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62)
─니 혹시, 미래를 알고 있는 거 아이가?
순간 머릿속에 그런 대사가 떠올랐다. 그만큼 정신이 아득해졌다는 소리다.
눈앞에 앉아 있는 건 분명 온화한 표정의 그녀인데, 일순 맨손으로 거대 재벌 왕국을 건설한 폭군의 그것처럼 보인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 이해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마치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를 볼 때와 같은 공포(terror).
혹시, 설마······ 어쩌면─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 철없는 아들 사업을 그렇게 끌어올렸겠어요?”
“아, 예. 어······ 그 얘기셨습니까.”
마담의 얼굴을 덮었던 음영이 걷힘과 동시에 나는 다시 19세기 런던으로 돌아왔다.
하긴, 내가 오기 전에 밀러 씨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진짜 중구난방이었으니까.
“고흐, 세잔, 뭉크······ 솔직히 제가 예술을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 작가들이 그렇게 성공할 거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죠.”
“원래 예술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성패(成敗)는 예술가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작품의 퀄리티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오직 결과만이 진실.
따라서, 손대는 것마다 승승장구하다 보니 미래를 먼저 보고 온 사람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아니, 실제로도 그게 맞고.
“그리고 당신의 소설도요. 참 혁신적이고도······ 이상할 정도로 강한 형식을 품은 글이었죠. 하나하나가 전부, 다른 형식이면서도.”
마치, 그것들이 성공한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듯─이란 말에, 나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마가렛 밀러 부인은 그런 날 보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겸손해할 것 없어요, 한슬.”
“음, 겸손해한다기보단······ 예, 뭐.”
대충 그런 거라고 해 두자.
그러고 보니 아서 코난 도일 선생님이 셜록 홈즈의 모티브를 대학 시절 은사에게서 얻었듯, 애거사 크리스티는 미스 마플의 모티브를 할머니에게서 얻었다고 했지.
“아무튼, 나는 조금 더 멀리 볼 줄 아는 사람에게······ 조금 더 큰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렸을 때 클라라를 내가 맡겠다고 한 거고.”
“그러셨군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 거기서 그쳤던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가 거기까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이쪽을 응시했다. 다시금 느끼는 기묘한 느낌.
“하지만, 당신은 다르잖아요? 그 벽이 안 보인다고 해야 할지, 무시한다고 해야 할지······. 참, 보다 보면 시원시원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았답니다.”
“크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나는 몰랐지만 아무래도 그런 게 있었나 보다.
하긴 이 시대, 여성과 소수민족의 권리라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난 그런 것 없이 당당히 다니긴 했지.
아니, 그래도 그런 미세한 차이를 느꼈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으신데요?
“그러니까, 부탁해요.”
밀러 부인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들에게, 지금과 변치 않게 대해 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그런 거라면 간단하죠. 난 바로 답하였다.
“말씀하시지 않아도, 제 기쁨이었습니다. 마담.”
“예, 그거면 충분하답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나의 손을 꼬옥 잡았다.
***
“어서 오시오, 오랜만이군.”
“기체후일향만강(Have you been healthy)하시옵니까. 여왕 폐하.”
그 인사에 빅토리아는 코웃음을 쳤다.
언제부터 이 감자코 원숭이가 그렇게 공손했다고 건강을 묻는단 말인가? 건방지게.
그래서, 그녀는 가볍게 쏘아붙였다.
“제자를 썩 못 길렀더구려. 글래드스턴 경(Lord).”
가장 위대한 평민(The great Commoner),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그런 그녀의 말에 자유당이 낳은 가장 위대했던 총리는 씁쓸히 웃으면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소인은 평민이니 경이라 불릴 수 없습니다, 여왕 폐하. 다만 제자의 부덕은 소인의 가르침이 부족한 탓이니, 드릴 말씀이 없군요.”
“결국 백작위를 거절할 요량이요?”
“이제 와 받는다고 몇 년이나 더 영광을 누리겠사옵니까? 다만, 바라건대 친구들과 같은 자리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사옵니다.”
말은 참 잘한다.
빅토리아는 쯧, 하고 애증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건방지고, 짜증 나는 인간이긴 하지만······ 디즈레일리가 죽은 지금, 그녀와 같은 영역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는 눈앞의 이 건방진 평민 하나 뿐이기도 했다.
“되었소. 그러면, 누가 총리가 될지는 알고 있겠지요?”
“솔즈베리 후작으로 내정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글래드스턴은 당연하다는 듯 그리 말했다.
본래 영국 의회의 지엄한 법률에 따르면, 총리는 설사 사임하더라도 여당 출신이 맡는 게 맞다.
하지만 법률의 위에 존재하는 지엄하신 여왕 폐하께서 지명하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게 설사 다른 당의 인물이라도 총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그의 덜 여문 제자, 프림로즈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왕의 내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본래 이 당시 자유당에는 윌리엄 하코트(William Harcourt), 헨리 캠벨배너먼(Henry Campbell-Bannerman)와 같은 더 노련하고 경력도 많은 지도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이 프림로즈의 ‘기수 파괴’에 가까운 총리 등극을 반대하였음에도 결국 그가 총리가 된 이유.
이는 결국 평민과 자유당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던 여왕께서 ‘그래도 귀족이니 좀 낫겠지’라는 심정 반, 자유당의 내분을 가속화시키려는 심정 반으로 강행한 결과였다.
그러니 이제는 완전히 보수당의 거두, 솔즈베리 백작을 임명하여 자유당의 숨통을 완전히 끊으려는 수순을 밟으실 터······.
글래드스턴은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쯧. 벌써부터 마음이 꺾인 겐가? 자유당엔 그렇게 사람이 없소?”
“······예?”
글래드스턴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께선 자유당에서 다음 총리가 될 인물을 천거하라는 뜻인가? 그 빅토리아 여왕이?
자유당을 벌레 보듯 보며, 틈만 나면 잡으려 하시던 지존께서?
의아하다는 눈빛을 받은 빅토리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눈빛을 창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내후년이었던가? 짐의 60주년(Diamond Jubilee) 말이오.”
“그, 그러하옵니다. 여왕 폐하.”
“바꿔 말하면, 짐의 나이도 벌써 일흔여섯이란 뜻이지.”
그녀가 왕위에 오른 게 18살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정말 오래되었다는 소리기도 했다.
게다가, 글래드스턴은 76세라는 나이를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5살 위의 선배이자 앙숙,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남자이자······ 여왕의 오른팔, 비컨즈필드 백작(The Earl of Beaconsfield) 디즈레일리가 죽은 나이가 딱 그 나이였으니까.
“그 이후는 에드워드의 치세겠지. 나로선 그 녀석이 도저히 내 뒤를 이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소.”
“걱정하지 마소서. 좋은 왕이 되실 것이옵니다. 왕세자 저하는.”
“흥, ‘좋은’ 왕이지. ‘훌륭한’ 왕이 아니잖소.”
빅토리아는 그렇게 푸념했다. 물론 글래드스턴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프림로즈 못잖게 경마와 사교, 라기보단 불륜에 미쳐 있는 에드워드 왕세자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왕위를 이으면 어머니와 같은 엄격, 근엄, 진지한 통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 공언하고 다녔다.
자유분방하고 사람 사귀기 좋아하는 성격답게, 외교에만 집중하고 내치는 의회에 맡길 것이라고.
덕분에 여야를 막론하고, 이에 찬동하는 의원들의 숫자도 꽤 됐다.
어쨌든, 빅토리아식 군림보다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게 그들 입장에서도 좋으니 말이다.
솔직히, 그들로선 그간 그녀의 치세 아래에서 밟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최선이었다.
빅토리아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국 그놈은 의회에 권력을 넘기겠지. 우표와 사냥만 좋아하는 손주 놈도 결국 그 뒤를 이을 거고.”
“실로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이후, 또 짐과 같은 자가 나온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때의 의회가, 과연 순순히 권력을 왕실에 돌려주려 하겠는가.
여왕은 그렇게 물었고 글래드스턴은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래, 아마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을 할 거요.”
노년이 되자 생겨난, 그녀의 새로운 걱정거리였다.
마침 그녀의 아들과 손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녀는 자신의 피를 잘 알고 있다. 분명 혈기를 주체 못 하는 녀석이 나올 거라고.
사실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게 그녀처럼 제국 위에 올바르게 군림한다면, 얼마든지 응원할 수 있다.
하지만, 욕심을 가졌되 무능한 인사라면?
그래, 마치 [빈센트 빌리어스>의 그레고리 빌리어스 같은 이라면 어떠할 것인가. 그녀가 만든 이 위세를 업고 휘두르기만을 바라는 놈이라면······.
“이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소?”
그 꼴만은 볼 수 없다.
그리 생각하며 빅토리아는 눈을 빛냈다.
그녀는 자신이 이룩한 제국을 사랑했다. 죽은 남편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렇기에 후손이 쓸데없이 권력을 다투다가 제국이 속으로 곪아 갈 것이라면······ 차라리 의회에 조금씩, 권력을 넘기는 게 나으리라.
‘······흥. 건방진 녀석.’
대중 문학가가 대중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게 의무, 라······.
그렇다면 제국의 군주는 제국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는 것이 의무일 테니.
대영 제국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명심하시오. 짐이 다음 총리를 자유당에서 임명한다 하여, 곧 있을 총선에서도 그대들이 여당이라는 보장은 없소.”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글래드스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프림로즈 이전에 자유당의 내홍은 이미 파국 상태다. 이것을 봉합하고 얼마 안 남은 총선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행히, 글래드스턴은 그것이 가능한 인재가 자유당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면, 현임 전쟁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ar)을 천거 드리옵니다.”
“직접 할 생각은 없는가?”
“폐하. 소신의 나이가 벌써 여든다섯이옵니다.”
“이런.”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이게 그,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다는 것일까.
“그래, 그렇다면 캠벨배너먼 경인가.”
그래도 기사 위엔 서임된 놈을 추천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제아무리 내려놓았다 해도 오랜 기간 생각해 왔던 그 근본만큼은 바꾸지 못했는지, 그녀는 순간 그리 여겼다.
***
“여보, 정말 이런 곳으로도 괜찮겠어?”
“어쩔 수 없지. 이런 곳이라도 런던 최고의 악기장(樂器匠)이라니까 말이야.”
‘이런 곳?’
런던 제일의 악기를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토트넘 코트 로드의 악기 전문가들은 울컥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아무리 음악의 종주국 독일에서 왔다곤 하지만, 그래도 뜬금없는 악기 개조를 요구하며 무리한 요청을 한 것은 저 부부가 아니던가.
─호른의 개조를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소? 아, 단순한 내추럴 호른(Natural Horn)이 아니오. 밸브 호른이지.
─뭐요? F조? 어디서 감히 그런 불경한······! 크흠, 큼. 내가 원하는 건 B♭호른이오! 그러면서도 훨씬 연주자들이 연주하기 쉽게, 밸브를 좀 더 달아서 음역대를 더 현란하지만 간단하게 변환할 수 있으면 좋겠군.
─허어어? 못해? 하여간 이래서 섬 원숭······ 크학!! 아, 알았소.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호른은 빼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다른 관현악기들부터 부탁드리오.
세상에, 도대체 세상천지 어디에 B♭관과 F관을 동시에 쓸 수 있는 호른이 있단 말인가.
마치 왼쪽을 보며 오른쪽을 보는 안경을 달란 말을 들은 기분이다.
그리고 그 재수 없는 독일인 부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파울리네 슈트라우스 역시 호텔로 돌아가며 푸념했다.
“역시 안 되겠어. 악기장들의 실력이 너무 떨어져. 다른 건 몰라도 호른만큼은 독일의 명장들에게 직접 의뢰해야 할 것 같아.”
“근데 자기, 그런 게 정말 가능해?”
“생각해 보니 오기 전에 얼핏 들었는데, 굼베르트(Edmund Gumpert) 씨가 비슷한 걸 개발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아. 그 사람한테 편지를 보내 보려고.”
없더라도 반드시 해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이 작품에 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약속한 날짜까지 얼마 남지 않는바······ 이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 극단주도 말하지 않던가? 그런 실력을 가진 자들을 구하긴 어렵다고.
물론, 이후 한슬로 작가님의 요청에 따라 어떻게든 찾아보겠다고는 했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사업가란 인간들이 원래 그러했기 때문이다.
분명 아무것도 안 하고는 순진한 작가님께 ‘아이고, 발에 땀 나도록 찾아봤습니다만 역시 무리였습니다요.’라면서 넘어가려 하겠지.
그도 독일에서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았다.
자본가라는 것들은 돈을 더 써야 한다고 하는 것에는 광적으로 반응하곤 했으니까.
‘후, 어쩔 수 없지.’
정 안 되면 잠깐 독일에 갔다 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두 사람이 발을 내딛던 그때였다.
“잠깐잠깐잠깐!! 당신들, 말을 들어 보니 독일인, 그것도 잘나가는 음악가들로 보이구려! 맞소?!”
“예, 예?”
“뭐, 뭐야 이 사람!”
웬 거지였다. 아니, 근데 얼굴은 좀 생겼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래 봐야 꽃 거지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아주 잠깐, 파울리네가 발을 멈출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 잠깐만에, 꽃 거지는 빠르게 말했다.
“보시오! 설마 나를 모르는가!? 이런, 사악한 영국의 사법부가 이 가여운 천재 시인을 핍박하고 있소! 마땅히 온 유럽에 이 예술에 대한 참혹한 핍박을 널리 알려주길 바라오!!”
“댁이 누군데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뭐?
슈트라우스 부부는 잠시 얼빠진 눈으로 자칭 오스카 와일드라 하는 거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경탄과 의구심 섞인 시선을 즐긴 남자는, 몸짓만은 아주 품위 있게 움직이며 말했다.
“나야말로 더블린이 낳은, 신께서도 찬탄하실 사상 최대의 천재 시인, 오스카 와일드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