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 Writer in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93)
“그러면 웰스 작가님,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곧 사장님과 한슬로 진 작가님이 오실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익숙한 담당 편집자, 마리아의 말에 허버트 조지 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뭐랄까, 경멸이라고 해야하나, 불쌍하다고 해야하나.
하여간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미묘한 시선으로 보던 마리아는 평소대로 감정이 옅은 목소리로 떨떠름하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작가님.”
“아, 예.”
“절대, 절대 한슬로 진 작가님께는 무례한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조지 웰스는 의아하다는 듯 답했다. 그의 신, 구원자, 선지자께 대체 무슨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편집자 마리아는 잠시 웰스를 예의, 의미 모를 시선으로 보더니, 한차례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은 뒤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왜 저러는 건지, 웰스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홀로 남은 허버트 조지 웰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벤틀리 출판사의 사장실을 훑어보았다.
‘대강 3년 만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사이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일개 교사에 불과했던 그가, 이제는 그럭저럭 인기 있는 작가이자 어엿한 런던 시민이 되지 않았는가?
젊은 나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한슬로 진의 은혜였다.
단순히 그를 인정해준 것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후반부가 약하다는 말씀이시군요.
허버트 조지 웰스 자신도 고민하고 있던 부분.
하지만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그디지 중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몰록(Moloch)과 엘로이(Eloi) 쪽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는 그렇게 말했었다.
─로맨스에 가까운 그 이야기는 잘 팔리지. 그건 좋은 생각이네. 하지만 그 30만 년, 3천만 년 뒤의 이야기는 힘이 너무 빠져. 차라리 빼는 게 나을 지경이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어쨌든 제 목적은 끔찍한 계급 격차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뺀다면, [타임머신>이라는 제목은 의미가 없어져요.
그리고 그 순간, 벤틀리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내밀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해 주었다.
─이건 나보다는 한슬로 진 작가님의 제안이네만.
─한슬로 진 작가님이요!?
런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아동소설의 작가가 그의 글을 읽었다니. 심지어 조언까지? 웰스는 감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출판용 단편과 연재용 장편을 나눠서 쓰는 건 어떤가? 단편은 후반부를 최대한 줄여서 단권으로 출판하고, 연재용 장편은 그 후속작 개념으로 타임머신을 이어받은 관찰자가 주인공이 되어, 그 타임머신으로 시간 이동을 탐구하며······ 과거와 미래의 괴물들을 데려와서 생기는, 괴물 소동 같은 걸 적는 거지.
─과거라면, 리처드 오언(Richad Owen)이 주장한 공룡 같은 생물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이걸 말씀해 주신 한슬로 진 작가님이 말씀하시길······.
‘몬스터물(Monster), 이었나.’
허버트 조지 웰스는 지금은 익숙해진 장르명을 되뇌었다.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그를 픽해 준 한슬로 진의 제안이 아닌가?
결국 웰스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정말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타임머신>은 [템플 바>에서 그의 상상력이 총동원된, 온갖 동식물이 튀어나오는 환상문학이자 SF로서 자리매김했으니까.
원래부터 이런저런 풍부한 상상력을 자랑하던 웰스에게도 딱 맞는 소재였다.
게다가 그중 가장 인기가 좋거나 쓰기 편할 것 같은 환상종 몇을 뽑아, 현실의 지구를 비롯해 이들이 번성하기 좋은 행성을 찾아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전쟁을 벌이는 SF전쟁소설,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을 준비 중이기까지 하니, 실로 정확한 조언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한슬로 진 작가님이.’
그를 불렀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대체 무슨 일일까? 설마 그 지난번 애송이들과 같은, 아니 어쩌면 처음 그를 픽업했을 때와 같은 조언을 이번에도?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가능성의 수로 그려진 온갖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탁자에 놓여 있는 찻물을 마시며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던 그때.
“이거, 미안하군. 내가 많이 늦었나?”
“아닙니다. 그저······.”
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귓속을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에 허버트 조지 웰스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니, 이 칭키가 왜······!?”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의 뒤로 간간이 보이던 칭키가 따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대체 무슨 일이지? 너무나 의외의 결과에 잠시 웰스가 입을 벌리고 있던 그런데 그 순간,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가 놀라 격렬하게 소리쳤다.
“칭키라니!! 자네, 지금 작가님께 대체 무슨 무례인가!”
“······예? 작가님이요?”
“그래! 자네가 그리 보고 싶어 하던 한슬로 진 작가님 말이야!”
지금, 뭐라고? 허버트 조지 웰스는 순간, 자신이 미쳤나 생각했다. 아니면 벤틀리가 미쳤거나.
“그러니까. 이 칭, 아니 그러니까 이, 이분이······!”
“하하, 괜찮습니다. 벤틀리 씨.”
하지만, 둘 모두 아니었다.
웰스는 칭키. 아니, 아시아인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품위 있고 부드러운 행태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항만이나 잡화점에서 일하면서 봐 온 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 아시아인은 손을 살짝 내밀어 벤틀리를 만류하더니, 생각보다 훨씬 큰 눈높이에서 우수에 찬 검은색 눈동자로 이쪽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밀며 너무나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허버트 조지 웰스 씨.”
“아, 아아······!”
그리고.
“진한솔입니다. 한슬로 진, 한스 진. 편할 대로 불러 주시지오.”
“어, 어어? 어어어어!!?”
설마······ 진짜?
철퍼덕.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가 잠시 꺼졌다.
***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이웃을 닿아서조차 안될 오염 물질로 여기게 된 게 언제였더라?
어렸을 때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었다. 그런 게 눈에 들어올 시간에 차라리 책이라도 한 번 더 보는 게 나았으니까.
그게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크리켓 프로 2군 선수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이름값으로 운동용품점을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한 수입 때문에 제대로 운동할 수도 없었고, 실제로 운동도 못 했다.
처음으로 꿈이 꺾였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땐 큰 상관은 없긴 했다. 조금 열악하긴 했어도 근근이 먹고살 수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12살 즈음, 아버지의 다리가 골절되었고.
아슬아슬하게 버텨지던 집안이 결국 파탄 났다.
결국 막내인 그는 먹을 밥이 없어, 남해에 있는 옷감 공방에서 견습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리고······ 19세기 영국에서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하루 13시간, 말이 견습생이지 사실상 노예처럼 다뤄졌다.
줄만 걸어 놓은 쪽방에서 수십의 다른 견습생들과 함께 잠을 자야 하는 나날.
간신히 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비가 왔을 때 지붕이라도 있다는 것에도 감사해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다른 사람에게 가열해지는 때가 바로 사람이 열악하던 때라고 하던가?
시작은 단순했다.
당장 내가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빵 한 귀퉁이를 저 껌둥이, 누렁이에게 빼앗긴다.
─배고파.
─저걸 뺏으면 조금이라도.
─제기랄, 내 것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 누구도 나쁘지 않다.
그 누구도 먼저 잘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핍은 그 자체로 악의를 피워낸다. 아주 조금 생겼을 뿐인 악의조차,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대하게 만개한다.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아버지는 대체 누워서 뭘 하고 있는가. 어머니는 교회에 가서 대체 뭘 비는 건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그런 게 있다면, 대체 왜 그를 돕지 않는가?
그렇게 그는 다른 인종, 기독교인,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증오를 차곡차곡 쌓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나은 편이었다. 보통은 그 구렁텅이에서 평생을 보낼 테지만,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으니까.
그리고 18살 즈음,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 진학했다.
덕분에 은사인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덕에 진화론과 사회주의를 접하면서, 그게 프롤레타리아를 핍박한 부르주아들의 잘못이란 생각은 갖게 되었다.
하지만, 예전 트라우마는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렇게, 자본주의와 계급주의를 비판하고, 전쟁과 제국주의는 극혐하면서도 정작 인종과 장애인은 차별하는 모순적인 무신론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신은 존재했다.’
거기서 한번, 그가 만든 모순에 금이 갔다.
한슬로 진.
그가 바로 그의 신이며, 구원자이며, 선지자였다.
물론, 이건 스스로도 무척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은사 이상 구원자 이하 정도?
하늘같이 여긴다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야 밝혀진 진실······ 그가 은사 이상, 구원자라 여겼던 이가.
다름 아닌 백인의 자리를 빼앗고, 백인의 마음에 악을 깃들게 만드는 더럽고 비겁한 악의 축이었다고 생각했던─ 칭키······ 가 아니라, 아시아인이란 것이었다고?
‘이게 말이 되는가?’
논리와 현실이 충돌할 때, 사람들은 대개 현실 쪽을 부정한다. 그리고 방어기제를 형성하며, 현실을 두려워하고 혐오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유물론자다.
즉, 실재론자(realist)였다.
그래서, 사상을 지키기 위해선 실재하는 현실을 긍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상들 사이의 균형추로써 작용하였다.
그리고.
‘그렇다면, 잘못된 것은 내 사상이었다.’
훌륭한 삼단 논법이다.
그렇게 산산조각이 난 사상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안에서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나는 타 인종이 백인에게 그릇된 상념과 사악한 마음을 품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로서 핍박받았을 때 생겼던 악의에 근거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 시절에 백인 동료들만 있었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니다. 만약 근처에 백인만 있었다면, 그는 똑같이 백인들을 경멸했을지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여기서 만민평등의 관념이 형성된다.
하지만, 이 순간 허버트 조지 웰스는 작가로서의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튕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나도 체념했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공부하지도, 그리고 런던사범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헉슬리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소설 [타임머신>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한슬로 진을 만날 일도 없었겠지.’
‘즉, 그 공방에 여러 인종이 어울려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려는 어떤 절대자의 안배다······!’
비약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유물론자인 자신조차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버트 조지 웰스는 1에서부터 자신을 재구성하는 중이었고, 그래서 스스로가 퍼즐을 잘못 끼웠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렇다면, 그 절대자는 누구인가.’
‘기독교의 신인가? 하지만 그 신은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신이 답을 주는 자라면, 그렇다면. 내게 답을 주신 분은. 그리고 지금 내게 답을 내려 주려 오신 분은······!’
그리고 그 순간, 진한솔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런, 웰스 씨. 괜찮습니까?”
“창 좀 열겠습니다, 작가님.”
“······신이시여.”
그 순간, 허버트 조지 웰스는 리처드 벤틀리 주니어가 열어젖힌 창문에 의해 들어온 광선이 진한솔을 찬란한 광휘로 물들이는 것을 보았다.
황당하리만큼 극적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완전히 경도된 허버트 조지 웰스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회개합니다.”
“······예?”
“회개하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오오, 신이시여! 당신께 제가 도대체 무슨, 베드로와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아니, 잠깐만요.”
허버트 조지 웰스가, 한슬로 진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벤틀리 씨, 혹시 편집부에 아편이라도 숨겨 놨습니까?”
[ 허버트 조지 웰스(1) > 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