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62)
62
‘지금 당장 내게서 얻어갈 것도 없는데…….’
“자, 드세요.”
이번에도 로벨이 그에게 선뜻 빵 반쪽을 잘라주었다.
이보는 낯으로는 습관적으로 미소를 띠었으나, 손으로는 매우 어색하게 받았다.
그간 수도 사람을 속여먹거나, 등쳐먹으며 자본을 마련한 그였다.
당연히 어른들이 주 대상이었기에 어린아이들은 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소년 앞에선 왠지 어려웠다. 자꾸만 자신을 챙겨주려고 하기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그 이상한 불편함과 평온함 때문인지, 이보는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항상 주린 배를 움켜쥐고 산 인생인데도 그랬다.
이보는 빵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운을 뗐다.
“안 물어봐?”
“……?”
“코 흉터. 보면 다들 물어보던데.”
한둘이 아니다.
크림슨이나 다른 자들 모두 빠짐없이 흉터에 관해 물었다.
맨 처음은 그의 머리를 손질해주던 정원사부터였다.
[ 쯧쯧. 어린 나이에 참 딱한 일을 겪었나 보군. ]노년의 정원사는 안타깝다며 대놓고 혀를 찼다.
그 잘생긴 얼굴에 참으로 원통한 흉터라며 그보다 더 속상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지나가는데 그를 멍하니 보다가, 뜬금없이 자기 팔 안쪽을 보여주며 그 흉터를 여기로 옮기고 싶다며 울상을 짓는 수상쩍은 소녀도 있었다…….
심지어 말수가 적은 공작의 두 보좌관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싫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에게 시험지를 주던 보좌관 벤자민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그런 흉터가 있냐며 다 들리는 추궁을 해댔다.
하지만 로벨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상황을 다 아는 사람처럼, 혹은 배려해주는 것처럼 잠자코 있을 뿐이다.
신기하거나 이상하게 여겨 구경하거나, 혹은 몇몇 소녀들처럼 선망하거나, 소년들처럼 질시하거나, 안타깝게 보지도 않았다.
이보는 그런 로벨이 더 신기할 따름이었다.
‘……귀족들의 시종들이란 원래 이런가?’
상상 속 귀족의 시종과는 확연히 달랐다. 까다롭거나 오만하지 않았다.
반면에,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스럽게 훑는 웨인이라는 시종은 딱 그런 이미지였지만 말이다.
“아까 말씀해주셨잖아요.”
“내가 언제?”
이보는 빼어난 눈썰미만큼이나 기억력도 훌륭한 편이었다.
눈을 찌푸리면서 묻자, 로벨이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아까, 그냥, 과거에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잖아요.”
확실히 머리를 손질해준 정원사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정원사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냐며 몇 번이나 되물어서 그때마다 둘러대야 했다.
그런데 로벨은 고작 그걸로도 궁금증이 해소된 눈치였다.
‘……정말 이상하네.’
“안 먹을 거면 저 먹어도 돼요?”
먹을 것 하나 때문에 협박에 시달리던 그에게는 저 담백한 물음도 생소했다.
이보는 복잡한 속내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나 로벨의 부름에 다시 원위치 해야만 했다.
“저, 이보 형. 그런데요.”
“……?”
“그…… 세상에 닮은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저기 지나가는 분들도 전혀 혈연관계가 아닌데, 닮았죠.”
이보는 로벨이 빵을 잡지 않은 손으로 가리키는 두 하인을 바라봤다.
확실히 같은 일을 해서 그런지 햇볕에 그을린 피부나 큰 덩치가 닮긴 했다.
외모는 멀리서 봐도 전혀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같이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저렇게 닮기도 하나 봐요? 하하. 왠지 이름도 비슷할 것 같던데.”
……듣지 않았는데도 이름도 다를 것 같았다.
전혀 동의하진 않지만, 눈치 빠른 이보답게 순순히 그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그러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그 대답에 로벨은 어색하게 눈을 굴리며 안도하는 모양이었다.
……왜 이런 거로 저러지?
이보는 이놈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빵을 마저 먹었다.
그런데 문득 뺨이 간지러워졌다.
이상한 기분에 시선을 올리자, 저 위쪽으로 한 소년이 보였다.
‘……에드릭 덴카르트.’
난간에 두 팔을 올린 채 이쪽을 바라보며 상체를 기울인 상태였다.
수도를 떠돌며 그의 얘기를 주워들었는데, 도무지 전에 다리를 절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멀쩡해 보였다.
그런 그가, 저 위에서 아주 자신을 죽일 듯이 쏘아보고 있다니 더 기분이 묘했다.
‘나 때문은 아닐 테고…… 로벨 때문이겠군.’
그렇다면 돌려보내야겠다.
즉시 판단을 마친 이보는 로벨이 준 물통을 만지작거리며 넌지시 물었다.
“오늘 덕분에 저택 길은 다 외웠어. 그런데, 로벨. 전속 시종이라면서. 그럼 이제 슬슬 복귀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괜찮아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요.”
“나야말로 괜찮아. 이제 혼자 시험을 치를 수 있으니 주인께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에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우리 도련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는걸요.”
로벨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어깨를 쭉 폈다.
이보는 로벨에 대해서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은 귀족가 시종치곤 눈치가 더럽게도 없었다.
* * *
이보는 내 예상대로 보좌관들의 눈에 쏙 들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왜 이따위 일까지 해야 하지?’라는 듯이 말끝마다 짜증을 내던 벤자민이 그를 다시 불러내기까지 했다.
본격적으로 그 능력을 검증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나설 필요는 없어서 여유도 잠시 생겼다.
이왕 시간 남은 거, 잠깐 도련님 보면서 힐링이나 하자 싶어서 도련님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정원에서 무슨 얘기 했어?”
그런데 문턱을 넘자마자, 소파에서 책을 읽던 도련님이 물었다.
“우연히 보니까, 둘이 웃으면서 무슨 얘기를 열심히 하고 있던데.”
……그걸 언제 보신 거지?
어리둥절했지만, 뭐 테라스에서 잠깐 머리를 식히실 때 봤을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별거 없었어요. 그냥, 이보가 불편할까 봐 밖에서 식사하면서 평범한 얘기를 했어요.”
……사실 평범한 얘기는 아니다.
세상에 닮은 사람이 참 많다는 이야기.
그건 로베르가 생각나 꺼낸 것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상단 업무 중 로베르와 마주치는 일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면 해서.
뭐, 이보는 워낙 높은 자리로 갈 테니 우리 상단 정도는 마주치지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대비를 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훗날 그의 의심을 푸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넌지시 건넨 얘기였다.
한데 내 말을 들은 도련님은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책만 내려다보았다.
“그랬구나.”
책을 읽는데 내가 방해를 해서 그런가.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하긴, 도련님이 공부할 때는 정숙할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를 선호하긴 했다.
노크도 없이 이렇게 들이닥쳤으니 기분이 상할 만도 하지.
그럼 더 방해하지 않게 어서 빠져나가야겠다.
“……저, 필요하신 거 없으시죠?”
그제야 도련님이 책을 덮었다.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물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게 경쾌한 소리의 주인은 예법 수업 담당의 실비엣 부인이었다.
“들어와.”
도련님의 명령에 문지기가 문을 열고, 실비엣 부인이 들어왔다.
고혹적인 금발 머리를 높게 묶은 그녀는 우아함과 세련미가 넘치는 자였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마치 고급 예법의 정석 같은 귀부인이었다.
두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살짝 잡아 올리고 내리는 간단한 동작마저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전까진 예법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새 실비엣 부인의 예법을 눈으로 익히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그녀가 왔으니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가려는데, 도련님이 말했다.
“실비엣 부인. 오늘은 그동안 배운 예법을 직접 연습해보고 싶은데.”
중년의 나이임에도 고운 그녀의 낯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모든 수업 시간에 열중은 한다만, 다른 것에 비해 예법에는 큰 관심이 없던 도련님이었다.
특히 실제처럼 연습한다고 하면 내심 꺼리던 차라, 그녀도 조심하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도련님의 출신이 평민이었던 점을 배려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차근차근 단계를 쌓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인.”
도련님은 감격을 절제된 미소로 감추는 그녀를 바라보며 짐짓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한 번도 사교회에 참석해본 적 없으니 혼자 연습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혹시 도련님이 생각을 바꿀까 긴장하던 부인은 다음 말에 다시 사르르 녹는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함께 연습할 상대가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실전과 유사한 상황은 늘 중하지요.”
살랑이는 부채로 하관을 감춘 실비엣 부인은 눈을 내리깔았다.
큰 변화는 없었으나, 확고한 결심이 느껴졌다. 실전 예법 연습으로 무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도련님이 먼저 실전 연습을 하겠다는 일은 전혀 없었으니,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당장 진행하겠지.
“공자께서 미리 염두에 둔 예법이 있나요?”
“사교댄스.”
“아, 공자께서 사교댄스에 관심을.”
실비엣 부인의 눈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아마 내 눈도 그녀처럼 빛나고 있을 테다.
‘우리 도련님이 춤이라니!’
타고난 외모는 물론이고, 팔다리도 길쭉하고, 요샌 체격도 다부져서 분명 보는 사람도 즐거울 것이다.
‘그걸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쉬운데.’
막말로 도련님 걸음마……까진 아니더라도, 첫 걸음부터 꾸준히 봐온 나로선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리를 떠야 했다. 슬슬 이보가 신경 쓰이기도 했고.
그런데 그때, 실비엣 부인과 연습 상대에 대해서 논의하던 도련님이 한층 더 곤란하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첫 연습을 모르는 사람과 하는 건, 불편한데. 부인은 옆에서 지도를 해야 할 테고.”
“상대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다른 방안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부드럽게 답한 실비엣 부인이 다시 생각에 잠기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다가, 문가로 은근슬쩍 뒷걸음질 치려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엇?’
그녀의 눈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