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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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게 바로 딸랑이인가.”
유모들은 눈과 귀를 동시에 의심했다.
보좌관들보다도 그녀들이 알렉시스 덴카르트를 오래 봐왔다. 그는 유년기부터 에단 덴카르트처럼 아이답지 않았다.
잘 울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웃지도 않았다.
이따금 천사같이 웃는 에단과 달리 무표정한 낯을 고수했다. 그러니 다른 어른들이 말을 걸기도 어려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표정이 미묘하게 풀어져 있었다.
‘……어릴 때도 하지 않은 행동을 지금 와서 하고 계시네.’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공작의 입에서 나오는 ‘딸랑이’라는 단어에 다들 놀랐지만, 이후 행동은 더 충격적이었다.
저 냉엄한 공작님께서…… 딸랑이를 진지하게 흔들다니!!!!!!!!!!!!!!!
서늘한 낯만 봐선 딸랑이보단 독이 묻은 단검을 살피는 것 같았지만…….
그는 딸랑이를 몇 번이고 더 흔들었다.
“……소리가 나는군.”
그러고는 모두가 아는 당연한 사실을 아주 중대한 정보라도 얻어낸 사람처럼 진지하게 말했다.
“예, 공작님.”
“내 손주에게 이런 것은 시시하다. 다른 건 없나? 목검이라든가.”
“그건, 아직 위험……하지 않을까요, 공작님?”
사실 에드릭이 미리 주문해두어 보유 중이긴 하지만 말할 순 없었다.
그런데 알렉시스는 역시 알렉시스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장난감 바구니에 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유모들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안을 뒤졌다.
큼직한 손가락에 장난감들이 하나둘 잡혔다.
“…….”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이건 너무 조잡하다, 시시해 보인다는 불만을 눈빛으로 말했다.
유모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에 알렉시스가 무언가를 꺼냈다.
둥글둥글하게 조각한, 모형 단검이었다. 딸랑이 크기에 가까워서 입에 넣고 삼킬 수는 없었다.
‘이게 좋겠군.’
알렉시스는 붉은 눈을 빛내며 요람에 다가섰다.
그것만으로도 에단은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알렉시스는 그 반응에 만족했다.
루이스 정도, 아니면 로벨리아나 되어야 자신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첫 만남부터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대담한 태도를 취하곤 했다.
‘과연.’
알렉시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손주답게 배포가 커.”
“네……. 정말 공작님을 쏙 빼닮으신 것 같지요.”
“호호. 저희도 계속 공작님의 어릴 때가 떠올랐답니다.”
“저, 저도 그랬답니다.”
사실 외모만 봐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성품은 완전히 다를 듯싶었다.
하지만 삶의 연륜이 있는 유모들은 알렉시스가 원하는 말을 꺼내주었다.
예상대로 알렉시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흐음, 그래.”
그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비틀자 유모들은 처음으로 웃는 모습을 봤다며 속으로 ‘세상에’를 외쳤다.
살면서 숱한 일을 겪고 봐왔지만, 오늘만큼 놀라는 일도 드물었다.
이윽고 알렉시스가 아이의 손 옆에 목검을 놔주었다.
그 동작이 매우 조심스럽고 섬세하여 유모들은 속으로 감동하고 말았다.
알렉시스를 키웠던 장본인들이니만큼, 그녀들은 덴카르트에서 그를 닮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었다.
그러나 에밀리의 불임과 그의 대처로 그것은 불가능했었다.
어쩌면 이 덴카르트의 혈통이 바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금쪽같이 귀한 손주를 보게 되다니…….’
한 여인은 감격을 금치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훌륭한 검사가 되시겠군요.”
“내 손주에게 그따위 귀찮은 일을 시킬 생각은 없다.”
달리 말하자면, 위험한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의 존재는 여러모로 기적이었다.
단 한 번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던 사내가 서서히 사랑을 표현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랫동안 믿어온 그 꿈이 덴카르트에도 피어났다는 사실에 유모들은 모두 기쁜 미소를 지었다.
***
그 후, 나는 왠지 모를 패배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아웅, 하아웅이라며 옹알이를 하던 에단이 이제 아부, 아부,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지 조급해졌다.
“에단. 엄마야, 엄마.”
“하아부~ 하부~”
“아니, 할아버지 말고 엄마. 엄마 보고, 엄마. 엄마 해야지. 힘들면 어무도 괜찮아. 엄마는 똑똑해서 그 정도만 말해도 잘 알아들을 수 있단다.”
“하아부~ 하부~”
“…….”
……혹시 유모들이 내가 없을 때 애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라 교육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얘가 내내 할아버지만 찾을 리가 없었다.
고민하는데, 에드릭이 에단을 안아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러더니 옆에서 “아빠를 부를 줄 아네.”라며 악의 없이 내 속을 긁었다.
……그래. 하아부에서 하만 빼면 아부지긴 했다. 어쩐지 에드릭은 ‘아버지’ 소리를 거저먹는 것 같았다.
생김새도 셋이 똑같이 닮았는데 호칭도 빼앗기다니.
‘나만 쏙 빼고……!’
상황이 이쯤 되니 나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둘 다 비켜라.”
그런데 언제 또 황성에서 돌아왔는지, 아버님이 우리 부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에드릭에게서 에단을 쏙 빼내 품에 안았다. 무어라 투덜거리려던 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내 아들은 조부의 품 안에서 제일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
늘 고요할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지만, 저렇게 안면 가득 행복을 담고 있는 건 아버님 품에 안겼을 때였다.
‘신기하게…… 애들도 자기 예뻐해 주는 사람은 아나 보네.’
그런데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아버님은 황성에서 돌아오자마자 씻고, 우리 침소로 들이닥친 모양이다.
젖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진 않았으나 이마며 목덜미에 조금 달라붙어 있었다.
‘저렇게 다 안 말리고 다니면 감기 걸리실 텐데…….’
게다가 아버님은 가끔 집무실에서 피우던 궐련도 끊었다고 한다.
그 사실에 오랫동안 아버님을 보필하고 싶다던 두 보좌관은 에단에게 고마워했다.
아버님이 진심으로 에단을 아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 덴카르트에 없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단 말이지. 아버님 덕분에 데이트며 친정에 갈 여유도 생기고.’
사실 빼어난 유모들이 있다지만, 아이를 두고 어디에 가기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버님이 직접 나서니 안심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내 편일 경우에는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황실에서도 한 수 접는 철저한 상대이니까.
“하아부~ 하부!”
“들었나.”
“……네. 우리 효자가 엄마보다 할아버지를 좋아한다네요.”
“알았으면 나가.”
……그래도 이럴 땐 좀 얄밉단 말이지.
마치 과시라도 하듯, 비웃는 아버님을 보자 훈훈한 마음이 싹 사라졌다.
어찌 되었든, 예정대로 친정엔 가야 했다.
그날 친정에 돌아간 나는 거푸집으로 찍어낸 듯이 똑 닮은 삼대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 나도 나를 닮은 딸을 낳고 말 테야.’
“어머. 그게 마음대로 되겠니?”
내가 혼잣말로 한 선언에 어머니는 나를 한심하게 봤다.
나는 좀 서운해졌다.
원래 이러시지 않았는데 결혼 후에는 특히 이렇게 바뀌셨다.
아무래도 부모님의 상단을 내가 물려받지 않아서 더 그런 듯했다.
“그리고, 딸을 낳을 거면 너보단 에드릭을 닮아야지.”
……그건 확실히 옳은 말이었다.
에드릭이야 지금도 윤이 날 정도로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나를 닮는 것보단…… 그래. 에드릭을 닮아야 살맛이 나겠지.
그래도 듣는 딸 입장으로선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엄마 딸 맞죠?”
“넌 거울도 안 보니?”
“……하아.”
서류를 검토하며 보이는 시큰둥한 태도에 더 서운해졌다.
마치 과거 아버님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상단 확장이 중요하다 해도, 이건 너무하시지.’
사람 일은 모른다고.
오히려 아버님이 우리에게 더 관심을 가졌다.
물론 에단을 어떻게 잘 보살필 것인가 확인하는 용도 같았지만…….
하나둘 쌓이는 서류 더미가 무언가 추측하는데, 엄마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잘된 일 아니니? 솔직히, 전대 덴카르트 공작께서도 외로우셨겠지. 형제도 없고 부모도 일찍 여의었으니 말이야. 보통 예쁘겠니.”
우리 집이야 원래 화목하다만 덴카르트는 달랐다.
원작을 쓴 작가가 미워질 정도로 두 부자는 사랑받지 못하고 컸다.
그런 걸 생각하면 뭐라고 하려다가도 마음을 접었다.
“……맞아요. 그러니까 저도 서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마음을 잡고 아버지와 체스를 두던 에드릭을 데리고서 집에 돌아갔다.
웨인에게 얘기를 듣자 하니 역시나 유모들을 물리고, 아버님께서 에단을 직접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불은 좀 켜고 보시지?
침소 문을 열자, 아무것도 구분되지 않았다. 암막 커튼도 쳐져 있고 말이다.
이런 데서 그렇게 덩치 큰 남자 혼자 아이를 보다니…… 우스우면서도 좀 무서워지려고 했다.
“아버님, 저희 왔…….”
그나마 뒤에서 불을 밝혀준 에드릭 때문에 침소 안 상황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인사를 하려던 입을 다물고 말았다.
얼마나 깊은 잠에 들었는지, 아버님이 요람 옆 소파에 기대 주무시고 있었다.
품에는 에단이 폭 안겨 있었고.
‘……저러고서 어떻게 잘 수 있지? 깨지도 않고.’
아들에게도 내어준 적 없는 두 팔은 견고하게 아이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안면에는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처음 보는, 행복과 평온이 가득한 낯이었다.
앞에 두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을 우리 부부는 한참이나 숨죽여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