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9)
21세기에서 글을 썼을 적, 난 잠시 서울에서 살았었다.
뭐, 보통 그렇지 않겠어? 우리나라는 인구수의 반 이상이 수도권에 사는 나라니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기행문에서 ‘모든 한국인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 어느 계급일지라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단 몇 주라도 서울을 떠나 살기를 원치 않는다.’라는 구절을 생각한다면 예전부터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랬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좋아서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저 일 쏠림 현상과 가격 대비 효율적인 인프라를 생각하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는 그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흡수하고 성장하며, 약동하는 거겠지.
아무튼,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깡깡깡깡-!!
쿵-! 쿵-! 쿵-!
21세기의 서울에서나 느꼈던 그런 모습을 19세기 말 영국 런던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과과과과광─!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귀를 때림과 동시에 지반이 우르르 무너졌다.
사방으로 퍼지는 먼지구름. 무슨 발파 작업을 저렇게 막무가내로······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진짜 중요한 것은, 그리고 내가 21세기 서울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대규모 공사라니······.”
런던도 공사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종종 매몰한 가스관이 파열돼서 거리를 막고 도로를 엎는 일도 꽤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규모가 심상치 않았다.
주위보다 고지대에 위치한 거리였기에 그 과정이 한눈에 들어와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화이트채플(Whitechapel)이라 불리던 한 구역 전체가, 완전히 밀리는 중이다.
벽돌 벽이 무너지고, 새로운 자재들이 옮겨진다. 그리고 그 주변을 수많은 일용직 인부들이 셔츠에 먼지를 묻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정도면 거의 런던에 있는 모든 건설 조합이 다 나왔겠는데?
“아니, 이게 웬 재개발이야?”
그래, 수도권에서 느꼈던 재개발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이 말이다.
이 영국에서 수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경한 모습에 난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뭐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나름 정보는 잘 모으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충격이다.
어디 신문, 신문은 없나?
결국 나는 지나가는 신문팔이 소년 한 명을 붙잡아 [타임즈> 한 부를 구매했다.
그리고.
[버킹엄 궁전, 대대적인 화이트채플 재개발 계획 발표!> [기존 주민들에 대한 우선적인 주택 입주권 배부······.>“허어어어.”
나로선 놀라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버킹엄이라고 하면 빅토리아 여왕을 돌려서 말하는 걸 텐데, 빅토리아 여왕이 이런 대대적인 빈민 구제책을 강행했다고?
게다가 이렇게까지 빨랐다는 건 의회 허락을 얻지 않았다는 뜻이고, 의회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건 사비라는 뜻일 텐데. 그 보수주의로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이 사비를 털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정말 놀랄 노 자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확 바뀐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그리고 보면 슬슬 빅토리아 시기가 끝날 때가 되긴 했지.
‘아니, 근데 원 역사에서도 이런 화끈한 개편이 있던가?’
음······ 모르겠다.
기억엔 없는데 내가 모든 역사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혹시 여러 정책 중에 끼워서 진행했을지도 모르지.
갑작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별로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다.
“뭐, 그래. 필요하긴 했지.”
복잡한 구획과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인프라는 그 ‘런던’이라는 이름값치고 조악하긴 했지.
그나저나······ 내가 고민할 점은 다름이 아니라, 저 근처에 앨리스와 피터 재단이 운영하는 사업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겹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경계에 걸쳐 있었기에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아무래도 재정적이나 여러 가지 요인을 생각해서 가외로 잡았던 건데, 저렇게 되면 사실상 중심가가 되는 거잖아?
“와······ 설마 알박기라고 뭐라 하진 않겠지?”
아니 뭐, 나는 저쪽과 직접적인 연관이 될 건 없으니까, 뭔가 꼬투리 잡힐 건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준비는 해야 하려나?
돌아가면 라이오넬 쪽에 전화를 넣어 봐야겠다.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을 대표하는 해군 로열 네이비(Royal Navy)에는 보이지 않는 부대가 ‘공식적으론’ 존재하지 않는다.
그 부대에는 몇십에서 백여 명 정도, 분명히 인력은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해서는 해군의 그 누구도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수상쩍을 정도로 외무부의 누군가와 닮았거나, 수상쩍을 정도로 어느 공사관의 공무원들과 닮았거나, 수상쩍을 정도로 버킹엄 궁전에 자주 드나든다거나······.
그런 괴담이 돌고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튼 없다. 어쨌든 군적에 없으니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지 물어본다면, 부대 소속 레이스 대위(Captain Wraith)는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거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에 맞춰 돈은 많이 받고 있으니 별 불만 없다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왕 폐하. 송구하오나 이것은 정보부의 할 일이 아닌 줄 아뢰옵니다.”
“그것을 감히 네놈이 정하느냐?”
레이스 대위는 말로 설명하자면 수일에 걸칠 정도의 대장정을 거친 끝에 궁전 안으로 들인 책을 제 주인에게 바치며 생각했다.
이러려고 이 일을 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라고.
솔직히 밖에 나가서 몇 분이면 사 올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어마어마한 밀수와 첩보전, 그리고 희생(주로 수치심 관련으로)까지 감당하면서 입수해 온다는 것부터가 인력 낭비이며 세금의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런 내용을 존경하는 자신의 주인에게 일일이 말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바로 그녀였으니까.
결국 레이스 대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책 심부름을 시킨 여왕, 빅토리아는 뻔뻔하게 물어봤다.
마치 중요한 업무를 본다는 듯이.
“그 외에 짐이 알아야 할 정보는 없는고?”
“예, 폐하. 단지 자유당의 내분이 임계점에 이르렀사옵니다.”
“호오.”
빅토리아가 입술을 비틀었다.
본래 자유당은 대영 제국의 좌파를 대변하는 정당.
전설적인 서민 출신 총리,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이 그랬듯 번번이 ‘작은 영국’을 주장하며 빅토리아 자신의 행보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알아서 찢어져 준다니.
빅토리아 자신에게는 호재다.
“프림로즈(Archibald Philip Primrose)가 그 내분을 봉합할 수 있겠나?”
“무리옵니다.”
“그렇겠지. 그 샌님에겐 도저히 무리야.”
절대권력을 자랑하는 여왕의 입술이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글래드스턴조차 답이 없어서 사임했거늘, 하물며 그 애송이가 버틸 재간이 있을까.
“그러면 보자, 보수당에서는 누가 있었지? 솔즈베리 후작(Robert Gascoyne-Cecil)인가?”
“아무래도 그가 유력하옵니다.”
“흐으음.”
빅토리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개스코인세실.
글래드스턴과 쌍벽을 이룬 보수당의 거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스승 못지않은 명재상인 것은 분명했다.
이미 두어 번 총리를 지내보기도 했고, 능력도 입증했다. 비슷한 포지션인 프림로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재.
다만,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면이 있어 확장주의적인 빅토리아와 성향이 맞지 않았다.
‘그 점에선 차라리 프림로즈 쪽이 적극적인 게 코드가 맞았거늘.’
어째 이리 인복이 없을꼬.
빅토리아는 한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이 없다면 아무래도 솔즈베리 후작을 총리로 임명해야겠지만······.
─······대중을 사랑하는가?
─나고 자란 땅을 사랑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봅니다.
문득, 불쾌하지만 새겨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빅토리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대중을 위하고, 대중이 생육하고 번창하게 하려는 건, 결국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라.”
“폐하, 하명하셨사옵니까?”
“솔즈베리는······ 안 되겠다.”
레이스 대위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대체 무슨 일로 망설이시는가. 하지만 그는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시지요.”
그는 유령(Wraith).
그가 충성을 바친 여왕, 빅토리아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에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유령의 역할은, 여왕의 군림이 간접적인 통치에 이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되어 줄 뿐.
그렇기에, 여왕 폐하의 생각을 가늠하는 것은 그의 역할이 아니다.
“글래드스턴과 약속을 잡아야겠다.”
“알겠나이다.”
레이스 대위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여왕의 의사가 정해진 지금, 그가 할 일은 더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빅토리아는 슬며시 레이스가 구해 온 책을 내려다보았다.
[피터 페리와 찬란한 빛>.벌써 7번째 책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쓰게 웃으며 그 책의 표지를 쓰다듬었다.
‘흥, 계속해서 잘도 내는구만.’
성실하긴 하단 말이지.
그렇게 나직이 읊조린 그녀는 그때 만났던 그 황인종 청년을 떠올렸다.
과연 그 건방진 이방인은, 그녀가 저를 위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나 할까?
그가 말한 대로, 대중이 생육하고 번성한 제국의 미래를 확인해 보고 싶어 뻗고 있는 손에 대해서.
어찌 보면 이방인에 의해 그녀의 정책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이고, 이는 필히 유념해야 하는 일이었으나······.
그녀도 그사이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때문에 이젠 그자의 출신국이나 특징, 성향 등이 대충 짐작이 갔다.
거기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몽골리안 민족들의 국가와 지리를 비교한 보고서가 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칭키나 잽스에 비해서는 크고 잘 생겼다라······ 확실히, 그녀의 보고에 부합하긴 하군.’
게다가 대략적인 내용이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낙후된 중세 국가에 가깝다고 하니, 본디 우려하던 세작의 가능성은 전무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
원래도 크게 의심하진 않았지만 원래 위정자라는 인간이란 그런 법.
출신도 확실해졌겠다, 이제 안심하고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하여간, 말년에 언제까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건지.”
의회고 아들내미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해 주면 어디가 덧난단 말인가.
가벼운 투정을 부리며, 빅토리아는 천천히 책을 펼쳤다.
그래도 전에 한번 알아듣게 이야기해서 그런지, 최근 내용은 안심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내용들이긴 했다.
그런 약간의 기대를 안은 채 활자를 읽기도 잠시.
성실히 주인공의 뒤를 받쳐 주던 요정 리스의 배신.
엑스칼리버의 파괴.
그리고 적이었던 알비스와의 공투.
치명적일 정도로 유해한 롤러코스터 전개로 확확 지나가는 책 속의 피터 페리를 보며, 빅토리아 여왕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 망할 칭키를 여왕 암살 기도죄로 긴급 체포를 해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
사보이 극장.
“흠, 그러면 ‘피터 페리’역의 2차 오디션에 들어올 인원은 이 정도인가?”
“예, 이 정도도 최대한 알아본 거예요.”
끄응······ 리처드 도일리 카르테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주·조역의 배치는 끝났지만, 제일 중요한 주인공 역이 문제다.
사실 그라고 10대 소년을 10대가 맡아야 한다는 걸 왜 모를까.
하지만 오페레타의 특성상, 10대 역은 필연적으로 체력이 많이 필요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득음(得音)하는 경우가 많으니, 높은 목소리의 테너는 더더욱 그렇게 된다.
그래서 필요하면 때때로 남장까지 시켜서 20대 여성을 내보내기도 하는 게 바로 10대 남아 배역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카르테는 이번 오디션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아직 괜찮은 인재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수확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예를 들면 지금 보고 있는 이, 시드니란 소년만큼은 오디션에서 떨어지더라도 계약을 제안할 생각이었다.
아직 부족함은 많지만, 잘 갈고닦으면 극단의 간판스타로 키울 수도 있으리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주역을 정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막상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 그래서 단장님. 리스 역은 어떻게 할까요?”
“흠······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다. 그래, 결과는 어떻지?”
“망했어요.”
“아, 젠장.”
딱 잘라 말하는 아들의 말에, 리처드 도일리 카르테는 눈살을 찌푸렸다.
피터 페리 1권부터 등장해, 절대 뺄 수 없는 주요 조역 중 하나로 등장하는 도서관의 실프 리스.
등장 신은 적지만 임팩트는 확실하다. 잘만 연기하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배역이기에, 눈여겨본 아역을 동원할 생각이었으나······.
문제는 최근 전개에서 빌런임이 드러나면서, 아역들 사이에서 인기가 뚝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작가님도 참······ 우리에게라도 이걸 미리 알려 주셨어야지.”
“어쩌죠? 이대로라면 거의 짜고 치는 오디션이 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일단 온 애들만으로 뽑아보는 수밖에.”
“한 명뿐이잖아요.”
“제기랄.”
어쩔 수 없지.
정 안 되면 윙키 역 떨어진 애한테라도 맡기는 수밖에, 아니면 아예 각색하면서 리스를 자르고 윙키와 합치든가.
한슬로 진이 들었다면 브레스를 뿜을 망언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리처드 도일리 카르테는 깊은 한숨을 쉬며 딱 하나 들어온 리스 역의 오디션 신청서를 들여다보았다.
“찰리, 엄마가 술집 가수 출신이라.”
노래는 잘 부르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큰 기대 없이 대충 서류 더미를 던져 놓았다.
[ 실버 호스(2) >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