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2)
8
황후가 주최하여 열리는 사적 모임에는 주로 고위층 귀부인들이 참여하여 담소와 체스, 카드 게임을 즐기곤 했다.
그리고 로벨리아 덴카르트가 황후의 사적인 초대를 받게 되었다.
덴카르트 공작부인이 사교계에 데뷔했으니 황후는 마땅한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소식에 모임의 귀부인과 혼인을 앞둔 영애들은 대부분 매우 흥미로워했다.
새 얼굴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의미로, 그녀들은 황후를 제외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 모였다.
그 관심은 오롯이 공작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대 공작께선 덴카르트 공작부인이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허락해주었군요?”
“귀족의 오랜 귀감인 덴카르트답게 시부와의 사이도 참으로 돈독하니 저 역시 보기 좋아요.”
그녀들은 덴카르트 전대 가주의 판단도 놀라워했다.
용케도 그의 신임을 얻었구나,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평민 출신이었으니, 가문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현 공작은 유년기부터 이어져 온 아내 사랑으로 판단력을 상실했다 해도 전대 공작은 아닐 것이다.
냉철하기로 유명한 그라면, 로벨리아 덴카르트를 작은 사교 모임부터 참석시키며 교양을 다지려 했을 것이다.
데뷔탕트에 참석하지 않았던 모임의 일원들은 덴카르트 공작부인이 참으로 용케도, 전대 공작의 마음까지 돌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귀부인들은 만족했다.
“우리에게는 기회이지요.”
현 공작이 아무리 정치에 뜻이 없다 해도 과거부터 공들여 쌓아 올린 그 명성과 영향력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현 황제 루이스가 에드릭 덴카르트를 유독 아꼈다.
덴카르트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후원을 비롯한 새로운 사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며, 거절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불어 그가 알현하러 오는 날에는 식사 시간도 미룬다는 사실을 모르는 귀족은 없었다.
그런 가문의 안주인이 모임의 새 얼굴이 된다니 저들의 위상도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기에 귀부인들은 만족했다.
그러나 에드릭의 귀환 이래 그를 사윗감으로 점찍어 두었던 귀부인들의 속은 조금 쓰렸다.
낯이 밝지 않았다.
“…….”
콧대 높은 자신들이 온갖 핑계와 구실을 만들어 초대장을 보냈으나, 에드릭이 응하긴커녕 답장 한번 제대로 보내지 않았으니 좋은 감정은 들 수 없었다.
거기다 에밀리 덴카르트와 친분이 두텁던 귀부인들은 로벨리아의 존재가 마냥 탐탁지만은 않았다.
그럼, 어쩔까.
눈짓을 교환하던 모임의 일원들은 살랑살랑 흔들던 부채 위 눈을 사르르 접었다.
“첫날은 간단히 카드 게임부터 하는 편이 좋겠군요.”
귀부인들이 일찌감치 접한 카드 게임은 귀족식 룰을 따르며, 같은 카드를 이용한다 해도 평민의 규칙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무리 공부를 했다 해도 실제로 경험을 해보지 않는 이상 패를 완전히 익히기는 어려운 법이다.
로벨리아 덴카르트가 데뷔탕트에서 썩 좋은 행실을 보였다만 거기까지일 것이다.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처럼 기부터 누르고, 적당히 맞춰주면서 휘두르자는 의미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야지.’
그렇게 판단하며 귀부인들은 수를 짰다.
마침내 모임 당일.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로벨리아 덴카르트입니다.”
다들 처음 참석한 덴카르트 공작부인을 평가하기 바빴다.
화장이며 장신구, 드레스, 자세와 표정, 걸음의 속도까지 하나하나 냉혹하게 살폈다.
그런데 수도 귀부인들과 비교해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실비엣 부인에게 예법 교육을 받았다더니, 생각보다 제법이네?’
그러나 황후를 뒷배로 승승장구하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모임의 귀부인들은 서로 눈짓을 하며 계획의 이행을 알렸다.
이윽고 모임에서 어린 편에 속하는, 혼인 예정의 영애들이 운을 띄웠다.
“황후 폐하, 오늘은 카드 게임을 하심이 어떨까요?”
“카드 게임이라.”
황후는 덴카르트 부인을 배려한 것인지 잠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귀족들의 게임은 평민들이 지역마다 일반적으로 만든 룰과 달리 패의 무늬 서열이 따로 있었다.
아무리 머리로 이해하고 준비를 해왔다 해도, 실전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성품 좋은 황후가 그 점을 간과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연륜 있는 귀부인들 여럿이 동조하듯 말을 거들었다.
“저도 첫 알현에 전 황후 폐하와 함께 한 카드 게임이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답니다. 덴카르트 부인께도 몹시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테지요.”
“황후 폐하께서 가장 즐기시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덴카르트 부인과 그들의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당시 그녀들은 이미 룰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은 모두 내색하지 않았다.
게다가 부드러운 표정과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니 진심 어린 권유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미 덴카르트에 은혜를 입은 황후 유리엘은 거절하려 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덴카르트 부인이 싱긋 웃었다.
“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사자가 이렇게 나오니 황후도 다시 물을 수 없었다.
다만, 황후는 연습 게임 전에 룰을 한 번 더 직접 일러주었다.
다정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눈꼴시어서 귀부인들은 웃는 낯으로 덴카르트 부인을 응시했다.
예상대로 덴카르트 부인은 아직 룰을 다 익히진 못한 듯이 집중하였다.
차의 김이 식을 때쯤, 그녀가 웃었다. 준비되었다는 뜻이었다.
“시작할까요?”
덴카르트 부인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라서 황후도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
그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피던 케센의 공작부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제안했다.
“황후 폐하. 오늘은 작은 내기라도 하나 할까요?”
“내기라.”
“네에. 간소한 내기라도 판이 더 흥미로워지니까요. 덴카르트 부인께선 어떠신가요?”
“제 뜻도 같습니다.”
잘 걸렸구나.
귀부인들은 속으로 덴카르트 부인을 비웃었다.
이제 곧 패배감에 찌든 몰골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패를 열었다.
그러나 완벽한 오판이었다.
덴카르트 부인은 이미 룰을 모두 익혔을뿐더러 실전에 강했다.
베팅하는 카드 패는 끝까지 훌륭했고, 무엇보다 내내 미소 띤 표정은 당최 읽을 수가 없었다. 어떤 패를 가졌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전은 처음일 텐데, 이렇게 흔들림이 없을 수가…….
모두가 동요하는 순간, 덴카르트 부인이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마치 사냥감을 물색하기 직전 맹수의 눈빛이라 그녀들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어쩜 저렇게 티가 나게 승부 조작을 하려고 하지?’
누굴 바보로 보나.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났다.
그래서 디프의 힘을 이용하여 패를 은근슬쩍 바꿨고, 그들의 패를 모두 훔쳐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눈치챈 사람은 없었고, 오늘 승자는 나였다.
모임의 귀부인들은 내 앞에 수북하게 쌓인 칩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후만은 졌는데도 아주 기쁘다는 듯이 환히 웃었다.
“무패는 예로부터 덴카르트의 숭고한 상징이지. 정말로 덴카르트답구나. 내기에 이겼으니 원하는 것을 말해 보거라.”
“내기는 다 함께 하였으니 다른 분들께서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라 예상했는지 낯빛이 좋지 않았다.
특히 궁정의 일을 기록하는 사관의 눈치를 흘끗흘끗 봤다.
내가 무리한 청을 하여 그들이 거절하면, 당연히 불명예가 따른다.
지키지 못할 말을 꺼낸 것 자체만으로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부담을 빠르게 덜어주었다.
“여러분들의 영지에서 돌을 하나씩 가져와 주셨으면 합니다.”
“……돌이요?”
“각 영지의 주인 되시는 분들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뵙지 않았습니까.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답니다.”
내 말에 미묘하게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한결 풀렸다.
다들 내가 어려운 청을 할 줄 알고 바짝 긴장한 모양이었다.
돌이라면 굳이 영지에서 가져올 필요 없이 시녀를 시켜 수도에 있는 돌을 구해와도 되는 노릇 아닌가.
그 생각을 읽었는지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좋다. 각자의 영지에 방문하여 돌을 가져오는 것까지 황궁의 시녀들이 확인하도록 하여라.”
그 후로도 나는 이 모임에서 승리했고, 사교계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종종 비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마땅한 보복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사교계에서 단단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게 부정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드물게 연애 결혼한 내게 호감이나 호기심을 가진 자들도 몇몇 있었다.
나는 그들과 친분을 더 도모하기 위해 말을 나누었다.
“덴카르트에 초대해도 될까요?”
“저희가…… 덴카르트 영지에요?!”
다들 동남부의 낙원이라는 덴카르트를 선망하고 있었으나 근래 영지에 방문한 귀족은 극히 드물었다.
특히나 가신이 아닌 귀부인의 경우에는 혼례식에 참석한 실비엣 부인 외에는 전무했다.
그래서 때를 맞춰 그녀들을 초대했고, 에드릭과 정찬도 함께했다.
에드릭이 흔쾌히 수락은 했어도 내심 걱정했는데, 우려와 달리 매우 자연스럽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호화로운 와인을 준비해주기까지 했다.
아내가 정식으로 초대한 벗들이 처음이라 몹시도 즐겁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입에 발린 소리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예전의 에드릭이 아닌 것 같았다.
‘……대단한데?’
에드릭이 간소한 옷차림으로 나올 때부터 감동했던 귀부인들은 그 말에 더욱더 감동한 눈치였다.
“……저, 저희가 정말 첫 손님인가요? 어쩜 이리도 영광일 수가…….”
‘아닌데.’
나는 속으로 강하게 부정했다.
그럼 마넬라노나 이보는 뭐란 말인가.
초대는 여태껏 두 사람에게도 늘 했던 거라 기분이 약간 알쏭달쏭해졌다.
그러나, 에드릭의 근사한 미소를 감상하느라 생각을 접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시다니 기쁩니다. 수도로 초대해주신다면 다음에는 저도 아내와 기필코 함께하겠습니다.”
초대에…… 기필코라는 말까지 붙일 정도인가 싶긴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의아해하는 것은 나뿐이었다.
귀부인들은 에드릭의 적극적인 면모에 매우 만족해했다.
“다정한 부군을 두셔서 부러워요. 첫 만남부터 그러셨지요?”
“……호, 호호. 그렇지요.”
나는 내가 들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 만남에는…… 꺼지라고 했기 때문이다.
던지고, 깨트리고, 화내고…….
옆자리를 흘끗 보니, 에드릭은 예법의 정석처럼 우아하게 고기를 썰고 있었다.
예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 했을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 해?
내가 멍하니 와인만 홀짝이자, 에드릭이 눈으로 물었다.
집요함이 느껴지는 시선에 나는 웃고 말았다.
하여간, 저건 옛날이랑 똑같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