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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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얜 도대체 뭐야?
이보는 뒤를 졸졸 쫓아오는 소년을 의식하며 머리로 뒤덮인 눈을 찌푸렸다.
단도를 꺼내며 협박하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수확이 상당했다.
재킷 단추 9개, 상의 커프스단추 2개, 도합 11개…….
그것들을 넙죽 넘긴 은발의 소년은-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름이 로벨이라고 열두 번이나 소개했다.- 의심 하나 없는지 자신의 뒤를 잘도 졸졸 쫓아왔다.
사실 처음엔 고급스러운 재질의, 얼룩 하나 없는 옷을 보고 어느 귀족가의 종놈 정도로 생각했다.
부모나 형제가 빚을 져서 떠안고 쫓겨 다녔을 것 같기도……. 말인즉슨, 아무리 봐도 이곳 뒷골목 출신은 아닌 것.
그간 잘 가꿔진 도개교 따위의 길만 다녔을 놈이니, 이 지하 하수도 길을 걷는 것조차 거북해하리라.
그래서 도와준다고는 했으나 만약 이 길을 역겨워한다면 버리고 가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히려 ‘이곳에서 단둘이 걷겠군요!’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과거에 보석이 파묻힌 무덤을 발견했다며 시시덕거리던 도굴꾼이 떠오르게 하는 얼굴이었다.
벌레 보는 듯한 표정보다야 당연히 낫다만…… 이상하게 기분이 불쾌하면서도 찜찜했다.
물론 보기 드문 머리 색 때문에 사람들이 호기심이며 호감을 가지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렇게까지 유별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선생님은 또 뭐고?’
아무래도 저건 정상이 아니다.
오랜 시간 생사를 걸고 갈고닦은 직감이 알려주었다.
‘이놈은 빨리 떨쳐내야 해.’
이보는 평소 느긋한 보폭보다 빠르게 걸었다.
그러자 덩달아 놈의 보폭도 빨라졌다.
보기만큼이나 끈질긴 놈이었다.
“저, 선생님.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
“제 이름은 로벨입니다. 아, 아까 말씀드렸지만, 혹시 까먹을까 해서 말씀드렸어요. 은발에 보라색 눈동자, 로벨이요.”
“…….”
살면서 술도 안 마시고 이렇게 말 많은 사내놈은 처음이었다.
그 헛소리가 슬슬 지긋지긋해질 찰나에 이보는 저도 모르게 무심코 툭 내뱉었다.
“생긴 거나 행동이나 남자 같진 않네. 너, 그러면 자꾸 오해받을걸?”
그런데 그때, 뒤에서 들리던 걸음이 멈추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되레 두 손을 꼭 맞잡고 감격하였다는 듯이 자신을 보는 놈이 있었다.
……뭐야, 저게?
왜 기분 나빠 하지 않는 거지??
이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날 때부터 곱상하게 생긴 그는 여자로 오해받는 외모를 감추려고 일부러 앞머리로 이마와 눈가를 가려왔기 때문이다.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어쩌면 자신처럼 기분이 불쾌할지도 모르는 말인데, 로벨이란 놈은 오히려 기뻐 보였다.
“세, 세, 세상에!…….”
“……?”
“이 정도! 눈썰미는! 있어야 대상단주가 되는 거군요…… 제가!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까짓 게 뭐라고! 그 자리를 탐내다니!”
……혹시 정신이 아픈 놈인가? 대상단주?? 탐내다니???
이보는 멀쩡하게 생겨선 헛소리를 늘어놓는 로벨을 이상하게 봤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뺨까지 양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선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우연히 숨어 들어가 봤던 서커스보다 더한 진풍경이었다.
어쨌거나, 이보는 알겠다고 고개는 끄덕였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이토록 강렬하게 미친놈은 처음이니 짧은 만남이라도 결코 절대 잊지 못할 테니.
그리고 계속 쫑알거리는 놈에게, 이보는 적선하듯 이름도 알려주었다.
“이보.”
흔하진 않아도, 어디서든 종종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살면서 동명이인을 서너 명은 더 봤었으니.
그런데 로벨은 금은보화가 있는 장소라도 들은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고맙습니다, 이보 님.”
“…….”
“저 혹시, 형님으로 모셔도 될까요? 아니면, 오라버니도 저는 좋은데. 저, 제가 보기보단 어려서 열셋인데, 올해 몇 살이세요? 어, 제가 보기엔…… 열다섯! 저보다 딱 두 살 많은 것 같은데. 하하핫!”
‘……이거 진짜 또라이 아니야?’
나이는 맞혔다만, 들을수록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보는 심란한 구석을 숨기며 열심히 다리를 놀렸다.
곧, 지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끝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이보와 달리 로벨은 심각해졌다.
“이런……. 벌써 도착했군요.”
이보는 그를 흘끔 살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싶었다.
아까 처음 보는 놈들에게 잡힐까 봐 초조해하던 것과는 완벽히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격을 당할 정도로 쫓겨 다니는 놈이라면…… 이런 순수함은 유지하기 어려울 텐데.
혹시 유복하게 살다가 집안이 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짓던 로벨이 ‘아!’ 하는 감탄사를 뱉더니 손을 바지춤에 쓱쓱 문댔다.
그러더니 이보에게 팔을 뻗었다.
“자, 악수.”
이보는 반응하지 못하고 눈을 크게 깜빡였다.
“…….”
구정물 냄새 난다고 욕을 먹거나 단도로 협박만 받아봤지, 이런 대우는 처음이었다.
난감하게 바라보자 로벨이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악수라도 해요.”
“…….”
“어서요.”
이 더러운 구역에서 보기 드문, 따뜻한 호의와 천진난만한 미소에 눈이 갔다.
아까 그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해맑은 걸 보면 정말 드물게 성격 좋은 놈이다 싶었다.
물론 이보는 자신이 보기에도 이미 성격이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지 오래지만…… 굳이 따지자면, 자신처럼 음험한 성향보단 이쪽이 더 끌리긴 했다.
‘……악수 정도는 괜찮겠지.’
이보는 조금 느릿하게 팔을 뻗으려다가, 다시 급히 거두었다.
뒤에서 여러 명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야, 이보. 팔자도 좋네.”
매캐한 담배 연기, 그리고 약 냄새도 함께 풍겼다.
콜록콜록.
그게 지상의 냄새보다 익숙한 이보와 달리 로벨이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이보는 로벨 앞을 가로막듯 섰다.
그러자 사내들이 우스꽝스러운 것을 보듯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으며 낄낄거리더니 말했다.
“너 여기서 이러고 노닥거릴 시간이 있냐? 헌납 시간도 까먹고.”
* * *
황밤에는 출생의 비밀을 가진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 도련님.
두 번째는 이보 마틴.
두 사람 다 유년기가 비극적이긴 하다만, 자라난 환경은 은근히 다르다.
도련님은 공작을 전혀 모르고 자랐는데, 이보는 부친의 존재를 알면서도 줄곧 외면해 왔다는 차이다.
이보의 부친은 대상단 호넷의 주인으로, 정실과 수십 명의 첩이 있는 사내였다.
이보의 모친은 그 첩 중 하나였는데, 막대한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다른 첩들에게 일찌감치 암살을 당했다.
결국,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보는 어린 나이에 도망쳐 고아원에 들어갔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서브공 이보 마틴의 배경인데…….’
나는 이보의 빠른 걸음을 거의 뛰다시피 쫓아가며 생각에 잠겼다.
‘코의 흉터는 그때 도망치다가 생긴 상처고…….’
아무리 특이한 머리 색이라도 그것만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었는데, 흉터를 보자 이름까지 자연히 떠올랐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보는 훗날, 상인의 제왕이라 불리는 대단한 수완가가 되어 작품에서 무척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뭐, 장차 선생님이란 호칭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 된달까.’
내가 상인 집안이라서 그런진 몰라도 어릴 때부터 이곳의 주인공 중에서 이보가 제일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 감격스러운 만남이 무색하게도, 대화를 나눌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아까 사내들의 이야기에 그는 분하고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방향을 바꿔 갑자기 하수도 길을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달려가며 머리를 굴렸다.
‘아직 아버지의 상단에 되돌아가기 전일 테니…… 머무르는 고아원에 문제가 생겼겠네.’
내 예상은 맞았다.
하수도에서 사다리까지 타고 올라가 도착한 곳은 초라한 고아원이었다.
오래되어 낡은 입구까지 들어서자, 내내 조급하게 앞만 보던 이보가 멈췄다.
“로벨이라고 했지.”
아무리 변두리라도 수도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나, 하면서 걷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덥수룩한 앞머리에 가려진 얼굴이 반밖에 안 보이는데도 초조함이 역력했다.
“정말 안 돌아갈 작정이야?”
“제게 도움을 주셨으니, 이번엔 도움을 받으셔야죠. 사람들은 원래 돕고 사는 거 아니겠어요?”
곱슬머리 사이사이로 언뜻 드러난 미형의 눈동자가 찌푸려졌다.
나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멀리서 봤을 때도 잘생긴 건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엄청난 외모였다.
도련님과 공작, 마넬라노를 지겹게 보며 웬만큼 잘생긴 남자에는 꽤 면역이 생겼다고 자부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나보다도 눈이 훨씬 큰 것 같은데?’
잠시 넋을 놓았던 나는 그가 완전히 쫓아낼세라 급히 덧붙였다.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도움이 될지. 제 고향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도 있고요.”
“하아…… 백지장도 백지장 나름이겠지.”
이보가 아랫입술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말씨름할 시간은 없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말리진 않았다.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질척거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보는 받은 것의 배는 갚아주는 성향이야. 그게 빚이든, 은혜든.’
그러니 이번 기회에 좋은 첫인상을 남겨서, 훗날 우리 상단의 실리를 얻어야겠다.
즉, 기회가 생겼으니 잘되는 라인에 줄 한번 제대로 서보겠다는 뜻……! 나도 시종 일 그만두면 먹고는 살아야지.
그렇게 결심하며 외부보다 더 엉망인 복도를 지나, 창고가 보일 때쯤이었다.
이보가 커다란 나무 상자를 눈짓하며 말했다.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럴 수야 없지.
하지만 나는 마음과 달리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 여기서 그냥 가만히 있을게요.”
그러자 이보가 나를 영 미심쩍게 봤다.
……역시 장차 대상단주. 눈치가 보통 빠른 게 아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