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0)
10
날이 밝자마자 의원들은 덴카르트 도련님의 막사로 향했다.
수도에서 내로라하는 자들답게 위풍당당한 발걸음이었다.
눈빛마다 의욕도 가득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공작가 주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리라.
그런데 가장 앞 열에서 걷는, 한 의원의 낯빛은 어둑했다.
‘어째서…… 발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새벽녘에 도련님의 막사 주변을 배회했지만 별다른 소란이 없었다.
덩치 큰 시종들이 짐 정리를 하러 몇 번 짐꾸러미를 옮겼을 뿐이다.
‘혹시 막사 내의 물품이 다른 자들과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발작 증세가 후에 발현하는 것인가…….’
의원은 예상과 전혀 다른 상황에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마님께 무어라 말을 올려야 할지…….
하지만 곧 의원의 얼굴엔 비정함이 떠올랐다.
‘아니면…… 더 독한 약을 써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방법도 있겠군.’
그사이 의원들이 하나둘 진료를 보기 시작했고, 곧 그의 차례가 되었다.
의원은 에드릭의 맥을 짚으며 유심히 살폈다.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어제보다 피로해 보이는 안색 외엔 특별한 점이 없었다.
예견했던 발작이나 발진, 극도로 예민한 태도가 전혀 없는 것이다.
‘……왜 심지어 상태가 더 나아진 것이지?’
당혹감을 숨기는데, 하품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올리자 어제 봤던 시종이 보였다.
환자 외엔 대체로 기억하는 편이 아니지만, 저 얼굴은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의 신체 일부처럼 늘 붙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다.
시종은 에드릭의 뒤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주인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싫은 티를 팍팍 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졸음을 떨쳐내려는 듯이 두어 번 깜빡이던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았다.
“의원님. 혹시 도련님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차 싶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맥만 짚고 있으니 자연히 걱정이 들 수밖에.
상태가 괜찮으시고 진료는 끝났다고 대답하려는데, 시종이 먼저 물었다.
“아니면 우리 도련님께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그러시는 건가요?”
“…….”
당황한 의원은 아무런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시종의 목소리엔 악의가 없지만, 정곡을 제대로 찌른 것이다.
아니, 아니지.
의원은 도련님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상대는 고작 어린 시종. 당황할 필요도,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혹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곳이 편찮으실까 내 소상히 알아보았네.”
진지한 표정과 침착한 목소리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준다.
그리고 그는 실력과 더불어 그런 화술로 오랜 세월 단련된 뛰어난 의원이었다.
의원은 늘 하던 것처럼 행동했다.
저 시종도 당연히 그의 말에 감격하리란 예상이 들었다. 더군다나 어수룩한 일개 사용인이었으니.
그런데 그는 눈을 의심했다. 시종의 표정은 익숙한 감격이나 존경이 아니었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네놈이 당연히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뱉을 줄 알았다는 듯이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다시 눈을 깜빡이자, 그 표정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산뜻한 미소만 남았다.
“아, 예. 그러시겠죠.”
말 그대로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지난 며칠간의 여정에서 에드릭 덴카르트는 시종 로벨과 밀접하게 생활했다.
그건 저택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상당히 잘못된 질문이라 답할 수 있겠다.
저택에서라면 이불을 뒤집어썼겠지만 여기선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그에게는 마차 멀미가 있어서 이불이나 담요로 전신을 가리기도 불가했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시종에겐 그야말로 좋은 먹잇감.
그리고 로벨은 먹잇감을 놓치는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었다.
“도련님, 창밖이 보이시나요? 어제처럼 비가 오지 않습니다.”
“…….”
“도련님, 도련님…….”
그놈의 도련님…….
혹시 공작부인이 정신 교란을 위해서 저놈을 붙여놓은 걸까.
결국 ‘입 다물어.’라고 거칠게 명령하자 로벨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특유의 광기로 반질거리는-누군가는 별이 쏟아진다고 하겠지만- 보랏빛 눈동자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몹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눈을 감으라고 하자, 로벨은 또 흔쾌히, 얄미울 만큼 빠른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 코 고는 소리는 마차가 비탈길을 달리는 소리보다 커서 귀를 막았다.
다른 시종으로 바꾸려 해도 그건 더 큰 문제였다.
로벨만큼 땀 냄새가 나지 않는 시종도 드물었으니까.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었다.
다른 시종을 데려온다면 그땐 역한 냄새로 고통받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
설령 저놈을 내보낸다 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막사나 마차에 기어들어올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한 유감스러운 연유들로,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었지만, 놈을 파악하고 말았다.
그런데 시종 로벨은 생각보다 더 악질적인 놈이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배는 많은 의원을 살살 비꼬질 않나, 의원이 정성껏 달여온 약을 어딘가에 버리고 와선 히죽히죽 웃었다.
어차피 줘도 먹지 않을 약이었기에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얼굴이 과거 어머니께서 거리에서 주워와 읽어주신 책 표지의 소악마와 꼭 닮았다.
‘저게 어딜 봐서 사교적이고 선량하다는 건지…….’
우연찮게 막사 사이로 들었던, 다른 하인들이 그를 칭찬하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로벨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굳이 대답하지 않으려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한 번쯤은 저놈이 당황한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놈을 비웃고 있었다.”
“뭐라고요? 제 생각을 하셨다고요??”
……이게 아닌데?
저놈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걸 잊고 말았다.
에드릭은 그의 기뻐하는 얼굴에 당황했으나, 이내 평정심을 찾고 정정했다.
“착각하지 마. 네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너를 비웃은 거야.”
“아니, 그러니까, 저를 비웃었다는 게, 제 생각을 한 거잖아요.”
그건…… 맞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말에 에드릭의 알문이 막혔다.
의도와 다르게 시종은 더 의기양양해지고 만 것이다.
“뭐였어요. 왜요. 무슨 생각 하신 건데요?”
“네가…….”
사실대로 말하려던 그는 멈칫했다.
차마 너를 칭찬하는 말을 엿들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다면 저놈이 ‘하핫. 앞으로는 엿듣지 말고 앞에서 들으세요!’라며 귀 아픈 얘기들을 늘어놓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잔뜩 기대하는 로벨에게 에드릭은 자신이 마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길 꺼냈다.
“……그 옷차림이 후줄근하고 천해.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어.”
이것도 아닌데…….
에드릭은 순간 말실수를 인지하고 당황했으나, 시종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는 오히려 더 해맑게 물었다.
“제가 좀 그런 편이긴 하죠. 그럼 제게 도련님 옷을 빌려 입는 아량을 베풀어 주실 건가요?”
“……마음대로 해!”
로벨과 이야기해봤자 그의 손해였다.
더 말리기 싫어서 대충 윽박지르자, 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럼 저도 보답할게요.”
그것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뻔뻔한 로벨은 다음 날부터 그의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그 태도가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에드릭이 안 입어 본, 생전 처음 보는 옷들도 많았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붉은 자수가 놓인 옷보다 더 고급스러운 옷들도 있었고.
그러나 딱히 거슬리진 않았다. 애초에 그의 것이 아닌 공작부인의 소유이니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막사에 와서 산적을 소탕했다고 보고하는 블리반도 그걸 목격했다.
그는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이상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했다.
에드릭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진 창밖 풍경에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던 건가.’
고작 몇 달 새인데도 그에겐 버거울 정도로 넓고 컸던 마을이 작고 허름하게만 보였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저긴…… 어머니와 갔던 곳이야.’
그러다 공작가 마차를 발견하고 놀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좋은 추억은 조금도 없었으므로 커튼을 쳤다.
마을 공동묘지에 도착하자, 덩치 큰 시종이 그를 휠체어에 태웠다.
그런데 에드릭은 묘지로 들어가라 명하지 못했다. 다른 묘비석에 가지런히 놓인 꽃들을 발견한 탓이다.
뒤늦게 자신만 빈손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낭패였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지는데,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공자님.”
긴 금발의 기사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국화 꽃다발을 건넸다.
마을에 인접할 무렵부터 그의 호위를 도맡던 젊은 기사였다.
선한 인상이 사람을 죽이긴커녕 말다툼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처럼 생겼다.
하지만 그는 저런 외양으로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도, 세상에 대가 없는 선의가 없다는 사실도 이곳에서 배웠었다.
경계 서린 눈으로 올려다보자 기사가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공…….”
그런데 그때였다.
“도련님,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