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6)
런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은행의 지점장, 아서는 그날 집으로 온 소포를 들고 울적하게 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이미 그의 아내, 메이블이 짐을 다 싸 놓은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왔어요?”
“아, 부인······ 결국 가는구려.”
“이 사람도 참.”
메이블은 울먹이는 남편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금 누구 이혼해요? 그냥 먼저 귀국해서 친정 좀 가 있는 것뿐인데 왜 울어?”
“그치만, 오. 여보. 난 당신이랑 우리 애들하고 떨어지기 싫은걸.”
“그럼 수속을 빨리 끝냈어야지.”
메이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남편 아서를 꼭 껴안아 주었다. 대체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철없이 구는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며 포옹을 푼 그녀는 남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을 발견하고 물었다.
“웬 소포예요?”
“아, 존에게 온 거야.”
“존에게?”
메이블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아니, 무슨 세 살배기에게 소포가 다 온단 말인가. 그것도 본국에서.
그런 아내에게, 아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글쎄. 당신, 혹시 뭔가 존의 이름으로 응모라도 한 거 있어? 이거, [벤틀리와 아들> 출판사에서 온 거던데.”
“벤틀리와 아들? 혹시······.”
메이블은 손뼉을 치며 남편의 손에서 소포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상자를 뜯어 보았다.
그곳엔 예상대로, 그녀가 매번 아이들에게 읽혀 주는 소설 중 하나인, [피터 페리>의 최신간이 들어 있었다.
“아니, 이게 웬 거야?”
“그 왜, 몇 달 전에 존이 ‘앞으로 이 소설은 이러저러하게 될 거 같아요!’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잖아요? 그걸 존 이름으로 출판사에 편지로 써서 보냈거든요.”
“아아~”
그랬었나, 라고 아서가 감탄하는 사이. 방 안에서 부부의 맏아들, 존이 짜리몽땅한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아빠, 오셔써여?”
“오, 존! 우리 천재!”
아서는 껄껄 웃으면서 아들을 안아 올렸다.
대부분의 부모는 으레 자신의 자식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이 진짜로 천재라는 것을.
그게 아니라면 세 살도 안 되는 나이에 책에 흥미를 갖고, 끊임없이 탐독하며 심지어 그 앞 내용을 예측까지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메이블 역시 웃으면서 존에게 다가가 말했다.
“존, 네가 보고 싶어 하던 책이 왔구나.”
“피터 페리?!”
존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건 틀리지 않는다는 건지, 바로 정답을 맞히는 존.
지금 제 부모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며 신나 하는 그 모습에 아서와 메이블은 쓰게 웃으며 서로를 보며 말했다.
“책 한 권 정도는 읽어 주고 가도 되겠지?”
“물론이죠. 존이 이렇게 좋아하는데요.”
좋았어! 아서는 속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다.
다만 반대로, 메이블의 속은 좀 불안했다.
‘혹시 존이 실망하면 어쩌지.’
비록 시골 농가에서 나고 자랐지만, 메이블은 라틴어와 식물학을 전공한 지식인이었다. 괜히 먼 아프리카 남쪽 끝이지만, 젊은 나이에 은행 지점장이 된 아서의 아내가 된 것은 아니라는 말.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남편의 말대로, 존은 천재 기질이 있다.
특히, 이야기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존이 예측한 [피터 페리>의 스토리는 꽤 그럴싸했다. 세부적인 부분은 레퍼런스에 대한 이해가 없어 조금씩 다르지만, 큰 굴곡은 비슷했다.
하지만 과연 이번엔 어떨지······ 메이블은 그녀 역시도 깊은 기대를 하며 책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아.”
다르다. 아니, 큰 굴곡은 비슷했지만, 더 많은. 자잘한 변주가 들어가 알면서도 앞 스토리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비슷하지만 아닌, 이걸 대체 어떻게 전해야 하지?
“엄므아?”
“아, 존. 미안. 지금 읽어 줄게.”
메이블은 고심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예상과는 다르다고 해도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안 읽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그녀는 천천히 아들에게 [피터 페리> 제7권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스펙터클했다.
심지어 그 내용은 진행될수록 더욱더 깊어졌다.
그렇게 이어가던 목소리는 초창기부터 만나온 리스가 피터를 배신하고, 과거 물리쳤던 알비스가 나타나고, 스토리의 굴곡이 예상보다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자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난 것이다.
혹시 아이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에 실망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런 걱정을 안고 쳐다본 아이의 얼굴에는.
“우아아아······!”
오로지, 흥미만이 담겨 있었다.
이야기를 즐기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얼굴은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재밌니, 존?”
“응!!”
존의 그 청록색 눈빛은 한여름의 호수처럼, 한없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
그리고 평온하게 이야기를 즐긴 존의 가정과는 다르게······ 이 내용은 런던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활활.
“뭐, 뭐야 이게.”
“리스가······ 리스가 마왕이었다니!!”
“이건 말도 안 돼!!”
도서관의 실프인 리스.
비록 비중은 높지 않지만, 중요한 국면에서 해답을 주는 역할.
게다가 성격은 소심하지만 귀여운 언동으로 주역 3인방보단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인기를 자랑하는 조역 중 하나였고, 적극적인 성격의 윙키와 대변되는 마스코트로의 역할에도 충실했었다.
만약 실프가 성별이 없는 무성(無性)이란 설정이 없었다면, 그 역시 이루릴과 마브에 준하는 히로인으로 삼파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기 캐릭터가, 초반부터 피터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준비해 온 악역이었다니.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 등장해 버린 치명적 유해물의 롤러코스터 전개에 한슬리언 팬덤은 충격에 빠졌다.
이미 리스의 일러스트를 이용해서 수제 액세서리를 만들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던 상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수제’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대다수는 저작권을 무시한 불법 상품이었으니, 벤틀리 출판사나 한슬로 진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기에 더더욱 혼돈의 카오스였다.
다만, 그렇다고 모든 한슬리언들이 전부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헹, 그러니까 복선은 제대로 알아봤어야지.”
“암, 리스 고거 은근히 낄 때만 끼고 빠질 때는 쏙 빠지는 게 뭔가 음흉해 보였다니까!”
“그건 그렇고 알비스 재등장 실화냐?”
“외전 편에서 그렇게 쿨하고 시크하게 갱생한 이유가 있었어!”
리스가 인기가 있었던 것도 크게 회자 되는 안건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1권의 악역으로서 피터 페리의 라이벌이란 느낌을 팍팍 냈던 알비스의 재등장도 큰 화젯거리였다.
특히 잡지 연재되었던 외전 편에서, 인간 세계로 표류 되었다가 평범한 시골 처녀 노라와 풋풋한 대화를 통해 치유를 받고, 추격해 온 옛 부하를 태워죽이면서 참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의 서사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 캐릭터로서 10대 중후반의 학생들에게 급격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가 다시금 본편에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피터를 도와 요마왕 오베론을 토벌한다니······!
심지어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다시 드워프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다시 노라가 있는 마을을 향해 조용히 사라지는 그 모습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쉽게 말해 간지가 폭발했다.
동화로 피터 페리를 보기 시작했으나, 나이가 들며 비뚤어지고 반사회적인 것에 더욱 마음이 끌리게 된 10대 중후반이 빠져들기엔 딱 맞는 캐릭터였다.
“이, 이래서 애들은! 야! 니들이 순정을 아느냐!?”
“뭐래. 아재요, 그거 서긴 해요?”
자연스럽게 갈리는 파벌.
그러나 한슬리언 사이의 다툼은 길지 못했다.
리스의 배신, 알비스의 재등장.
이것도 충격적이었으나, 이 둘 모두를 묻어 버리는 이슈가 7권의 마지막에 있었기 때문이다.
─[피터 페리> 시리즈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에게. 다음 편으로 [피터 페리>는 완결하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피터 페리>가 완결이라니!”
아무리 [빈센트 빌리어스>나, [던브링어>가 있다 하더라도, 한슬리언의 근본은 [피터 페리>.
이대로 하늘이 무너지도록 둬야 하는가!
런던의 밤은 오늘도 길어만 간다.
***
자체 통조림을 끝낸 뒤.
나는 벤틀리 씨에게 원고를 넘긴 뒤, 벤틀리 출판사에 비치되어 있던 소파에서 꼬박 하루, 24시간을 죽은 듯이 잤다.
벤틀리 씨의 말에 의하면 내가 너무 곤히 잠들어서 처음엔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걱정되어 의사까지 부르려 했단다.
물론 이윽고 그저 잠이 들었을 뿐이란 걸 안 이후는 이불만 덮어 주었다지만.
아무튼, 그렇게 불편하게 잤기 때문일까? 온몸이 찌뿌둥하고 삐걱거리는 느낌이었다.
으윽······ 아직도 피로가 덜 풀렸네.
“끙, 죽겠다.”
예전에는 그래도 버틸 만했던 거 같은데······ 쉽지가 않다.
이래서 이런 짓은 나이 들면 하면 안 되는 건데······ 이래서 선배들이 글쟁이들은 틈나면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한 건가? 나도 좀 운동이 필요할 거 같다.
내려가면 밀러 씨가 조르는 대로 크리켓이나 같이 해 볼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웨스트엔드의 밀러 씨네 타운하우스에 도착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재데뷔하고 난 다음부턴 밀러 씨보다 내가 더 많이 쓰는 느낌이다.
밀러 씨도 혼자 올 때는 이곳을 쓰지만, 가족이 다 같이 올 때는 친가인 일링(Ealing)이나, 장모이신 메리 앤 베이머 여사가 있는 베이즈워터(Bayswater)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집이 서로 자매다 보니까 아예 한곳에 모이는 경우도 잦고.
그래서 지금 웨스트엔드 타운하우스에는 나만 있다.
음, 일단 옷 좀 갈아입고, 공중목욕탕에나 좀 가야지. 찝찝해서 버틸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여는 순간.
“오! 오셨는가? 꽤 늦었군.”
“에?”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것도 집 ‘안’에서.
뭐야, 이 사람?
나는 타운하우스 거실에 당당히 들어와 앉아 있는 젊은 남자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나이는······ 멋들어진 금색 수염 때문에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수염에 비해 푸른 눈동자 옆이나 콧대에는 별로 주름이 없거든.
아니, 그보다 지금 이거! 주거침입죄잖아! 어떻게 집 안에 있는 건데?
스, 스코틀랜드 야드 전화번호가······!
내가 그렇게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그 남자는 하하 웃으며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실례했소. 하지만 시간이 많이 늦었고, 마차를 너무 오래 밖에 세워 두는 건 주변인들에게 폐라 생각되어, 이리 염치 불구하고 들어왔소.”
아니, 밖에 오래 세워두는 것보다 가택 침입이 더 심한······.
“아니, 그래도······ 에, 누구시죠?”
“조지. 조지 프레드릭 어니스트 앨버트(George Frederick Ernest Albert).”
아니,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요 이 양반아.
나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다음으로 나오는 이야기에 졸음이 싹 날아가야 했다.
“할머님께서 봉하신 직위는 요크 공작이지.”
“······어.”
“내 아내가 그대를 너무 좋아하는지라, 남편으로 질투 나서 한번 만나러 와 봤소. 하하하. 이번에 연극에도 투자했으니, 이 정도 무례는 용서해 주시기 바라오?”
조지, 그러니까.
왕세손은 매력적인 눈으로 윙크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
아니, 형이 도대체 왜 여기서 나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