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90)
작가 연맹에서 만든 공모전은 그렇게 수많은 젊은이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생긴 사다리를 환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것은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샌드허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끄아아아악!! 떠올라라, 떠올라아아앗······!!”
마치 산모가 아이를 낳는 듯한, 고통에 찌든 목소리가 기병과 생도─ 처칠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크아아앗!!”
꼴깍, 꼴깍.
몰래 숨겨 둔 힙플라스크를 꺼내 기울이고, 아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병나발을 불며 위스키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이래도 속이 안 풀린다.
무언가가 콱 틀어막은 듯, 그의 상념이 자꾸 풀리지 않고 있던 것이다.
“대체, 대체 어떻게 해야 한슬로 진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거지?!”
그의 주변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그렇게 쓰이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수많은 최고급 종이들.
그리고 그 위에 아낌없이 쓰였으나, 미진할 뿐인 글만이 만들어져, 결국 그 산부(産父)의 손에 의해 버려진 장구한 문장들 뿐이었다.
─먼 옛날 알비온(Albion) 땅에 내려온 천족과 마족이······.
─좆됐다. / 다시 한번 말한다. / 나는 좆됐다………
─“모르는 천장이다.”/ 소년은 멍하니 처음 보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으아아아아!!”
윈스턴 처칠은 벌써 열세 번째 쓰던 원고를 갈기갈기 찢으며 절규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제2의 한슬로 진’이라는 문구가 걸린 광고에 걸맞은 원고라고 할 수가 없다.
기묘하게도, 그가 손을 댈수록 문장이 딱딱하게 굳어질 뿐이었으니까.
만약 이곳에 없는 한슬로 진이 봤다면 ‘와, 이게 무슨 혼종이지? 중2병 학습서 같은 건가?’라고 말했음이 분명한 문장이었다.
처칠 자신이 가장 멋있다 생각한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으나, 그는 어째서 글을 쓰면 쓸수록 멀어져만 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빈센트가 말한 것처럼,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인 건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긴 했지만. 지금 그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한슬로 진처럼 간결하면서도 내용을 꽉 눌러 담고, 위트와 유머가 한데 묶인 글을 쓸 수 있는가─로 머리가 꽉 차 있었기에 거기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런 글을 쓰려면, 지금까지 내가 알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글을 써야 한다.’
아무리 입에서는 위스키 냄새가 풀풀 나고 있다고 해도, 그 눈은 더없이 냉철했다.
먼 미래, 자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되는 문학적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도 나름대로 예술적 소양이 충분했고, 특히 문법과 연설문에 있어서는 거의 통달해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웅변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도 해 봤던 그가 아닌가.
‘문학은 자생(自生)의 결정체다.’
점묘법의 쇠라처럼, 회화의 사조(思潮)는 재능에 따라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사조는 그렇지 않다.
시는 가끔 그런 파천황이 나올 수 있다. 단편 소설 작가도, 아주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장편소설은 그럴 수 없다.
수십만 장, 수천만 개의 문단, 수억 개나 되는 단어.
그 천문학적인 분량을 채워 넣으려면,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 작가가 배운 이야기를 응축하고 욱여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문화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이며, 좋든 싫든 자기가 보고 배운 것, 경험한 것을 문학에 녹여내는 것이다.
가령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허버트 조지 웰스를 보자.
윈스턴 처칠은 [템플 바>를 볼 때 겸사겸사 읽었던 그의 [타임머신>을 보며 한눈에 그가 격렬한 진화론자이자 계몽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글에서 그런 ‘호소’가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 하지만 최소한 처칠에겐 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역량 있었으니.
하지만 그런 그라 할지라도.
한슬로 진 만큼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압도적인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거기에 조지 맥도날드의 가벼운 모험 서사를 덧붙인, 천재적인 접목가라고 생각한 것이다.
[빈센트 빌리어스>도 어느 정도 파격적이긴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어쨌든 상상력보다는 현실성이 더욱 뛰어난 작품이었으니까.하지만 [던브링어>는? 그리고 이번 [딕터 박사의 기묘한 모험>은?
문화는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이전 문화가 성공했던, 이미 효과가 검증된 공식을 따른다.
그런데 한슬로 진은, 뭐랄까······.
‘그 확실한 방향성이 없어.’
어떤 걸 보면 점진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떤 걸 보면 뭔가······ 수백 걸음은 더 앞을 걷고 있는 전위성(Avant-Garde)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마치, 대중이,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 모르고 있었던 취향을 후비고 파내어, ‘자, 너희 사실 이거 좋아했지?’라는 듯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제작자로 파고들다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이질적이다. 특히나 위에서 좌지우지하는 것이 당연한 삶을 살아온 그로서는, 어찌 보자면 생소하다 못해 거부감이 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맛있어서 놓을 수가 없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다. 그냥 때려치우고 단순한 소비자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묘하기 그지없는 전위성에, 자신도 도달하고 싶다.
한슬로 진이 보고 있는 경치를, 자신도 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습관처럼 이를 악물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친구들은 얼굴이 불독과 비슷해진다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그는 그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불독처럼 물어뜯는 끈기. 그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으니까.
“후우우우······ 그래,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물론, 그 끈기도 역시 잠깐의 환기가 있어야 다시 발휘할 수 있는 법.
처칠은 잡지와 신문을 모아 둔 곳으로 손을 뻗었다.
배고플 때 뭐라도 먹어야 힘이 나듯, 글이 안 풀리면 뭐라도 읽어야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이게 뭐지?!”
그의 눈에 들어온 신문의 한 문장. 그것이 그의 정신을 휘저어 놓았다.
“하, 한슬로 진······ 당신은 도대체······.”
그가 지독히도 이해하고 싶었던 그 인물은, 오늘도 끝을 모르는 깊이를 자랑하며 그의 손아귀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
젠장, 실패했다.
나는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눈앞의 무언가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건 내 업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눈앞에는,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벤틀리 씨와 조지 뉸스 씨가······.
“자, 보십시오!”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원고를 보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등단(登壇)을 원하는 작가 지망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 했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원래 작가는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았지.”
“네, 이걸 보자니······ 새삼 생각해 보면 저희 출판사들이 기존에 작가를 모집하던 방식이 지나치게 편협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 여기에 있는 건 [벤틀리와 아들>, 그리고 [조지 뉸스> 출판사로 온 것들 뿐이다.
작가 연맹과 제휴를 맺어, 이번 공모전에서 함께하기로 했던 다른 출판사들까지 합하자면 이 둘에 비하진 못할지라도 만만찮은 양이 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굉장하네요. 아무리 지금 영국 인구가 많다지만, 이렇게나 많은 원고지가 생산되고 있을 리 없는데.”
“그, 작가님. 실은 그게······ 그 투고라는 것이 미국에서도 오고 있습니다······.”
“······.”
어째서?
속으로 그런 비명을 외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여긴 영국이지······.’
한국과 달리 이 나라의 언어 커뮤니티는 미국과 공유한다. 즉, 광고를 직접 보는 데에 별 무리가 없고, 투고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맹점이었다.
하물며 인구가 적지도 않다. 대영 제국 전체로 보면 미국이 밀리지만,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 본토만 따지면 이미 미국이 영국을 초월한 지 오래다.
이러니 이렇게 많을 수밖에 없지. 어쩐지 통관(通官) 도장 찍힌 봉투가 많다 했다.
“그렇다고 버릴 순 없죠.”
“예. 지난번 보내 주신 대학생들을 포함해서, 임시로 아르바이트할 사람들을 모아 1차 심사자로 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거시기하긴 해요.”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알바생을 쓰면 어느 정도는 일손이 덜어지겠지.
근데 아무래도, 그 대학생들도 사회초년생이고 글을 보는 눈이 있다면 글을 쓰는 능력도 충분히 있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자기가 투고해 놓고 자기가 심사하는 꼬라지를 볼 수도 있다는 거다.
“차라리 주부들을 쓰면 어떨까요?”
“주부들이요?”
“예.”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벤틀리와 뉸스, 두 사람도 그건 생각 못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아직 남성향과 여성향이 나누어지지 않은 시기, 연재소설 잡지의 주요 수요층 중 하나가 바로 주부들이다.
애는 학교 가고, 남편은 일하러 가고, 집안일은 끝냈는데 집에선 할 게 없던 시기니까. 요즘 드라마 보듯 서적을 소비하는 거다.
뭐? 사회생활? 맞벌이 부부? 19세기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마초이즘은 미국 남부 지방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영국이 그나마 낫긴 하다지만, 여성 참정권, 여성 노동권이 확보되려면 세계 1차 대전까진 가야 한다.
이 시대는 아직 서프러제트 운동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그리고 그나마 출판업계는 여류 작가들의 영향으로 여성들의 진입 장벽이 낮은 영역이다.
실제로 벤틀리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마리아 편집자도 있고. 그러고 보니 그분도 꽤 오래 본 것 같은데, 성이 뭐더라? 멜? 멀? 뭐시기였던 거 같은데?
아무튼, 중요한 점은 주부들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님, 그 주부들도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학생들에 비하면 훨씬 안전할 거라고 봐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어느 한쪽이 더 믿음직하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처지에 대한 부분이다.
대학생에게 이번 알바 일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자.
걔들한텐 이게 옵션이다. 선택사항이라는 거고, 짤리고 문제 생겨도 별문제 없단 뜻이지.
하지만 주부들은 다르다. 일할 수 있는 업계가 극히 드물고, 그 드문 업계 중 하나가 출판업계다.
그런 출판업계 파트타임 알바를 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간 뒤가 없어진다. 안 그래도 인맥만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좁은 업계인 만큼 그 부분이 더욱 심할 수밖에.
“흐음. 내 생각엔 썩 나쁘지 않네! 인건비도 대학생들보단 주부들이 싸겠지. 흐흐흐.”
내 말에 영국의 강도 귀족, 잡지왕 조지 뉸스가 쿠바산 시가를 물며 음침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으음. 안 그래도 상류층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를 쓰고 있는데 저러니까 딱 고양이라도 쓰다듬으며 앉아 있어야 할 분위기······.
하여튼 난 제안을 한 것뿐이니까, 결정은 두 분이 알아서 내리셔야지.
경영은 내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저 원고의 산속에 정말 보물이 1%라도 있으면 대박인데······.
나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밀러 씨네 타운하우스 지하창고를 개조해서 쓰고 있는 장서고에 넣어 두고 있는, 이 시대 작가들의 초판본들을 생각하면 정말 군침이 돌 수밖에 없지.
한 수십 년만 지나도 그 장서고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오를 거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군.
그런 부수입을 생각하며 군침을 흘리고 있던 그때.
“핸슬로 진 작가님.”
“아, 마리아 씨.”
미국식 발음으로 날 부르는 앳된 목소리에,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방금 전에 떠올렸던 벤틀리 출판사의 편집자, 마리아 씨가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급히 와 보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독일에서 작가님 이름이 적힌 과학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멍하니 얼빠져 있는 사이, 마리아 씨가 내게 어떤 신문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 꼭지만 봐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인기 연재 소설 ‘던브링어!’ 작가가 예고한 ‘투명한 빛’은 실존하는가!> [뢴트겐 박사의 논문에 등장한 한슬로 진! 소설가가 공동 연구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