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0)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00화(100/203)
100
연무장에 선 루카스는 검을 뽑았다.
리오넬 제식검술을 시작으로 간단히 몸을 푼을 그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전방에 가상의 대적자를 상상했다.
은발을 휘날리는 여기사의 환영이 그려졌다.
레이나였다.
근위기사단의 재편 후 있었던 합동 훈련에서 그녀와 처음으로 검을 나눠봤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다.
자신에 필적하는 재능이라며, 미래의 검후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레이나.
루카스는 그녀를 내심 라이벌이라 여겼었다. 물론, 언제나 자신이 한발 앞서 있다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동부 해적 소탕과정에서 조 베이리의 목을 베며 6성 기사가 된 레이나와 달리 벽 앞에 무릎 꿇었던 자신에게 충격받고 방황했던 것.
‘오만했었어.’
레이나의 환영이 스릉- 검을 뽑았다.
루카스는 무덤덤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합동 훈련 당시의 상황이 재현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휘두른 검의 경로가 읽힌다.
그에 반해 그녀의 공격은 예상보다 반 박자 빠르게 들이닥친다.
금방 수세에 몰렸다.
그러다.
움찔, 베이고 만다는 생각이 머리에 틀어박히며 반응이 늦었다.
서걱─
루카스의 목을 벤 레이나의 환영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점점 흐려졌다.
“하아··· 하아······.”
땀으로 범벅이 된 루카스는 목에 손을 가져갔다. 실제로 베인 것도 아니건만, 살짝 부어 있었다.
‘강제(强制)······.’
타인에게 본인의 법칙을 강요하는 7성급 강자의 특권.
완전하진 않았다.
검술 스승인 청사자기사단장 갈라드의 강제였다면, 움찔하며 반응이 늦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움직이지도 못했을 터.
“젠장.”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갓 여섯 번째 별을 품은 루카스는 본인의 의지를 검에 싣는 것만도 급급했다.
“병신, 머저리 자식.”
탄탄대로처럼 보였던 왕좌로의 길에 어느 순간 안주해버린 대가였다.
루카스를 더욱 자책하게 만드는 건, 그가 생각하는 왕국 제일의 기재가 레이나가 아니라는 것.
‘에반 리오넬.’
가시덤불 숲을 맨발로 걸어나오는 경쟁자가 있을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에반이 유령왕자라는 허물을 벗어 던진 초창기, 그에게 ‘천재’니 ‘괴물’이니 떠들던 기사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소리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감히 자신들이 그를 평가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규격 외.
검술뿐만 아니다.
정치력, 지도력, 외교력, 전술······.
에반이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보여준 능력 하나하나가 루카스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젠장.”
연무장에 털썩 드러누운 그는 푸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밀로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음 왕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아. 하믈 제국이 150년 전에 앗아간 드넓은 엘렌베이라 지역을 되찾고, 왕국을 세계의 열강 중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건 역시 나밖에 없어.
– 좋아, 그럼 너만 믿고 파혼을 선언하겠어. 집에서 쫓겨날 테니까 왕실사관학교의 학비랑 생활비 좀 부탁해. 세계에서 제일 유능한 미녀 국무총리가 되어줄게.
– ······ 얼마나 필요한데?
10년도 더 전, 밀로아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을 때가 떠올라 픽 웃음이 나왔다.
휘이잉- 겨울바람에 금방 땀이 식고 몸이 서늘해졌다.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에 상체를 탈의한 채 연무장에 대자로 누워있는 건 역시 아니었다. 루카스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이 1월······ 출산했겠네.’
밀로아가 설득해 고향으로 보낸, 자신의 아이를 뱄던 하녀의 산달이 지났다.
‘고향이 그리 멀지 않았지?’
행여나 찾아가면 본인이 다 폭로해버리겠다며, 눈을 치켜뜨고 경고하던 밀로아의 얼굴이 잠깐 루카스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
“2개월 정도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줄리앙을 진찰하고 온 슈이츠의 보고에 머리를 살짝 긁었다.
“그렇게 안 좋아? 잘 걷던데? 산도 잘 타고.”
“통각이 약한 것 같더군요. 보통 사람이 칼에 베였을 때 느끼는 통증을 살짝 긁힌 정도로 느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성력을 사용해도 치료가 안 되나?”
“신성력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말기 암이다.
신체의 치유력을 끌어올리는 신성력이 되레 암의 진행을 촉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알았어. 고생했어.”
“아닙니다.”
“아! 마리 모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안 그래도 그 보고도 드리려고 했습니다. 마리 엄마가 드디어 마리가 자신의 딸인 걸 인지했습니다. 다만······ 그동안 마리라고 생각했던 인형을 절대 못 버리게 하더군요.”
“그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고생했어.”
“아닙니다. 아직 완치도 안 되었습니다.”
“마리의 신성력은 어때?”
라드완의 일기를 통해 마리의 특별함이 무엇인지는 파악했다.
신성력.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친분이 있는 신관들을 초빙해봤지만, 누구도 마리에게서 신성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게 납치를 당했었던 원인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봉인한 것 같은데······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한 경우라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백신의 연구는 어때?”
“치사율이 낮은 ‘달팽이포진’이 유행했던 지역에는 악명높은 ‘붉은사신’의 발병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되었습니다. 다만 문제가······.”
“임상 말인가?”
“네. 아무래도 일부러 병에 걸릴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다, 붉은사신의 치명률은······ 붉은별열병과는 비교도 안 되니까요.”
“내 이름을 팔아. 만약 슈이츠 자네가 개발한 백신을 맞고 붉은사신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람이 나오면, 삼대가 놀고먹을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해. 그리고······ 클리앙에게 적당한 신전과 협의해 신관을 상시 대기하게 할 테니 그것도 홍보하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야말로 고맙지. 바쁠 텐데 이제 가서 일 봐.”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슈이츠가 집무실을 나가고, 나는 밀려있던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똑똑, 똑똑.
“왕자님, 알폰소입니다.”
“들어와. 시킨 일은 다 끝났어?”
“넵.”
“줄리앙한테 전해주란 건 줬고?”
“제일 먼저 했죠. 최근 3년, 번역된 주요 외신을 전해줬습니다. 근데 그거 다 읽으려면 일주일은 걸릴 거 같던데요?”
“하루면 될 거야.”
“네?”
“읽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더군.”
블랙와이번에도 내가 읽던 외신이 있었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순식간에 읽더라. 누가 보면 쓱쓱 대충 페이지를 넘기며 그림 구경하는 거라고 오해할 거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쓸만해 보이셨습니까? 민란의 주동자를 궁에 데리고 올 정도로요?”
알폰소의 표정에 경계심이 묻어있었다.
“뭐, 그럭저럭. 혹시 내가 하지 못했던 참신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
“으음······.”
침음을 흘리는 녀석.
“왕자님의 왼팔인 제 자리를 위협할 인간을 데려오신 거군요.”
“왼팔?”
“레이나 경이 오른팔, 제가 왼팔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레이나가 오른팔이라고 한 걸 보니 약간의 양심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클리앙은?”
“하하, 어찌 창업 공신을 내버려 두고 도중에 합류한 클리앙 백작님이 왼팔이 될 수 있겠습니까. 왕실기무대도 제가 왼팔이란 걸 알아보고 저를 구속했잖습니까. 그래도 2왕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쳤으니 왕자님의 왼발 정도는 될 듯하군요.”
“오른발이 아니라?”
“오른발은 베르트 의원님이라 할 수 있죠. 아쉬운 일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합류하셨으면 발이 아닌 팔이 되실 수 있으셨을 텐데.”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제 가서 일 봐.”
“하하핫, 알겠습니다. 왕자님의 왼팔! 수석! 시종! 알폰소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녀석이 호탕하게 웃으며 집무실 문을 열었다.
“헉! 클리앙 백작님?”
무표정한 얼굴의 클리앙이 집무실에 앞에 서 있었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자네가 창업 공신이라고 한 부분부터.”
“하핫, 하핫. 그럼 볼일 보십시오!”
알폰소가 바람 같이 사라졌다.
픽 웃은 나는 클리앙과 시선을 맞췄다.
“왜 계속 거기 서 있었어?”
“잠시 왕자님께 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들어와.”
그가 문을 닫고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밀로아 백작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래? 왜 만나러 갔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 내 손을 잡으라고 설득했나?”
고개를 끄덕이는 클리앙.
“역시 귀신같으시군요. 맞습니다.”
“어떻게 됐어?”
“대답을 못 들었습니다.”
“흐음······.”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밀로아 백작도 알 겁니다. 1왕자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 그러니 단호히 거절하지 않은 걸 테지요.”
“하지만 승낙도 하지 않았지.”
“그만큼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을 쉽게 배신하지 않는 신의를 가지고 있다는 볼 수 있죠. 한 번 왕자님의 지지를 선언하기로 마음먹으면 변하지 않을 겁니다. 향후 모리아 공작가가 무너진 이후, 아직은 갱생 가능한 남부 귀족들을 규합하는 중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왕실사관학교 행정학부에서 4년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고 졸업한······.”
열변을 토하는 그.
도중에 끊지 않으면 날이 새도록 떠들 기세였다.
“진정해, 클리앙. 누가 들으면 자네가 밀로아 백작의 대변인인 줄 알겠어.”
“······ 죄송합니다. 말이 조금 길었군요. 결론은 시간을 조금 더 주시면 제가 반드시 밀로아를 설득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는 건 알지?”
남부의 민란은 터지기 일보 직전인 풍선과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폭을 결심하는 남부 귀족이 나올지도 몰랐다.
영지민의 반란을 기르던 개가 자신을 문 것과 동일시하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밀로아 백작이 내 손을 잡는다면 편견 없이 중용할 생각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선택 덕분에 왕국에 쓸모없는 희생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신의를 중요시한 그녀의 선택? 존중해. 하지만 그로 인해 왕국의 피해가 커진다면······ 그때도 그녀가 나와 함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 만약 그렇게 되면 살려두실 겁니까?”
“나도 모르지.”
아마 죽이는 데 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그렇군요.”
클리앙은 내 대답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아무리 봐도 옛날에 자신에게 파혼을 선언한 밀로아에게 아직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저리 감정을 내비치지 않을 수 있다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클리앙.
그대로 나갈 기세였다.
머릿속이 밀로아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그 생각으로 꽉 차 있는 것 같았다.
“근데 내가 간밤에 어디 갔다 왔는지는 안 궁금해? 난 처음에 그거 때문에 찾아온 줄 알았는데.”
이제야 그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아······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따라와.”
자리에서 일어나 클리앙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도착한 서재.
나는 문을 가볍게 노크했다.
“줄리앙, 들어가겠다.”
대답이 없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깔끔했던 내 서재가 수북이 쌓인 신문들로 난장판이었다.
사락, 사락, 사락.
신문지를 넘기고 있는 줄리앙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누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줄리앙.”
사락, 사락, 사락.
“줄리앙!!”
서재가 울릴 정도로 크게 외친 후에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아앗! 왕자님! 죄송합니다.”
“아니야. 중간에 방해해서 오히려 미안하군.”
“저분은······클리앙 백작님?”
줄리앙이 내 뒤에 서 있는 클리앙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자님, 누굽니까, 이 사람은?”
“줄리앙이라고 해. 남부 민란의 주동자지.”
“넷?”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좋지 않겠어?”
나는 말을 하며 줄리앙이 읽은 것으로 짐작되는 신문들에 눈길을 주었다.
‘생각보다 더 빠른데?’
반나절이면 알폰소가 가져다준 걸 다 읽을 것 같았다.
“줄리앙. 최근 3개월 분량은 읽은 것 같은데, 맞나?”
“그렇습니다.”
“아직도 1왕자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나?”
“물론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밀로아 백작은 어찌해야 할까?”
“당연히 함께 처리해야지요.”
줄리앙의 대답에 옆에 서 있던 클리앙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무슨 논리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싸늘한 클리앙의 목소리.
“당연하지 않습니까. 왕자님에게 적대한 이를 뭐하러 살려둡니까? 후환만 남길 뿐입니다.”
“밀로아 백작은 살려둘 가치가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 능력이 아까워 살려뒀다 독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겠죠. 지금 베르트 의원을 포함해 5왕자님을 지지하게 된 전대 왕당파만 해도 그 예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차피 왕자님이 살려둬도 다른 귀족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왕자님은 그 독조차 약으로 쓰일 능력을 지니셨지. 그리고 내가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짝짝짝.
내 손뼉 소리에 둘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둘이 사이좋게 여러 의견을 나눠보고 내일 아침 9시에 내 집무실로 와. 굳이 무엇에 관한 토론을 해야 할지, 주제를 정해주지 않아도 될 두 사람이라 믿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둘의 말싸움을 계속 구경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나는 따로 할 일이 많은 관계로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