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62)
162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저무는 석양을 응시하던 알렉시스는 저를 닮지 않은 아들을 떠올렸다.
디프의 근거지로 떠나기 위한 배와 그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 나침반 따위를 준비하며 도와주었는데도 고마운 줄 모르고 시건방지게 굴던 놈이었다.
심지어 마지막까지 의심스럽게 따져 물었다.
[ ……그런데 왜 나를 도와준 겁니까? ] [ 너를 도운 게 아니라, 그 녀석을 도운 거다. ] [ ……? ] [ 로벨 그놈이 일을 잘했다. ]에드릭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알렉시스도 그 반응에 동의했다. 자신이 뱉고도 의아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덴카르트 공작의 수하 중에서 일을 잘하는 인재는 길가에 치이는 돌만큼이나 많았다.
엘리트면서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놈도 있었다. 지금 옆에서 대기 중인 데니안이나 벤자민이 그러했다.
오히려 그놈은 충성을 맹세하거나 아부도 하지 않았다. 존경의 눈빛으로 보지도 않았고…….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무모한 놈은 없었지.’
피로한 눈을 비비면서도, 새우잠을 자면서도 끝끝내 로벨은 덴카르트의 오래된 저주를 풀 준비를 해왔다.
그러고는 저주를 풀 준비를 마쳤는데도 언제 푸냐고 딱히 캐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공작이 기다릴 정도였다.
그 뻔뻔한 목소리로, ‘그래서 우리 도련님 이제 저주 같은 거 없는 거죠?’라고 말하는 순간을 말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큰 포상을 주려 했었다. 그동안 주려던 것은 마다한 녀석이니 더 챙겨야 계산이 맞았다.
하지만 로벨은 그걸 물을 시간에 오히려 더 맹목적으로 에드릭을 챙겼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자기는 7년간 지하에서 모포 한 장으로 버텨놓고, 에드릭이 저택에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일을 하듯 그의 이부자리를 챙겼다.
[ 웨인, 제일 좋은 걸로 바꿔줘. 믿는다. 알겠지?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알렉시스에겐 그 모습이 매우 인상 깊게 남았다.
어쩌면, 그간 로벨이 보여준 맹목적인 헌신에 그도 조금은 동요했는지도 몰랐다.
“데니안, 벤자민.”
“예, 공작님.”
그리고 알렉시스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이제 공작이라고 불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그것이 아쉽고 허탈하기보단 후련했다.
“계승식을 미룬다고 미리 전했겠지?”
“물론입니다!”
에드릭의 뜻에 반하는 일이었으나, 보좌관들이 힘차게 답했다.
어릴 때부터 걷지 못하던 공자가 이토록 장성한 것은 그들의 자부심이 되기도 했다.
그들 역시 에드릭이 당당하게 즉위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꿈꿔 왔다.
에드릭이 알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따질 일이건만 알렉시스도 꿋꿋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현 공작의 뜻이었다. 차기 공작의 뜻은 그가 즉위한 다음에 이루어져야 할 법이다.
무엇보다 알렉시스는 기대가 있었다.
‘거봐요, 우리 도련님이 잘 자라서 공작이 된다고 했었죠?’라고 뺀질거리며 말할 그놈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러면 이제 제 의무를 온전히 마무리한 듯한 후련함이 들 것 같았다.
덴카르트의 검은 사슬이 끊어졌을 때 로벨이 없으니, 내심 찜찜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자신에게 이런 면모가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조만간 돌아올 거다. 오자마자 계승식과 결혼식을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모두 성대하게 준비해둬.”
마법 왕국의 기록에 따르면 에드릭의 시도는 위험했다.
세계수 나무에 힘과 생명력을 빼앗겨서 죽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알렉시스는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석양으로 눈을 돌렸다.
***
에드릭은 디프의 근거지로 향하려 했으나, 뜻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곳은 테루아해의 정반대에 있는, 그것도 파도가 초대형 선박마저 삼킨다는 두려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에 오른 에드릭은 미세하게 남은 정령의 힘을 이용하여 배를 몰았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상 기후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온화했으며 파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이동 속도는 더욱 빨랐다. 다행인 일이었지만 찜찜함은 더 커졌다.
그 이유는 배가 도착하였을 때 알 수 있었다.
에드릭은 나침반 같은 것을 들고서 해안 주변을 배회하던 로벨을 발견했다.
“이상하다. 이게 왜 안 되지?”
“…….”
가만히 서서 눈을 의심하던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로벨?”
“…….”
그 부름에 로벨이 ‘어?’ 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놀라서 할 말을 잃는 그처럼 로벨도 멍청하게 그를 바라봤다.
신약을 개발하는 길드 본부에 머무른다던 그가 왜 여기…….
아니. 자신이 아는 정보를 에드릭도 모른다는 보장은 없었다.
만약 그도 디프족의 저주처럼 남은 힘의 전이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면 이곳으로 왔으리라.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왜 여기에…….”
그렇다면 보내야 했다.
정신을 차린 로벨이 주머니에 나침반을 넣고 황급히 다가왔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돌아가요.”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정말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그래서 다른 설명을 하는 대신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나도 아직 할 수 있어.”
에드릭은 로벨에게 손등을 보여주었다.
새파란 힘줄이 돋아난 손등에는 돛을 내리다가 길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아직 핏자국이 굳지도 않았다.
“왜, 상처가…….”
걱정하던 로벨이 눈을 크게 떴다.
정화의 힘이 조금 남았는지 속도는 느렸지만, 그 상처가 서서히 아물더니 금세 사라졌다.
끝까지 안타깝게 바라보던 로벨은 치료가 끝나자마자 화를 냈다.
왜 그동안 안 썼어?
“그럴 기운이 남았으면 아껴서 몸부터 치료해야지!”
“…….”
당장의 순간을 모면하느라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한 에드릭이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안타까움에 입술을 깨문 로벨은 그의 손등을 쓸어 상처를 치료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로벨의 집에서는 일부 능력이라도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한 것처럼 보이더니 줄곧 이런 상태였다.
에드릭은 어두워진 낯의 로벨을 안아주며 말했다.
“나는 원래부터 디프였으니 내가 더 안전할 거야. 내가 살피고 올 때까지 넌 여기 있어. 내가 돌아오고 나서 같이 가면…….”
“그래요. 가요.”
로벨답지 않게 선뜻 수긍하자 에드릭이 놀랐다.
그녀는 짜증을 감추며 해맑게 웃었다.
“대신 돌아가면 전 마넬부터 보러 갈 거예요.”
……마넬?
언제 들어도 기분 나쁜 어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매우 셌다.
“그거 알아요? 우리 말 편하게 놓기로 했거든요. 마넬이가 저보다 동생이더라고요.”
“…….”
저 우스꽝스러운 호칭에 말도 안 되는 핑계는 도발이 분명했다.
그걸 알면서도 에드릭의 입매가 단단히 굳었다.
그간 마넬라노가 덴카르트 저택에 들어가 로벨을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요구를 해왔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에서도 로벨에게 집착할 것처럼 구는 끈질기고 짜증 나는 놈이었다. 여간 신경 쓰였던 게 아니다.
그리고 배로 짜증 나는 놈이 또 있었다.
“아, 이보 오라버니도 있지.”
“…….”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이보 오라버니거든요.”
……여기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부모님이 아니고 이보 마틴이라고?
에드릭은 로벨에게 제정신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오기 전에는 응당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인사라도 하려거든, 사람 좋은 낯을 꾸미고 있지만 속은 누구보다 음흉한 이보 마틴보다는 부모님에게 했어야 했다.
차라리 로베르 플로르가 나을 법도 했다.
그 부글거리며 끓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벨이 얄밉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냐면……. 궁금해요?”
“…….”
일부러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로벨이 새까맣게 탄 나무를 눈짓했다.
여기선 아니고 저기 가면 알려준다는 뜻이었다.
에드릭이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로벨이 그 갈등을 기민하게 알아채고 말했다.
“가요. 어차피 우린 한마음 한뜻이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또 만났지.”
“…….”
“어차피 우린 하나인 운명이라니까?”
그건 맞지만…….
로벨을 위험하게 만들 수 없어 망설이자 그녀가 애교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이참에 숲 데이트 한번 갈까? 우리 으슥한 데서 뽀뽀해 본 적 없잖아.”
……내가 못 살아.
그러나 로벨이 여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왔을지 알기에 더는 설득할 수 없었다.
한숨을 흘린 에드릭이 침묵하자 그녀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수락의 의미였다.
그녀가 완전히 기뻐하기도 전에, 에드릭은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했다.
“위험한 게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먼저 돌아와서 기다려야 해.”
“그럴게요.”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후에야 그는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는 로벨의 손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은 로벨이 가진 일지와 에드릭이 가진 나침반을 이용하여 숲으로 들어갔다.
로벨은 에드릭의 나침반이 고장 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것은 올 때까진 괜찮았는데 여기선 아예 멈췄기 때문이다.
안도한 로벨은 숲을 지나는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때 이 일지에서 제가 못 봤던 내용은…… 아마 디프가 와서 중간에 손쓴 거겠죠?”
“그래. 디프에 대한 얘기가 더는 퍼지지 않게, 동족의 힘으로 일지 내용을 가려두었겠지. 그래야만 자신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
에드릭이 덤덤하게 말하자 나무 그늘이 얼룩진 로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자신의 집 가족 초상화 앞에서 짓던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없는 가족이 로벨에게 있음을 부러워하기보단 안도하고 있었다.
그 안타까움을 감추기 위해 로벨이 일부러 밝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 혹시 나무 괴물이나 뿌리 괴물 같은 게 나오진 않을까요?
“……그러길 바라는 거야?”
에드릭은 허탈하게 웃으면서도 살기를 띤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검의 손잡이에 힘을 더 주었다.
로벨이 일컬은 괴물이든, 뭐든 나온다면 그녀를 지켜줘야 했다.
그러나 그 각오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이 가는 길은 평온했다.
주변의 식물이며 나무들이 검게 시든 듯 보이며 흙바닥이 쩍쩍 갈라진 것 외엔 위험은 없었다.
어느덧 도착한 디프의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에드릭은 이제 생명의 온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오두막을 하나하나 살폈으나 개미 한 마리 없었다.
“……여기가 거기란 말이에요?”
한편 그의 옆에 선 로벨은 탄식을 뱉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이곳은 빈말로라도 신의 축복과 자연의 사랑을 받은 종족의 근거지답다고 할 수 없었다.
중앙의 세계수 나무는 굵기를 헤아리기 힘든 줄기와 거대한 잎사귀를 가졌지만, 검게 썩어버린 터라 오히려 묘지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두 사람은 앞을 향해 걸었다.
양쪽으로 디프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오두막이 있어 곁눈질했으나, 안은 휑했다. 탁자나 의자, 작은 선반이나 그릇조차 없었다.
에드릭이 동족의 삶이나 문화에 대해 알 수 있는 물건이 있다면 얘기해주고 싶던 로벨은 혀를 찼다.
“뭐, 고귀하고 명예로운 마법 왕국의 정예라더니……. 다 털어갔네요.”
아마 디프가 멸족한 후, 마법 왕국의 마법사들이 와서 다 가져간 모양이었다.
하긴 디프의 것이라면 그 당시에도 인정받는 마법 도구들이 많았으니 이해는 했다.
만약 저 세계수 나무가 죽지 않았다면 저것마저 베어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이 할 일은 마법 왕국의 마법사들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목적을 상기한 로벨이 세계수 나무에 시선을 주었다.
“저걸 해결하면 되는 거겠죠?”
“그래. 하지만 위험할지도 모르니, 내가 먼저 가서 확인을…… 로벨리아!”
로벨은 습득력이 빨랐고, 응용력도 훌륭했다.
그녀는 손이 닿지 않아도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활용했다.
에드릭이 미처 말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움직였다.
로벨의 부츠 밑에서 거미줄 같은 하얀 선이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가닥으로 번져 바닥을 타고 세계수 나무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정화의 힘을 받은 세계수 나무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