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79)
79
안 돼……. 이제 겨우 제대로 삶을 살아볼 기회가 생겼는데!…….
“흡, 흐윽…….”
이제야 간신히 열셋을 건강하게 보냈는데, 이렇게 죽을 순 없었다.
나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필사적으로 굴렸다.
작고 큰 돌멩이에 부딪혔는지 몸이 쓰라리고 아팠지만, 제대로 통증을 느낄 정신도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굴렸지만, 막다른 벽에 다다른 건지, 더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헉, 허억…….’
나는 가쁜 숨을 뱉으면서 어떻게든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숨 쉬는 것도 느껴지지 않고, 무섭거나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졌던 모든 감각이 늘어지다 못해 잘리는 것처럼 사라졌다.
‘아…… 망할…….’
나에게는 두렵도록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 후도 뻔했다.
이제는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부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허탈해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이렇게…… 또…… 열셋을 못 넘었네…….’
만약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죽었다는 걸 세상 누구도 모를 것 같았다.
‘이번에 죽으면 또 회귀하려나…….’
나는 흐릿한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아니, 이번 죽음은 병 때문이 아니니…… 이번엔, 말 그대로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여태껏 죽은 이유와는 다르니까…….
불투명해지는 의식은 습관처럼 차례대로 정리의 단계에 이르렀다.
부모님과 오라버니, 상단 사람들, 그리고 도련님…….
‘……도련님.’
나는 그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도련님께 드릴 선물과 편지는 침대 아래에 두었으니 누군가 확인하고 잘 챙겨줄 것이다.
설령 내 시체가 타서 사라진다 해도 사직서는 써서 사물함에 넣어두었으니…… 다들 내가 도련님이 싫어서 중요한 사냥제 중간에 사라진 게 아니란 건 알 것이다.
그나마 그게 내 억울한 죽음에 위안이 되었다……. 아니. 죽기 싫었다.
‘정말, 이렇게 죽기는 싫은데…….’
그 생각을 끝으로 의식마저 놓으려 했다.
“로벨!”
* * *
기억상 폭포가 동굴과 연결된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로벨이 있을지도 몰랐다.
에드릭은 단 한 줄기 희망도 놓치지 않고 망설임 없이 행동했다. 더 늦으면 로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물가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나, 단박에 폭포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런데 에드릭은 날 때부터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물살을 능숙히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는 그 사실에 기뻐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움직였다. 로벨을 찾아야 했다. 모든 신경을 바람이 통하는 장소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물속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자, 동굴과 이어진 제법 넓은 틈이 보였다. 에드릭은 더 빠르게 물길을 헤쳤다.
그 틈에 들어가자 지독한 어둠이 눈앞을 가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물살을 가르자, 바람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가자 에드릭은 동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벨!”
에드릭은 급히 동굴의 지면에 올라섰다.
온몸이 흠뻑 젖어 흐르는 물기를 닦을 틈도 없이 로벨부터 살폈다.
“…….”
에드릭의 낯이 분노로 빠르게 물들었다.
얼마나 모진 일을 겪었는지 그의 조끼는 다 풀어지고, 신발도 한 짝은 없었다.
그리고 드러난 뺨이며 손, 여기저기에 혈흔이 없는 데가 없었다.
로벨부터 안아 올리려 했지만, 떨리는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들려 해도 시도에만 그쳤다.
이토록 나약했던가.
에드릭은 침착함을 되찾으려 했다. 로벨이 위험에 빠진 순간이다.
이렇게 멍청하게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그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갑자기 입 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돌았다.
그러자 정신이 확 들었고, 그 후부터는 다시 움직임이 명확해졌다.
단검으로 로벨을 묶었던 안대와 밧줄을 끊어내고, 침이 잔뜩 묻은 천도 풀어주었다.
“……콜록, 콜록!”
로벨의 기침 소리에 서서히 현실감이 들었다.
에드릭은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로벨을 껴안았다.
겹쳐진 두 사람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정신을 잃은 로벨 때문이 아니었다. 에드릭이 잔뜩 두려워하며 몸을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벨이 생명을 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로벨, 로벨…….”
애타게 이름을 불러도 로벨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를 찾아 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느끼지 못한 공포가 가라앉았다.
그러나 에드릭이 완전히 안도할 틈도 없었다.
“……불?”
정신없이 로벨만 보느라 불이 난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어디서 퍼졌을지 모르는 불길이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번져 있었다.
에드릭이 로벨을 품에 안아 들고 아까 들어왔던 통로로 갔지만, 더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정신을 잃은 로벨과 물속을 헤엄쳐 빠져나갈 방도는 없었다.
에드릭은 로벨을 보호하듯 품에 안고 불길을 쏘아봤다. 죽으면 죽었지, 여기서 로벨을 버리고 갈 순 없었다.
로벨 때문에, 로벨 덕분에, 사람답게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버리고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로벨을 살려내야 했다.
뜨거운 열기가 등가를 장악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에드릭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또렷하게 빛냈다.
로벨이 그동안 알려주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순간.
에드릭은 문득 로벨과 평온했던 오후 중 하루를 떠올렸다.
온통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충만했던 하루였다.
카우치 바로 옆에는 로벨이 앉았고, 탁자에는 로벨이 즐겨 읽는 책들이 쌓였으며, 로벨이 오후마다 마시는 따뜻한 홍차와 간식도 있었다.
그날, 로벨과 손을 잡은 채로 그에게 읽어주었던 디프의 시가 떠올랐다.
[ 욕심 많은 디프는 엘프에게서 아름다움과 하프를 훔쳤고, 정령에게서 물과 불을 훔쳤고……. ] [ 디프는 욕심쟁이인가 봐요? 우리 도련님은 아닌데. ]‘……어쩌면.’
한 가지 희망이 머릿속에 스쳤다.
단 한 번도 물을 접한 적이 없었으나, 자유자재로 물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다른 것도 다룰 수 있는 것 아닐까.
말장난 같던 시였지만, 지금 상황에선 작은 단서라도 놓칠 수 없었다.
에드릭은 로벨을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사라져라.”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불길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명령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드릭은 그 광경을 경악스럽게 바라봤다. 다급한 마음에 시도는 했다만,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
이내 화마가 넘실거리던 곳에는 까만 재와 연기만이 남았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다시 로벨을 내려다보았다.
숨쉬기도 힘든지 작게 쌕쌕거리고 있긴 해도 아직 살아 있었다.
‘……로벨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
한 번도 무릎을 꿇어본 적 없는 에드릭은 물가 앞에서 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모자라 간절한 표정을 짓고서 두 손으로 물가의 물을 떠서 로벨에게 먹였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자 로벨의 거친 호흡도 조금 안정이 되었다.
저도 모르게 떨리는 호흡을 내뱉으며, 에드릭은 로벨을 살폈다. 그런데 아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험하게 다루었는지 살갗에 바닥의 잔가지며 무엇인지 모를 가시까지 여기저기 박혀 있었다.
‘로벨이 붕대로 숨기던 그 상처는…….’
과한 움직임으로 혹여 붕대가 풀려 상처가 덧나진 않았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시선을 내렸다.
그런데 벌어진 단추 사이로 반쯤 풀어진 붕대 자락이 흘러나와 있었다.
그 안으로 어렴풋한 실루엣이 보였다.
“…….”
이윽고 알아낸 충격적인 진실에 그의 숨이 멈췄다.
* * *
아…… 내가 정말 죽긴 했나 보다.
[ 로벨, 정신 차려. 로벨……. ]의식이 끊어질 때마다 우리 가족들이 나를 이렇게 애달프게 부르긴 했었다.
영혼이 완전히 세상을 뜨기 전에 신이 내게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주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었다.
이번 생은 도련님이 내 곁에 머무르는지 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래도…… 꽤 나쁘지 않은 생이었네.’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내 예상대로 도련님이 나를 구하러 왔던 것이다.
뭐, 타이밍은 맞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 거센 화마를 어떻게 잡고서 오셨는지는 몰라도 나를 진정으로 위해준 것이니…….
그럼 혹시 또 회귀한다면, 다음 생에도 우리 도련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를 잊어버린 도련님을 본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어가는데도 가슴이 아렸다.
내가 떠난 후에, 정말 나중에 기회를 봐서, 먼발치에서나마 보려고 했는데……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건 아예 예상치도 않았다.
“로벨, 미안해. 나 때문에…… 정말 미안해.”
‘……도련님이 왜 사과를 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화가 났다.
‘그동안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정말 도련님 아니었으면…… 이때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아팠을걸.
여기서 이렇게 건강하게 생을 마감하는 건 처음이니까…….
아니, 그것도 그렇고, 나쁜 놈은 나쁜 짓을 저지른 놈들인데.
우리 도련님은 나쁜 짓을 당하면 당했지 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생각으로 입을 벙끗거리는데, 목이 울렸다.
“으, 으으…….”
……놀랍게도 내 목소리였다.
……뭐야. 설마, 나 안 죽었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사적으로 딱 붙은 눈꺼풀에 힘을 줬다.
“로, 로벨, 로벨! 정신이 들어?”
그러자 흐릿해진 시야 너머로 도련님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그의 두 손엔 모두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론 내 눈가를, 나머진 손으론 내 입가를 닦아주고 있었다.
나는 무려 대귀족 후계자님의 아주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다가…… 놀라서 더듬더듬 물었다.
“저…… 왜…… 안 죽었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네가 죽긴 왜 죽어!”
화를 내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덴카르트 명성에 걸맞게 화려하고 견고한 마차는 비가 와도 물 한 방울 새지 않았다.
그런데 내 얼굴 위로 뜨거운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도련님의 눈가가 몹시 붉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아랫입술이 너덜너덜하게 뜯어져 있었다. 피딱지도 붙어 있었다.
저 예쁜 얼굴에 무슨 일이야…….
팔을 뻗어서 닦아주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부딪친 것까진 기억나는데…… 따갑고 쓰리고 난리가 났다.
“안 돼. 더는 무리하면 안 돼. 그대로 있어.”
다행히 내 옷은 넝마처럼 해지긴 했어도 누가 손댄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정신을 잃어선 안 되었다.
이대로 잤다간…… 도련님 성격상 황성에 당도하면 궁의까지 부를 테니까…….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지.
여기서 나가면 재입장은 안 되었다. 나는 가물거리는 눈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
“저…… 지금 혼자 보내주셔도 돼요. 나가면 림슨 형도 있고, 사냥제도 참가하셔야…….”
아까 도련님을 씹던 귀족 소년들을 떠올리며 어눌하게 말했다.
도련님이라면 그놈들 코를 아주 보란 듯이 납작하게 눌러줄 테니까.
그런데 그가 뜻 모를 눈으로 나를 한참 들여다봤다.
“안 가.”
짧지만 단호했다.
그것은 내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공작에게 인정받으려 했을 때보다 더 그러했다.
이렇게나 나를 신경 써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나도 마주 보려 했는데, 눈이 자꾸 감기려 했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가물가물한 눈에 힘을 주는 것도 이제 정말 한계다.
아마 곧 잠들 것 같았다…… 아니. 잠들면 안 되는 일이다.
혹여 의원이 나를 진찰하기라도 하는 날엔…… 안 돼.
나는 새까맣게 흐려지는 의식을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말했다.
“도련님…… 황성에 도착하면…… 저 좀 꼭 깨워주세요.”
“…….”
“제가 부끄러움이 좀 많아서…… 목욕도 항상 따로 하고…… 그러는 거 알죠?”
“…….”
“저 심하게 다치지도 않았고요……. 약은 제가 직접 바르고 싶어요……. 꼭 그러게 해주세요……. 그리고 도련님 약도 발라야 해요………….”
잠결에 어렴풋이, 도련님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자. 이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쉬어.”
그 말에 달리는 마차이지만, 집에 돌아간 것처럼 평온하고도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