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48)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
47
근 일주일간, 덴카르트의 하녀 틸리는 아주 조마조마했다.
새로운 도련님의 전속 시종이라는 소년이 생각보다 훨씬 순진하고, 물렀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신임도 듬뿍 받으니 텃세를 부릴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그래서 집사를 포함한 대다수 식솔은 안도했지만, 틸리는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바보……. 도련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미련하게 매번 애들한테 괴롭힘만 당하다니!…….’
그래서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녀는 주로 외진 곳들을 순회하며 청소를 담당하기에 로벨이 갇힐 때마다 보이면 꺼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가끔 저택 쪽에 가게 되면 로벨을 보는데, 그때마다 그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웨인 일당들이 일부러 로벨의 어깨를 툭 치고 가거나, 그의 구두 위로 실수인 것처럼 교묘하게 오수를 흘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눈에 안 보일 때는 어떤 짓을 할지 감히 상상조차 안 됐다.
그래서 보다 못한 틸리가 걱정하는데도, 로벨은 그냥 시원스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당분간은 일만 잘 배우면 돼요.”
그 말대로, 로벨은 누가 무슨 짓을 하든 제 역할에 충실했다.
“웨인 군. 어디 가세요? 알려줄 건 제대로 알려주고 가셔야죠.”
매번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으며 여기저기 갇히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주제에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가르침을 요구했다.
그 바람에 핑계를 대던 웨인 무리는 당황했으나, 곧 그의 손에 잡혀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처음 봤을 때는 머리카락이 짧은 연약한 소녀 같다고 생각했지만, 일할 때는 의외로 강단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괴롭힘을 당하느라 갇힌 창고에서는 저택의 고서나 문서를 확인하고, 틸리에겐 종종 수도 유행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휴우……. 정말 다 좋은데…… 괴롭힘당하는 문제만 어떻게 해결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 바라보는데, 로벨이 열성적으로 물었다.
“아, 그러니까, 요새 수도 귀족들이 시 낭독회라는 걸 계속 연단 말이죠?”
사실 틸리에겐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벨이 여느 때보다 눈을 빛내서 열심히 대답을 해주었다.
“으응. 근방의 귀족들은 자제들을 인사시킬 겸 계속 열고 있어.”
그 후에도 로벨은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자신에 대한 것은 없었다.
시종들 간의 묘한 신경전이 지속되자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저 애들을 그대로 두면 분명 더 괴롭힐 텐데…….’
보다 못한 틸리는 주변 하녀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했다.
“나도 귀가 달렸으니 그 일은 들었어. 유감이야. 하지만, 틸리. 우리가 웨인한테 뭘 어쩌겠어.”
“틸리, 너는 늘 너무 걱정이 많아. 설마, 웨인이 더 심하게 굴기야 하겠어?…… 뭐, 알았어. 문제가 더 심해지면 나도 나서볼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냥 둬. 나도 안타깝다고 생각한다만, 우리가 따로 시간 내서 남 도와줄 여유가 어디 있어?”
사람들은 대부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도움을 주진 못했다.
결국, 틸리는 다시 한번 로벨을 설득해보려 했다.
어떻게든 웨인 일당의 괴롭힘을 멈추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로벨은 속도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틸리 누나. 우리 도련님 예쁘죠?”
볼 때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아주 매번 귀 아프게 듣는 도련님 칭찬이었다.
“그건 그렇지만, 로벨. 지금은 도련님보단 너를 생각해야 해.”
“별명이 덴카르트의 천사였다니까요. 완전히 자라시면 귀족이든 황족이든 누가 봐도 다 감탄할 거예요. 벌써 이러신데 안 반할 사람이 없지.”
아……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
틸리는 이마를 짚으며 침음을 삼켰다.
사실 도련님을 처음 봤을 때, 모두 살아있는 정교한 인형 같다고 수군거리긴 했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틸리는 그나마 마지막 방안으로 크림슨이라는 시종이 떠올랐다.
썩 호감 가는 인상이 아니고, 매번 얼굴만 붉혀서 말을 섞긴 싫다만, 차라리 그자와 따로 이야기를 해보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로벨이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전 지금도 괜찮아요. 이렇게 아프지 않고 멀쩡하게 다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데요.”
많은 사람에겐 숨 쉬듯 당연한 사실도 로벨은 축복이라고 했다.
그 말에선 단순한 말속임이 아닌, 진심이 묻어났다.
“그리고 원래 시종이 불편해야 주인이 편한 법이라잖아요.”
마치 어른처럼 속 깊은 어조였다.
세상 어디에 이런 시종이 있을까. 아마 귀족들이 시종으로 일한다는 황성에서조차 보기 힘들 것이다.
이에 깊게 감동한 틸리가 눈물을 글썽이는데, 로벨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틸리 누나.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물론이지. 뭘 도와줄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다른 분들 도움도 같이 필요해요.”
당장 시종 일이라도 거들 것처럼 적극적으로 소매를 걷던 그녀가 주춤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입이 아프게 도와달라 했으나 싸늘하게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염려를 감추지 못하는데, 로벨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더니, 자기 입을 가리키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딱, 이거만 써주시면 돼요.”
* * *
“……시 낭독회?”
“예. 도련님의 시 낭독회요.”
도련님의 등에 코알라처럼 찰싹 달라붙은 나는 그 상태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도련님과 낮에는 좀 떨어져 있었더니, 기분 탓인지 기력도 떨어지는 느낌이라서 기회가 되면 이렇게 안기려 했다.
뭐, 아플 정도로 칭칭 휘감은 붕대에, 셔츠에, 조끼까지 껴입어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은 걸릴 리도 없다. 그리고 여자로 의심받지 않으려면 이런 거친 스킨십도 필요했다.
그런데 우리 도련님은 진짜 땀도 안 나고 뽀송뽀송하네. 음, 역시 우리 정령님.
내가 등에 뺨을 비벼도 자애로운 도련님은 얌전히 계셔주었다.
다만 문가에서 우릴 지켜보던 림슨 형만이 썩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부러워하긴.
“저기 하녀인 틸리 누나에게 듣기로, 여기서 최근 유행하는 문화가 몇 가지 있더라고요.”
“……유행 문화?”
도련님도 이곳 고서와 사료를 나와 함께 읽었으나, 거기엔 없던 내용이라 흥미를 가졌다.
나는 열심히 경청하는 그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보았다.
“예. 여름밤의 시 낭독회도 그중 하나예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꾸며진 대정원에서 고아한 시를 읊는 일은 귀족들에게 아주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로 여겨져!’
-라고 틸리 언니가 꿈을 꾸듯 황홀한 얼굴로 말한 적 있다. 역시 정의주의 감성파 언니였다.
하지만, 말이 시 낭독회지.
사실 까보면 여러 고위 귀족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그 가문의 어린 자제들의 면을 익히거나 평가를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얘기인즉슨, 장차 이 덴카르트의 후계자가 될 도련님께 필요한 이벤트였다.
도련님도 이해하는지 낮은 목소리로 그렇군, 중얼거리다가 물었다.
“그럼 그동안 낭독회라는 걸 준비하느라 보기 어려웠던 거야?”
“그럼요.”
“…….”
어쩐지 도련님의 침묵에서 짙은 의심이 묻어났다……. 요새 한층 더 예리해지셨네.
어쨌거나, 이미 이 저택, 그리고 수도 타운하우스 전체에 도련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할 것이다.
“얼굴이 천사 같은데, 목소리도 천사 같고, 마음씨는 더 천사 같은 공자가 낭독회를…… 잠깐만, 로벨. 그게 정말 내 얘기라고?”
“예. 그렇죠. 사실이잖아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저 로벨이 아는 사실이죠.”
나는 황당해하는 그의 어깨에 턱을 탁 올리며 말했다.
“열흘 뒤에요. 당일이 되면 수도에 온갖 귀족이란 귀족들은 다 우리 천사 같은 도련님 보러 벌떼처럼 몰려올걸요.”
“열흘?”
그 얘기에 도련님이 등을 쓱 돌려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나 빨리……. 공작이 그때 주최하라고 한 거야?”
“아니요? 저도 공작님이나 보좌관님들 얼굴 안 뵌 지 한참인걸요.”
“……?”
“……?”
도련님과 림슨 형이 동시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설명해주었다.
“제 독단으로 한 일이에요.”
점점 이상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향해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동안 공작님이 우리한테 뭐 하라고는 안 했지만, 뭐 하지 말라고도 안 했잖아요?”
저번에 두 번째 시험에서 통과할 때도 덴카르트 이름 써도 된다고도 했었고.
나는 내 엄지에 침을 발라서 도련님의 손등에 도장 찍듯 꾹 눌러버렸다.
“이번 기회에 도련님, 덴카르트의 공자로 얼굴 도장 확실하게 찍어 보자고요.”
앗, 세게 눌러서 그런지 피가 더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더 세게 누를 걸 그랬나.
그런데 내 행동에 뒤늦게 놀란 도련님이 손을 확 빼려고 했다.
아앗, 그래 봤자 내 코앞이라 한 번 더 찍어버렸다.
“뭐, 뭐 하는 거야!”
도련님이 토끼였다면 귀가 천장에 쫑긋 솟구쳤을 것이다. 그 정도로 놀라신 것 같다.
나는 뺨까지 붉어진 도련님을 향해 아무것도 모른 척 뻔뻔하게 대꾸했다.
“도련님이 제 주인이라는 시종 도장이요. 이거도 유행이래요.”
“……이, 이런 게 유행이라고?”
“예. 주인이 시종한테 도장 찍어주는 거.”
도저히 믿는 눈치가 아니라서 나는 가볍게 입을 털어보았다.
“그, 있잖아요. 윌리엄 1세 시대에 노예들한테 낙인 찍은 거랑 비슷……하진 않고. 그건 나쁘지. 아무튼, 이건 더, 훨씬 긍정적인 느낌이죠. 아프지도 않고. 친밀감도 쌓이고.”
저 뒤에서 림슨 형이 ‘에휴. 애도 안 속을 개수작이군.’이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품에 손을 숨긴 채 얼굴을 붉혔던 도련님이 이내 한 손을 슬그머니 뺐다.
그러더니 자기 입술 사이로 엄지를 넣더니 다시 내 손등에 찍었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거지?”
mwzod0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