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84)
84
이상했다.
로벨은 지금 덴카르트 저택에 있어야 하는데…….
반가움보단 불길함이 앞서서 에드릭은 심복에게 말했다.
“따라오지 마.”
“예, 도련님. 기다리겠습니다.”
공작의 심복은 그의 단독행동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가만히 머리를 조아렸다.
급히 로브를 뒤집어쓰고 나간 에드릭이 커다란 나무 뒤에 숨었다.
기척을 숨기는 방법은 이미 아리프와 다른 기사들에게 익혔다.
그는 숨죽인 채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로벨리아!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네가 사라지고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알기나 해? 한시도 잠을 못 이루셨어. 정말 한시도!”
“미안해, 오라버니.”
에드릭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짧은 대화로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아직 완벽히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자신처럼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로벨의 부모는 생각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너를 찾느라 하얀 그림자에 의뢰까지 하고……. 말해 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딜 갔다 온 거야!”
에드릭은 귀에 더 신경을 집중했다. 그 이유는 그로서도 무척이나 의아했다.
어째서 신분까지 속이고, 위험을 자초하면서까지 자신을 모시는 걸까. 저렇게 사이좋은 가족도 두고서…….
그러나 로베르에게 어깨를 붙잡히며 추궁당해도 로벨은 말을 아꼈다.
“……중요한 이유가 있었어.”
“가족보다 중요한 게 있어?”
“있었어. 그때는…….”
“너, 정말, 어떻게…… 어떻게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로베르가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로벨이 다가가 안아주었다.
그런데 로벨의 어깨가 떨리는 걸 보니 그녀도 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에드릭은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으나, 재회를 방해할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울음이 잦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흑, 흐윽…… 엄마랑…… 아빠는?…… 건강하시지? 그렇지?”
“당연한 소릴! 집에 계셔. 가자. 어서, 어서 들어가자. 기쁜 소식도 있어.”
두 사람이 곧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에드릭은 얼굴을 감쌌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로벨이 심각한 금전난이나 가족 문제로 집을 나왔다는 추측이 유력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성별까지 속여가면서 내게…….’
복잡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기분은 바닥으로 완전히 추락했다.
공작의 심복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반긴 탓이다.
“지금부터 공작님의 제안을 전해드리겠습니다.”
거북할 정도로 웃는 낯은 뱀과 닮았다.
* * *
“세상에, 세상에…… 로벨리아! 내 딸!! 내 예쁜 딸아!!!”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환호하며 달려오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쓰러지셨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급히 부축하면서도 나를 귀신 보듯 바라봤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우리 가족이었다.
나는 한참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 분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이 간단한 단어가 이렇게 말하기 힘들 줄이야…….
더듬거리면서 말하자, 아빠를 뿌리친 엄마가 휘청거리면서 내게 달려왔다.
“도대체, 어딜, 흐윽…… 어딜 다녀온 거니, 로벨리아!”
한달음에 다가온 엄마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렵다는 듯이 내 짧아진 머리며 눈썹부터 콧대, 뺨과 입술까지 모두 손끝으로 만졌다.
“오, 세상에……. 정말, 정말 너를 잃어버리는 줄만 알았단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죄송해요. 흑, 흐윽. 정말 죄송해요.”
그 후로는 집안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부모님 품에 안긴 나는 지난 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침대에서 나오지 못할 때도 이렇게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우리 가족이었다.
‘하지만 과거와는 엄연히 달라.’
이제 우리 집안이 망할 일도 없고, 내 건강은 모두 회복되었다.
이젠 정말……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일만 남은 것이다.
그 사실에 내내 도련님을 떠올리며 무거웠던 마음에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온 거야! 철딱서니 없기는!!”
옆에서 코를 훌쩍이던 로베르 오라버니가 나를 나무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젠 귀밑까지 오는 내 머리카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허리까지 오던 내 긴 머리가 갑자기 짧아진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염려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그 머리카락은 어떻게 된 거야? 뭐야. 너 키도 컸네?”
내 키가 부쩍 큰 모양인지, 로베르가 손을 펴서 자신과 내 키를 비교해보았다.
부모님도 내가 왜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궁금해하는 눈치라, 나는 급히 둘러댔다.
“그냥 불편해서 잘랐지. 그보다, 오라버니. 우리 오랜만에 키 좀 제대로 재보자. 나도 궁금해.”
우린 어릴 때부터 매해 키를 기록해두는 거실 벽에 가서 나란히 서보았다.
그러자 둘 다 올 초에 일자로 표시해둔 기록에 비해서 훌쩍 자랐다.
특히 나는 한 뼘가량 자란 것이 확연히 보였다.
나는 기록을 바라보다가 묘한 감상에 잠겼다.
또래라도 워낙 장신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이렇게 내가 컸는지도 몰랐다.
‘……살면서 이렇게 큰 건 처음인데. 몸이 회복된 게 영향을 끼친 건가.’
특히 나와 비슷하던 도련님의 키가 급속도로 자라서 내 성장이 더 미미해 보였는지도 몰랐다.
‘……도련님은 앞으로 공작만큼은 자라려나.’
그런 도련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도무지 상상되지 않았다.
그래도 도련님이 공작만큼 커지더라도, 그 순수한 녹안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다시 우울한 상념에 잠기는 사이 어느덧 주방에서부터 익숙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오늘은 부모님께서 직접 요리를 해주시는 모양이었다.
물에 빠진 듯이 흐릿했던 현실감이 조금은 살아났다. 그래, 내가 있을 곳은 여기였다.
“로벨, 이리 오렴! 얼른!”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다정한 애칭에 마음이 아렸다.
소매로 눈가를 훔친 나는 거실에서 가족들과 준비된 식사를 마쳤다.
밤이 되자, 소식을 듣고 몰린 상단 식구들 덕분에 왁자지껄하니 정신이 없었다.
특히 수도에서 봤던 오라버니가 나를 추궁하며 난리를 피웠다.
“왜 그때 거기서 모른 척한 거야. 그 머리는 어떻게 된 거고?”
“진정한 모험……이 하고 싶었어요.”
이미 준비해둔 핑계였지만…… 내 입으로 말하고도 민망했다.
하지만 최대한 뻔뻔스레 덧붙였다.
“대단한 모험가들의 일대기를 하도 감명 깊게 봐서요.”
내 말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 것만 해도 감사하다는 엄마의 말씀에 다들 조용해졌다.
곧 날이 저물자,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내 방은 여전히 먼지 하나 없네.’
침대는 물론이고, 책상이며 창틀까지도 마찬가지로 깔끔했다.
또다시 가슴이 아렸다.
부모님은 아마 매일같이 청소를 하며 내가 돌아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눈시울을 훔치며 침대에 누웠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둘이 생활하던 시종 방이나 도련님 방보다도 불편했다. 마치 남의 집 침대에 누운 것 같았다.
무엇보다 도련님이 자꾸만 떠올랐다.
‘……우리 도련님은 잘 지내고 있을까?’
귀환해서 내가 갑자기 그만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이 놀랄 텐데…….
이런저런 걱정에 잠을 자려고 해도 몇 번이나 뒤척였다.
그런데 매 순간이 도련님 위주로 흘러가서 그런 것일까. 계속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아까도 그러더니 자꾸만 이러네……. 잊어야지, 잊어야 해. 이제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올 기미조차 없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났다.
‘……상단 일이나 보자.’
어머니 아버지도 그간 힘드셨을 테니 당분간 로베르와 내가 상단을 책임지는 게 옳았다.
늘 불이 켜져 있는 서재에 들어가 문서들을 살폈다.
상단 관련 자료들을 보자, 잊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건 과거에도 있었던 거래네. 이것들은…… 아예 없던 거고.’
생각보다 처음 보는 거래 내역이 많았다.
하긴, 이전 생들에선 보통 이맘때쯤이면 우린 거의 파산 직전이었으니까. 지금은 자금도 넉넉하니 새로운 거래도 받았겠지.
나 때문에 일은 거의 손에 대지도 못했다고 하셨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했다.
‘로베르 오라버니가 생각보다 제법인데.’
로베르 오라버니는 잘하다가도 종종 실수하는 터라, 부모님 대리로 일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걱정했었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자기가 나보다 잘했다며 의기양양하게 자랑할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나둘, 안 본 것보다 본 서류의 양이 많아질 정도로 읽었다.
그사이 새벽이 어스름하게 밝았다.
상단 일을 본격적으로 도우려면 지금 방에 가서 한두 시간은 자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 슬슬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상한 게 눈에 걸렸다.
‘……뭐야?’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종이를 눈앞에 가까이 대고 읽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읽혔다.
‘이걸 왜……. 아니, 베네스와 유리 공예품을 왜 벌써 계약했지?’
수많은 명장과 계약하여 유리 공예품을 주로 납품하는 우리 상단은 베네스 제국을 늘 목표로 했다.
하지만 베네스는 이보가 말했다시피, 위험성이 큰 곳이고 알려진 것도 없기에 신중히 검토하던 차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두 번의 생에서 우리 상단은 단 한 번도 올해 베네스와의 거래를 목표한 적이 없었다.
아니, 간단한 이야기조차 나온 적이 없었다.
초조하게 다시 내용을 살폈다.
그런데…… 거액이 기재된 서류에 이미 상단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눈에 익은 로베르의 서명도 함께였다.
순간, 왠지 모를 불길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침착해.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잖아. 제대로 살피자.’
입술을 깨문 나는 관련 문서들을 모조리 찾아서 확인해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해가 완전히 떴고 집무실이 환히 빛났다.
하지만 내 낯은 완벽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하암…… 로벨리아.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어?”
“…….”
“뭘 봐……. 어? 베네스 건. 가장 중요한 거 보고 있었네?”
어느덧 내 옆에 선 그가 서류를 훑어보더니 우쭐해졌다.
“후후. 많이 놀랐지?! 나도 내가 이런 대단한 걸 해낼 줄은……. 뭐야. 왜……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로베르 오라버니.”
내가 이를 갈자, 로베르가 불안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치솟는 온갖 욕설을 참으며 그의 멱살을 꽉 잡아 올렸다.
“당장, 부모님부터 모셔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