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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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하우스(1)
“후아아암.”
“핸슬 자네, 입 찢어지겠군.”
다음 날 아침에 늦게 일어난 나를 보고, 식사를 하고 있던 밀러 씨가 타박했다.
으음, 분하다······ 원래는 반대여야 맞는데.
저 양반, 원래는 자기 혼자 일어나기도 힘들어서 맨날 나한테 자기 옷 찾아 달라고 한단 말이야.
게다가 내가 늦게 일어나고 싶어서 늦게 일어난 것도 아니다. 나는 억울함을 담아 항변했다.
“런던 밤거리가 그렇게 빨리 어두워질 줄은 몰랐죠.”
“그러니까 늦지 않게 오라고 하지 않았나. 나 혼자 내버려 두고 놀러 가니 그리 좋던가?”
아니, 왜 혼자야 혼자는!
나는 서운하다는 눈으로 날 책망하는 밀러 씨에게 역으로 어이 상실의 시선을 되돌려 주었다. 이 타운하우스에도 엄연히 고용된 가정부가 있는데 말이지.
“여하튼 빨리 채비하게. 지금 가야 간신히 맞출 수 있겠군.”
“알겠습니다.”
옷방으로 들어가, 적당히 정장 차림으로 갈아입으려는 내 눈에 아침에 배달된 오늘 자 신문의 헤드라인이 보였다.
흠, 보자. ‘폴란드 출신 미용사 애런 코즈민스키(Aaron Kosminski), 화이트채플 연쇄살인 혐의로 정신병동에서 체포’라······.
“어휴, 세상 참 흉흉하기도 해라.”
뭐, 체포됐다니까 좋은 일이겠지.
당장 나랑 관련된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적당히 신경 껐다.
오늘의 일정은 크리스티즈 옥션 하우스(Christie’s Auction House).
올해의 대목인 미술품 경매가 펼쳐질 전쟁터였다.
***
세인트 제임스, 킹 스트리트(King Street) 크리스티즈 옥션 하우스.
현재까지도 유명한 크리스티즈 경매장의 본사다.
소더비? 걔넨 지금쯤은 그냥 중고 서점 매장이다. 알X딘의 원조라고나 할까.
“그래, 핸슬. 이번에 우리가 구해야 할 게······ 세잔이랑, 뭐였지?”
“예, 밀러 씨. 뭉크입니다.”
“아, 그랬지. 그 노르웨이 화가, 근데 난 그 화가 그림은 영 아닌 것 같던데? 무슨 그림이 그리 우중충하고 우울한지. 보다 보면 정신병 걸릴 것 같단 말일세.”
거 팩트로 때리시기 있나요? 나는 밀러 씨의 칭얼거림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저 약팔이처럼 믿으라고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절규> 같은 거 보라고. 왜 떴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칙칙하고 기괴하잖아?
최소한 회화(繪畵) 예술적 뭔가가 없는 범인(凡人)인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렇지만 어쨌든 뜬다는 건 확실하다.
솔직히 세잔은 몰라도 뭉크는 아는 사람 많잖아? 그러니 나는 그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절 믿어 주십쇼. 확실하게 뜹니다.”
“그, 자네니까 믿긴 하네만······ 내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최소한 그럴듯한 근거가 필요하단 말일세.”
“그것이 어떤 뜻인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지 못하네요.”
죄송함다, 밀러 씨. 근데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이거밖에 없슴다.
사실 원래 글도 그렇긴 하지만, 그림 쪽은 찐으로 운칠기삼이다.
좋은 게 반드시 인정받는다곤 할 수 없는 동네란 말이지. 가끔은 주식보다 더한 게 이쪽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당첨을 뽑을 작가가 누구인지, 미래에서 온 입장에서 슬쩍 알려 줄 뿐이다.
겸사겸사 콩고물도 좀 받아먹고. 헤헤.
그렇게 내가 밀러 씨의 책망하는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는 사이, 잘 차려입은 귀족들이 밀러 씨를 알아보고는 하나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밀러 씨! 오랜만에 뵙는구려.”
“캐도건 경이 아니십니까. 그간 격조했습니다.”
“이런, 데번 주에서 영국의 미술 업계를 좌지우지하시는 큰손이 아니시오. 하하, 오늘은 좀 살살 부탁하네.”
“페르디난드 씨가 그렇게 말하면 제가 뭐가 됩니까. 너무 놀리지 마시죠.”
반짝반짝들 하는구먼.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상류층 인사들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았다.
21세기에도 그렇긴 하지만 이런 미술품 경매는 진짜로 그림을 사고파는 것만이 아니라, 초고위층 재력가들이 안면을 익히고 인맥을 쌓는 사교장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도 그렇다. 캐도건 경은 영국 백작위를 가진 상원 의원이고, 페르디난드는 로스차일드 가문 사람이다.
금융 관련 음모론에선 모건조차 쌈 싸 먹는 ‘그’ 로스차일드 맞다.
얼굴 좀 봐, 착해 보이는 얼굴에서 귀티가 좔좔 흐르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쳇, 식민지 출신 지역 유지 나부랭이 주제에.”
“어쩔 수 없지. 요즘 저 인간이 제일 크게 땄으니.”
“벼락부자 같으니라고.”
그리고 그렇게 최상위권 그룹이 형성되면, 항상 거기 버금가는 은딱들이 열심히 모여 최상위권의 뒷담화를 깐다.
이번 표적은 당연히 밀러 씨다. 미국 출신인데다가 런던에도 자주 안 오니까. 사교계에서 보기엔 약점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뭐, 나쁜 건 아니지. 원래 잘 나가는 작품에는 악플이 달릴 수밖에 없듯, 이런 공격들은 반대로 말하면 현재 밀러 씨의 사업이 잘 번창하고 있다는 증거다.
맛있는 음식에 똥파리가 몰리는 것과 비슷하지.
물론.
“커흠.”
“······쳇!”
“뭐야, 저 원숭이는 뭔데······.”
“됐어, 나오게.”
그렇다고 눈앞에서 윙윙거리는 걸 그냥 냅두는 것도 뭐하지. 적절히 치워 줘야 덜 불쾌하다.
나는 그 원숭이 헛기침 한 번에 도망치시는 똥파리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공격하는 본인도 아니고, 그 사용인이 엿듣는 것도 두려워하면서 뭘 그리 잘났다고.
그렇게 코웃음을 치는 내게 누군가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여전히 충신이시구먼, 바나나.”
“넌 여전히 발 닦개냐? 쥬.”
이놈의 이름은 새뮤얼 코헨. 성과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유대인이고. 저기 저 로스차일드 쪽 하인이다.
본디 사람이란 세 명만 넘으면 그룹이 만들어지는 법.
최상위권 부자들끼리 안면이 있는 것처럼, 그 부자들을 직속으로 따라다니는 수행원, 하인, 비서들 간에도 은근히 안면 트고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감집 머슴들끼리의 커뮤니티랄까, 악우······ 라고 보긴 좀 그렇고 대기업 과장급끼리 명함 주고받는 거랑 비슷하다고 봐야지.
특히 로스차일드 쪽은 이쪽과 마찬가지로 차별받는 유대인이다 보니, 미국인인 밀러 씨나 동양인인 나한테도 별 부담감 없이 다가왔다.
물론, 그런 만큼 별 부담감 없이 배신할 수도 있는 놈들이니 더 조심해야겠지만.
“그건 그렇고, 웬일이냐? 너희, 영국 안에서 해결되는 일이면 그냥 대리인 보내서 해결했잖아?”
“왕세손 결혼식이 있다며, 그 정도는 봐야지.”
“공화국 놈들이 무슨 헛소리야? 차 상자마냥 바다에 내다 버리는 거 아니지?”
“그건 앵글로색슨 부르주아 놈들이고, 난 아시안이야 병신아.”
“어허, 이 부르주아 욕하는 빨갱이 보소.”
“유대놈이 아시안은 빨갱이래요 같은 소리를 하면 퍽이나 믿어 주겠다.”
아, 맘 편하다. 역시 대화에는 살짝 걸쭉한 욕설이 섞여 있어야 속이 좀 풀린단 말이지. 품위 있는 신사들과의 대화도 좋지만······ 그건 뭔가, 비즈니스적인 느낌이 들잖아?
“그래, 그 집 애들은 잘 크냐?”
“망아지마냥 무럭무럭 크고 있지. 잠깐, 사진 보여 줄까?”
“됐고, 그러면 나중에 선물 갈 테니까 잘 받기나 해라.”
“웬 선물? 로스차일드 쪽에서 오는 거냐?”
“당연하지.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선물을 보내냐. 암튼 그, 뭐더라? 피터 페리였던가······.”
“쿨럭.”
아니, 그게 여기서 왜 나와?
내가 당황해하는 것도 눈치 못 챈 이 눈새 유대놈은 태연하게 말했다.
“거, 뭐더라. 작가 이름이 너랑 비슷하더라. 그래서 신기해서 내가 추천했지.”
“됐어. 필요 없다.”
“왜. 혹시 너희 집에도 이미 하나 있냐?”
“비슷해.”
나는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사실 토키의 밀러 씨네 집 하인들은 다들 내가 피터 페리의 작가인 것을 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쯤 가족들이니까 그런 거고, 그 밖에는 웬만하면 모르는 게 낫지.
단순히 인종 차별, 뭐 그런 거는 아니고······ 그냥 내가 쪽팔려.
샘 같은 악우 놈들이 내 앞에서 내 책을 음독한다? 난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그보다 니네는 뭐 소식 없냐? 너희 영감님, 상처(喪妻)한 지 30년째라며.”
“몰라. 여동생 물려주겠다더라.”
“그러니까 현관 합체 소문이 돌지. 그 앨리스인가 하는 로스차일드 아줌마도 미혼이라며?”
“귀족들 취향이지 뭐. 하여간, 그래서 성욕 대신 수집욕은 채우겠다고 이번에도 ‘술병’ 셋은 확보하겠다더라.”
하, 이놈. 벌써부터 비즈니스 얘기를 하자고 하네.
나는 입맛을 다시면서 물었다.
“이번에도 ‘옛 친구’가 팔아넘겼다던 것들이냐?”
“아마도. 너흰 뭐냐? ‘난로?’ 아니면 ‘매’?”
“엉. ‘새’로만 구매할 거다.”
“하, 니네 촉이 워낙 좋으니······ 그래서, ‘파도’는?”
“대충······ ‘밧줄’ 하나, ‘바퀴’로만 셋?”
“쓰읍, 오질라게도 많네. 알겠다. 그러면 너희 쪽에는 빠지자고 얘기할게.”
“오오냐, 고맙다.”
나와 샘은 만족한 얼굴로 거래를 완료했다. 이게 뭐냐면 간단히 말해 담합이다.
페르디난드 드 로스차일드는 수집광이지만 근본적으로 취미가 술병, 그러니까 테라코타 같은 장식미술 쪽에 맞춰져 있다. 그중에서도 옛 친구, 곧 르네상스 시대 물품들을 제일 좋아하고.
반면 밀러 씨는 난로나 매······ 그러니까 동양화와 서양화를 아우르는 그림 전문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말한 ‘새’는 19세기, 최신 작품을 의미하고.
파도는 자금이고, 그 뒤는 자금의 액수를 말한다.
이렇게 서로의 목표와 탄창의 정보를 적당히 주고받고, 서로의 목표에는 터치하지 않는다.
이게 바로 경매장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방법이지.
그리고 그 결과.
“다음,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정물화 [사과 접시가 있는 정물>입니다. 2천 파운드에서 시작하겠습니다. 2천 파운드, 안 계십니까?”
“3천 파운드요.”
“3천 파운드 나왔습니다, 다음······ 예. 3천 파운드 낙찰입니다.”
매우 쉽게.
“같은 작가의 [에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만>입니다. [에스타크에서 바라본 마르세유만>. 혹시 없으십─”
“2천 5백 파운드!”
“2천 5백 파운드, 낙찰입니다.”
목표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어.
“다음은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입니다. 2천 파운드로 시작하겠······.”
“5천 파운드!”
“······5천 파운드! 5천 파운드 나왔습니다. 다른 금액 없습니까?”
적막. 오히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두 밀러 씨를 경악의 눈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저 산송장 같은 그림이 대체 무슨 놈의 가치가 있어서 5천 파운드나 하는 거냐는 눈이니까. 심지어 밀러 씨도 살짝 눈빛이 흔들리는 게 불안해하는 눈이다.
하지만······ 흐흐흐. 두고 보시라구요, 밀러 씨. 이게 무려 2억 달러까지 치솟는 알짜배기입니다.
“흥, 그림 보는 눈이 정말 형편없군. 그런 그림을 5천 파운드에 구매하다니.”
대놓고 들려오는 악담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웬 젊고 잘생겨 보이는 청년 장교 하나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이놈은?
“그림이라면 당연히 인상주의(Impressionism)지. 흥! 세잔이라는 작가는 조금 괜찮았지만, 그래 봐야 카미유 피사로의 아류에 불과한 것을.”
뭐야, 이 그알못은?
어디 미대 떨어져서 군인이라도 된 놈인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