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1)
7
에드릭은 의자에 앉은 로벨의 뒤에 자연스럽게 섰다.
뛰어난 전사답게 그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일단, 시녀가 해줬으나 풀렸는지 세 가닥이나 빠져나온 아내의 잔머리를 발견하고선 머리카락부터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길은 숙련된 시종처럼 능숙했다. 혹여 아내가 아플까 봐 손에 힘을 빼며 빗질을 했다.
로벨의 머릿결이 워낙 좋은 터라 꼬임이나 뭉침도 없지만, 힘은 최소한만 주었다.
덕분에 로벨이 가끔 ‘나는 유리 인형이 아니야.’라고 장난을 치곤 했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부드럽고 향기로워.’
로벨의 머리카락을 정성껏 빗고 땋아주는 건 에드릭의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좋은 향이 풍기는,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거나 손끝으로 어루만질 때는 그의 기분도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는 거울 속에 비치는 로벨의 드레스를 신중히 들여다보다가 머리를 반쯤 땋아주었다.
어깨선이 드러나는 드레스이니 머리를 올리는 것보단 반 묶음이 잘 어울렸다.
[ ……왜 이렇게 잘하지?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 머리도 땋아주는 거 아니야?? ]수상하게 갈수록 늘어???
이따금 로벨이 그렇게 장난삼아 묻곤 했다.
에드릭은 그녀를 위해 종종 임무지에선 긴 풀 잎사귀를 엮는 연습을 한다는 얘긴 하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 속 에드릭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었으니,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타고난 듯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흐트러진 그녀의 옷매무새도 만져주었고, 창틀을 넘어오느라 구겨진 치맛자락도 하나하나 구김 없이 펴주었다.
동시에 불과 물, 바람을 활용하는 법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작은 뾰루지는 사라지지 않는 건지 어이가 없고 답답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마지막으로 그녀의 구두에 묻은 먼지도 닦아주었다.
이윽고 굽혔던 허리를 일으키는데, 환히 웃는 얼굴이 보였다.
“예쁘다.”
정면에서 그 얼굴을 바로 본 에드릭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그는 손등으로 열이 오르는 뺨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네가 더 예쁜데.”
그날 밤, 에드릭은 로벨이 얇게 썰어온 오이를 얼굴에 붙였다.
침대에 로벨과 나란히 누운 에드릭은 기분이 묘했다.
실제로 먹는 음식을 얼굴에 붙여서 그런지 어째 진흙보다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음식으로 이게 대체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의 들뜬 표정을 보자 되었다 싶었다.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는 법이랬어.”
나중에는 혹시 치즈나 햄을 붙이는 건 아닐까…….
고심하는데, 그사이에 로벨이 얼굴에 오이를 붙인 채 잠에 빠져들었다.
에드릭은 잠에 깊게 빠진 로벨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른 자신의 얼굴에서 오이를 뗐다.
전적으로 로벨을 믿긴 하지만…… 혹시 모를 부작용이라는 건 늘 있었다. 자신의 피부에 작은 것이라도 더 날까 무서웠다.
그렇게 처음으로 피부 관리에 공을 들인 에드릭은 데뷔탕트 날에 피부가 광채가 날 정도로 빛이 났다.
늘 작은 흠결 하나 없는 피부이건만 오늘은 유독 아름다워서 로벨이 부럽다는 눈으로 봤다.
그러나 정작 에드릭은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로벨을 꾸며주었다.
오늘 그의 임무는 ‘로벨을 적당히 꾸며주기’였다.
‘……로벨을 너무 예쁘게 치장하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어서 안 돼.’
가뜩이나 사람 눈길 사로잡는 로벨이니 과하게 치장해서 좋을 것 없다.
그러는 내내 로벨이 에드릭에게 왜 이렇게 오늘따라 피부가 좋아 보이냐며 역시 오이가 최고라 했다.
“……나도 동의해.”
에드릭은 사실 피부를 상하게 만든다는, 구운 음식이나 자극적인 요리마저 줄이고 생채소만 죽어라 먹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것마저 말한다면 어딘가 한 조각 남은 자존심이 매우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에드릭은 치장을 마친 로벨에게 슬그머니 물어봤다.
“……더 꾸밀까?”
“이거면 충분해. 깃털 장신구도 잘 꽂았네.”
그 대답을 바라며 긴장했던 에드릭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서 자신이 안도할 때 로벨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짓는 미소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데뷔탕트에 참석했다.
***
이번 데뷔탕트는 황성의 홀에서 성대히 열렸다.
로벨은 무표정할 때는 싸늘한 인상이기 때문에 최대한 평소처럼 평온한 미소를 머금으려 했다.
그러면서 다른 영애들과 눈인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에드릭은 자신의 커다란 몸집으로 그녀를 가리려 했다.
로벨의 노력을 알아서 되도록 그러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누가 시선을 주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평소라면 눈치챘을 법도 한데, 로벨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다른 것에 더 신경 쓰는 듯했다.
“……여보. 역시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조금은 민망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에드릭은 웃는 얼굴을 하고서도 안절부절못하는 로벨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전에 에드릭이 긴장할 때마다 로벨이 해주던 대로.
그리고는 눈에 딱 보이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로벨리아 덴카르트. 네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가장 예쁘기도 해.”
“……이젠 그런 느끼한 말도 잘 하네?”
피식 웃은 그녀의 굳었던 어깨가 한결 편안히 이완되었다.
이제는 에드릭 자신처럼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시간이 차차 흐르자, 귀족 소녀들의 적대적인 눈빛이 유해졌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만으로도 로벨은 내심 안도했다.
“역시 입장과 오프닝 댄스 순서를 바꾸지 않길 잘했죠?”
테루아의 데뷔탕트 입장 순서는 작위와 명예에 따라서 다르다.
보통은 남작가의 영애가 먼저 입장하며 가장 고귀한 가문이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오프닝 댄스까지 바로 연결된다.
딜라일라 황녀가 데뷔탕트에 참석했을 때는 당연히 그녀가 맨 마지막 순서였고, 오프닝 댄스도 추었다.
에드릭은 덴카르트의 권세에 따라서 당연히 로벨도 그 특권을 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 작년 겨울부터 예정되었던 데뷔탕트잖아요. 분명히 주인공으로 내정된 영애가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공작가에 적합한 순서만 된다면 꼭 주인공 자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했다.
데뷔탕트는 다 같이 사교계에 데뷔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적어도 평민이던 그녀가 그들의 전통을 따르고, 이질감 없이 행동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데뷔탕트의 성공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로벨의 모습에 에드릭은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
사납고 예민하던 자신이 어떻게 매번 한 사람에게 번번이 반하고 깊게 매료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에드릭은 그런 로벨의 진심을 다른 귀족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중적으로 그러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알면…… 로벨을 가만두지 않을 텐데.’
조바심이 났다.
어린 사람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지체가 높든 낮든, 누구나 로벨과 친분을 쌓고 싶어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 덴카르트 부인.”
오늘 데뷔탕트에 참여한 남작가의 영식이 다가와 예법대로 인사를 건넸다.
공작인 자신에게도 당연히 인사를 했으나 에드릭은 그런 것 따윈 하나도 신경 쓰지 못했다.
‘로벨을 왜 저렇게 열렬하게 보고 있는 거지?’
상대는 온화한 인상에 부드러운 눈매를 가졌다.
……그리고 에드릭보다 최소 서너 살은 어려 보였다.
로벨이 좋아할 만한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채 사나운 미소를 띠고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느 사내라도 지레 겁을 먹고 피하는 분위기였다.
그 난폭하고 맹렬한 기세에 남작가의 영식은 움찔했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자리를 떠나지 않아 에드릭의 미간에 실금이 갔다.
‘……아주 작정하고 온 모양인데.’
에드릭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동생이 나았습니다.”
“……동생분께서 저와 구면이신가요?”
“아니요.”
“…….”
그럼, 왜 내 덕분에 나았다고 하는 거지?
로벨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소년이 말갛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은 LB-206을 먹고 병이 나았습니다.”
최근 엘카탄 상단의 배후가 테루아에 드러났다.
그 배후가 덴카르트 공작가이며, 오래전부터 정체를 숨긴 채 좋은 일에 힘써왔다는 사실이다.
근래 엘카탄 상단의 활약을 따져보면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맞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덴카르트의 그런 행보를 황가에서도 지지하며 힘을 보탰다고 여기게 되었다.
에드릭이 어느 순간 드러날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루이스 황태자와 입을 맞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엘카탄의 신약 개발 투자와 ‘LB’라는 약 이니셜에 사람들은 한 가지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벨리아 덴카르트였다.
아내 사랑이 자자한 공작이므로 그녀의 뜻이 어느 정도는 들어갔다고 추측하곤 했다.
“제겐 과분한 인사예요. 제, 남편과 상단이 하는 일인걸요.”
“하나도 과분치 않아. 네 꿈이라고 해서 내가 하기 시작한 거잖아. 네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그 약은 먹지 못 했을 거야.”
우리 여보는…… 이런 데서 꼭 당당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더라?
눈빛으로 눈치를 준 로벨이 어색한 미소를 띠자, 아내 자랑에 한창이던 에드릭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 뒤로 아직 남아있던 소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역시, 그랬던 거군요.”
그는 무척이나 감명이 깊었던 것인지 손을 왼쪽 가슴에 얹은 채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세 사람을 예의 주시하던 주변 귀족들도 매우 감명을 받았는지 서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날 이 사건으로 로벨리아 덴카르트 공작부인의 입지에 대한 소문이 더 자자해졌다.
남편의 사업을 주관할 정도로 가문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에드릭 덴카르트 공작의 안목은 더 높게 평가받았다.
평민으로 자라난 여인이 귀족의 품위와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태도는 공작부인으로서 한 점 부족함도 없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또한, 황후가 주기적으로 여는 카드 게임 모임이며 다른 사교 모임에서 그녀가 대단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림을 그리던 에드릭은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신문을 소리 내어 읽던 로벨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만하면 늦깎이 데뷔탕트도 대성공 아니에요?”
“응. 그런데, 로벨.”
“……?”
“적당히 이기고 있는 거지?”
에드릭이 로벨이 두 손으로 든 신문의 구김까지 디테일을 살려 그리면서 물었다.
부부가 이런 것도 닮는지.
애초에 타고나길 손재주도 좋은 로벨이었고, 근래는 디프의 혈통 덕분에 시력은 물론이고, 바람의 힘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그녀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가 방금 말한 카드 게임에서 한 번도 질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에드릭은 아내인 로벨이 의외로 호승심이 강한 때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아직 남편을 얕잡아 보는 간 큰 귀족들도 있을 테니 그녀가 어느 순간 이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로벨은 자신보단 남편에 대한 모욕은 결코 참지 못했다.
굳이 참으려 하지도 않았다. 에드릭은 그게 좋으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그 염려를 읽었는지, 로벨이 씩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애들 울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기고 있어.”
“…….”
역시나 사교계에서 온전히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닌지, 약간 비틀린 어조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임의 귀족들을 질투하던 에드릭은 속으로 그들에 대한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