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89)
“때가 왔다!!”
“드디어 핍박과 모멸의 시간에서 벗어날 때다.”
“엄마, 저는 소설 작가가 될래요!!”
공모전의 개최가 알려지고.
별 반응이 없던 왕립문학회의 몰락과는 달리, 새로운 흐름이 안개 낀 도시를 장악했다.
그리고 ‘문학 뽕’에 런던 시민들은 다시 한번 열광했다.
본래 인맥이라도 없으면 제대로 된 감평조차 받지 못하는 게 일반 시민인데, 제대로 된 심사위원과 상금까지 걸린 공모전이라니.
이렇게 파격적인 대우를 예고한 작가 모집은 이제껏 없었다.
심지어 ‘블라인드’. 기성작가도, 신인도, 나이조차 가리지 않겠다는 그 문구에는 10대 중후반의 청소년들이 더더욱 열광했다.
슬슬 머리가 굵어가고, 나중에 뭘로 먹고 살지, 가 현실적인 고민인 시기.
학생들이 평소 좋아하던 것으로 돈과 영광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꿈에 올인하겠다는 청운(靑雲)의 객기를 부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그런 학생들이 가장 많은, 하지만 동시에 거기서 제일 거리가 멀 이튼 칼리지.
밀러 가문의 장남, 루이스 몬태규 밀러는 명장(名匠)이 한땀한땀 닦아 만들었을 의자 위에 삐딱하게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북해 서릿발이 차라리 따사로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앞에서 꿀꺽 침을 삼키면서 말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내 그 작은 입이 천천히 열리고, 북해 서릿발이 따사롭다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3점이요.”
“그, 그럴 수가! 이번 건 자신작이었는데!!”
“자신작이요?”
몬티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이런, 게 말입니까?”
“크헉!!”
코웃음을 친 그의 말에 이튼 칼리지의 4학년, 어느 귀족가의 삼남쯤 된다는 소년은, 마치 급소를 찔린 것 같은 과장된 자세로 주저앉았다.
어린 소년들의 세계라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이곳 이튼 스쿨에 있어 선후배 관계는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1년이라지만 선배는 선배. 제아무리 지역 유지의 자식이라지만 기껏해야 미국계 상인의 아들인 그로서는 그림자를 밟는 것조차 불경할 정도의 관계인 것이다.
물론.
이곳이 ‘연극부’가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기본이 안 되어 있잖습니까, 기본이. 왜 이렇게 대사가 느끼해요? 아니, 느끼한 건 그렇다 칩시다. 하지만 말투부터가 통일이 안 되잖아. 아무리 영어라는 게 성별 구분이 약한 언어라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요. 이거, 남자 대사예요? 여자 대사예요?”
“그, 그건 고증이야! 왕후면서 알렉산더를 핍박한 올림피아스의 남자다운 성격과 강대한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고······!”
“아하, 그러신가요? 근데 그럴 거면 페르디카스랑 밀회하는 장면에서 이거, 이런 식으로 대사를 치면 안 되지. 솔직히 대사만 보면 페르디카스가 만나는 게 올림피아스가 아니라 알렉산더 같잖습니까. 게이 같이 보인다고요.”
“크허허헉!!”
촌철살인.
한마디 한마디가 갓 자라는 미래의 극작가 꿈나무의 폐부를 찌른다.
나뭇잎 하나하나 조져 버리겠다는 그 냉정한 평론에, 정통의 이튼 스쿨 연극부는 선배고 후배고 가리지 않고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두렵다······!’
‘저 녀석, 그래도 우리 학년에선 그나마 제일 잘 쓰는 편이었는데!’
‘과연, 이게 연극부의 사신(The Death)······!’
아직 ‘엘리트’보다는 ‘귀족’을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는 이튼 스쿨의 개혁되지 않은 문화상, 이튼 스쿨에서 목에 힘주고 다닐 요소는 크게 셋. 혈통, 나이, 그리고······ 교양 수준이다.
그리고 그 연극부 학생들의 교양 수준에 있어, 루이스 몬태규 밀러를 따라갈 수 있는 학생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예술적 감각.
그리고 말 그대로 날 때부터 ‘그’ 한슬로 진에게 보고 배운 문학적 소양.
그리고, ‘요즘 애들’의 수준에 대한 눈높이를 마구 헝클어트리는 누나 매지와 여동생 메리까지.
어떤 의미로는 이쪽 방면의 영재교육이란 영재교육을 다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
이러니,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학생에 불과한 이튼 스쿨 연극부가 몬티를 만족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선배님, 대사가 철학적인 척하는 건 좋은데, 이거 결국 괴테 얘기를 재탕하는 거 아닙니까? 나쁘단 건 아닌데 더 쉬운 것도 아니고, 더 재밌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럴 거면 그냥 파우스트 올리지 뭐 하러 이걸 올립니까?
─야, 이거 그래서 절정부에서 힘을 너무 뺀 거 아냐? 감정은 신파극 형식으로 올려놓을 거 다 올려놓고 이래 버리면 스토리가 팍 죽어 버리잖아. 그리고 너무 강한 말을 쓰지 마. 약해보인다고.
─후배니까 살살 해 주고 싶긴 한데······ 넌 기본부터 다시 배우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게 일기장 망상하고 다를 게 뭐냐?
그저 하는 말이 날카로울 뿐이라면 상관없겠으나, 루이스 몬태규 밀러는 무슨 신비한 공부법을 익힌 것인지 공부하는 시간도 길지 않은데 성적도 나쁘지 않다.
‘무슨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외운다는데······ 워낙 이상한 소문이 많으니 정확히 알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대체 뭘 먹고 컸는지 키도 훤칠하고 운동도 그냥 원래 잘하여 보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
그나마 틈이 있다면야 연극부에서 보이는 연기력이 아직 약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거 정도? 하지만 그것조차 학생 레벨에서는 충분히 주연급이다.
하물며 하는 말이 틀리지도 않으니, 그 혓바닥을 막기엔 중과부적.
루이스 몬태규 밀러가 연극부를 장악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었으리라.
물론, 그 탓에 수많은 극작가 새싹들이 저 미식가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고 멘탈이 추풍낙엽처럼 흩어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붙은 별명이 연극부의 사신.
애거사 크리스티를 낳은 혈통이, 한슬로 진의 영재교육과 만나 개화시킨 이름 없는 괴물이었다.
“밀러, 있나?”
“선배님 오셨슴까!!”
그때 연극부 부실의 문이 열리고, 부장이자 최고학년인 에드워드가 들어왔다.
고개를 끄덕여 자신에게 인사하는 부원들에게 화답해 준 에드워드는 루이스 몬태규 밀러를 보며 말했다.
“예, 선배님. 부르셨습니까.”
“어. 음······.”
오늘도 양학 중인가······.
에드워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잠시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저 악마의 주둥아리를 어찌해야 할지.
“잠깐 얘기 좀 하자. 따라와.”
“예.”
“히, 히익.”
학교라는 모형 정원에서, 나이는 그 자체로 권력이고 힘이다.
성적이 아무리 높아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최고학년인 에드워드가 ‘따라와’라는 것에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 (옥상으로)라는 괄호가 붙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이스 몬태규 밀러는 자연스럽게 에드워드의 뒤에 따라붙었다.
그야 그럴게.
“여, 여기.”
“흐음. 이번 신작입니까?”
“그래.”
“흠······.”
그래 봐야, 그 또한 결국 몬티의 첨삭을 원하는 불쌍한 어린 양에 불과하니까.
이러니저러니 독설로 유명하다고는 해도 이곳, 이튼 칼리지에서 작품의 문제점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몬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담당 교수를 포함하고도 말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 펄럭이며 원고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긴장감 넘치는 침묵이 있던 뒤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루이스 몬태규 밀러가 한숨을 쉬었다.
에드워드는 결과를 기다리는 피고인의 심정으로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 건 좋네요.”
“그, 그래?”
“네. 딱히 모난 데는 보이지 않아요. 이 정도면 충분히 흡입력도 있구요.”
합격점입니다.
몬티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자, 에드워드는 깊은 안도와 함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진짜 힘들었다는 것이 절절히 느껴진다. 몬티는 그런 그의 목표를 알고 있었기에,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선배님, 이제 정말로 결심하신 거예요?”
“그래. 이젠 잡지사에 내 볼 생각이다.”
몬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이런 여상한 반응인 거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아무리 이튼 스쿨에서 연극부를 한다지만, 전업 문필가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아무리 아일랜드 남작 가문이라지만, 가문의 후계자인 에드워드가 진지하게······ 그것도, 무려 ‘잡지 연재 작가’를 꿈꾸다니.
이건 마치 귀족 출신이 평민과 결혼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그것도 별로 가난한 것도 아닌 사람이.
물론.
─으, 으아아악! 피, [피터 페리>가 완결이라니! 이런, 이런 말도 안 돼!!
─뭐? 그런 게 무슨 문학이냐고? 멍청아!! 힘들고 삭막한 건 현실만으로 충분해! 나한텐 이런 잠시 쉬어 갈만한 망상이 필요한 거란 말이다!
─이번 연극은 조지 맥도널드의 [공주와 고블린>을 올린다. 뭐? 안 읽어 봤어? 이런 불쌍한 인생을 봤나!! 잘 들어! 환상 문학이란 건 말이다!!
무게만 잡는 겉모습과는 달리 엄청난 한슬리언이며, 평소에도 그 곰 같은 체구로 동화책을 탐닉하던 모습들을 보면, 또 나름 어느 정도는 어울리는 것 같단 생각도 없잖아 들긴 했다.
“그, 작가연맹에서 공모전?이란 걸 한다더라. 거기 내 볼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네요.”
“만약 거기서도 떨어지면, 원래 계획대로 샌드허스트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지만······.”
몬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최고학년이란 말은 곧, 졸업예정자란 뜻이기도 했다.
연극부 부장, 에드워드와 이튼 스쿨에서 볼 날은 몇 달 남지 않은 것이다.
“샌드허스트라······.”
“넌 생각 있냐?”
“예.”
몬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전쟁도 별로 없는 시기 아닌가, 그리고 이곳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나라 대영제국이고.
그런 나라에서 장교가 되면, 그리고 혹시나 군공을 세운다면······ 정치권에 입성하기도 쉽겠지.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뜯어고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제국을.
그렇게 생각하는 몬티의 등을, 에드워드가 두드렸다.
“그래,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러려면 실적이 필요할 텐데, 뭐 생각해 둔 거 있냐?”
“글쎄요. 성적은 이미 충분할 텐데.”
“그건 그렇지. 다만 좋은 게 하나 필요할 텐데······.”
씨익, 하고 에드워드는 웃었다.
“이튼 스쿨 연극부 부장. 어떠냐.”
“······예? 3학년인 제가요?”
“반대로 생각해 봐, 인마.”
에드워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몬티를 보았다.
“대체 널 두고 부장을 하라면, 어느 4학년이 그걸 받아들이겠냐?”
“······음.”
“그냥 닥치고 받아들여. 네 업보다.”
“사람을 무슨 학살마처럼.”
그래도, 꽤 기꺼운 이야기이긴 했다. 어쨌든 이튼 스쿨에서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는 연극부 부장이란 이력이 있다면, 어딜 가든 자랑할 만한 스펙일 테니.
“좋아, 그러면 이거 하나 받아라.”
“됐네요.”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승낙하는 루이스에게 품에서 담배를 꺼내 내밀었다.
부장들의 특권이었으나, 이상할 정도로 담배를 싫어하는 루이스는 에드워드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걸 피해 멀찍이 도망쳤다.
이럴 때를 보면 정말 귀여운 후배란 말이지.
에드워드는 낄낄거리면서 생각했다.
만약 저 녀석이 올 걸 기다린다고 생각한다면, 샌드허스트라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에드워드 존 모턴 드랙스 플런켓(Edward John Moreton Drax Plunkett)─ 18대 던세이니 남작(18th Baron of Dunsany)으로 내정된 남자는 이튼 스쿨의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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