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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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모전자전이라고.
에드릭은 쓰게 웃었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으셨겠지.’
돌이켜보면 자신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같았다.
북부 세 거점에서 돌아온 뒤로 서서히 나빠졌던 몸의 상태가 체감될 정도로 악화되고, 힘 조절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신약 개발 길드에게 페러스 신약 개발에 대한 속도를 더 신속히 의뢰하기까지 했었다.
그것도 로벨이 병에 대해 고백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에드릭은 로벨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떨어진다 해서 이 병이 쾌유 된다고도 장담할 수 없었기에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 에드릭은 억울하지 않았다. 두렵지도 않았다.
그간 이 모든 불길한 징조에 앞서 로벨을 선택한 것은 그였다.
그러니 눈앞에 어떤 진실이 있어도 감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차라리 진실을 파헤쳐야 해.’
결심한 에드릭이 책의 첫 장을 펼쳤다.
남루한 종이에 지금 시대에 봐도 세련된 필체가 쓰여 있었다.
테루아 남쪽 해 파도는 오늘도 심술을 부렸다.
사나운 해풍에 아버지가 준 모자가 날아가고, 선원들의 욕설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벌써 네 번째 탐험대의 선박 수십 척 이상이 만신창이가 되어 어디론가 떠밀려갔다.
영생을 꿈꾸는 왕의 헛된 탐욕에 수많은 상인이 줄지어 바다를 무덤으로 삼아야 했다.
신의 숲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한 걸까.
아무래도 초대 상단주는 항해에 뛰어난 듯했다.
신랄한 비난 뒤로는 항해 일지를 볼 수 있었다.
기상과 해상, 침로를 비롯하여 모든 것이 날짜별로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살피고 2주의 기록이 되었을 때, 커다란 글자가 새겨졌다.
테루아 왕은 틀리지 않았다.
마침내, 나 열 번째 탐험대의 라즐리는 디프의 근거지를 발견했다.
***
“야, 정신 차려, 네이선! 제발 일어나!!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눈을 감은 동료의 뺨을 후려치던 라즐리는 결국 지쳐 모래사장에 누워버렸다.
정면의 우거진 숲 한가운데 디프의 근거지를 상징하는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그러나 그곳까지 도달하기에 모든 것이 부족했다.
식량은 일찌감치 바닥났고, 식수라 불릴 것이 없었다.
동료들도 모두 숨을 거두었으며, 정신력도 남아나지 않았다.
기를 쓰고 여기까지 홀로 살아남았지만,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아마 묘비명조차 남기지 못할 개죽음이었다.
“……망할.”
울음기 섞인 욕설 뒤로 파도 소리가 따라붙었다.
라즐리는 이를 갈았다.
이젠 저 파도 소리에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모래가 묻지 않은 팔 안쪽으로 눈가를 훔치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라즐리는 휘청거리면서도 마지막 기운을 짜내 긴 은발부터 부츠까지 모래를 털었다.
이제 정말 독기만 남았다.
“라즐리, 라즐리. 너야말로 정신 차리자. 그 개고생을 하고서 왔는데 아무것도 못 보고 죽을 수는 없잖아.”
고작 왕의 불로불사라는 탐욕 때문에 희생당해 죽을 수는 없었다.
설령 재수 없게 죽더라도…….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는 보고 죽어야지.’
라즐리는 마지막 힘을 짜내 숲으로 들어가 보려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했다.
이 숲은 무슨 미로라도 되는 것 같았다.
‘……같은 장소만 빙빙 돌고 있어.’
단검으로 나무에 표식을 하는데, 그것마저 힘이 빠져 하기 어려웠다.
탈수 증세였다.
“헉, 헉…….”
오늘처럼 쨍쨍한 날씨를 좋아하지만, 지금은 머리 꼭대기에 오른 태양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야자수 같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눈앞이 핑 돌았다.
그나마 산짐승에게 잡아먹히지 않아서 다행인 걸까. 하지만 이렇게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헉헉거리는 숨을 참는 그때, 저 멀리서 금색 무언가가 눈에 아른거렸다.
‘……사, 사람?’
라즐리는 모래로 꽉 막힌 듯한 목에 힘을 줬다.
“살, 살려…… 살려주…….”
그런데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금색 털을 가진 들짐승이라도 되는 걸까.
금빛 무언가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떠나버렸다.
라즐리는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욕설을 뱉었다.
‘저 야박한 새끼가…….’
그날 밤, 다행히 비가 내려 라즐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가 디프의 아이라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
쪼개진 선박의 파편에 기대 1주일간의 상황을 기록하던 라즐리는 고개를 들었다.
먼발치에서 라즐리를 내려다보는 존재는 인간 아이의 형체와 같았다.
처음에는 디프인지 뭔지 가물가물하던 그 존재는 디프로 추측이 되었다.
욕을 뱉거나 애걸복걸 해도 반응이 없으니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 종족이라 봐도 무방했다.
‘디프가 인간의 형상을 띠었다는 말은 사실이었구나…….’
그런데 사람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도 매정히 지나가는 걸 보면 디프란 존재가 엘프 못지않게 선량하다는 기록도 썩 믿진 못하겠다 싶었다.
라즐리는 생사의 기로에 선 자신을 무시한 저 아이가 참으로 얄미웠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을 외면해도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현재 믿을 것이라곤 저 존재뿐이기 때문이었다.
라즐리는 절박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쟤 말고 어른 디프라도 보이면 좋을 텐데 아무도 없네.’
어쨌든 오늘도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야 저 거리를 유지하는 꼬마 디프와 대화를 시도하든, 나중에 어른 디프를 만나 싹싹 빌어 배를 구하든 할 테니까.
정신을 바짝 차린 라즐리는 숲에 들어가 초입의 나무에서 새알을 능숙하게 구해왔다.
그걸 몇 알 먹으니 기운이 더 났다.
‘……맛있다.’
디프의 근거지라 그런지 알이 윤기 나고 기름졌다.
그 후에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종족의 근거지답게 풍성한 과일을 따 먹었다.
그마저도 그녀가 먹었던 과일 중에 가장 달고 맛있었다.
그런데 디프들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이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멀찌감치서 관찰했다.
‘저게 진짜…… 한 번도 도와주진 않네.’
와삭.
과일을 씹던 라즐리는 사육장의 동물이라도 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엿 같았다.
물고기를 잡은 후에는 비늘을 벗겨 구워 먹기도 했다. 향신료와 설탕 따위가 남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 거친 욕설에도 심드렁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가까이 오고 있어?’
거리는 키를 대략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이의 접근을 누구보다 바라던 라즐리는 당황하고 말았다.
‘왜 갑자기……. 아, 아! 디프는 후각에 민감하다고 했지!’
라즐리는 주변에 얼른 자극적인 향신료를 뿌렸다.
이 대륙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아무리 디프의 숲에 온갖 것들이 많다 해도 여기서는 보기 드물 것이다.
이걸 식자재로 사용하기 위해선 그 지역 주민들만 할 수 있는 발효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날, 라즐리는 아이의 눈 색을 알아낼 수 있었다.
‘……정말 디프구나.’
금발에 신비로운 녹색 눈.
디프의 상징이라는 세계수 나무의 잎사귀처럼 맑고 선명한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숱하게 봤던 최상급 에메랄드보다 아름다웠다.
누가 봐도 혹할 법한 외모이지만, 라즐리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첫 만남부터 누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할 정도로 매몰찼던 녀석이니 평생 불신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오늘도 가까운 수풀에 서서 자신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아이를 의식했다.
‘……한 번 말을 걸어볼까.’
욕을 뱉어도, 울어도, 타일러도 내내 반응이 없던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지친 라즐리도 어느 순간 말을 걸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예감이 좋았다.
코가 아플 정도로 매콤한 향신료를 뿌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즐리는 멀찌감치 아이에게 나뭇가지에 꽂아 굽던 생선 요리를 권했다.
“너도 먹을래?”
“너도 먹을래?”
“……너 지금 내 말 따라 한 거야?”
“너 지금 내 말 따라 한 거야?”
혹시 약 올리나 싶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싸늘한 낯 그대로였다.
라즐리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디프는…… 인간의 말은 하지 못하는구나.’
라즐리 역시 디프의 말을 하지 못하니 피차일반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그래도 이대로 아이를 보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고, 호감을 사야 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생선을 먼저 먹고, 새로운 것을 들어 아이에게 권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가 먹는 시늉을 하자 알아들은 것처럼 다가왔다.
‘……됐다!’
아이가 한 입 먹더니 도로 내려놨다.
무료한 눈빛을 보아하니 썩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래도 호기심을 산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라즐리는 안도했다.
그날부터 라즐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이와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너, 나, 우리, 전체…….”
“너, 나.”
아이는 그녀가 한 얘기를 바로 알아들었다.
아이의 손끝이 그녀를 향하더니, 이내 자신을 향했다.
그리고는 라즐리가 표현한 것처럼 그녀와 자신을 가리키더니, 이내 양팔을 쭉 뻗어 둥근 형태를 만들었다.
“우리, 전체.”
드디어 희망이 한줄기 비쳤다.
라즐리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라즐리.”
“……라즐리?”
그 외에도 아이는 라즐리가 말하는 것은 스펀지처럼 단박에 흡수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영특했다.
아이는 디프답게 이 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 없었다.
무엇이든 무료해 하는 눈치였다.
감정 없이 아름다운 인형을 앞에 둔 것만 같았다.
라즐리는 그런 아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집에 돌아가야 해.’
이제는 왕의 영생이며 공로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라즐리는 그 무서운 파도를 헤집고 다시 이곳에 올 자신도 없었다.
그러려면 이 아이든, 디프의 어른들이든, 수장이라도 만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어른은 없어?”
“…….”
“혹시…… 내가 어른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아이는 성가신 것처럼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