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79)
15
산모는 보통 산달이 다가올수록 힘들다고 하지만 로벨의 경우는 아니었다.
내내 휴가를 쓴 에드릭은 로벨이 말 그대로 물 한 잔도 제 손으로 못 먹게 했다.
몸이 붓거나 힘들면 에드릭이 디프의 힘을 발휘하여 치유도 해주고, 워낙 극진히 모셔주는 터라 오히려 평소보다 더 편했다.
그러다 보니 로벨은 힘들거나 불안할 새도 없이 일과를 즐겼고, 출산일은 금방 가까워졌다.
오늘은 출산 예정일 전날이었다.
로벨은 평소처럼 낮잠을 자다 일어났고, 에드릭도 마찬가지로 분주히 움직였다.
‘……뭐 하는 거지?’
졸린 눈을 비비던 그녀는 초조하게 짐을 정리하는 에드릭을 바라보다가 웃고 말았다.
그는 지금 산모에게 필요한 물건들과 고통을 완화하는 약, 그리고 어디서 얻었는지 황족이나 쓸 법한 성수 따위를 하나하나 다시금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혹시 아프면 어쩌지, 출산해서 디프의 힘이 무디게 작용하면 어떡하지.
이마를 짚고서 끙끙거리며 고뇌하는 뒷모습이…….
“……어째 나보다 당신이 더 예비 엄마 같은데.”
혼잣말에도 에드릭이 성실히 반응했다.
몸을 돌려 다가온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서 말했다. 마치 자신에게 외우는 주문 같기도 했다.
“로벨리아,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안심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빨리 회복시켜줄 테니까.”
“안정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더 해야 할 것 같아 보여. 지금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거 맞지?”
“물론이야.”
……아닌 것 같은데.
그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로벨도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더 들떴다.
내일 만날 아이지만, 기대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기 태몽도 꾼다는데 그런 단서 하나 없이 지나가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그런데 로벨은 어쩐지 아이 성격은 자신을 닮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부모에게 얼굴도 안 비치고 제멋대로인 걸 보면 알 수 있지.’
에드릭의 불안을 해소해줄 겸 이 추측을 얘기하자,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러면서 생김새도 너를 닮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럼 예쁠 거야.”
“음. 얼마나 예쁠 것 같은데?”
유치한 장난을 즐기는 여자의 남편답게, 에드릭은 유치한 소리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진지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아내의 장난에도 진심을 다해 답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쁘겠지.”
이미 예상했던 답이었지만 로벨은 기분이 들떴다.
아무리 콩깍지라도 세상에 나를 이렇게나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언제 겪어도 신기하면서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젠 그 사람을 닮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기쁜 일 위에 더 기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만 했다.
로벨은 확신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내일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모레는 더 그럴 것이고, 후에는 더욱더 그럴 테다.
‘……그래도 너무 겁먹은 것 같은데.’
로벨은 불안해하는 에드릭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그의 커다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내일부터는 더 바빠질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스콘은 미리 만들어 놔요, 여보.”
***
“마님, 힘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기님이 나와요!”
에드릭은 초조하게 닫힌 문 앞을 서성거렸다.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로벨이 싫다고 거절하여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물을 새도 없었다.
이 문 앞에 선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너무도 단호하고 무서운 얼굴로 말했기 때문이다.
[ 에드릭 덴카르트.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들어오지 마. ]……거의 명령조였다.
당황한 에드릭은 저도 모르게 ‘어, 으응.’ 하고 어설프게 대답했고, 문이 탁! 소리를 내며 닫혔다.
조금 더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다였다.
하지만 아쉬움은 잠시.
또 습관처럼 걱정이 들었다.
‘……로벨이 괜찮을까. 아니, 괜찮을 거야. 로벨이라면 어떤 일도 다 이겨내겠지.’
마음과 달리 에드릭의 낯은 어두워졌다.
같은 경험자라 마음이 타들어 가는 그 심정은 잘 알아서 크림슨이 연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물론 에드릭의 안색은 밝아질 기미가 없었다. 지금 고생하는 장본인은 로벨이다. 자신이 위로를 받아서 대체 무얼 한단 말인가.
어째서 디프는 고통을 전이하는 능력이 없는 것인지 에드릭은 답답할 뿐이었다.
지금 문 너머로 들리는 로벨의 가느다란 숨소리에 절로 마음이 아렸다.
자신은 정말 한심했다.
왜 내가 대신 아플 수 없는지…….
“원래 아이 낳기도 힘들고 기르기도 어려운 법입니다. 저만 해도, 틸리가 첫째를 낳을 때는 제 머리털을 반쯤 뽑아…….”
“로벨이 내 머리털을 잡아당기면 아이가 더 잘 나온다고?”
평소라면 헛소리라고 무시할 것도 넘어가지 못했다.
전에 진흙 팩으로 쌓인 불신도 이번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게 정말이야?”
에드릭은 낭떠러지에 매달려 지푸라기 하나로 의지하는 사람처럼 간절하게 물었다. 그러다가 그걸 왜 이제야 말했냐며 표정을 굳혔다.
그걸 뒤에서 지켜보는 아리프는 웃음을 삼키느라 힘들었다.
크림슨이 도와달라고 눈으로 요청했으나 모른 척 시선을 돌려버렸다.
과거 기사에 대한 반감으로 이상한 핑계를 대며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림슨도 그 뒤끝에 치를 떨었다.
“배, 배신자.”
그때, 문이 열리더니 틸리가 쏙 나왔다.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 에드릭의 낯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의 하얀 앞치마에 묻은 피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로벨의 피…….’
어릴 때부터 각혈을 하고 전장이며 이곳저곳에서 숱하게 피를 봐온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너무 두렵게만 느껴졌다.
로벨이 피를 흘리고 많이 아팠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다 큰 분들이, 여기서 어린애들처럼 뭐 하고 있는 거예요? 마님과 가장 어린 분도 의젓하게 있는데.”
아이구, 정말.
틸리는 걱정하느라 혼이 쏙 빠져 산모보다 힘들어 보이는 에드릭을 보다가 웃고 말았다.
“공작님, 마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가세요!”
“가, 갈 거다.”
처음 숲에서 걸을 때도 이렇게 어렵진 않았는데.
에드릭은 문 앞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그 몇 걸음이 너무나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로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곧 힘을 주었다. 성큼성큼 걷다가 수십 명도 머무를 수 있는 넓고 아늑한 방을 뛰듯 가로질렀다.
창가에 있는 침대에 온화한 봄의 햇빛이 포근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그 빛줄기를 맞으며 로벨은 더 밝게 웃고 있었다. 피로해 보이지만, 표정은 즐거움이 묻어났다.
로벨리아.
에드릭은 차마 덜덜 떨리는 입술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뛰어갔다.
그러고는 얼른 로벨의 부은 뺨과 실핏줄이 터진 눈가를 살피고 회복시켜 주었다.
그 뒤에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해주고 안아주려 했다.
로벨이 무어라 화를 내지만 않았다면, 꼭 그랬을 것이다.
“아기!”
흠칫 놀란 에드릭이 두 팔을 벌려 로벨을 안으려던 자세로 굳었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로벨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려 자신이 안고 있던 아기를 눈짓했다.
에드릭이 오기 전부터 포대기에 넣어 안고 있던 아이인데, 설마 눈치 못 챌 줄은 몰랐다.
정말 에드릭 눈에는 자신만 보이는구나, 로벨은 원래도 알았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건 정말 기분 좋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쳐놔야겠다고도 결심했다.
그러는 사이 에드릭은 아이를 응시했다.
“…….”
보드라운 장밋빛 뺨의 아이는 화사한 금발을 가지고 태어났다. 종일 보고 있어도 감탄할 것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들어보니 눈동자 색이 묘하다고 했다. 보랏빛이 섞인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라고.
아마 디프의 힘이 섞여 그런 것이라고 추측하며 로벨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에단, 예쁘지?”
에드릭은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사내아이는 에단으로 이름 짓기로 했었다.
장인어른이 제국 곳곳 작명소 스물아홉 군데를 다니며 받아오신 귀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에드릭은 대답하지 못했다.
로벨의 팔에 얹힌 손가락이 충격적으로 작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 손이 저렇게 작을 수 있지…….’
아니, 그보단 아이의 생김새가 너무 자신만 닮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보통 그러면 서운한 경우도 있다던데, 에드릭은 그걸 염려하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건 어슬렁거리며 뒤따라 들어온 크림슨이었다.
그도 아내만 닮은 아이들을 보고서 아쉬웠던 터라-주변에선 정말 다행이라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했지만- 심심찮은 위로 삼아 말을 건넸다.
“아쉽겠습니다, 마님. 그래도 머리 색이라도 마님을 닮았으면 더 미남이었을 텐데, 흠흠.”
“전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요?”
“……??”
“난 금발이 더 좋거든요.”
크림슨이 진지하게 단언하는 로벨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틸리에게 등짝을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소란은 점점 멎었다.
로벨에게 아무리 디프의 피가 흐른다 해도 출산은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다.
에드릭을 제외한 나머지는 로벨의 휴식을 위해 다들 방에서 나갔다.
이제 한숨 자려던 그녀는 품에 안은 아이를 에드릭에게 건넸다.
“자, 한번 안아봐.”
“응.”
에드릭은 무서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서도 아이를 조심조심 안았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불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물어봤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내가 잘못 안고 있는 거 아니야?”
로벨이 피곤한 눈을 비비다가 웃었다.
거푸집에 찍은 듯이 머리 색이며 이목구비가 똑 닮은 부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게 꿈만 같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응, 제대로 하고 있네.”
사실 아이보단 에드릭의 굳은 목이며 어깨가 불편해 보였지만, 로벨은 따로 지적하지 않았다.
일단 잠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새근거리는 아내의 숨소리가 방을 울리자 에드릭은 더 긴장했다.
그는 제발, 제발 울지 마라. 되뇌며 아이를 봤다.
아이는 그 마음을 알아주는지 눈을 감고서도 살포시 웃었다. 아니, 그런 것만 같았다.
‘아기인데 울지도 않고…….’
에드릭은 이 아이가 로벨을 닮아서 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아이는 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똑똑하고 영민한 아이일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떤 조기 교육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에드릭은 얼른 창가를 등지고 섰다.
창문을 통과하는, 점점 뜨거워지는 한낮의 햇살은 그의 너른 등에 가려졌다. 그리고 커다란 그림자가 잠든 로벨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햇볕이 따가워 눈을 찌푸리던 그녀는, 이제는 완전히 미소 지은 채 잠이 들었다. 아이도 엄마를 따라서 곧 잠들었다.
에드릭은 품의 아이를 소중히 안으며, 그녀를 더 소중히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에단 덴카르트가 앞으로 자주 맞이할 평화롭고 달콤한 낮잠 시간이었다.
이보 if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