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77)
“이보게, 쟝! 오늘도 실패했나?”
“말도 마, 제기랄.”
몽마르트 언덕의 어느 카바레(Cabaret).
얼치기 예술가. 아니, 예술가 지망생 쟝은 언제나처럼 싸구려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욕설을 내뱉었다.
오로지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청운의 꿈을 품어 파리까지 왔지만, 그의 꿈이 무너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인상주의의 열풍이 잦아들고, 침체기에 접어든 미술계라지만 그래도 파리까지 이럴 줄이야······.
모든 미술계가 불경기에 접어들어, 오히려 있던 도제들마저 내보내는 판.
아무리 찾아봐도 그를 도제로 받아 줄 공방이나 아틀리에, 스튜디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직도 삼류 대학의 삼류 지망생일 뿐이었다.
“제기랄, 주인장! 여기 와인 한 병만 더요.”
쟝은 불콰해진 얼굴로 빈 와인병을 들어 흔들었다. 주인장은 그런 쟝에게 혀를 차며 말했다.
“괜찮겠나? 자네, 또 외상값 밀린 건 알지?”
“끄으으응······ 죄송해요.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카바레 주인장은 쟝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쟝은 그것이 전단지임을 눈치채고는, 술기운으로 흔들리는 시선을 다잡아 내용을 확인했다.
[······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 모집> [조건 없음, 성별 무관, 경력 무관> [영어 사용자 우대> [월급 제공>월급 제공?!
쟝은 눈을 크게 떴다. 도제에게 월급을 준다고? 회사의 사원처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제자로 들이는 조건은 널널한데 급여까지 준다고? 혹시 이 스튜디오 주인이 빨갱이라도 되는 건가?
그렇게 의심하며, 쟝은 맨 위의 스튜디오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알폰스 무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 모집>“허어.”
알폰스 무하, 명실공히 최근 파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화가였다.
비록 체코 출신, 슬라브 야만인이긴 하지만, 실력만은 사실이며 특유의 독특한 화풍은 순식간에 파리를 장악했다.
······물론 항간에서는 지나치게 세속적이지 않냐는 말도 있었지만, 최소한 그에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장 주머니가 비었는데 그게 중요한가?’
심지어 원래부터 그리 의뢰가 많은데도, 공방에서 인원을 뽑지 않기로 유명했던 곳.
그런데 이렇게 도제를 뽑는다고?
‘이건 기회다!’
쟝은 주인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나눈 뒤 기분 삼아 와인 하나를 더 달아 두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찾아갈 요량으로.
‘그나저나 과연 내가 뽑힐 수 있을까?’
약간의 불안을 와인으로 털어 넘기면서.
하지만 그런 그의 걱정은 기우가 되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선 다 따놨습니다!”
“다음, 채색으로 보내요!!”
“이쪽 살짝 삐져나왔습니다만······!”
“최대한 지우개로 지워 봐요!! 안 되면 나중에 붙여 넣으면 되고!”
이게 뭐지? 닭장?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당대 파리에서 제일 의뢰가 많은 곳답게, 무하의 스튜디오는 다른 곳에 비해 꽤 큰 편이었다.
집 안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방 3개짜리 아파트였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 공간은······ 굉장히, 굉장히 좁아 보였다.
여타 화방에서 보이는 이젤이 세워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한 책상 앞에 수많은 화가가 2열로 앉아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본 쟝은 무심코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장?’
정말 돈이 없을 때마다 가끔 찾아갔던 파리 인근의 경공업 공장.
사람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쓰였던 그 풍경이 강하게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가 정신을 못 차리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테이블 틈을 종횡무진 누비던, 어쩐지 낯이 익은 금발의 아름다운 처녀가 다가와 소리치듯 말했다.
“어서 와요! 새로 오시겠다고 하신 분이죠?”
“예, 예. 그렇습니다. 쟝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아델라 무하예요.”
무하. 예상은 했지만 아무래도 이 사람이 알폰소 무하의 여동생. 즉, 실질적인 매니저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그림에서 이런 이목구비의 여성을 여러 차례 본 기분이 들었다.
“일단 여쭤볼게요. 먹선은 그을 줄 알아요? 채색은? 혹시 배경도 가능한가요?”
“어, 네, 제가 이래 봬도 예술대학 졸업자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시켜만 주시지요.”
처음엔 생경한 환경에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자기는 이곳에 일하고 싶어서 오지 않았나.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잘못하면 돌아가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럴 수는 없지.’
쟝은 다소 긴장하면서도 자신 있게 어필했다.
보통 도제는 잡무부터 시작하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묻는 게 특이했지만, 그에게 그것까지 생각할 틈은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몇 번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색칠 정도는 하겠네요. 그래도 바로 넘어갈 수는 없으니, 우선 이쪽 작업부터 시작해 보죠. 받으세요.”
“예?”
아델라가 근처의 책상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내밀었고, 쟝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어벙하게 받아들었다.
“자, 이게 작품 공정의 예시니까, 똑같이 따라 하시면 됩니다. 옆에서 계속 넘어올 테니, 일단 이 3페이지만 채색해 주시면 돼요.”
“이건······.”
그곳에는 [일러스트레이션 공식 자료집>, [저자 : 알폰스 무하>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오빠. 아니, 선생님의 작업 자료집이에요. 이쪽에 익숙해지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게요.”
그 안에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와 함께 판화로 찍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앞쪽을 넘겨 보니, 자신에게 맡긴 흑백의 3페이지와는 다르게, 아르누보 특유의 화려한 채색이 가미된 페이지가 보였다.
난생 처음 보는 개념의 책자에 그는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책의 내용을 따라 읽고 있었다.
강렬한 색채. 그리고 섬세하게 조율된 선.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색의 배치를 조절하고, 음영을 고려해 얼굴 부분에는 살짝 짙은 황색을 쓰지만, 턱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려오며 하얗게 탈색되는 기법에 대한 설명.
‘당장 들어온 도제에게 이런 것까지 알려준다고?’
물론 본다고 바로 따라 할 수는 없었다.
대충 따라는 그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작품 특유의 팬 터치나, 퇴폐적으로 느껴지는 감성까지 담을 수는 없을 테니까.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기회라는 점은 확실했다.
심지어 지금 이 작업조차도 예시를 보면서 특유의 색 농담(濃淡)을 맞추는 연습이 될 정도였으니까.
보통 3년이 넘게 일해도 도제들에게 붓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단순히 돈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흡수하고 싶었다.
그리고 뒤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아델라 무하가 있었다.
***
내가 알폰스 무하에게 제안했던 건 다른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공장화’다.
이래저래 미래의 어시스턴트 시스템이라 볼 수 있지.
분업화해서 작가는 밑그림만 그리고, 펜선, 채색, 배경 같은 건 전부 어시들이 맡는 그거 말이다.
분업은 곧 인류의 대량 생산을 한 발짝 더 가속시켰고, 사실상 현대 인류의 생활 양식 변화를 초래했으니까.
마침 무하의 그림체는 각 부분이 선으로 확실하게 나눠 있었기에, 만화와도 닮은 부분이 많다.
문제라고 함은 거기에서 무하의 노하우가 유출되는 점이었는데······.
─상관없습니다.
─예? 정말 괜찮으신가요?
─예, 제가 뭘 대단한 무언가도 아니고······ 오히려 제가 만든 화풍이 더 많은 이들에게 퍼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요.
확실한 것은 무하가 특이한, 어찌 보면 정말 선한 성격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저도 좀 잘 수 있겠지요?
─······.
아니, 너무 일이 많아서 그런 것인가?
안 그래도 일에 치여서 살던 사람이고 차후 그래서 자신의 노하우가 담긴 서적을 발매했던 사람이었던 만큼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아이디어를 뽑아 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그의 컨셉 디자인을 담은 책인 [공식 자료집> 출간이었다.
간단한 부분은 판화를 사용한 뒤, 세세한 부분의 리터칭을 담고, 그것을 여러 직원을 통해서 일반 채색보다는 더 디테일한 채색을 선보이며 ‘전문 서적’다운 질을 확보한 것이다.
완전 대량 생산까진 아니라도 이 프리미엄이 꽤 히트했다.
최소한, 예술의 도시인 파리에서는 다른 이의 비기를 담은 ‘비급서’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을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으니까.
밀러 씨와 나의 출자를 합친 이 사업의 성공으로 무하는 미국 투어에 따라갈 틈을 만들 수 있었고, 나와의 계약은······.
“처음 뵙겠습니다······ 안나 무하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슬로 진입니다.”
“호와아······ 잘 부탁드려요오······.”
나는 묘하게 느긋해 보이는 알폰스 무하의 둘째 여동생, 안나 무하와 손을 잡았다.
오빠의 작품을 관리해 줄 사람으로, 여동생인 그녀가 전담으로 런던까지 따라와서 일을 담당해 주기로 한 것이다.
알폰스 무하가 평하길 ‘손이 빠르고 이해도가 높은 아이’라는 사람답게,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이렇게 새로운 노예······ 아니, 일러스트레이터님을 섭외했다.
이걸로 차후는 점점 넓히면서 ‘알폰스 무하 스튜디오의 영국 분점’까지 만들 수 있겠지.
당장은 소량 제작으로 시작할지 몰라도, 이대로 점차 스튜디오가 커지면 점점 더 그림이 쏟아져 나올 거다. 그럼 이게 진정한 팝아트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내 야욕의 첫 번째는 바로······.
“안나 무하 씨. 혹시 아트북 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아트북······ 이요? 설마 [피에르 페리스>요?!”
“네. 그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무하와 계약하려 한 원인이기도 하다.
비록 내가 금단의 비기인 휠체어 소환술까지 사용했지만, 아직도 [피터 페리>의 완결을 받아들이지 못한 팬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 입에 물려 줄 맛 좋은 떡, 그 첫 타자로 뽑은 것이 바로 아트북이었다.
“출판사에 가면 제가 예전에 넘겼던 설정자료집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맘에 드시는 거 아무거나 뽑아서 원하시는 만큼 디자인해 주시면 됩니다.”
“예, 예!! 물론이죠. 헤헤, 아트북, 아트북······! [피에르 페리스>의 설정 자료집······!”
침, 침 흘러요 이 사람아.
무하가 내 작품의 찐팬이라고 하긴 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줄은 몰랐네.
이렇게 안나 무하를 런던으로 보내고, 벤틀리 출판사를 통해 인수해 가라고 연락해 뒀다. 이제 벤틀리랑 안나가 알아서 하겠지.
흠, 뭔가 돌아간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일이 착착 진행되는 분위기라 아주 만족스럽구만.
그렇게, 다시 편안하게 프랑스 여행을 즐기려던 찰라.
“여기 진, 어, 진 하안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 네 접니다.”
“네, 런던에서 벤틀리 씨가 보낸 전보입니다.”
“런던이요?”
뭐지? 엄청 급한 일이 아니면 연락할 일이 없을 텐데, 나와 계약한 신규 노예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을 테고.
내가 그렇게 의아한 마음으로 전보를 펼치자, 출판사에서 받은 요청서를 첨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발신지는······ 놀랍게도 미국, 뉴욕.
그것도 그 유명한.
“······조폐국경찰대(USMP; United States Mint Police)?”
니들이 여기서 왜 나와?
[ 알폰스 무하(3) >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