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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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션 하우스(2)
“흐음. 보아하니 휴가 나온 샌드허스트(Sandhurst : 영국 육군 사관학교) 생도인가 보군.”
“그렇소. 기병과 69기 생도요.”
나와 밀러 씨는 잠시 기다렸지만, 육사 생도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미학을 알지 못하는 식민지 얼간이들에게 알려 줄 이름은 없소.”
“······.”
뭐라는 거지, 이 군바리는? 나는 멍하니 육사 생도의 얼굴을 보았다.
샌드허스트 출신이라 머리에 모래만 가득한 건가? 아니면, 어느 나라건 육사는 죄 병신 꼴통밖에 생산을 못 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 옆에서 밀러 씨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기병과라······ 영국의 전통이지. 아무래도 귀한 집안의 자제신가 보군.”
“하, 좋은 그림도 몰라보는 식민지인의 그 옹이구멍 같은 눈도 사람만은 제대로 보는 모양이구려. 그렇소, 우리 조부님이 제7대 말버러 공작이시고, 아버지께서는 전임 재무장관을 맡으셨던 분이오.”
그러니까, 귀족 중에서도 T.O.P급 대귀족이란 소리다.
무림으로 치면 세가 중에서도 오대세가급이랄까? 로스차일드도 남작급인 걸 생각하면 공작급은 진짜 높은 게 맞다.
하지만······ 어쩌라고? 그래도 열받는 건 열받는 거지.
애초에 이 시기 제국이라 함은 식민지들을 거느려서 제국이지, 딱히 봉건제를 채택한 신분제 국가는 아니다.
그런 동네는 일본제국이나 독‘일제’국 같은 야만적인 군사 국가밖에 없다고.
아예 귀족 없이 시작한 미국이나 귀족 지위 자체가 폐지된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그럭저럭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이 꽃피고 있었다.
영국 귀족들이라고 딱히 돈과 권력을 모두 가진 상급 국민이었던 건 아니란 소리다.
대체로 돈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찢어지게 가난한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는 로스차일드 같은 유대인 금융업자나, 밀러 씨 같은 미국인 신흥 부자들과 결혼하는 일이 많은 형국이다. 애초에 클라라 밀러 부인의 본가였던 베이머 가문도 귀족 가문이고.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밀러 씨는 저 돈도 별로 없어 보이는 신분만 높아 보이는 귀족가 도련님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는 거다.
자, 그럼 슬슬 각은 나왔고······ 이제 이 대가리만 큰 애송이 생도한테 어떻게 참교육을 해 줄까,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밀러 씨가 갑자기 내 옆구리를 두드렸다.
“핸슬.”
“예, 밀러 씨. 회를 칠까요, 아니면 통째로 구울까요?”
“그것도 매력적이지만, 저기를 보게.”
저기라니.
내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돌린 곳에는······ 세상에 맙소사.
방금까지만 해도 머릿속에서 수많은 요리가 됐던, 그 콧대만 높고 비루한 육사 생도의 왼팔에 무언가가 껴 있었다.
진한 남색에 물결치는 듯한 팬 흘림체로 적혀 있는 제목.
그건 누가 봐도 내 책, [피터 페리와 비밀의 숲>이었다. 그것도 삐까번쩍한 한정판 양장본으로.
내 시선이 꽂힌 것을 알자, 애송이 생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림 보는 눈은 없어도 문학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군. 이건 우리 대영 제국의 귀중한 보배인 한슬로 진 작가의 명저요.”
“······뭐요?”
내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옆에서 웃음보 터지기 직전인 밀러 씨가 입을 열었다.
“크, 후. 푸훗. 그래. 귀관, 귀관은 핸슬로 진의 글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이야기인가?”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겠소.”
“크흡, 흡. 그래, 어딜 그렇게 고평가하는 게지?”
“흥, 어디냐니. 무례한 작자로군······.”
그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더니, 크흠 하며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단언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야 뻔하지 않소? 그가 창조한 4대 요정을 보고, 본 관은 우리 대영 제국의 문화를 이루는 게르만과 그리스의 신화를 철저히 고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찾아온 피터, 초대 교황 베드로의 이름을 딴 주인공의 이름은 신성한 하나님의 복음을 나타내지요.”
나는 밀러 씨와 눈빛을 나누었다.
‘자네, 그랬는가?’
‘씨밤, 그럴 리가요.’
아니, 그야 물론 엘프와 드워프는 게르만 신화 원류가 맞다. 그 사이에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껴있긴 하지만.
그런데 님프랑 실프는 뭐······ 그냥 내가 프자 돌림으로 끝나는 애들이 익숙해서 대충 국룰 이름으로 골라 쓴 거고.
원래 한국 사람들은 어렸을 때 읽은 만화 덕분에 그리스 신화에 익숙하다. 나 역시 그래서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는 거고.
그런데 하물며 피터가 기독교를 상징해? 그럴 리가 있나, 난 그냥 흔한 이름이라 갖다 쓴 것에 불과하다. 대체 뭔 개소리야?
“그뿐인가? 학교의 이름이 오베론 아카데미아인 것, 그리고 피터가 학교 연못 밑에 있던 아발론에서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것은 그 모티브가 셰익스피어와 아서 왕 전설에 있음을 나타내오. 위대한 대영 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모티브로 한 것임이 틀림없지.”
그야 니들 영국인들이 제일 이해하기 쉬운 레퍼런스니까 그런 거고. 문화적 맥락 모르냐? 이 맥락맹아!
“이러니 어찌 자랑스러운 대영 제국의 사관으로서, 미래의 대문호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우우우······.”
그러니까 그렇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내 글이 무슨 영국산 위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말란 말이다! 난 그냥 고객이 원하는 글을 써 주는 것뿐이라고!
마치 랩을 하듯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관의 말에 맞춰, 내 손발도 한없이 오그라들어 갔다.
반면······ 밀러 씨는 그렇게 몸을 배배 꼬고 있는 내가 웃겨 죽을 지경인지, 용케도 웃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크흐흐.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요즘에도 잘 읽고 있나?”
“물론이오. 어제 발간된 [템플 바> 최신 호의 연재분도 확실하게 정독하고 있지! 이번에도 아주 완벽한 에피소드였소! 한밤중에 금지된 숲의 담력 시험이라. 위대한 대영 제국의 생도들이라면 모름지기 밤이니, 금기니 하는 것 정도는 당당히 깨부수는 용기를 가져야지, 암!”
아니야, 미친놈아. 나는 그냥 일상물 클리셰를 쑤셔 넣었을 뿐인데······ 그게 순식간에 대영 제국의 탐험 정신이니 용기니 하는 식으로 미화되는 꼬라지를 보자니 위장이 뒤틀릴 거 같다. 위, 위약······.
“흐음, 핸슬로 진을 굉장히 존경하는 모양인데.”
“그야 물론.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소!!”
아니, 필요 없어. 너 같은 놈의 존경은 필요 없으니까 제발 꺼져 줘.
하지만 그런 내 마음속 외침을 무시하듯, 밀러 씨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계속해서 생도를 부추겨 댔다.
“그렇게 대단한 작가님이라면 나도 한번 만나 보고 싶군. 어디 사는지 알고 있나?”
아니, 만나 보긴 뭘 만나 봐요? 자기 집에 하숙시켜 주고 계시면서.
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옆을 힐끔거리고 있으시잖아!
물론, 이에 샌드허스트 생도 역시 자기가 놀려지는 줄도 모르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나도 한슬로 진 작가님의 거처를 알지 못하오. 하지만 이런 아름답고 순수한 글을 쓰신 것을 보면, 분명 그분에게 어울리는······ 대영 제국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계시겠지.”
“흐음, 그런가?”
“그렇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히 보이오! 마치 소설 속의 요정 숲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 속, 저 낭만주의의 시성(詩聖)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와 같은 현명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노인이 아이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기 위해 순금 만년필로 양피지를 물들이는 모습이!”
아니야.
“숲속에서 어스레하게 번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적어 나가는 글귀! 분명 그 앞의 호수에는 새하얀 백조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겠지. 튀기는 물방울과 퍼지는 아련한 빛무리······ 그래! 호수의 비밀 편에서처럼!”
아니라고, 이 미친놈아! 누가 그따위로 글을 써! 숲속에서 탁자도 없이 글을 쓴다니, 종이 다 구겨질 일 있냐!? 호수는 또 뭔데!
그때였다.
“허허, 듣자 듣자 하니······.”
갑자기 앞에 있던 외 알 안경의 노인이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걸어 왔다.
“한슬로 진이 윌리엄 블레이크 같은 애국자라고? 그런 헛소리는 또 난생처음 듣는군!”
뭐야, 이거. 이 노친네는 또 뭔데.
“나는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요! 아시겠소? 어설픈 애송이, 안타깝지만 자네 생각은 틀려도 한참 틀렸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한슬로 진과 같은 현자가 어찌······!”
“그의 소설에 반영되고 있는 문화적 경향이 우리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독창적인 신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지. 하지만, 그의 어휘는 때때로 영국식이라기보다는 미국식에 가까운 어휘를 쓸 때가 있어! 그는 결코 영국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 아냐. 미국식 영어를 쓰는 미국 출신임이 분명하네!”
“그, 그럴 수가!”
사관생도는 경악하면서 입을 벌렸다. 마치 하늘이라도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인데······ 사실 뭐, 이 자칭 영문학 교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배운 영어가 미국식 영어인 건 틀림없고, 같이 살고 있는 밀러 씨도 미국식 억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사람이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소설에 쓴 게 미국식 영어라는 건 또 틀리지 않긴 한데······.
아니, 왜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재능을 이런 이상한 거 분석하시는 데다 쓰는 건데요?
그리고.
“쯧, 통탄스럽군. 우리 대영 제국의 최고 지성인 옥스퍼드의 교수란 자가 그런 한심한 발언을 할 줄은.”
그렇게 말한 것은 사관생도가 아니었다. 당연히 밀러 씨도 아니었다.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이 여름에 두툼한 옷을 껴입은, 그 옷보다 더 두툼한 볼살의 남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여기서 새로운 참전자라고?
그리고 그는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한슬로 진의 어휘가 미국식이든 영국식이든, 그것은 그의 출신을 추측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소. 그가 어렸을 때 누구와 자랐는지는 추측할 수 있겠소만.”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대체 누구길래?”
“나는 케임브리지에서 언어학을 가르치고 있소. 그리고 그런 내가 볼 때, 한슬로 진은 결코 우리 대영 제국이나 미합중국 출신이라고 볼 수가 없소. 왜냐하면 그의 소설에는 때때로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동사를 문장의 맨 끝에 배치하더군.”
나는 반사적으로 밀러 씨를 보았다. 내가 그랬어요?
밀러 씨가 가만히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진짜이긴 한가 본데······.
“이런 버릇은 대체로 독일계 이민자들이 갖게 되는 버릇이지. 따라서 그는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 출신이오!”
“크윽······ 그 말, 책임질 수 있소?!”
“한슬로 진이 크라우트(Kraut : 독일인을 뜻하는 욕)라니, 어떻게 그런 망발을 할 수 있는가!”
“나는 학문적 견해를 밝힌 것뿐이오!!”
“결투다, 나와 이 자식아!!”
뭐야, 이거.
왜 애꿎은 내 국적을 갖고 쌈박질이냐 이 미친놈들은. 그 와중에 아시안이란 추측은 눈곱만큼도 안 나오네.
“거기! 경매장에서 무슨 소란입니까!”
“경비원!! 당장 끌어내세요!!”
당연히 사교장이나 다름없는 경매장에서 그런 소란이 허락될 리 없기에, 내 추측으로 별 해괴한 이론들을 늘어놓던 사관생도와 교수 2명 외 기타 등등은 경비병들에게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건······ 그 기타 등등에 나와 밀러 씨도 있었다는 점이다.
흑흑, 너무해. 난 아무 얘기도 안 했는데.
“뭐, 어차피 목표는 다 건졌잖나.”
“밀러 씨는 토키 가면 크리켓 금지입니다.”
“아니, 왜!?”
그러니까 왜 애꿎은 사관생도를 도발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요, 왜!?
나는 그런 눈빛을 담아 밀러 씨를 쏘아보았고, 밀러 씨는 그 사관생도를 붙잡고 엉엉 우는 시늉을 했다.
“흑흑, 윈스턴. 내가 이러고 산다네.”
“크흠, 너무 슬퍼하지 마십쇼. 밀러 씨.”
······대체 언제 통성명까지 했냐.
내가 이 화상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며, 집에 갈 마차를 부르러 몸을 돌린 그때였다.
“밀러 씨, 다음에는 저 쿨리는 놔두고 혼자 샌드허스트로 찾아오십시오! 그땐 이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이 크게 한턱내겠습니다!”
“······뭐?”
윈스턴, 무시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