 퇴색되어 버린다.
예쁘장해서 보기는 좋은데, 무작정 예쁘기만 한 거로는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
“음······ 한슬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이번에도 그냥 구경한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보면 됩니다.”
그렇게 노가리를 까며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나니, 마차는 어느새 스태플턴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저택은 낡아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고풍스럽다고 하는 게 더 맞겠지.
담쟁이덩굴이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었고, 본관 중앙에는 쌍둥이처럼 닮은 두 탑이 솟아 있다.
탑 곳곳에는 총을 쏘기 위한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으며, 좌우로는 근처의 바위산을 재료로 썼을 것이 분명한 흑색 화강암 별관이 서 있었다.
이 저택이 단순히 거주만이 아닌, 지배자의 관청으로도 쓰였다는 의미기도 했다.
“흠.”
무게감 있는 창문살 사이로는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가파른 지붕 위의 굴뚝에는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게, 아무래도 선객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나와 몬티가 마차에서 내리자,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엑시터의 은행 쪽 직원 둘이 천천히 다가왔다.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애쉬필드에서 오셨습니까?”
이 일대에서 애쉬필드라 함은 밀러 씨의 대명사로 통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쪽은 밀러 씨 댁의 장남인 루이스 몬태규 밀러 도련님이십니다.”
“루이스 밀러입니다.”
“그렇군요. 어서 오십시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쪽으로 드시죠.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런 일이 익숙한 직원들답게, 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안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 중 나이 든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도련님, 먼저 들어가시죠. 짐은 제가 옮기겠습니다.”
“응, 알겠어.”
“도와주겠네, 한슬.”
“감사합니다. 찰리.”
나는 몬티를 먼저 보내고 마차의 짐에 붙는 척을 하며, 나를 도우려 다가오는 찰리와 눈을 맞췄다.
찰리는 경력 30년 차의 은행원이다.
자식이 둘 있으며, 한 명은 꽤 머리가 좋아서 비싼 사립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지.
그래······ 명백히 일개 은행원 월급으로서는 다니기 힘든 사립 학교에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하여, 이상이 이번 경매에 참여하러 온 화상(畵商)과 수집가들일세.”
좋아. 나는 지역 유지들이 암암리에 성립해 놓은 음습한 시골 습속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서 어이쿠, 내 손이 잠깐 그의 품에 작은 주머니를 넣었다 뺐다.
“하하, 뭘 이런 걸 다······ 고맙네.”
“아뇨, 아뇨. 신경 쓰시지 마시죠. 언제나 고생하신 만큼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그렇게 그가 주머니 속을 확인하는 사이, 난 머릿속으로 방금 들은 정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익숙한 이름들이 제법 많았다.
카스테어스, 펀스비, 데스먼드, 셸던. 그 밑으로는 기억할 필요 없고.
물론 이 넷 중에도 밀러 씨에게 재력으로 비벼 볼 만한 양반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지역 유지로서의 우열이라면 셸던이 오래된 집안이긴 하지만, 그래 봤자 클라라 부인의 본가라 할 수 있는 베이머 가문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
즉, 완전히 노났다는 거다.
이거, 이번엔 딜로 찍어 눌러도 충분하겠는걸?
나는 짐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흐음, 꽤 적네요?”
“하하, 촌동네 다트무어잖나.”
하긴 그렇지.
나는 찰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이-지하군.
하긴, 몬티를 같이 보냈을 때부터 이럴 거 같긴 했다. 빡센 경쟁이 붙는 곳에서 약점이 될 만한 이를 함께 보내진 않으니까.
대신.
“이거 참, 도련님은 좀 실망할 수도 있겠네요. 나름 이런 자리는 처음 겪는 거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을 텐데.”
[빈센트 빌리어스>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가격을 올려 가면서 상대와 수를 나누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을 거 같은데, 아쉽게도 그런 걸 보여 줄 수는 없을 듯하다.“내 입장에서는 이 일을 일종의 유희처럼 여기는 자네 쪽이 더 신기하긴 하다만.”
뭐, 그야 그러겠죠. 저도 나름 연차가 다른지라.
아무튼 나로서는 별 불만 없다.
다트무어의 황무지가 볼 만한 건 사실이지만, 이 근방의 경치는 색감도 우중충한 편이라서 금방 물린다. 아마 한 두어 시간 정도 구경하면 금세 지루해지겠지.
가벼운 일에 가벼운 내용.
심지어 걸리는 내용도 없으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끝내고 귀가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경찰이 많네요?”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저택 안에는 경매하러 온 화상들보다 딱딱한 얼굴과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형사들이 훨씬 많았다.
간간이 푸른색 옷을 입은 런던 경시청도 있는 걸 보면, 뭐지? 내 정보와 다르게 뭔가 사건이 있는 건가?
그런 의도를 담아 시선을 뒤로 향하자, 찰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리야 대충 늪지에 빠졌다고 여기고 있다만, 어쨌든 간에 실종사건이잖나. 유산 분배가 시작되긴 했어도, 인망 높았던 칼라일 남작의 생환을 바라는 사람들이 없진 않아.”
“그렇군요. 그러면 진짜로 살아 돌아오면 아주 큰일 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경찰들이 와 있는 거기도 하지. 사실 정황상 칼라일 남작이 죽은 건 확실해. 그런데 상속인들도 그렇지만, 은행에서도 처분할 건 빠르게 처분하고 분배해서 유산을 굴리고 싶거든.”
요컨대 사망 확정 도장을 찍고 싶다는 얘기인 것 같다.
아직 실종 후 몇 년 이후면 사망 처리 같은 법안이 있는 시대도 아닌 만큼, 주변의 사정에 의해 생사가 결정된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실 상속인들 사이에선, 진짜로 누구 하나가 범인이었으면 좋겠다고는 눈치도 보이고 있네.”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상식적으로 그렇잖나. 살인범에게 살인 피해자의 유산을 넘길 순 없으니까, 그 사람의 유산을 제한 나머지가 좀 더 돌아올 걸 기대하는 거지.”
“아이고야······.”
대충 악당들이 말하는 ‘좋아, 이걸로 머리 하나가 줄었네.’ 같은 거군.
죽은 사람의 명복은 기원도 안 하고 유산만 탐하는 꼴이라니. 정말 교육에는 좋지 못한 현장이구만.
난 얼굴에 씁쓸한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잘 생각 안 나지만 칼라일 남작이 나름 미담은 많은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숲 너머에 가면 적당한 촌이 두어 개 있는데, 사실 이 동네가 먹고 살기 뭐한 동네다 보니, 사실상 칼라일 남작이 돈 대 줘서 촌이 먹고 사는 수준이었거든.
물론 그만큼 돈이 많다는 소리겠지.
명망 높은 지역 유지였던 만큼, 부동산까지 합하면 밀러 씨 정도는 아니라도 상당한 재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찰리는 당당히 그 금액을 말해 주었다.
“은행에서는 총 자산이 약 97만 파운드(2.4조 원)에 이르는 걸로 추산하고 있네.”
“······와 씨.”
눈 돌아갈 만하네.
하긴 생각해 보면 제아무리 황무지라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넓긴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내 반대편에서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하지만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코트와 콧수염이 보였다.
어······ 저 사람?
그리고 저쪽도 여길 발견했는지, 경찰과 이야기하다가 놀란 눈을 하더니 잽싸게 달려왔다.
“아니, 한슬로? 자네?”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시나요?”
지금 런던에서 신나게 [셜록 홈즈> 프리퀄을 쓰고 있어야 할 사람.
아서 코난 도일 선생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