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78)
잿빛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담쟁이 잎이 푸르다.
前 오스틴 제1국립은행의 은행원,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퀭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잘못되었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사기 아니었던가.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그 장밋빛 미래가 너무······ 달콤했다.
‘이건 정말 고객님에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 혼자서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고객님이 저희 은행에 보내 주신 신뢰를 조금이나마 갚고자 하는 마음에─.’
‘고객님과의 우정이야말로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보물이지요. 하하하.’
1차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겉으로만 그럴듯한 가짜 회사를 세우고.
2차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1차 투자자들에게 그대로 넘기고.
3차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절반을 2차 투자자에게 넘기고, 절반을 먹으면서······.
4차부터는 점점 많은 돈이 모이지만, 뒤로 빼돌리는 금액은 더 많아진다.
그렇게, 나만 빼고 모두가 상처받는 세계가 완성된다.
잘못됐다.
잘못이다.
불법이다.
그런 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뭐가 나쁜데······!”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거 아니던가? 저 부유한 강도귀족, 맨해튼과 디트로이트를 지배하는 강도왕들은 어디 도덕적으로 돈을 벌었던가?
부유하지 못했던 집안, 굶진 않겠지 싶어 택했던 약사의 길, 그런데도 굶어야 했던 생활.
정말 뭐든지 해 봤다.
지방악단에서 만돌린이나 기타를 치기도 했고, 지역 신문기자로도 일했고, 주간지에서 데뷔도 해 봤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전부 실패했다.
그러나, 제일 큰 실패는.
‘제레미.’
제레미 포터.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야 했던 그의 작고 여린 아들.
다행히 둘째 딸, 마가렛 포터는 살아남았다. 바꿔 말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야 했다.
그래서 범죄를 저질렀다. 아들을 잃었는데 딸마저 잃을 수는 없었으니까.
딸마저 자신의 가난을 대물림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국으로 보내, 귀족가의 여주인으로서 배불리 먹고살게 해 주고 싶다.
그래서, 그 영국인 상사의 손을 잡았을 뿐인데······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모인 돈을 갖고, 핑커톤을 통해 해외로 도피하기만 했다면! 그랬다면, 아내 애설(Athol)도 딸 마가렛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거기서!!’
─손 들어! 너희를 사기 혐의로 체포한다!
─너희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조폐국경찰대. 그들이 샷건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영국으로 튀려는 그 순간, 마치 대기하기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조폐국 경찰대가 그와 영국인 상사, 그리고 그 외 높고 낮은 이들을 전부 잡아간 것이다.
그는 개머리판으로 맞아서 얼얼한 뒷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푸욱 숙였다.
이젠, 끝났다.
윌리엄은 알고 있었다. 그가 사기 친 인물 중에는 텍사스는 물론, 근처의 주에서도 거부라 불릴 만한 이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에게서 거둬들인 금액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돈을 해외로 갖고 날랐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했으니 그 금액은 그대로 그의 형량으로 돌아오리라.
아마, 아내도 딸도 다신 만나지 못하겠지.
어쩌면 사형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그런 건 너무.
툭!
그러던 그의 앞에 종이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올려 보았다. 거기엔 아까부터 우적우적 도넛을 먹고 있던 경찰관이 있었다.
“거, 사람 밥 먹는데, 기분 나쁘게 질질 짜지 말고 이거라도 보고 있으쇼.”
그가 던진 것은 잡지, [템플 바>였다. 윌리엄은 무의식적으로 익숙하게 손을 뻗었다. 그도 그럴게.
‘빈센트 빌리어스.’
그가 이렇게 된 계기를 제공했던 바로 그 [빈센트 빌리어스>가 연재되는 잡지.
매달마다 눈에 불을 켜고 본 책이기도 했다.
“그래, 그래도 보긴 하나 보구만. 괜히 훌쩍이며 궁상떨지 말고 책이나 읽으며 조용히 있으슈.”
‘이제 와서 무슨······.’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용히 책장을 넘겼다. 간수의 허리통만 한 근육에 위압되었다든지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곧.
“으으······.”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Cum dilectione hominum et odio vitiorum.)지. 이해한다. 나도 이해는 안됐어.
─하지만, 더러운 돈을 찾아서…… 카리브 해 밑바닥에 가보니 이해가 되더군.
─하나님께선, 언제나 두번째 회개의 기회를 주시더군.
“흡······ 흐흑······.”
그의 눈망울에서 굵은 물방울이 잎새처럼 떨어졌다.
그래, 빈센트도 카리브 해 밑바닥에서 돌아와 다시 한번 일어선 사람 아닌가. 머리에 든 것만 그대로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설사 금융인으로선 다시 설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다. 그리고, 편지를 써서 보낼 수도 있겠지.
글을 쓰자.
아내와 딸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뭐라도 못하겠는가. 그런 마음에 윌리엄은 계속 잎새 같은 눈물을 흘려댔다.
“허, 조용히 있으라 했는데······.”
간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어 댔다.
***
파리, 주프랑스 미국 대사관.
“······그렇게 된 겁니다. 밀러 씨.”
“흐음. 그렇습니까.”
밀러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의 나에게 눈빛을 보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흥분함을 감추었다.
지금 여긴 나와 밀러 씨만이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주 프랑스 미국 대사, 제임스 비들 유스티스(James Biddle Eustis).
주 프랑스 영국 대사, 제1대 더퍼린 후작(Marquess of Dufferin).
여기에, 병으로 쓰러진 인기 작가 한슬로 진이 요양 온 프랑스에서 그 대리를 맡고 계신 우리의 프레데릭 알바 밀러 씨까지.
이 셋이 모여서 현재 미국을 강타한 폰지 사기에 대한 내용이 오가고 있는 자리였다.
“일단,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미리 문제의······ 음, [폼페이 레포트(Pompeii Report)>를 뉴욕 증권거래소에 보내 줬던 덕에, 저희 미국에서도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이렇다.
사실 증권거래소끼리는 결국 손잡고 사이좋게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니까.
런던 증권거래소 윗선에서는 내 자료─ 속칭 [폼페이 레포트>를 홍콩, 뉴욕의 증권거래소에서도 미리 보내뒀고, 그 덕에 폰지 사기를 알아보는 방법과 적절한 대처법을 미리 알아 뒀다는 거 같다.
근데 왜 이름이 폼페이 레포트냐. 하룻밤만에 망해 버리게 만드는 사기라서 그런가? 흠, 나름 괜찮네.
“그래서, 범죄자들은 다 잡은 상황입니까?”
“예.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근무했던 문제의 영국 국적의 범죄자 또한, 조폐국 경찰대가 체포해 둔 상황입니다.”
“으음. 영국인으로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군요. 개인으로서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닙니다. 이 일을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영국인이신 작가님의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저희로선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거참, 그 장본인이 눈앞에서 있거든요······ 영국인도 아니고. 하지만 대놓고 금칠하고 있기에 난 나도 모르게 하하, 하며 마른 웃음을 흘렸다.
하긴, 요양 중인 작가가 여기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아무튼 분위기는 꽤나 화기애애했다. 물론 주미 영국 대사관이나 주영 미국 대사관 쪽에서는 지금쯤 전보기가 활활 타오를지 모르겠으나, 여긴 프랑스니까.
아무래도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참······ 대단한 작가님이시군요. 대체 어떻게 일개 소설작가가 그런 혜안을······!”
“허허,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추리소설의 종주국이 된 우리 대영 제국의 문학계에 그런 밝은 별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이지요.”
“하하하! 이것 참, 에드거 앨런 포의 나라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아니, 난 토종 한국인이라고.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신 불지옥 반도에서 떠난 적이 없는 순혈 태생이라 이 말이야! 그런데, 님들이 왜 그리 자존심을 세우는 건데?
나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밀러 씨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내 스피커 역에 충실하게 한 번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크흠. 유스티스 대사님. 그러면 혹시 이, 조폐국 경찰대의 요청서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제야 눈싸움을 마친 대사가 이쪽을 바라봤다.
“아, 예. 저도 본국에 전화를 걸어 보고 안 겁니다만, 경찰대에서도 해당 레포트를 보고 실행화 한 범죄자가 문제일 뿐, 딱히 한슬로 진 작가님께 책임을 씌울 생각은 없습니다.”
“음, 그야 당연히 그래야죠.”
“예. 다만 출판사나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추가적인 정보가 있을지 모르니, 혹시 있다면 참조 자료로 얻고 싶다는 뜻이죠.”
“과연, 그런 느낌이라면 이 내용도 납득입니다. 하하, 안 그래도 다망하신 우리 작가님께서 이런 일로 신경 쓰면 큰일 아니겠습니까? 지난번 [피터 페리> 소동 때도 큰 곤욕을 치르셨는데 말이지요.”
“하하, 그렇지요. 안 그래도 저도 그 소식을 듣고 참 안타깝지 뭡니까. 우리 대영제국의 큰 별을 잃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 일은 제가 잘 이야기를 전해서 꼭 작가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나저나.
“아, 그리고 보니 여기 참조인으로 써 있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라는 사람은······.”
내 물음에 대사는 네가 뭔데 여기 껴? 하는 듯한 의아한 눈빛을 보내더니 밀러 씨의 눈짓에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음. 원래는 그냥 은행원이었던 자였다고 합니다. 뭐, 이번 사건에서 고객들을 모집했던 실행책 격인 사람으로 현재는 유치장에 가둬 두고 있습니다. 대충 들어 보니 왠지 크게 반성하고 있고 뒤처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모양이라, 사법거래(plea bargain)로 형량이 좀 줄어들 거 같다더군요.”
덕분에 처리가 빨라졌답니다.
그는 그리 너스레를 떨면서 찻잔을 입에 댔다.
흠. 그런가.
뭐, 내가 신경쓸만한 일은 아니겠지. 주워먹는 것도 재능의 편린이나마 보였을 때 하는 거니까.
여튼 덕분에 사건이 크게 퍼지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와중.
“아무튼, 그래서 아직 확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밀러 씨, 혹시 뉴욕으로 연락을 넣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뉴욕 말씀이십니까?”
“예. 웬일로 그 ‘모건’이 만나서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예?!”
모건이라니.
그 금융왕 모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