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2)
12
노부부는 이곳에 남은 에드릭 모자의 물건은 다 처분했다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에드릭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몰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작은 집을 헤맸다.
목발을 늘 세워두었던 페인트가 반 이상 벗겨진 벽과 현관, 주방이라고 부르기에도 조잡스러운 공간의 식탁 옆…….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제 더 둘러볼 필요도 없어…….’
침울함에 입술을 깨무는데, 밖에서 무슨 소란이 났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촌장?’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주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건지, 로벨은 다른 명령 없이도 즉시 밖으로 향했다.
정원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공간에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를 괴롭히던 청년과 그의 생모를 괴롭히던 촌장이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매번 바닥을 기는 벌레를 보듯 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목발! 모, 목발이 있는 곳을 압니다! 저희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요!”
이들은 에드릭 모자를 보면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난다며 코를 움켜쥐었다. 힘없는 모자를 그런 식으로 모욕한 것이다.
그래 놓고 인제 와서 목발을 보관하고 있었다니…….
뻔뻔함에 치가 떨렸지만, 에드릭은 급하게 물었다.
“내 목발, 어디 있다는 거야.”
“그, 그게…… 물건 보관소에, 보관을 해두었습니다요. 그런데 워낙 고가의 물품이다 보니 꺼내기가…….”
군침을 삼키는 부자의 눈동자가 그의 옷가지에 닿았다. 역겨울 정도로 탐욕이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에드릭은 그들의 속셈을 눈치챘다. 그러나 마음대로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을지언정 수중엔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비굴하던 부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상대는 대귀족의 사생아.
달라붙으면 어떻게든 뜯어낼 게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곧, 장사치처럼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말했다.
“큰 보관료는 아닙니다요. 10골드 정도면…….”
기가 막혔다.
아무리 배운 게 없는 그라도 10골드의 가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이 살던 집보다는 그 값어치가 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기사들의 시선에 의혹이 깃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느냐는 이상한 눈빛들이었다.
에드릭은 참담함에 이를 사리물었다. 당장 목발을 달라 요구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에드릭이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은 한 푼도 없었기에.
‘그렇다고…… 주변 기사들에게 돈을 빌릴 수도…….’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로벨이 입을 열었다.
“가져오세요.”
“……예?”
“가져오는 물건이 도련님의 마음에 차면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
로벨이 눈짓하자, 덩치 큰 시종이 묵직해 보이는 가죽 가방을 들고 왔다.
가방을 열자 수두룩한 금화가 눈이 멀 정도로 반짝였다.
그 영롱함에 잠시 숨을 멈췄던 술주정뱅이 촌장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뭐 해! 어서 안 가고!!”
술주정뱅이가 아들의 등을 떠밀며 독촉하자, 그가 허겁지겁 자리를 떴다.
에드릭은 바로 앞에서 그걸 보면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저건 대체 어디서…….’
그러나 의문은 십 분도 가지 않았다.
역시 보관소는 헛소리였는지, 촌장의 아들은 헐레벌떡 목발을 감싼 천 꾸러미를 가져왔다.
그건 곧 에드릭에게 잘 보이게 펼쳐졌다.
일순간 사고가 둔해졌다.
‘…….’
그의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사용한 흔적, 여기저기 부딪친 자국이 남은 낡은 목발에 이름이 작게 표시되어 있었다.
Edric, 어머니가 손수 새겨주신 것이었다.
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그이지만, 자신과 어머니의 이름만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가져오라 명할 수가 없었다. 저 돈은 로벨의 것이니 그에겐 자격이 없었다.
간절하게 바라만 보는데, 로벨이 목발을 가져왔다.
귀중한 것을 다루듯 섬세하고 정중한 손길이었다. 주인에게 건넬 때는 더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코앞에 두고서도 그는 쉽게 받지 못했다.
“도련님.”
그 부름에 굳어 있던 그가 흠칫 놀라자, 로벨이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불안하게 로벨과 목발을 번갈아 보던 그는 목발을 천천히 받아들었다.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그토록 찾던 것이다. 혹여 누가 다시 뺏어가기라도 할까 아플 정도로 꽉 안았다.
주인의 상태를 고요하게 지켜보던 로벨이 고개를 돌려 촌장 부자에게 물었다.
“다른 남은 건 없습니까.”
“……없어.”
대답은 에드릭이 했다.
다른 걸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이 목발도 그의 생일날, 어머니가 십 년 넘게 길렀던 머리채를 잘라 구해온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긴, 곱게 땋은 자신의 머리를 좋아했다며 소녀처럼 웃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해 모두 잘라버렸다.
그때를 떠올리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슬픔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목발을 더 힘주어 안았다.
눈치를 보던 촌장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은 이제 저희가 가져가도 되는 겁니까요?”
“……우리 집이 쓰레기 더미라고 했잖아.”
에드릭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곧 물기 어린 눈동자가 그들을 쏘아봤다.
“내 목발을 보고 쓰레기라고 했으면서…… 어머니를 쓰레기나 파는 여자라고 모욕해놓고…… 대가는 가져가고 싶은 거야?”
“아이고, 저희가 귀하신 분들께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련님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촌장은 되레 자신이 모욕받은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하자 에드릭은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무력했다.
그때, 로벨이 갑자기 가방을 직접 들었다. 꽤 무거운지 인상을 쓰면서도 고집스럽게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제야 사례를 주는 건가. 촌장 부자의 얼굴이 곧 화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대를 깨고 로벨은 뒤로 획 돌아 협소한 정원 끝으로 갔다.
그의 구두는 나무 거름통 앞에서 멈췄다.
모두가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로벨이 가방 속 금화를 거름통에 그대로 들이붓듯 쏟아버렸다.
와르르, 요란한 소리와 불결한 냄새가 정원에 삽시간에 퍼졌다.
“아, 안 돼!”
새파랗게 질린 촌장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로벨이 가방 끝을 잡고 남은 금화 한 닢까지 빠짐없이 털어 넣어버린 후였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가방까지 준다고는 안 했는데요.”
온화하게 웃는 얼굴과 달리 눈빛에선 미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촌장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서도 아무 말도 뱉지 못했다. 일개 시종이라도 고위 귀족의 시종이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기사들까지 지켜보는 상황.
말 한번 잘못했다간 귀족 능멸이니 뭐니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었다.
촌장은 부들부들 떨면서도 참아냈다.
그 꼴을 지켜보던 로벨의 눈이 촌장의 등 뒤로 향했다. 이윽고 당혹감이 짙은 녹색 눈과 마주쳤다.
에드릭이 무슨 말도 안 했는데, 로벨은 ‘아, 네.’라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도련님께서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라 명하시네요. 거스름돈은 당연히 필요 없고…….”
말을 마무리할 즈음, 로벨은 가방을 거름통에 던져버렸다.
“이것까지 다 그대로 가져가시랍니다.”
더러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듯 무성의한 동작이었다.
* * *
원작에서 에드릭의 목발은 언급만 될 뿐, 등장하진 않았다.
큰 사례를 기대하던 술주정뱅이 촌장이 에드릭의 감감무소식에 열이 받아 그것을 난로에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황태자가 찾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래서 내가 구해줘 버렸다.
“그 목발은 한시도 손에서 떼놓지 않더라.”
회귀 후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지금은 많이 지쳤는지 그 상태로 자고 있다. 오늘은 이제 누가 업어가도 안 깰 거야.”
오는 중간까지 도련님을 모신 림슨 형은 내게 상황을 꼼꼼히 전해주었다.
용병 시절에 의뢰인 속내를 훤히 들여다봤다는 말이 허풍은 아니었다.
“고마워요, 형. 조만간 르네 누나랑 자리 마련해줄게요.”
‘네놈이 그걸 어떻게!’라는 표정을 짓던 림슨 형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만 봐도 묻고 싶은 말이 뻔해서 먼저 대답해주었다.
“돈 안 훔쳤어요. 공작부인이 챙겨줬던 거예요. 도련님을 잘 돌본다고 상으로요.”
“……네 몫은 따로 챙겨두긴 했고?”
“그랬을 것 같아요?”
스푼으로 수프 그릇을 휘저으며 장난처럼 반문했다. 그러자 형이 무슨 상상을 하는지 미간을 모았다.
내가 주름을 펴라는 시늉을 했지만 심각한 표정은 그대로였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형. 세상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더라고요.”
바로 건강이었다.
건강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을 떠올리면 나를 치유해주는 에드릭을 위해 쓴 건 아깝지 않다.
그리고 어차피 돈 가방 하나도 남겨놨는데 뭐 어때.
“오히려 지금 일들은 저에게 과분해요.”
나는 수프를 마저 후룩 떠먹었다.
그래서 형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네놈은…… 돈보다도…… 사랑이 중요했던 거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