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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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나들이(2)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은 간단히 말하면 미래 여행 버전의 [맨 프롬 어스>라고 할 수 있다.
어느 과학자가 시간여행 장치를 발명했고.
그는 대충 서력 8천 세기, 40만 세기, 70만 세기쯤 되는 미래를 탐사하고 돌아온다.
너무 아득한 미래라서 아스트랄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맞다.
초창기라 가이드 라인이 없으니 SF 작가들도 지들 멋대로 미래를 설정했었다.
아무튼 그 미래에서 두 종류로 진화한 인류 사이에 휘말리거나, 무척추 생물들이 지배하는 지구에서 쫓기거나, 태양이 지구를 집어삼키기 직전의 별별 일을 겪고 온 시간 여행자는 서술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얘기해 준다.
하지만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고, 유일하게 서술자만이 더 듣고 싶다고 찾아갔지만, 결국 시간 여행자는 미래에서 가져온 꽃 한 송이만 남기고 영원히 사라진다는 이야기.
미래에서 이 책은 최초의 하드 SF 장르 소설로서, [백 투 더 퓨처>를 비롯해 수많은 SF 장르에 영향을 준 명작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선.
“지저분하군.”
밀러 씨가 단박에 말했다.
옆에 있던 벤틀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장이 정돈되지 못한 느낌이군. 팔기 위한 소설이라기보단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인상이 강하네. 중반부까지의 생존 경쟁과 후반부의 미래 구경에 연관성이 전혀 없다는 것도 불편하군. 읽은 뒤에 시간이 지나면 후반부는 쉬이 잊힐 거 같아.”
“초보 작가들에게 흔히 있는 일입니다. 설정도 엉성한 편이고 과학적으로 보이려 노력했지만, 서술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 설명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논문을 읽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군요.”
혹평 일색이네. 추천한 내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하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글 쓰는 것도 나름의 기술. 그 기술이 없는 신인들의 소설이라는 건 본디 미숙하고, 풋내 나고, 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참신하죠?”
“······크흠!”
“쿨럭.”
밀러 씨가 눈을 돌리고 벤틀리가 사레들린 듯 헛기침을 했다.
혹평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손에는 여전히 복사된 타임머신의 원고가 들려 있다는 게 그 증거다.
크크, 입으론 혹평이지만 몸은 솔직들 하시구만.
나야 미래에서 다져진 클리셰와 정형화된 판타지 작법이 있다. 하지만 웰스에겐 그런 게 일절 없지.
즉, 순수하게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만으로 ‘시간을 이동하는 기계’라는 창의력과 인류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조화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이 두 사람이 깊이 고찰할 만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시대에 ‘인류가 멸망하고 진화한 대체종이 지배하는 미래’라는, 과감하기 짝이 없는 설정의 참신함만은 인정해 줘야 하니까.
물론, 지금은 그 참신함을 지탱할 전문 지식이 어설프다는 단점도 명확하긴 했다.
사회 인식이나 자연선택 진화론이나, 전부 학문적으로든 문학적으로든 완전히 녹아 넣기엔 아직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학문이니까.
[종의 기원>이 겨우 30년 전에 발행됐었지, 아마?초판본이 밀러 씨 댁에 있는 걸 보고 정말 크게 놀랐다.
이런 걸 감안 해도 지나치게 거친 원고란 생각이 안 드는 건 또 아니긴 한데······ 그것도 아직 다듬지 않은 오리지널 그 자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본 건 번역판, 그 덕에 더 깔끔해졌을 수도 있다.
“뭐, 이 작가와 계약할지 어떨지는 출판사의 일이지만. 제가 보기엔 꽤 키워 볼 만하단 생각이 되네요.”
“아, 예. 작가님 말씀대로입니다. 덕분에 놓칠 뻔한 원석을 발견했군요. 안 그래도 저희가 이사하느라 여러모로 어수선했던지라.”
“만족하셨다면 다행이고요.”
나야 희귀한 원고를 발견해서 즐거웠다.
이제는 허버트 조지 웰즈의 역량 문제다. 뭐, 그건 내 걱정거리가 아니긴 하지.
어차피 미래엔 연달아 SF 대작을 내면서 성공하는 사람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대신에.
“뭐, 아무튼 혹시 등단시키시면 초판본이나 하나만 보내 주세요. 제가 보기엔 크게 클 수 있을 것 같아서.”
“하하하. 그렇게 기대 중이십니까?”
“이 정도 창의력이라면 어딜 가도 성공할 테니까요.”
유물 코인은 잘 빨아 둬야지.
잘 되면 내가 가질 초판본 가치도 오를 거고, 그러면······ 후후.
난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며 미소를 금치 못했다.
“그건 그렇고, 기념 파티는 모레라고 했지요?”
“아,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밀러 씨, 저희는 슬슬 숙소에 얼굴이라도 비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흠. 그렇군.”
이 순간까지도 밀러 씨는 [타임머신>에 빠져 있었다.
하긴 재미가 없는 책은 아니지. 밀러 씨 취향에도 그럭저럭 맞을 법했고.
“그러면 작가님,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찾아뵈면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파티 기대하고 있을게요.”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최고의 요리사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그게 걱정되는 건데······ 나와 밀러 씨는 출판사를 나오면서 그 생각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무슨 요리가 나올진 모르겠지만, 자네 요리보다 맛없으면 나도 웬만하면 티타임만 즐기고 가야겠군.”
오죽하면 밀러 씨도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다.
이 양반도 앵글로색슨이지만, 그래도 미국 출신이라 그런지 영국 요리는 아주 질색하더라고.
그렇게 영국 요리에 대한 불평을 하던 우리는 마차를 잡아탔고, 빠르게 웨스트엔드(Westend)로 건너갔다.
마차 창 너머로 서서히 서쪽으로 갈수록 눈에 띄는 건 역시 고급화다.
나무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고, 스모그에 찌든 느낌도 줄어든다.
첼시, 풀럼, 웨스트햄 같은 주로 프리미어리그로 유명한 지명들이 내 눈앞에서 표지판으로 지나간다.
깔끔한 거리는 색채 자체가 훨씬 화사하다.
방금까지 코를 찌르는 듯한 지린내도 한층 나아졌다. 구역마다 연극과 뮤지컬을 공연하는 극장이 문화적인 거리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차분히 가라앉았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
딱 봐도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를 잔뜩 만끽하고 있는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감탄하며 말했다.
“좋은 곳이네요.”
“그렇게 보이나? 내 취향은 토키 쪽의 아름다운 자연이 더 좋네만.”
그거야 밀러 씨가 타고난 금수저라서 그러신 거고요.
문명의 정점에 서 있던 금수저들이 역으로 이런 것들에 질려 향토적인 자연을 찾아가는 건 한국에서도 종종 있던 일.
꽤 벌었다고 생각했다만, 난 아직 이쪽이 더 좋은 걸 보면 부자 되기엔 멀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마차가 눈앞에 보이는 뾰족뾰족한 모양의 건물들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여길세, 내리게.”
“알겠습니다.”
밀러 씨가 가리킨 곳은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타운하우스(Townhouse)였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오밀조밀하게 자리를 채운 건물들의 모습이 마치 레고 블럭으로 쌓은 것 같다.
그 왜, 영화 보면 광장 옆의 주택가 11번지와 13번지 사이가 열리면서 12번지가 나오지 않는가?
딱 그런 인상이다. 훨씬 더 깔끔하고 고급져 보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데서 살면 길 잃기 좋겠네. 아니, 오히려 번호 덕에 찾기 쉬우려나?
“밀러 씨, 짐을 다 푼 다음에 잠시 돌아다녀 봐도 되겠습니까?”
“흠, 구경 다닐 생각인가?”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밀러 씨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나도 대충 무슨 일인지 알 만했다.
다시 말하지만, 여긴 19세기 영국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매지나 몬티도 아니고, 밀러 씨랑 항상 붙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다.
“전 괜찮습니다.”
“자네가 괜찮아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
“상대가 괜찮지 않다고 하면 제가 가만히 있을까요?”
밀러 씨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내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란 걸 떠올리신 모양이다.
애초에 그런 억까들한테 터질 정도로 약한 멘탈이면 작가 일 못 하지. 특히 한국에선 더더욱 그랬다.
나는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래 봬도 2년간 군 복무한 적이 있다고. 태권도 맛 한번 보면 정신을 못 차릴 겁니다.”
“아하. 그때 몬티에게 보여 주다 뒤로 넘어진 그것 말인가?”
“아니, 그땐 바닥이 미끄러워서······ 돌개차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하하, 알겠네. 알았어. 하지만 정말 조심하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런던에는 흉흉한 사건이 많았으니까.”
결국 밀러 씨는 멋들어진 상아 권총과 함께 내 외출을 허락해 줬다. 애도 아닌데 정말 과보호하신단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구경 나와본 런던 웨스트엔드의 풍광은 어떠했는가.
“150년 뒤랑 크게 다른 건 없나.”
물론 전광판 같은 게 없는 만큼, 덜 호화찬란하다는 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건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리 자체의 인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확실히 150년 전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만큼 런던이란 도시가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많은 것을 완성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내가 본 건 150년 동안 오래 묵어 늙어 버린 도시고, 지금 보고 있는 건 한창 완성되어 가고 있는 매력적인 문화도시다.
이러니 매력적일 수밖에 없지. 어쨌든, 도시란 건 살아 숨 쉬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웨스트엔드의 풍광을 관찰하며 천천히 발을 옮기던 어느 순간.
꼬르르륵─
“······배가 고프다.”
자연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생각해 보니 나서고 나서 뭘 먹질 못했다. 뭔가를 먹어야 할 텐데······.
적당히 먹을 만한 곳이 없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펍(pub)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일요일이던가.”
예전, 이라고 하면 이상하긴 한데, 하여간 런던 여행 왔을 때 그나마 먹을 만한 게 일요일 식사. 그러니까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였다.
잘 익은 로스트비프에 그레이비소스, 그리고 요크셔 푸딩을 듬뿍 얹은 일요일에만 하는 특별식.
좋아, 이번엔 그걸로 하자. 결심하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다소 허름한 문과는 다르게 안은 꽤 깔끔했다.
반듯하게 닦인 식탁과 의자들이 깔끔한 인상으로 정겨운 느낌을 주고 있었고, 은은한 고동색 벽에서 정석적인 펍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일요일 저녁. 가족들과의 식사 시간임에도 거의 한 자리밖에 안 남을 정도로 손님이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잘 나가는 집이다.
잘 찾았군.
“헬로.”
내가 들어오자 순식간에 시선이 이쪽으로 쏠린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펍은 패스트푸드점이다. 매대에서 주문하고, 음료를 받으면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각자 먹을 요리만 먹으면 그만.
그러니 다른 손님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난 아까 봐 둔 바의 끝, 구석 자리로 가서 앉았다.
“맥주 한 잔, 그리고 선데이 로스트 하나요.”
“만석이오.”
“예?”
뭔 소리야, 이게?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대머리 점주의 얼굴을 멍하니 보았다.
분명 그 정도로 붐비긴 하지만, 여기 이 자리가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들어온 건데 만석이라고?
뭐지? 이게 그 유명한 인종 차별인가? 네놈에게 먹일 먹이는 없다, 뭐 그런 거?
‘쏠까, 마스터?’
내 품 안의 권총이 속삭이던 그때였다.
“괜찮네, 짐. 합석을 하면 되니.”
어느새 내 옆에, 날카로운 눈빛 아래에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신사가 카운터 앞으로 걸어와 있었다.
합석? 내가 의아해하던 그때, 신사가 중절모를 까딱이며 말했다.
“미안하군, 보통 그 자리는 내 지정석이라 말이야. 짐이 괜히 마음을 써 준 모양이군.”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제가 합석하는 게 폐가 되지 않겠습니까?”
“원래는 가족끼리 오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서 나 혼자 오게 됐네. 손님이 많은데 자리를 비워 두는 것도 짐에게 미안한 일이지. 짐, 나는 언제나 주문했던 것과······ 여기는 뭐라고 했지?”
“아, 맥주랑 선데이 로스트입니다.”
“그렇게 해 주게.”
오오, 멋있다. 나는 신사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매너 철철 간지 신사잖아?
“대신, 조건이 있네.”
“예? 조건요?”
“뭐, 별건 아니고.”
그는 그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응시하며 말했다.
“자네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군. 멀리서 온 청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