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An Obsessive Servant RAW novel - Chapter (99)
99
당황하는 사이, 덴카르트 저택이 꽤 가까워졌다.
마차가 멈출 때까지도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도련님이 나긋한 어조로 물었다.
“나를 앞에 두고 계속 무슨 생각 해?”
뒤늦게 아차 싶었다.
자그마치 십 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자꾸 넋 놓고 있었으니 서운할 만도 했다.
나는 뭐라고 둘러댈까 고민하다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뱉어댔다.
“그게…… 도련님이 잘생겨서요. 전에도 잘생겼지만, 너무 잘생겨서 막, 말이 안 나오네요.”
입에 발린 뻔한 칭찬이긴 해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다.
게다가 애초에 진심이기도 해서 내가 듣기에도 진짜처럼 들렸다.
다행히 어딘가 모르게 심기가 불편해 보이던 그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치, 잘생겼다는 칭찬 싫어하는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는 한결 느슨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마음에 들어?”
“그렇죠, 그렇죠. 누군들 마음에 안 들겠어요.”
“저택 수리한 것도 마음에 들지?”
“예.”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 오 년 전쯤인가.
도련님은 바쁜 와중에도 수도 덴카르트 저택을 신경 쓰는지, 보수 공사를 하라고 했다. 공작과는 얘기를 마쳤다고.
그런데 집사인 웨인이 내게 자꾸 의견을 구해서 내 의견을 토대로 저택 곳곳이 보수 공사를 마치게 되었다.
뭐, 애당초 내가 지시한 것이니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지.
“가질래?”
세월의 여파는 외모뿐만 아니라 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뭘 가져? 따로 또 선물이라도 가져오셨나??’
나는 그가 뭘 말하는지 몰라서 전처럼 즉시 반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도련님이 한껏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면 다 가져야지. 말해. 다 줄게.”
아무래도 도련님 농담이 는 것 같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웃으며 장난으로 화답했다.
* * *
역시 도련님의 진짜 복귀 일정은 나만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택 정문쯤 들어서자 엄청나게 꾸며둔 외관이 보였다.
왜 오늘 꼭두새벽부터 생화들이 마차로 배송이 되었나 했는데, 이걸 위해서였던 것 같다.
‘저 배신자들…….’
나는 속으로 웨인과 두 시종을 욕했다.
그런데 도련님은 방에 들어서기까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기쁘거나, 감동하거나, 반가워하거나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다.
예전 도련님의 성격상 특별한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내심 놀랍긴 했다.
황성에서나 내 앞에서 능숙하게 웃는 얼굴로 봐선……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것 같았는데. 아니었을까.
저택 단장을 하느라 내내 고생했던 웨인이 약간은 불쌍해졌다. 그는 조금 의기소침해 보이기도 했다.
도련님의 말문이 트인 것은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여긴 그대로네.”
이 방을 도맡아 정리해둔 나는 속으로 내심 흐뭇했다.
도련님은 바깥보다 오히려 예전처럼 간소한 자신의 방이 더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정중앙에 서서 몇 번이고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그 뒤에서 미리 준비해둔 옷가지를 챙겨주려 했다. 두 시종 놈은 어디에 갔는지 여전히 코빼기도 안 보였다.
아무래도 나가서 참교육을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아직도 단내가 나네?’
순간, 코를 킁킁거렸다.
완벽히 쾌유했는데도 어릴 때 도련님에게서 나던 꽃향기가 진해진 것 같다.
그윽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혹시 이게 도련님의 진짜 체취였나.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지는데 그늘이 졌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올리자 나를 내려다보는 도련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눈빛이…… 좀 신기한 걸 보는 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시키실 거 있으세요?”
그런데 들린 것은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로벨이 작아진 것 같아.”
“제가 작아진 게 아니라 도련님이 많이 크신 거죠. 이젠 도련님보다 큰 사람은 보기 힘들걸요.”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아까 황태자나 블리반 경, 기사들과 나란히 서 있던 그는 유독 길쭉했다. 다리가 길어서 더 그렇게 보였나.
아무튼, 원작과 흡사하게 여러 인물들을 만나 인연을 맺었지만 외모 면에서는 방향이 좀 틀어진 모양이다.
음…… 아무리 봐도 바람직한 성장인데. 이 성장에 약간이나마 이바지한 나로선 은근히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넬 님이 좀 비슷하겠네요.”
그런데 ‘마넬’이란 단어가 나오자마자 도련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언뜻 살기가 스치는 것도 같고…….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썩 달갑진 않은 모양이구나.
‘아니면, 아까 내가 나오고서 마넬라노가 도련님께 인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도련님이 없는데도 여기까지 꾸역꾸역 찾아왔던 그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그러니 저렇게 질색을 하시지.
“그래도 도련님이 가장 커요. 제국 제일요.”
급히 덧붙이자 도련님이 픽 웃으며 긍정했다.
“응. 이젠 공작보다 커졌어. 봐. 나 손도 많이 커졌지?”
도련님이 내 손목을 냉큼 잡더니, 자기 손 위로 내 손을 척 얹었다.
정말 손가락들이 나보다 반 마디씩은 컸다. 손마디도 기사답게 굵직해지고…….
‘……내 예상이랑은 너무 다르게 크셨잖아.’
당장 눈에 보이는 외적인 변화 때문인진 몰라도 전처럼 대하긴 불가능하다 싶었다.
“정말…… 다르네요.”
그래서 나는 잡힌 한 손을 뒤로 은근히 빼려고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도련님은 그 변화가 신기한지 아이처럼 눈을 크게 뜨며 두 손을 한참이나 번갈아 봤다.
그런데 향기만큼이나 접촉에 예전 여파가 남아서 그런지, 손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여러모로 디프의 영향을 받긴 한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턴 서서히 변소에 가는 빈도수가 줄더니 이젠 아예 하루 종일 가지 않기도 했으니까. 개꿀이었다.
그런데 도련님이 생각에 빠진 내 손바닥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손은 왜 이렇게 거칠어졌어?”
그동안 내 손은 석판 작업을 하느라 지문이며 손금이 잔뜩 닳았다.
아무래도 공작이 내가 지하실에서 일을 도왔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물으시겠지. 알면 절대 물어볼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저주를 푸느라 위험을 감수했다고 얘기했다간 내게 미안해할 수도 있고.
나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가끔 시간이 남다 보니까 하인들 일도 도와주고 했거든요.”
“……하인들 일을 왜 로벨 네가 해?”
처음으로 도련님이 언짢은 감정을 대놓고 표시했다. 언성을 높이진 않았으나, 녹색 눈에는 분노가 역력했다.
그 모습만큼은 옛날 도련님과 매우 흡사했다. 그래서 이번엔 내 긴장도 조금 풀어졌다.
그래, 제집에서 부리는 사용인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게 우리 도련님이다. 응, 이렇게 천사지.
‘많이 컸어도 천성은 여전하구나. 역시 공작처럼 자라지 않았어.’
나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웃었다.
“손이 남으니 그럴 수도 있죠. 제가 도련님 오신다고 바쁠 때도 다 도와주었어요.”
도련님은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고마움이나 감동과는 별개로 내 죄책감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이런 도련님을 계속 속일 수는 없었다.
도련님께 그만한 은혜를 받아놓고, 아직도 배려를 받는데도 계속 속이는 건…… 거북했다. 이젠 하루도 더 속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갑자기 온 사람한테 그만둔다고 바로 말하는 건 아니었다.
북부 경계선에서 황성까지, 그리고 이 덴카르트까지 도련님은 한시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오자마자 시종이 그만둔다고 하면 그 기분이 얼마나 언짢을지.
‘내일…… 내일 얘기하자.’
그렇게 결심하며 도련님 방을 나섰다.
도련님도 식사나 다른 것 없이 쉬고 싶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먼 길 오셨으니 혼자만의 휴식 시간을 갖고 싶으신 모양이다. 감회도 새로울 테고.
그런데 사실 도련님 방에서 내 방까지는 불과 몇 걸음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최근 웨인의 권유로 방을 바꿨다. 예전 도련님의 명대로 그의 바로 옆방이었다.
게다가 혼자 배정받았기에 편히 쉴 수 있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말이다.
‘……저기 도련님이 계신다고.’
침대에 반쯤 누운 채로 시선을 들어 도련님이 있는 방 쪽의 벽을 유심히 봤다.
이 벽 바로 너머에 도련님이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제대로 실감조차 안 될 뿐이었다.
* * *
에드릭은 황성의 대연회장에 오자마자 로벨부터 찾았다.
공작의 말대로 그녀가 있었다.
꿈에서처럼 머리카락이 길진 않았다. 물론 어린 시절보단 길지만, 목 언저리쯤이나 간신히 닿을 법한 단정한 길이였다.
전보다 더 말랐고, 처음 보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몽롱했던 꿈과 달리 바로 알아봤다.
에드릭은 눈이 멀어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라도 로벨을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로벨을 보고 있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마넬라노나 이보가 먼 거리에서도 일찌감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꼴을 보자 불쑥 불쾌해졌다. 저놈들을 당장 테루아 국경 밖으로 쫓아내도 모자랄 만큼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에드릭은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황제에게 갔다.
‘……참아야 해.’
당장 로벨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인내했다.
같은 실수를 더 반복할 수는 없었다.
로벨이 반기는 눈까지 피해버렸다. 조금이라도 눈길이 머무른다면 다른 이가 관심을 가질 테니.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그저 예쁘장한 시종이라서 사람들도 처음엔 가벼운 관심만 둘 것이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그 영리함과 다정함에 물들 것이 분명하다.
세상 부족할 것 없이 자랐던 마넬라노와 황녀도 그랬다.
심지어 황태자 역시 서신으로 로벨의 안부를 종종 묻곤 했다. 반쯤은 농이었지만, 기분은 늘 더러웠다.
지금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데 그 수를 더 늘릴 수는 없었다. 저 말고 로벨을 보고 그녀를 탐내는 사람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황태자와 대화를 나눌 때도 온 신경은 뒤의 로벨에게 쏠려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 마넬라노 스텔이 로벨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낌새가 보였다.
그래서 당장 크림슨을 시켜 로벨을 내보내 버렸다. 테루아의 오랜 골칫거리인 야만족을 멸족시킨 총사령관답게 빠르고 현명한 판단이었다.
바로 앞에서 로벨을 놓친 마넬라노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