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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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트무어 실종 사건(5)
나와 몬티는 이번 경매의 호스트라 할 수 있는 은행에서 초대한 연회에 참석했다.
게임으로 치면 탐색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왜, 데스 게임 보면 주최자가 서로 확인하라고 모아 놓는 자리 같은 거 있지 않나. 대충 그런 거다.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루이스 몬태규 밀러입니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몬티는 상석에 앉았다. 재력으로 보나 격으로 보나 최상위니까.
대리인 겸 가정교사로 소개된 나는 몬티의 오른쪽에, 왼쪽에는 조금 전부터 우리 일행이 된 아서 코난 도일 선생님이 앉았다.
“반갑습니다! 크리스토퍼 카스테어스입니다. 춘부장께 신세를 많이 졌지요, 하하하!”
말에 뼈가 있구만.
나는 카스테어스 화상의 주인, 크리스토퍼 카스테어스를 바라보았다.
미끈한 대머리에 웃음기가 많은 활기찬 인상.
사실 이 시대에는 독특한 양반이다. 웬만하면 가발을 쓸 텐데 말이지.
물론, 대머리 상인이 늘 그렇듯, 절대 방심해선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굳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서 상대를 낚아채는 영악한 방식을 활용하는 자인 만큼.
자본금이 애매해서 세력이 약할 뿐이지, 수완만 따지면 밀러 씨보다 위일걸.
“디미트리어스 데스먼드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이다. 헌앙한 아드님을 둔 밀러 씨가 부럽군요.”
반면, 늙은 상인인 디미트리어스는 정반대. 저물어가는 해다.
밀러 씨가 부럽다는 말은 그냥 빈말이 아니다.
아들내미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사고로 죽었고, 남은 하나는 경마에 돈을 탕진하고 있거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상인 바닥에서 늙었단 얘기는 오래 묵었다는 뜻이니까.
겉으론 표하지 않는 능구렁이 같은 인물인데다, 자금도 아마 우리 쪽을 제외하면, 저 양반이 제일 많을 거다.
독특한 건.
“셀레나 셸먼이에요. 남편을 대신해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셸먼 가문의 며느리였다.
여태까지 몇 번이고 얼굴을 나눴던 인물들과는 다른 뉴페이스.
뭐지? 셸먼 가문의 후계자는 내가 알기론 그냥 평범한 부농 아재였는데? 언제 재혼했대?
게다가 저 라틴계 아줌마, 눈빛이 보통이 아니다. 무슨 먹음직한 개구리 고르는 뱀 같은 눈빛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요주의 체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대된 펀스비 쪽은······.
“하, 하하.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중역 출근이라, 웬일이지? 나는 보석 전문상, 패트릭 펀스비를 기이하게 보았다.
분야가 달라서 친분은 없지만, 보석상으로서는 꽤 잔뼈가 있는 인물로, 성실함이 장점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늦다니.
흠, 아니다. 얼굴이 하얗고 손이 떨리는 걸 보니 꽤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
그래, 상인도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
‘자, 그러면.’
수완.
자금.
분위기.
전문성.
오랜만에 전장에 서니 감각이 쭈뼛쭈뼛 오르는 게 느껴진다.
공기로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수 싸움은 과연 그간 얼마나 편하게 지내고 있었는가를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었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복마전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독하게 지냈는데······ 어느새 안락한 삶에 적응한 나 자신이 반성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러면.”
내가 할 일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난 이럴 때마다 지었던 무표정한 눈빛으로 좌중을 쓸어 봤다.
그리고는.
“미리 통보하겠습니다. 카탈로그는 다들 확인하셨죠? 6번, 9번, 11번, 17번하고 18번, 20번부터 32번. 그리고 40번부터 46번까지. 이것들이 이번에 저희 애쉬필드에서 매입할 물건입니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고르시지요.”
“음······.”
“후.”
“······허허.”
“······무례하시군요.”
카스테어스가 말문을 잃고, 펀스비는 안도한다. 데스먼드는 그저 허허로이 웃음만 짓는 가운데, 셸먼에서 온 셀레나만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봤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죠?”
“어떤 자리라······ 거참.”
즉, 애송이란 뜻이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십니까?”
“뭐······ 라구요?”
“아니, 이런 자리 자체가 처음인 것 같군요. 후, 그 가문도 대체 무슨 생각인지······.”
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가볍게 그녀를 쏘아보았다. 순간 움찔하는 그녀.
“무례하다라······ 왜 이걸 무례하다 느끼시는지 모르겠군요. 이쪽은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고, 그쪽은 당연히 들어야 할 것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뭐, 뭐······.”
“애초에 왜, 저 두 분은 가만히 있었던 거 같습니까? 눈치가 없어서? 무례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멍청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내 목소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셸먼. 나머지 인원들은 그런 그녀를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애초에 저희는 이번 경매엔 그리 큰 흥미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칼라일 남작님과 엑시터 은행과의 친분에 대한 의리를 다한 거기도 하지요. 그런데, 거기에 목소리를 높이신다······ 어느 쪽이 더 무례한지 모르겠군.”
그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중요하고 의미 깊은 경매였다면 아무리 믿음직스러워도 밀러 씨가 나 혼자 보낼 리가 있을까? 그것도 명백하게 혹인 아들까지 붙여서?
우리에게 이번 일은, 말 그대로 상갓집에 와서 일종의 부의금을 내는 것과 다름없다는 거다.
겸사겸사 근처 사람들과 얼굴도 보고.
이것도 일종의 지방 커뮤니티라는 거지.
그러니 당연하게도 평소 칼라일 남작과 제일 친하게 지냈고, 근방에서 영향력도 강한 우리가 선점권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경거망동하다니······.
참, 셸먼 그 오늘내일하는 노인네, 유산이라도 제대로 남겨 주려면 인망이라도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할 텐데. 텄네, 텄어.
“오늘 일은 공식으로 서한을 보내도록 하지요.”
분위기밖에 없는 초짜 아줌마는······ 뭐, 밥이라도 맛있게 먹다 가시고.
“하인 주제에 건방지게······!”
그러자 나를 향해서 이빨을 들이미는 그녀. 이게 논리로 안 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그런 건가?
뭐, 그렇지. 하인도 맞고 건방진 것도 맞다. 그런데 말이다.
그럼 어쩔 건데? 당신이 지금 뭘 할 수 있지?
전에도 말했듯, 이 시기는 ‘느그 서장 남포동 살지?’가 먹히는 시대다. 아니, 먹히는 것을 넘어 때론 전부기도 하다.
그리고 목줄에 묶인 치와와가 아무리 짖는다고 해도 무서울 사람은 없다는 거다.
나는 그저 씨익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방금 말씀드린 물품들에 입찰해 보시면 됩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당연히 뒷말은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힘의 차이를 보여 주면 될 뿐.
그리고 최소한, 돈을 놀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만으로도 모든 내용을 이해했을 거다.
“······큭!”
다행히 셀리나 셸먼은 미숙할 뿐, 상인이긴 한 모양이다. 스스로의 기를 꺾고 고개를 푹 숙이는 걸 보니.
“하하하. 역시 자네는 거침이 없군.”
“뭐, 솔직한 성격이라.”
“정말이지, 밀러 씨가 부럽다니까. 한슬, 역시 자네······ 지난번 제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줄 수 없겠나?”
이야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대머리 아재, 크리스토퍼 카스테어스가 입맛을 다시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질색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전 아직 밀러 씨에게 은혜를 갚아야 하는지라.”
“하하하하! 좋아, 뜻대로 하게. 대신 내가 먼저 순번을 떼어 뒀다는 건 언제나 기억해 두고.”
“그건 뭐, 상관없지요.”
아마 내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일은 없을 테니까. 이뤄질 일 없는 약속이다.
그래도 나는 유들유들한 카스테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쨌든 저쪽과 친해 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러자 저쪽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그런 우리 사이로 디미트리어스 데스먼드가 콜록 하고 잠시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콜록, 크흠. 이야기가 끝났다면 슬슬 저녁을 먹어도 되겠나? 미안하네. 나이가 들었더니······.”
“얼마든지요.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나는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흠. 이태리 풍이라. 괜찮네.
“죄,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만 제 방으로 돌아가봐도 되겠습니까?”
“펀스비 씨, 괜찮으십니까?”
“아, 하하. 예. 제가 좀, 물이 좀 안 맞는지 속이 안 좋아서······.”
다만 펀스비는 뭐 하나 먹지를 못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저런, 불쌍하게. 맛도 괜찮은데.
실제로 나 뿐 아니라, 코난 도일과 식성 풍부한 10대인 몬티도 꽤 만족스럽게 식사한 듯했으니,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자, 그러면 두 번째겠군요. 저희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한슬. 혹시 괜찮으면 이따가 응접실로 와주겠나? 디미트리어스 영감님이랑, 카드 게임이나 한판 하고 싶은데.”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크흠. 그러면 나중에 보세나.”
마지막까지도 망신당했던 게 여전히 꽁한 건지, 셀리나 셸먼은 마지막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쪽을 이어받을 생각이라면, 이 커뮤니티에 빨리 들어와서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글렀네, 글렀어.
난 그런 생각을 하며 몬티와 코난 도일 선생님과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치는 사이.
“자네, 이쪽 일을 할 때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군.”
“어? 그랬나요?”
“응, 한슬. 뭔가 평소보다 더 날카롭고 무겁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을 보는 거 같았어. 기선 제압치곤 너무 셌던 거 아니야?”
뭐, 그거야 이쪽은 얕보이면 당하는 세상이니까.
아무튼 그건 그거고 무엇보다 몬티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오늘 있던 일, 그거 기선 제압 같은 게 아닙니다.”
“어? 그럼 뭔데?”
“그냥 현실을 알려준 거죠.”
“으······응?”
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몬티를 보면서 빙긋 웃어 보였다.
“도련님이 아직 이 업계에 대해 잘 모르셔서 그렇습니다만, 저 넷은 그리 큰 상회들은 아닙니다. 그나마 이 데번 주니까 저희랑 말이라도 붙여 볼 수 있는 거죠.”
밀러 씨가 워낙 평상시 소탈하고 사람 좋은 인상이라 그렇지, 기본적으로 ‘그’ 로스차일드와 교섭할 힘이 있는 사람이다.
오히려 이쪽에서 배려를 많이 해 준 거라는 거지.
게다가.
“저쪽은 오히려 큰 득을 본 겁니다.”
“응? 왜?”
“가장 큰손인 우리가 원하는 물건이 뭔지를 알았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저쪽으로선 엄청난 소득이죠.”
무작정 하는 갑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이쪽 고위층 일이라는 게 다 그렇다.
체급이 높을수록 부상을 더 조심하게 되는 법. 무턱대고 피 터지게 싸워 봤자 득을 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가능한 합의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요컨대 이쪽에서 말한 것은 일종의 답안지였다. 이쪽만 피하면 손해는 안 봐요~ 라는 그런 거지.
“되려 저들은 크게 안도하고 있을 겁니다. 저희가 이번에 선택한 것도 결국 인사치레나 할 정도인 일본 그림 몇 점. 제일 격전지가 될 귀금속이나 부동산 쪽엔 손을 대지 않겠다고 했으니까요.”
“음, 복잡해······.”
“급할 필요는 없어요. 몬티도 차차 알게 될 겁니다.”
원래 높으신 분들은 이리저리 돌려 말하길 좋아하니까.
그나저나, 셸먼 쪽은 어쩌다가 저런 며느리에게 홀라당 먹힌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아무튼 인상적이었네.”
묵묵하게 곁을 걷던 아서 코난 도일 역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생각보다 꽤 수완이 좋군. 나 역시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나 봤네만······ 이렇게 매끄럽게 판을 정리하는 건 처음 봤다네. 나름대로 참고가 되겠어.”
“과찬이십니다. 뭐, 이번엔 저쪽에서 보기 좋게 나왔으니까요. 아무튼.”
큼큼, 나는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땠느냐고, 저들 중 범인이 있는 거 같냐고.
그 말에 몬티가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떴으나, 아서 코난 도일은 고개를 가볍게 절레절레 흔들며 답하였다.
“역시 그것 때문에 일부러 도발해 준 거였군. 아쉽게도 아직까진 잘 모르겠네. 반응만 보면 혐의는 없어 보이더군.”
그는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했다.
“우선 셸먼. 그녀는 한눈에 봐도 혈기가 강한 라틴계고, 실제로 그러하더군. 자네가 건드니 확 하고 달아오르지 않나. 그런 사람이 체계적인 음모를 꾸미는 건 힘들지.”
“게다가 최근에 들어온 사람이고요. 아마 칼라일 남작이 누군지도 모를 겁니다.”
“맞아, 그리고 디미트리어스. 사실 그 노인은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걸 봤네. 직접 보니 더더욱 뭔가를 꾸밀 인물이 아니더군. 마치 다 타고 남은 잿더미 같은 노인이었네.”
“예, 음······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분이죠.”
“그나마 수상한 자라면 카스테어스인데, 신원도 확실하고 자네랑도 잘 아는 사이 같더군? 혹시 무슨 관계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별 건 아니고, 스카웃 제의를 좀 받았을 뿐입니다. 저보고 독립하고 나와서 동업을 하자더군요.”
“뭐?! 한슬, 나가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나는 어이를 잃고 몬티의 머리를 꽁, 하고 때려 주었다.
애초에 저 사람이 돈이 많긴 해도, 지금 내가 버는 금액도 만만치 않다.
조금씩 모아 놓은 명화 컬렉션까지 합하면 아마 내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굳이?
앞으로 잘 나갈 이무기의 여의주가 굳이 뱀의 꼬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컹!! 컹컹!! 컹!!
“흐, 흐어억!!”
그때였다. 창밖에서 웬, 천둥소리로 착각될 법한 갯과 특유의 우짖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뭐야, 양치기 개인가? 거, 밤에는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야지.
“······소리가 꽤 크게 울리는군.”
“안 그래도 분지인데, 바위산도 많으니까요.”
소리를 흡수할 만한 수풀이 없단 말이지. 소리가 꽤 크게 울린다.
우리 몬티 봐. 겁내면서 달라 붙잖냐.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달려온 것은 칼라일 남작가의 늙은 집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