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42)
42
“그래. 가서도 기죽지 말고…… 도련님 곁에만 딱 붙어있도록 해.”
당연한 얘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내 팔짱을 끼고 듣고만 있던 족제비 형이 코웃음을 쳤다.
“뭐 그렇게들 유난이냐? 어차피 도련님은 혼사 전까지만 즐길 텐데. 뭐, 굳이 혼사까지 끌 필요도 있나? 약혼하면 끝이지.”
깐족거리는 듯한 족제비 형의 말에 다들 숙연해졌다.
심지어 림슨 형은 ‘눈치는 알아서 챙겨라, 새끼야.’라며 그의 뒤통수를 갈겼다.
“악!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다들 알잖아! 거기까지 쫓아가서 뭐 좋은 꼴 본다고!”
“…….”
형들은 쭈뼛쭈뼛 서로 눈치를 보다가 최종적으로 내 눈치를 봤다.
“그…… 로벨아. 도련님은 당연히 귀족이니까…… 약혼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건 알지, 로벨아?”
“왜 평소에 안 쓰던 말투를 쓰고 그래요. 징그럽게.”
“아무튼, 너무 상심하진 말아라. 젊을 때…… 많이 만나고 헤어지는 거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할머니의 할머니를 만나시기 전에는…….”
나는 림슨 형의 이상한 소리를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뭐, 나야 에드릭 도련님의 약혼 상대야 알고 있고, 결혼 상대도 알고 있다.
그러니 약혼이며 결혼 상대가 누구든 놀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은근히 순진한 이 형님들은 나중에 알면 엄청나게 놀라겠지?
“그리고…… 애도…… 낳겠지. 그게 귀족 나으리들 의무인 건 알지?”
내 침묵에 어째 눈빛들이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후, 순진들 하긴…….
나는 차후 닥칠 충격들에 대한 예방 주사 차원으로 말해주었다.
“그럼요. 도련님이야 귀족이니 약혼하실 수 있죠.”
“그, 그래. 이해한다니 다행이다.”
“그런데요, 형님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형들을 향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거 알아요? 도련님은 약혼하되, 파혼할 수 있고.”
“……!”
“결혼도 하고, 애도 생기시겠다만…… 애는 뭐, 꼭 직접 낳으란 법 있나요? 입양해도 좋은 거고.”
“입…… 입…… 입…… 입양?”
“이이이입양?!”
다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얘길 들은 사람들처럼 뜨악했다.
아니, 왜? 원작에선 황태자가 입양했단 말야.
“예. 입양요. 게다가 방계 쪽에 좋은 인물들도 많잖아요? 굳이 입양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벌써 원작에 비해 도련님 성격이나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으니,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 친절히 설명하자, 림슨 형은 아주 기겁을 해댔다.
“저…… 저, 저! 저 미, 미친놈!! 벌써 자녀 계획까지 세우다니!!!…….”
충격에 빠진 형들이 나를 경악스럽게 바라봤다.
나는 그런 순진한 형님들을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도련님 얘기 중인데 무슨 말씀이세요? 자녀 계획은 제가 아니라 도련님이 세우는 거죠.”
* * *
에밀리는 덴카르트의 안주인이 되기 훨씬 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다.
꾸밈없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가식과 위선으로 점철된 사교회를 다녀오면 숨이 막히는데, 아이들만 보면 숨통이 탁 트이는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문의 주기적인 봉사 일정 외에 따로 시간을 내서 고아원에 봉사를 다녔다.
[ 얘, 에밀리. 그만 좀 하렴. ]어머니께선 그런 에밀리를 몹시 걱정했다.
[ 연회에 참석할 장신구도 직접 고르도록 하고. ] [ 어머니, 장신구보단 아이들이 더 예뻐요. 다들 천사 같지 않나요? ] [ 너란 아이는 참……. 남의 자식도 이렇게 예뻐하는데, 자기 자식은 오죽 예뻐할까. ]그런데 신도 무심하시지.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했던 에밀리는, 알고 보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궁의 출신인 명의들이 무슨 수를 쓰려고 해도 방도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에밀리는 고아원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에드릭 덴카르트를 만났다.
‘……싫어.’
그 아이를 봤을 때, 에밀리는 처음으로 아이에게서 싫다는 감정을 느꼈다.
남편을 닮은 외양으로, 그 여자를 닮은 칙칙한 녹색 눈동자의 아이가 제 앞에서 숨을 쉬고 있다니.
당장에라도 세상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오물이 깔린 바닥에 추락하는 듯한 그 끔찍한 기분이 바로 오늘날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정말…… 수도까지 데려간다고?’
에밀리는 마차에 짐을 싣는 하인 무리를 바라보며 이를 사리물었다.
저 안에는 그 아이의 물건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눈길 한 번 온전히 주지 않는 남편이, 자기 부모 장례식에서도 철저히 원칙만 고수하던 그가…… 어째서 그 아이에겐 관대한 처분을 내린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데려가기로 결정하고서 자신을 떠봤는지도 모른다는 괴상한 망상까지 들었다.
에밀리는 고운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꾹 움켜쥐었다.
‘그이가…… 후계자 수업까지 직접…… 한다고.’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남편은 이유 없이 무언가를 할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가 죽도록 미워하는 에드릭이 끝내, 덴카르트의 가주가 될 것이다.
‘그 여자의 아들이…….’
도저히 표정을 관리할 수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챙이 긴 모자 아래로 그늘이 지고, 표정이 가려졌다.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이면 예정대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정문 앞에서 하인들을 지휘하던 집사가 다가왔다.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았는데도 집사의 밝은 표정이 보였다.
그래, 저자는 에드릭을 처음 보자마자 알렉시스의 유년기가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던 자였다.
그 사실이 지금은 미치도록 싫었다. 애꿎은 집사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 가서 저 짐마차를 모두 파묻으라 해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 모든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누구보다 노련한 귀부인이었다. 그래서 알렉시스 덴카르트가 그녀를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에밀리는 그 사실을 그와 만난 첫날부터 알았다. 그의 눈이, 마치 어느 물건의 가치를 가늠하듯 냉담했으니까.
쓸 만하군,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 같았다. 바보같이 그런 눈빛마저도 설렜었다.
“수고했어요. 빠짐없이 챙겨주도록 하세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벌려 말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왔지만, 들뜬 집사는 알아채지 못했다.
“마님.”
자리를 뜨려는데, 집사의 부름이 발목을 잡았다.
“말하세요.”
“주인님께서 에드릭 도련님의 주치의는 수도 주치의로 하겠노라 전하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도련님께 필요한 물품은 전부 수도에서 마련한다고 하셨습니다.”
에밀리는 그린 듯한 미소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 말은 마치, 남편이 자기 속내를 다 예측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더해서 에드릭이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그를 방해할 계획을 세운 자신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님께선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앞으로는 특별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후자는 집사가 예의상 꾸며낸 말일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에밀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도 혹여 거둘 일이 있거든 잊지 말고 전해주세요.”
그 뒤로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일과를 마치고 침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 걸어가던 에밀리는 결국 쓰러지듯 침대에 엎어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을 만졌다.
“흐…… 흐윽…….”
누가 밧줄로 목이라도 조른 것처럼 숨이 막혔다.
한참 숨을 헐떡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리는 쪽이었다.
벽난로였다.
무거운 몸을 일으킨 에밀리는 벽난로 앞에 섰다.
그녀의 눈이 타오르는 불길에서 떨어지질 못했다.
* * *
혹시 마님과 도련님이 충돌을 빚을까 걱정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녀는 늘 그랬듯이 온화한 미소를 띠고서 도련님을 배웅했다.
“무탈히 잘 다녀오렴, 에드릭.”
하지만 내 속이 영 개운치는 않았다.
저 여자는 소설에서처럼 끝까지 도련님의 발목을 잡으려 들 테니.
도련님이 림슨 형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오르는 사이, 나는 인사를 마치러 정문 앞에 섰다.
“로벨, 수도에 가서도 도련님을 잘 모실 수 있을 거다. 기운 내라.”
“그래. 기죽을 필요 없다.”
마지막으로 시종 형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며 내게 기운을 북돋았다.
들을수록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 조금 모자라도 좋은 형들이었지…….
그때, 한 시종 형이 바짝 다가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련님께 다른 이가 생기더라도 네가 우선이라는 걸 명심해라. 원래 사내들이란 첫정은 무덤까지 끌고 가는 거 아니겠냐.”
‘첫정……?’
뭐……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지. 내가 도련님과 우정을 나눈 첫 시종이니까.
그런데 저 형들 음흉한 표정을 보면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뉘앙스이긴 한데…….
고개를 갸웃하는데, 마차 앞에 선 림슨 형이 내게 어서 오라며 투박한 손을 흔들어댔다.
특히 마차 창문 너머로 언뜻 비치는 도련님의 표정은 확연히 굳어져 있었다.
이런, 준비를 좀 했어도 마차가 불편한 모양이다. 어서 자리를 좀 살펴드려야지. 그리고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겠다.
그 생각에 조급해진 나는 남은 사람들에게 두 팔을 크게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걱정들 하지 마세요! 다들 건강하게 잘 계시고요!”
앞으로 가는데, 말에 탄 채 마차 뒤에 대기 중인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앞으로 도련님의 정식 호위기사가 될 아리프 형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내게 짧은 묵례를 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신경 쓰였으나,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차에 올랐다.
‘당장은 공작도 있고, 문제를 일으킬 리는 없어.’
그래도…… 지켜봐야겠지.
어쩐지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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