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35)
35
“……?”
“그거, 더 치우기 어렵게 할 수도 있고. 아무튼, 아무튼 내가 더 잘한다고.”
횡설수설하던 도련님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다짐을 받듯 하면서도 어쩐지 필사적으로 힘을 주기도 했다.
뒤따라온 말의 어조도 굉장히 강했다.
“그러니까, 넌 하지 마.”
“예. 되도록 도련님께 부탁드릴게요.”
완전히 따른다고 하면 거짓말이라서 반쯤 둘러댔다. 그건 도련님도 알았다. 앞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는 완전히 만족하는 기색은 아니지만, 그래도 잡은 손을 천천히 놨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앗…….’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피부와 멀어지는 서늘하고도 익숙한 체온이 어쩐지 아쉬웠다.
그래서 손을 거두지 않고 허공에 쭉 뻗은 상태로 팔랑팔랑 흔들었다.
“도련님. 저 조금만 더 만져주시면 안 돼요?”
“……지금?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잠깐만 만져주면 되잖아요. 아니, 한 번만요. 딱 한 번만 더요.”
“…….”
내 애교에 어째 도련님은 아까 공작의 첫 시험보다 더한 난관을 앞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거절은 안 하네.’
수족 냉증 심한 우리 엄마도 따뜻한 내 손을 좋아하더니, 도련님도 그런 모양이었다.
내가 손을 더 팔랑거리자, 도련님이 정신 사납다는 듯이 눈을 흘기더니, 꽉 잡아주었다.
그 동작에 종전보다 힘이 강하게 들어가서 그런지 느낌이 더 좋았다. 아…… 진짜 좋다.
“……좋아요.”
“…….”
“정말 좋아요…….”
잇새로 솔직한 감탄사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마음 같아선 더 이러고 싶은데, 이제 다음 일을 해야 할 차례였다. 나는 안타까움을 참으며 손을 빼려 했다.
그런데 잡힌 손이 빠지질 않았다.
의아하게 바라보자 도련님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하시는 거지??’
밖에서 누군가의 부름이 들려서 도련님 말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여쭤보려고 하는데, 도련님이 잡은 손을 뺐다. 고개를 돌린 그의 옆얼굴은 꽤나 붉었다.
“들어와.”
어쩐지 묘하게 어색해진 분위기를 뚫고 하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전용 천을 바닥에 깔고, 들것으로 가져온 석판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개중에 아는 얼굴도 있었다.
‘어, 림슨 형과 친한 형이네?’
특히 친분이 두터운 그 또래의 형이었다. 그와 체격이나 성격도 비슷하고…….
반갑게 바라보는데, 시선이 딱 마주쳤다.
즉시 그가 입을 벙끗거렸다. 마치 내게 무슨 말을 전하려는 시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뭐라고 하는 거지?’
눈에 힘을 주며 바라보자 뜻이 조금 읽혔다.
‘화…… 어, 그러니까…… 화장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인공 버프가 있는 도련님과 달리 나는 평범한 엑스트라 아니던가. 장시간 화장실을 안 가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공작이나 다른 사람이 들이닥칠 리는 없으니 기회가 생겼을 때 미리 다녀오는 편이 현명했다.
미리 알려줘서 고맙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련님께 귓속말했다.
“잠시만 밖에 좀 다녀올게요.”
“같이 가면 안 돼?”
“그게…….”
“왜? 어딜 가는데 바로 말을 못 해??”
또 혼자서 위험한 곳 가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이런 말을 청초한 메인수님께 입 밖으로 뱉기도 좀 민망하다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한 손을 세워 입가에 대고는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 화장실이라서요.”
“아, 응.”
도련님은 금세 수긍했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해도, 모친이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남이 이런 얘기를 꺼내면 지금처럼 그저 알아듣는 척하라고.
‘소설에선 황궁에서 꽤 오랜 시간 생활하고 나서야, 황태자도 그 사실을 알아냈었지.’
도련님은 황태자에게 자신의 비밀을 끝내 털어놓지 않았었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도 뭣도 아닌 내게도 그 이야기를 털어놓을 리가 없지.
아마 내가 도련님 곁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은 직접적으로 듣지 못하겠지……. 잠깐. 나중에 자리를 비워야 할 땐, 이 핑계도 유용하겠는데?
어쨌거나, 코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도련님은 저 다녀온 후에 가실래요?”
“……아니.”
역시 우리 도련님은 귀엽게도 거짓말에 약하다.
저번보단 느린 속도로 고개를 젓는 그에게 나는 웃음을 삼키며 빠르게 말했다.
“저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응접실이 있는 1층에서 계단을 내려가야 화장실로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칸막이는 잘 쳐져 있었으므로 문제는 없었다. 손도 깨끗하게 씻었고.
……청결하면서도 더러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다만, 다른 문제가 좀 있다면…… 팔짱 낀 채 거대한 벽처럼 나를 가로막고 선 림슨 형이다.
설마 화장실까지 따라왔나 싶었는데 기세를 보니……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림슨 형, 새벽에 잠깐 보고 또 보니까 반갑네요.”
뭐, 사실 따지자면 제대로 본 것도 아니다.
짐 챙겨서 가는데, 잠에서 깬 형과 눈이 마주쳐서 도망치듯 방에서 빠져나왔으니까.
형이 ‘야, 이 미친 새……!’까지 말하는 것만 들었다.
그 뒤로 제대로 된 이름이 들렸지만, 내가 서질 않았으니 판독이 불가하다.
림슨 형은 아침 일이 있었는데도 실실 웃는 나를 보며 덩치만큼이나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우.”
저러다 땅 무너지겠네.
그래도 이번 일에 일등 공신은 단연 림슨 형이다.
형이 나서서 내 돈 가방으로 다른 형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끝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형은 나 대신 다른 형들을 설득하여 고대 석판을 옮기고 세우는 일에 동참해주었다.
고맙게 바라보는데, 림슨 형은 심각했다.
“네놈은 꼭…… 매번 이런 식으로 일을 벌여야만 속이 후련하냐?”
그의 지친 눈동자가 오가는 하인들을 응시했다.
앞으로 닥칠 수많은 일을 직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거짓말 대신 속내를 조금 비쳤다.
“이판사판이었어요. 형도 잘 알잖아요. 이대로 가면 도련님 처지가 어떻게 될지.”
딱 이 정도만 말했는데도 형은 쉽게 알아들었다.
마님이 도련님의 약에 장난을 친다든가 하는 일들을 쉽게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나섰을 것이라고.
“……그래서 네가 온몸으로 막은 거냐?”
그게…… 온몸으로 막은 건가? 무릎을 꿇긴 했으니까 맞긴 한가??
의아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어쨌든 공작을 제대로 막긴 했으니까.
형님은 세상에서 가장 무모하고도 답답한 놈을 앞에 둔 사람처럼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다가 말했다.
“그래도 이 새…… 로벨아. 나한테는 제대로 말을 했어야지.”
“죄송해요, 형. 도련님이 앞으로는 공작님께 후계자 수업을 받고 싶어 해요. 그런데 공작님이 순순히 해줄 분은 아니라서 계속 시험을 보게 할 것 같더라고요. 실력 검증이랄까…… 뭐, 그런 종류죠.”
“넌 누굴 바보로 아냐.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그 정도는 이미 다 보고 들었어, 인마.”
여기서 더 해줄 말은 없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실제로 나도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공작이라면 설령 이번 일을 마무리 짓는다 해도 그냥 데려갈 놈이 아니니까.
“……근데 뒤에 다른 형들은 왜 달고 왔어요?”
나는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며 림슨 형의 뒤를 살폈다.
저쪽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에 시종 네다섯 명이 있었다. 삼대째 형을 포함해서 네다섯 명.
평소 내게 탐탁지 않은 눈빛을 주던, 족제비처럼 생긴 형도 이쪽을 흘끗흘끗 보고 있었다.
“내가 달고 왔겠냐. 저놈들이 따라붙은 거지.”
이 형도 참 말과 행동이 다르다니까.
귀찮아 죽겠다는 어조였다. 하지만 정말 귀찮았으면 당장 내쫓았겠지.
애정을 갖고 림슨 형을 바라보자, 그가 쯧 혀를 찼다. 그래도 영 싫진 않은 눈치다. 부끄러움도 많긴.
마침 자기들 얘기하는 걸 알아챘는지 시종 형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러면서 나를 보며 눈을 빛내는 게, 죄다 덩치만 컸지 도련님보다도 아이들 같았다.
‘다들 나를 걱정해서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구나.’
역시 내가 사회생활을 참 잘해둔 거다…….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 거지?
“로벨! 비결 좀 알려다오!”
……비결?
“너, 도련님이 수도까지 데려간다며!”
“도대체 어떤 식으로 도련님을 꼬신 거냐?! 잘하면 덴카르트 사유지 하나라도 받……. 험험.”
림슨 형의 부리부리한 눈빛에 족제비 형이 말을 얼버무렸다. 이 형도 참 캐릭터 일관성 있네.
아무튼, 나는 도련님과 어떻게 그런 친분을 쌓았느냐는 형들의 질문 세례에 머리가 아파졌다.
이제 보니 딱히 내가 걱정돼서가 아니라 도련님의 신임을 받는 게 부럽고 궁금해서 온 모양이었다……. 세상 참 팍팍하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말해요.”
실망감에 대충 둘러대고는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그때, 고개를 젖히며 하품을 하던 림슨 형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순간, 공기의 중압감이 달라졌다.
동시에 나보고 비법을 알려달라며 조잘거리던 형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모두 숨소리마저 죽였다.
음…….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누군가가 림슨 형에게 참교육을 당한 모양이군.
묵직한 침묵 속에서 림슨 형이 장난기 없는 표정으로 내 등을 툭 떠밀었다.
“어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