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61)
61
저택에 돌아온 에드릭은 곧장 공작을 찾아갔다.
“북부의 세 분쟁 지역에서 얻게 될 새로운 자원은 생산과 가공, 판매 과정까지 전부 덴카르트에서 직접 맡았으면 합니다.”
에드릭은 꼿꼿한 자세만큼이나 물러섬 없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휠체어 없이 선 채로 그를 대면해서인지, 이젠 공작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직접 상단을 꾸리려 합니다. 겨울까지면 시간은 충분합니다.”
예상외로 공작은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아직은 존댓말에 어색한 아들을 흘끗 보더니 낮게 말했다.
“책임지고 완벽히 성사시키도록.”
“예. 클란트 백작과 본격적으로 준비하여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에드릭은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원했던 일을 성취하였음에도 그의 낯은 썩 밝지 않았다.
‘……마차에서 로벨에게 거짓말을 해버렸어.’
솔직히 말하자면, 에드릭도 요즘 들어 로벨이 여느 시종들과는 다르게 느껴지곤 했다.
바람에 날려 온 건지, 대정원의 자갈 바닥 한구석에 떨어진 작은 꽃도 소중히 주워 같은 품종의 꽃이 심긴 장소에 옮겨줄 때…….
낭독회 이후로 시에 취미를 가진 그가 사랑의 시를 읽으며 눈을 빛낼 때, 이젠 쓰지 않는 목발에 리본을 달 때, 자신을 보고 해맑게 웃을 때……. 나열하자면 끝이 없었다.
그러나 미움받지 않으려고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크림슨은 틸리라는 하녀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했고, 아리프는 미성의 목소리를 숨기려고 짤막하게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두 사람만 봐도 그렇듯이 대체로 사내들이란 ‘거친 성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니, 로벨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긴 탓이다.
로벨에게 거짓말을 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우울해하는데, 집사가 조심스레 뒤따라오며 말했다.
“도련님. 약혼 후보의 명단이 추려지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길고 긴 이름들과 약혼 후보들의 대단한 가문, 아리따운 용모를 차례대로 열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드릭의 귀에는 한 마디도 전해지지 않았다.
복도 창문 저 너머로 로벨이 보였기 때문이다.
‘로벨이다.’
테라스 아래로 움직이는 로벨만 눈에 박힌 듯이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이보라는 소년도 함께였다.
“…….”
종전과 다르게 차게 식은 눈으로 이보를 바라보던 에드릭이 낮게 중얼거렸다.
“……일주일.”
그 의미를 착각한 집사가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약혼녀 명단을 일주일 만에 만들어 오라는 건가.
“송구하지만, 말씀하신 기간보단 시일이 더 소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공작님의 확인과…….”
에드릭은 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만 가득했다.
로벨은 이보가 수도 패거리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상단 지식을 많이 익혔고, 그 쓰임새가 탁월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니 단 한 번만이라도 보좌관들에게 그 능력을 증명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에드릭은 그런 로벨에게 일주일을 주겠노라 약조했다. 오늘 하루가 피곤했던 건지 지친 눈빛을 보자 더 질문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보좌관들도 에드릭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막상 둘이 함께 있는 걸 직접 보니 거슬렸다.
‘그렇지만…… 일주일쯤이야, 참을 수 있어.’
죽을 듯이 아프다는 병도 진통제 없이 수년을 버텨오지 않았던가.
참을 수 있다.
에드릭은 그렇게 자신을 과신하며 등을 돌렸다.
* *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그 말대로, 미래의 대상단주 이보 님에게 잘 보이기는 물 건너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가 벌인 일은 마땅히 책임을 져야 했다.
나는 이보의 미래를 꼬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이보가 일주일간 덴카르트에 머무르는 기회를 받아낸 것도 그 일환이었다.
덴카르트의 그늘 아래 있으면 상단주로서의 능력도 원작 이상으로 키울 수 있을 테니.
“당분간 저랑 같은 방을 써요. 넓으니까 불편하진 않을 거예요.”
사실 다른 방을 내어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복도에서부터 쭉 느꼈는데, 이곳 사람들 모두가 이보를 좋게 보는 건 아니었다.
나처럼 괴롭힘을 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선 내가 가까이서 살피는 게 최선이었다.
특히나 이 나이 또래 애들은 더 예민하니까…… 괜히 안 좋은 일로 삐뚤어지면 곤란하지.
뭐, 원래 룸메이트인 림슨 형도 방을 공유하는 일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이보의 매끈한 하관을 빤히 살피다가 이상하게도 나를 보고서 한숨을 폭폭 내쉬었지만 말이다.
이에 이보는 부담스러운 눈치였으나, 거절하진 않았다. 오히려 미소 띤 얼굴로 그러겠노라 했다.
내가 도련님의 전속 시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신경 쓰는 눈치였다.
“고마워.”
“천만에요. 그럼, 갈까요?”
방으로 돌아오자, 이보가 내 눈치를 살며시 봤다.
분명히 무슨 할 말이 남은 기색이라 문을 닫자, 그가 운을 뗐다.
“아까 모조 사파이어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음…… 그것도 고맙네.”
이보가 곤란한 듯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완전히 좋아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역시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답군.
나는 다 알면서도 모른 척 미리 받아온 옷가지를 챙겨 이보와 함께 공용 욕탕으로 향했다.
그를 들여보내고, 복도에서 혼자 기다리는데, 묘한 감상이 들었다.
‘지금 상황이…… 원작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 같기도 하네?’
소설에서 이보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하다.
덴카르트에서 발견한, 세 분쟁 구역의 자원을 온 대륙에 활발히 유통하고, 다른 서브공들의 가문과도 거래했다.
심지어 소금 거래권 등 최고라 불릴 수 있는 상품들을 독점하기도 했다.
뭐,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지금 시점에서 보면 새로운 자원을 판매하는 일에 어느 정도 연관이 생겼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원작과 달리 도련님이 무척 건강해진 상태라, 이보가 도련님께 동질감, 측은지심 같은 감정을 느끼고, 그게 또 사랑으로 발전할지까지는 모르지만.
“……네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돼?”
벌써 목욕을 마쳤는지 어느덧 돌아온 이보가 조금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환히 웃으며 답했다.
“당분간 림슨 형님과 웨인 군이 도련님을 모시기로 했어요. 낮에 고아원에서 본 두 사람, 기억나시죠? 덩치 큰 시종 형님이랑, 제 또래 갈색 머리 시종이요.”
“……기억나.”
“그 두 사람이 잘해 낼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예. 피곤하셨을 텐데, 가요.”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처한 일이 생겼다.
이보의 축 처진 앞머리에서 뚝뚝 흐르는 물기에 주변 하녀 언니들이 눈치를 줬다.
이보는 당황했는지 얼른 수건으로 덥수룩한 앞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내일 바로 머리 정리라도 하자고 해야겠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 이보와 간단히 식사하고, 우린 탁자를 사이에 낀 침대에 각각 누웠다.
……물론 잠은 하나도 오지 않았다.
도련님의 미래가 나 때문에 바뀐 것은 만족했지만, 이보까진 전혀 예상치도 못했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이보의 탄탄한 미래를 내가 훼손한 건 아닐까 염려가 된 탓이다.
그것도 그렇고…… 오랜만에 본 상단 사람들도 신경 쓰였다. 다들 잘 돌아갔겠지.
나를 필사적으로 찾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착잡했으나, 마음을 가다듬으려 했다. 다 낫기 전에 가봤자…… 나는 그들에게 짐일 뿐이다.
그런데…… 잠이 안 오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낮고 풍부한 소년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자고 있어?”
“아뇨.”
방금까지 이보와 벽을 본 상태로 있었지만,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원망이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이보는 예상치 못한 얘기를 꺼냈다.
“……네 덕분에 동생들이 자라나 할 일이 생겼어. 고마워.”
“에이, 후원하기로 한 것은 도련님인데요.”
“처음부터 너 아니었으면…… 덴카르트 공자님이 고아원에 왔을 리도 없잖아. 그리고…… 너를 봐서 우릴 봐준 것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도 이보의 어색한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쩐지, 도련님 옛날 성격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 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고마우시면 앞으로 제가 형으로 모셔도 돼요?”
* * *
이보는 당최, 로벨이라는 시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꾸 나 때문에 손해를 보려 하지?’
초면에 양심상 단추 하나만 뜯어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 준다고 하더니…….
이젠 그 주인을 설득해서 이 저택에 머무를 기회까지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작 하루 만에 로벨은 이보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이 저택에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편의는 물론, 정원사에게 부탁하여 덥수룩했던 앞머리를 눈이 드러나도록 보기 좋게 손질한다든가, 사용인들 틈에서 잘 어울리게 소개를 해주는 것 따위도 포함이었다.
이보는 그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했지만,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게 어색했다.
그간 고아원의 동생들을 챙겨주기만 했지,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아본 적은 없던 탓이다.
그걸 뭐라고 오해한 건지, 로벨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형. 근데요, 여기서 절대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이보 형은 여기서 가장 큰 인물이 될 테니까요.”
……전부터 느꼈는데, 아부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놈이었다.
그런데 그 아부가 은근히 근거가 있었다.
자신이 가진 대상단의 비본을 이용한다면, 웬만한 귀족들 이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살 테니까.
하지만 아직은 결심이 서지 않아 산속에 묻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로벨은 마치 자신이 가진 대상단의 비본의 존재를 아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잘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잠시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일은 결코 없었다. 그 비본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묻어두었으니까.
그렇다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