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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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나들이(3)
“놀랍군. 조선이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세.”
“뭐,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으니까요.”
나는 요크셔 푸딩을 크게 한입 베어 물으며 그렇게 말했다.
차분한 듯 과묵해 보였던 신사는 의외로 호기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만큼 지식도 풍부했다.
“사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 정말 희한하게 생각됐네. 불쾌하게 들린다면 미안하네만, 비숍 여사의 책에서 본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하면 훨씬 크고 말쑥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거든.”
“아뇨, 뭐 그 정도야. 저희 조선인들은 일본이나 중국 싫어합니다. 영국인들이 독일인이나 프랑스인 싫어하는 것처럼요.”
“허, 그런가? 세상은 참으로 넓고 신비한데, 사람들의 삶은 다들 비슷하군.”
그래서 더 재밌는 거겠지만. 신사는 감자튀김을 소스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자네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지는군. 내 병원만 아니면 예전처럼 다시 배를 타고 싶을 정도야.”
“선원이셨습니까?”
“선의(船醫)였지. 포경선이라 북해 쪽만 오갔을 뿐이라 별로 재미는 없었어. 물론 나중엔 아프리카 쪽도 갔다 왔지만 말일세.”
신사는 생긴 것과 다르게 꽤 모험적인 사람이었고, 대화의 티키타카에도 능숙한 사람이었다.
서로 서로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대화라고 할까? 덕분에 식사와 대화를 동시에 하면서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도 썩 나쁘진 않은 경험이었네. 다른 것보다 월급이 안정적이었지. 개업을 하니까 원,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자영업자는 그게 제일 힘들죠. 당장 다음 달 수입이 보장이 안 되는 거. 저도 원래는 일이 안 풀리면 공무원이 될 생각을 했습니다.”
“공무원이라니, 그런 재미없는 일을 하려고 했나? 의사는 생각이 없었고?”
“제가 온 곳에서는 의사 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물론 이 시대 영국에서도 의사의 길은 굉장히 빡세다 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21세기 한국에 비하면 널찍한 8차선이지.
내 적성에 안 맞았던 것도 없잖아 있다. 난 생물이 정말 꽝이었던지라.
그런 이야기를 하자, 신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옆에 있던 신문을 보여 주며 말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의사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을 수도 있겠군.”
“이게 뭡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신문을 보았다.
어디 보자, 제목이······.
“연쇄 살인 의사 토마스 닐 크림(Thomas Neill Cream), 그는 정말로 ‘살인마 잭’이었나?”
살인마 잭? 이거 혹시 내가 아는 그 잭 더 리퍼 맞나? 그보다, 토마스 닐 크림?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야?
“살인마 잭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주워들은 건 있습니다. 힘없는 여자들만 골라 죽인 변태 살인마죠?”
“틀린 말은 아니군.”
뭐, 일단 우리 업계의 단골 소재 중 하나니까.
어디서는 2인조 사신과 의사 콤비로, 어디서는 좀비로, 어디서는 하얀 머리의 초등학교도 못 갈 여자아이로······ 이건 아닌가? 하여튼, 현대까지도 연쇄 살인마의 대명사로 유명하다.
“살인마 잭은 피해자들을 살해한 후, 외과 수술용 메스 같은 예리한 날붙이로 시신을 해부했던 것으로 유명하지. 그래서 스코틀랜드 야드에서는 의사, 혹은 그에 준하는 의학 지식이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추정했다네.”
“아하. 그래서 의사들이 모두 의심을 받은 거군요?”
“그렇다네. 나야 경찰과 안면이 있는지라 협조를 하고 금방 풀려날 수 있었지만, 다른 의사들은 어느 정도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지.”
그러면 확실히 의사가 아닌 쪽이 다행이네.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잭 더 리퍼 사건이 터질 때 런던은 고사하고 영국에도 없었긴 했지만, 어쨌든 갑자기 신원 불명의 의사가 나타났다면 확실히 경찰에서도 의심했을 테니까.
어찌 보면 내가 글쟁이여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면 이 토머스 닐 크림이란 인간이 잭이라고 자백했다면, 이미 처형된 것 아닙니까? 이제 사건 종결된 거 아닌가요?”
그러자 신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이 작자는 아냐. 물론 그에 못잖은 개새끼인 것은 맞네만.”
“어째서인가요?”
“연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범죄에 패턴이 있지. 살인마 잭의 범행도구는 칼. 하지만 이 작자는 비소였어. 게다가 잭의 범행 당시 알리바이가 확실해. 그는 아니었네.”
“흐으음.”
고런가.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잭 더 리퍼라고 해도, 그 유명세는 벨 에포크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지 딱히 지능적이거나 특별히 피해가 큰 건 아니다. 피해자도 5명밖에 안 되고.
따지고 보면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게 더 흉악하고 악랄한 개새끼들이지.
미래에서의 평가도 그냥 ‘영국 경찰이 무능해서 못 잡은 것일 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로 다시 등장했단 얘기도 없는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왠지 내게 잘해 준 양반이 이렇게 침울한 걸 보니 뭔가 도움은 주고 싶긴 한데······ 뭔가 없나?
가만, 그러고 보니 주말에 했던 교양 프로그램이나 추리소설의 법칙 중에 이런 비슷한 게 있던 거 같다.
난 기억의 편린을 뒤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꼭 메스를 쓴다고 해서 의학 지식이 풍부하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 생각해 보자.
어렴풋한 기억의 광산 속에서, 나는 다른 작가님이 이 사건을 소재로 쓰면서 고증했던 것을 떠올렸다.
“시체를 해부했다지만 솔직히 말해, 그걸 처음 판단했던 건 런던 경찰이죠?”
“그야 그렇지.”
“그러면 해부가 꼭 의학적 지식에 맞춰서 올바르게 한 건지, 아니면 아마추어가 대충 한 건지 경찰들이 제대로 알기 힘들지 않을까요? 발견한 현장은 꽤 훼손됐다고 들었고······.”
“흠!”
신사의 꺾여 있던 다리가 풀리고 서서히 몸이 이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을 최대한 찬찬히 풀어냈다.
“다만 칼은 자주 쓰는 사람이었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메스 같은 짧은 칼로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지. 사람은 의외로 쉽게 안 죽는 대형 생물이니까 말일세.”
“게다가 일부러 죽인 뒤 해체하고 늘어놓고 자기 범행을 까발렸죠. 이건 분명 누군가, 아! 그렇다고 특정인은 아니고, 그냥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 주려고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종.
자기 범행을 의도적으로 SNS로 올려서 욕을 먹으려 드는 존재. 타인을 화나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고 착각하는 머저리들.
잭 더 리퍼가 이런 놈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미래에서 프로파일링이 끝났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SNS가 없다.
이 말은, 군중들에게 욕을 실시간으로 먹더라도 자기가 바로바로 캐치하기 어렵단 뜻이다. 그렇다면, 그런 관종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 겁니다.”
그 군중들 사이로 직접 숨어든다.
그리고 숲속에 숨은 나무가 되어······ 다른 나무들이 욕하는 것을 직접 훔쳐 듣는다. 그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되니까.
요컨대, 종합해 보면.
“범행 장소 근처에 살던 사람. 칼을 잘 쓰는 사람. 다만 그게 의사는 아니고.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외로운 늑대(lone wolf). 그게 잭 더 리퍼라고 봅니다.”
“으음······!”
신사가 미간에 깊은 골을 새겼다. 뭔가 굉장히 진지하게 들으시는데······ 나는 남은 고기를 다 입에 털어놓고 말했다.
“아니 뭐······ 아마추어의 가벼운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그냥 흘려들어 주시면······.”
“으음, 아닐세. 자네가 지적한 점은 확실히 체크해 볼 가치가 있어.”
그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매만지더니 품속에서 작은 노트를 펼쳐 급하게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래, 그리고 혹시 다른 의견은 없나? 예를 들면 범인을 특징지을 방법이라든지 말이야.”
“예? 범인을요? 어······.”
그런 게 있으면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벌써 추리소설 썼지.
드라마나 영화화도 쉬운데 웹소설에선 영 트렌드가 아니라서 그냥 접었지만.
하지만 저 눈빛, 내 얼굴을 녹일 듯이 쏘아 대는 저 기대감 넘치는 눈빛이 자꾸 마음을 간질거렸다.
왠지 모른다고 하면 죄를 짓는 거 같은, 뭐라도 말해야 할 거 같은 기분.
“그, 보통 이런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좀 제정신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이미 다른 범죄를 저질러서 잡혀 있거나, 아니면 정신 병원 같은 데에 보내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래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
“······허!”
신사가 입을 크게 벌렸다.
음, 이렇게 심하게 놀라니까 좀 민망하긴 하네.
그는 이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갔다. 이거, 당분간 이야기를 못 하는 패턴이네.
난 느긋이 남은 에일을 비웠다.
그때였다.
띵~동 댕동~으로 시작하는 학교에서 너무 많이 들어 익숙했던 종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뭐지, 이거?
고개를 돌리자 빅벤 타워의 거대한 시계탑이 알려 주는 시간이······.
뭐?! 벌써 저녁 9시야!?
“큰일 났다!”
“무, 무슨 일인가? 자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약속이 있어 들어가 봐야 해서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이봐, 잠깐!!”
뒤에서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한 채 급하게 달렸다.
밀러 씨와의 약속을 생각하면 발 빠지게 달리는 것만이 내가 살 길이었으니까.
***
“허허. 참, 폭풍 같은 젊은이로군.”
혼자 남은 신사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다가온 펍의 점주가 말했다.
“선생,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말인가.”
“저런 동양인과 어울리는 모습이 보였다가는······.”
“그런 사소한 일에 왈가왈부할 자들이면 애초에 필요도 없네.”
그보다.
신사는 턱을 쓸며 방금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메스를 썼지만, 굳이 의사일 필요는 없다.
대중을 겁주고, 공포에 몰아넣고, 그것을 즐기는 비겁자.
그리고······ 어쩌면 이미 잡혔을 수도 있는 자.
“재밌는 이야기야.”
톡, 톡.
충분히 말이 된다. 오히려 왜 이제까지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니, 어쩌면 이미 용의선상에는 올라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데없이 다른 용의자가 자살해 버리는 바람에 수사가 중단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신사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런던의 범죄자들은 멍텅구리야. 사람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다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멍텅구리는 바로 나였군. 사람이 안개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면 범죄자 본인도 그 안개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어.”
그리고 그 안개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 놈이 있을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비합리적인 심리 또한, 틀림없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생,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짐. 아, 잠시만 기다리게.”
콧수염 신사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듯이, 하얗게 탈색되었던 뇌세포가 다시금 색을 되찾는 기분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품에서 손수건과 만년필을 꺼내 무언가를 휘갈겼다.
직후, 그것을 펍의 점주에게 건넸다.
“지금 즉시 이걸 들고 런던 경시청으로 가 주게. 가서 조지 경감을 찾아 이 손수건을 보여 줘. 나도 준비를 끝마치는 대로 곧장 따라가겠네.”
“뭐,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죠. 당장 다녀오겠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뜬금없는 지시임에도 불구하고 펍 점장은 점잖이 고개를 숙였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선생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