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4)
10
대체 어디서 막 돌아온 건지.
창문을 통해 멀리서 봐도 의복의 양식이 테루아와 달랐고, 옷깃이며 머리카락도 단정한 평소와 다르게 흐트러져 있었다.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읽던 책마저 황급히 덮고서 반갑게 현관으로 나가 그를 맞이했다.
“이보 오라버니!”
“덴카르트 부인께서 직접 나오실 것까지는 없었습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굽힌 그에게 손등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정중하게 내 손등에 입을 짧게 올렸다.
거의 주종 관계에서나 할 법한, 이제는 테루아 귀족들 사이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과한 인사이긴 하다만 이보는 이 방식을 좋아했다.
아닌 것 같아도 이보가 의외로 보수적인 남자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보도 잘 컸단 말이지.’
나는 함께 집무실로 향하는 이보를 즐거운 눈으로 올려다봤다.
이보는 내가 과거에 존경했었던 업적을 모두 원작보다 빠르게 이루어냈다.
마넬라노야 물려받은 것도 많은 사람이니 그렇다 해도 이보는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현재는 디프의 숲에서 중책을 담당하고 있었다. 황태자와 에드릭도 그를 가장 믿을 만한 자로 뽑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어서 세 사람의 관계를 알던 내가 보기엔 매우 놀라운 변화였다.
‘게다가……. 에드릭을 잘 챙겨주고.’
어릴 때는 싫어하더니 지금은 어른스럽게 직접 나서서 하나하나 챙겨주려 했다.
물론 나는 더 많이 챙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오늘 액세서리를 만든다는 나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나는 준비해둔 돌들과 덴카르트 저주가 들었던 귀금속 함을 이보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고마워요.”
한편 수행인에게 상자를 받은 이보가 그 안에서 무언가를 하나둘 꺼냈다.
유리병과 비커, 옛날에나 썼을 법한 수식언이 그려져 있는 검은 종이 따위였다.
‘……타국에서 일하느라 바빴을 텐데, 미리 준비까지 해 와줬네.’
미안하게 바라보자 이보가 웃었다.
“그럼 이만 나가줄래? 위험할 수 있어서.”
……나가서 하라는 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유리병을 세웠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물건들의 위치도 나보단 이보 쪽에 가까웠고.
“오라버니가 직접 하려고요?”
“응. 그래야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디프가 인간보다 여러모로 월등하다는 사실을 이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보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내게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로벨리아. 네가 디프든 뭐든 이걸 사용하다가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럼 오라버니가 위험한 건 뭔데요.”
“간단한 계산이지 않나. 내가 죽어서 슬퍼할 사람보다 네가 죽어서 슬퍼할 사람들이 더 많아.”
“아니……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니까.”
이보는 덤덤하게 말했으나 나는 속이 좀 쓰렸다.
이 오라버니는 다 좋은데.
자신을 좀 귀중히 여기고 행복해졌으면 더 좋겠는데…….
내 눈빛을 읽은 건지 그가 길게 미소 지었다.
“농담이었어.”
“……이런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는 거 알죠?”
“다행이네. 나도 딱히 재미있으라고 한 건 아니라.”
말하는 사이 이보가 내 앞의 귀금속함을 냉큼 가져갔다.
그건 그래도 맨손으로 잡으면 안 되는데, 하려고 했는데 이미 그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손등에 입을 맞출 때도 그랬었다.
하긴, 이보 마틴이 얼마나 철저한 사람인데…… 말하는 도중에 이렇게 사기 치듯이 가져가기나 하고.
그 귀부인들에 비해선 확실히 막강한 상대라고 느껴졌다.
다만, 걱정되는 것도 있었다.
‘히스 레잔다르가 신경 쓰이긴 하겠지.’
나는 얼마 전, 궁전에서 우연히 마주친 히스 레잔다르를 떠올렸다.
곁에는 약혼녀를 둔 그는 반대편 회랑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원작에 없던 약혼녀를 에스코트하며 나를 죽일 듯이 보는 그는 내가 유일하게 바꾸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미안함은 없었다.
협박은 했다만 오히려 이보에게 허튼짓을 할까 봐 신경이 쓰일 뿐이지.
“로벨리아 덕분에 검은 사슬 기사단의 호위를 받게 되었어.”
그런데 이보는 그런 내 심정을 알았는지,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했다.
“덴카르트 공작님께서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주셨어. 내가 원할 때까지 호위를 받게 해주겠다고.”
에드릭에게 전혀 듣지 못한 얘기이기도 했다.
놀라서 바라보자, 이보는 내게 언제나처럼 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그 답례를 할 수 있도록 나가줄래.”
권유 같아도 명령형이었다.
슬그머니 일어나 문밖에 선 나는 한숨을 지었다.
그래도 그런 이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 * *
에드릭은 화려한 외모를 지닌 것처럼 화려한 옷이나 장신구가 어울리는 편이었고, 로벨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선물로 준비했다는 귀걸이도 모양이나 형태가 평범하진 않았다.
원래 형체인 검은 사슬을 다 녹여서 돌과 에메랄드를 합친 뒤, 길쭉하고 매끄러운 모양의 귀걸이로 만들었다.
그걸 받은 에드릭은 정말 말 그대로 펄쩍 뛸 듯이 기뻐했다.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그렇다니까.”
에드릭은 망설이지 않고 당장 뾰족한 침으로 귀를 뚫어버렸다.
옆에서 당황한 로벨이 소독해야 한다고 무어라 했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피가 좀 났는지 손에 액체가 묻어나는데도 너무 기쁜 나머지 따끔하지도 않았다.
귀걸이를 낀 에드릭이 평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로벨 앞에 얌전히 있었다.
로벨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력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에메랄드 귀걸이는 그의 눈동자 색과 아주 잘 어울렸다.
“예뻐요.”
로벨이 최고의 칭찬을 해주었고, 에드릭은 그날 너무 행복해서 밤잠을 설쳤다.
그런데 다음 날.
공식 일정으로 대상단 연합에 참석한 에드릭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그가 착용한 귀걸이와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정원을 가로질렀더니 이보 마틴이 보였다.
“……!”
이보 마틴이, 그의 귀걸이와 같은 기운이 느껴지는 펜던트를 아주 보란 듯이 목에 걸고 있었다.
……다만 모양과 원석이 달랐다.
에메랄드 실처럼 가느다란 그의 것과 달리, 사파이어 원석을 목에 매단 것 같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이보 마틴이 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공작님.”
“……로벨이 만들어준 건가?”
“네.”
차분히 대답하며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기분 좋은 듯이 감은 눈을 한껏 휘었다.
지나가던 상단 사람들이 여자고 남자고 멈춰서 감탄했지만, 에드릭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로벨이 저놈까지 만들어주다니…….’
어쩌면 자신보다도 먼저 선물을 받은 것은 저놈일지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저놈 선물을 만들다가 제 것도 덤으로 만든 건 아닐까.
‘……겸사겸사?’
생각만 해도 눈이 돌아버릴 것 같아서 에드릭은 시선을 돌려 분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넬라노 스텔보다도 얄미운 것은 이 사내였다.
디프의 숲이나 다른 장소에선 담배를 피우면서 로벨 앞에선 감쪽같이 얌전한 행세를 했다.
일부러 휴대용 재떨이를 가지고 다니지만…… 그 깔끔한 조치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자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되도록 숨기면서 자신에게는 가감 없이 드러내는 태도라니.
로벨을 아껴주는 진심을 알기에 그냥 내버려 두긴 했지만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많은 것이 로벨을 닮아가는 에드릭이었으나, 이보 마틴에 대한 호감만큼은 닮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이것이 궁금하십니까?”
그런데 이보 마틴은 역시 얄미운 새끼였다.
펜던트 끝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돌리며 굳이 보여주었다.
시력이 인간의 한계를 넘은 에드릭은……. 그 표면의 곡선까지 쓸데없이 다 보였다.
에드릭의 귀걸이는 실처럼 가느다란 에메랄드를 여러 개 엮어 만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로 만들어진 이보 마틴의 펜던트 원석이 더 크고 굵을 수밖에 없었다.
넓은 면 하나하나가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자 에드릭은 표정 관리도 못 했다.
‘…….’
기분 탓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쩐지, 자신의 것보다 저것이 더 화려해 보이기도 했다.
이보 마틴이 떠난 자리에서 에드릭은 이를 악물었다. 그 곁으로 크림슨이 다가왔다.
“주군, 이제 돌아가셔야…….”
“크림슨. 목걸이와 귀걸이의 차이가 뭔지 말해라.”
크림슨은 당황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늘 이성적인 에드릭이 가끔 이상한 행태를 보이곤 하는데, 세 가지 경우였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가장 빈도수가 많은 로벨과의 일이고…….
둘째는 그도 지긋지긋한 마넬라노,
셋째는 자수성가의 표본이자 꽤 부러운 이보 마틴이었다.
‘흠. 오늘은 이보 마틴 때문인 모양이군.’
뭐…… 투닥거리는 건 어린 시절이면 다 끝나지 않았나 싶긴 했지만 그는 입을 열었다.
“목에 걸면 목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잖습니까.”
새삼스럽게 뭔 당연한 걸 묻느냐는 크림슨의 말은 무성의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로벨의 애정을 잃을까 공포감을 느끼던 에드릭에게 적합한 답은 아니었다.
에드릭이 서늘한 분노가 서린 얼굴로 말했다.
“……오늘 내로 목걸이와 귀걸이의 선물에 내포된 진정한 뜻을 알아오지 못하면 넌 해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