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1)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01화(101/203)
101
에반이 서재를 떠났다.
클리앙은 잠시 말없이 줄리앙을 바라봤다.
얼굴이 까맣고 허옜다.
말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안색. 아버지, 전대 와이트 백작가 가주의 죽기 얼마 전 얼굴이 겹쳐 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눈빛.
꺼져가던 아버지의 눈과 달리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는 촛불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클리앙에게 줄리앙이 입을 열었다.
“밀로아 백작을 좋아하십니까?”
이런 질문 몇 번 받아봤다.
모범 답안이 뭔지도 알고 있다.
클리앙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다.”
“그렇다고 하죠. 어쨌든, 클리앙 백작님은 1왕자를 지지하는 그녀가 왕위 계승이 끝나고도 지금의 위치를 유지하길 바라시는 거군요.”
“밀로아는 평범한 행정 관료의 만 명이 이룰 성과를 홀로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어. 왕자님이 왕위를 계승한 이후 꼭 필요한 인재야.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자네와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천천히 소파로 걸어가 궁둥이를 붙인 클리앙. 그는 탁자에 널브러져 있는 신문들을 인상을 찡그린 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민란의 주동자라고? 왕자님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자네와 대화를 나눠보라 할 분은 아니시지. 왕자님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수 있나?”
“뭐 어렵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줄리앙이 새벽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요약해 알려주었다. 클리앙은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가······ 자네에게 남부 민란을 깔끔하게 해결할 묘책을 마련해보라며 데려오셨다고?”
자신이 줄리앙을 다시 시험해볼 필요는 없었다. 에반의 안목은 소름 돋게 정확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왕자님이 자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클리앙은 자신을 줄리앙과 붙여놓은 에반의 의도 하나를 깨달았다.
신문쪼가리가 전해줄 수 없는 국내외 정세를 즉석에서 제공해줄 수 있으며, 에반의 비밀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은 한 손에 뽑는다.
아니, 클리앙 그뿐이었다.
그는 서재에 수북이 쌓여있는 신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것들은 잠시 치워놔도 되겠군. 속성 과외를 해주지. 1시간, 1시간 동안 자네가 질문하는 것들, 모두 답해주지.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눠보자고.”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줄리앙이 기다렸다는 듯 신문을 접고 클리앙을 바라봤다.
“1왕자와 밀로아 백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아니다! 그리고 그게 민란의 해결과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혹시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라면 밀로아 백작은 결코 1왕자를 떠나지 않을 테지요.”
“······ 그건 그렇군. 장담하는데, 둘은 결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둘이 아주 작은 호감도 없는 겁니까? 두 사람이 친우란 건 유명한 이야기지만, 저는 남자와 여자는 친구나 친한 동생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절대로! 밀로아는 본인 외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는 인간을 좋아할 녀석이 아니다.”
클리앙의 말에 줄리앙이 눈이 번뜩였다.
뜬소문으로도 못 들었던 이야기다.
“1왕자가 아끼는 여자가 따로 있단 말씀이십니까?”
“아낀다기보다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한 거지. 그가 한창 검을 놓고 방황할 때는 말도 아니었다.”
“사생아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 아마도.”
“정말입니까?”
“반년쯤 전에 별안간 고향으로 돌아간 토파즈궁의 하녀가 있었지. 아비가 누군지 모를 아이를 뱄다고 들었다. 얼마 전 출산을 했다고 들었는데······ 흑발이라더군. 1왕자의 아이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흐음······. 1왕자나 밀로아 백작이나, 둘 다 생각보다 무른 면이 있군요.”
“무르다?”
“사생아, 아는 즉시 살해하는 왕족, 귀족들이 널렸지 않습니까?”
이후, 클리앙이 1시간이라 언급했던 시간이 기약 없이 이어졌다.
똑똑, 똑똑.
“저녁 식사도 안 하신다고 들어 요기 거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알폰소가 샌드위치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제야 둘은 저녁 시간을 한참 지나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으슥한 새벽.
클리앙과 줄리앙이 열띤 토론을 벌이며 날밤을 새우고 있는 시간.
왕성 외곽.
덩굴줄기가 무성한 성벽 앞.
망토에 달린 후드를 푹 눌러써 얼굴을 가린 남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덩굴을 헤집고 있었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루카스였다.
한참 덩굴을 헤집던 그가 돌연 빙긋 미소 지었다.
“찾았다.”
어릴 때부터 이용하던 개구멍이었다.
토파즈궁의 비밀통로를 이용해도 아무도 몰래 왕궁 밖을 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쪽은 도중에 하수구를 지나야 한다.
이쪽이 훨씬 깔끔하다.
“구멍이 너무 작은데?”
스릉-
칼을 뽑은 루카스.
오러를 이용해 개구멍을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로 확장한 후, 포복 전진으로 기어나갔다.
그렇게 왕궁을 탈출한 루카스.
그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았다.
“저쪽이군.”
그의 목적지는 열차와 마차를 이용하면 반나절 정도 걸리는 곳. 초월자인 그가 설렁설렁 뛰어가면 얼추 비슷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가볼까.”
루카스는 발에 힘을 주었다.
뛰다가, 걷다가, 쉬다가, 다시 뛰다가.
그렇게 세 시간 정도 달렸을 때, 산을 가로지르던 그의 귀에 몬스터의 포효와 사람들의 고함이 들렸다.
루카스는 마력을 운용해 감각을 강화했다.
“크워어어어어!”
“산개해!”
콰아아앙!
“크아아악!”
“안 돼!!”
“포션! 빨리 포션을 부어!”
루카스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방향을 꺾었다.
곧, 현장에 도착했다.
“크워어어어어!”
“어림없다! 이 자식이!”
트롤이었다.
모험가로 보이는 5인 파티가 고전 중이었다.
야영 중 습격을 받은 걸로 보였다.
남자 하나가 가슴팍이 피가 범벅이 되어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타앗, 땅을 박차는 루카스의 검에 마력의 실이 휘감기고.
우웅- 우웅-
검이 검명을 토해냈다.
오러까지는 필요 없었다.
“크어?”
본능이 경종을 울린 듯, 트롤이 루카스 쪽으로 고개를 잠시 돌렸다.
서걱-
늦었다.
리오넬 수호검술 2초식, 그림자 베기에 깔끔하게 목이 잘린 트롤. 놈의 머리가 데구르르 땅바닥을 구르고, 거구의 몸이 쿵 쓰러졌다.
“기사!”
“5성 기사!”
모험가들이 경탄을 내뱉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내 넙죽 엎드리며 감사를 표했다.
“됐어. 저 친구 위급해 보이는데 치료나 빨리 해.”
루카스가 손을 내저으며 곧 죽을 듯 숨을 헐떡이는 남자를 가리켰다.
“아, 알겠습니다.”
“다들 포션 있는 거 다 꺼내서 들이부어! 빨리!”
루카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는지, 부상자의 숨이 안정되었다. 생각보다 일찍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리더로 보이는 금발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루카스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괜찮아. 고마우면 먹을 것 좀 줄 수 있나?”
충동적으로 왕궁을 탈출하는 바람에 요깃거리 챙기는 걸 깜빡했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루카스는 그가 가방을 뒤적이는 동안 딸깍 회중시계를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넉넉하네.’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출발해도 충분했다.
루카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금발 사내가 주춤거리며 다가와 두 손을 내밀었다.
“여기 변변치 않지만······.”
손바닥만 한 육포 조각들.
허기졌던 루카스가 냉큼 챙겼다.
“고맙네. 음······ 생각보다 괜찮군.”
루카스의 반응에 금발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하하.”
금발 사내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던 루카스 곁을 떠나지 않고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왕국의 근위기사분께서 저희를 구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응? 왜 내가 근위기사라고 생각하지?”
“그 검, 왕국의 근위기사분들이 사용하는 것 아닙니까?”
자신의 검은 너무 눈에 띄게 화려하기에 연무장에 굴러다니는 것 중 아무거나 들고 온 루카스였다.
“이걸 알아보나?”
“모험가가 되기 전에 견습 대장장이였습니다.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래? 눈썰미가 좋군. 그럼 내가 청사자인지 백사자인지도 알아볼 수 있나?”
“하하, 당연히 백사자이시겠죠.”
“왜?”
“지체 높으신 왕족, 귀족분들로만 이루어진 청사자기사단원이셨다면 이렇게 저랑 대화를 나누셨겠습니까.”
잠시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루카스.
청사자기사단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그들이라면 이들과 말을 섞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군.”
루카스는 잠시 말없이 육포를 질겅질겅 씹다 금발 사내에게 물었다.
“억양이 서부 출신 같은데, 맞나?”
“맞습니다.”
“혹시 요즘 서부인들은 5왕자님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나?”
“말이 필요 없습니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5왕자님이 다음 대 왕위 계승권자로 확정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모닥불에 비친 금발 사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자네도 5왕자님을 지지하나 보군.”
“그럼요. 5왕자님의 은혜를 안 받은 왕국민을 찾는 게 더 힘들 겁니다. 저만 해도 붉은별열병 때문에 며칠을 앓아누웠었습니다. 만약 제네롤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기사님과 대화하고 있지도 못할 겁니다.”
루카스가 5왕자를 지지하는 백사자기사단의 단원이라 생각한 금발 사내가 술술 입을 열었다.
“흠··· 그렇군. 1왕자님을 지지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나?”
“어후, 말도 마십시오. 1왕자님이 왕위를 계승하면 서부도 남부처럼 민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인간들이······ 헙. 죄송합니다.”
얼굴이 살짝 굳는 루카스의 모습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었다는 걸 깨달은 금발 사내가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됐네. 다음부터는 입 조심하게. 나는 이만 일어나지. 육포 잘 먹었네.”
루카스는 씁쓸하게 웃으면 자리를 떠났다.
***
아침 9시.
클리앙과 줄리앙이 내가 말했던 시간에 딱 맞춰 집무실을 찾아왔다.
잠을 아예 안 잤는지 피곤한 안색들. 다만 둘다 눈빛만은 또렸했다.
“둘이 밤새 유익한 시간을 가졌어?”
“대화를 나눠볼 만했습니다.”
“제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었다.
“그래서 둘이 이야기를 나눈 결과는 뭐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둘.
클리앙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그가 대표로 말하기로 눈빛으로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 1왕자는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말입니다.”
나는 힐끔 줄리앙을 바라보았다.
밤새 자신의 생각을 클리앙에게 전파한 모양이었다.
“북으로는 하믈 제국, 동으로는 아르야 왕국이 언제 이빨을 드러낼지 모르는 시국에 후환이 될지도 모를 1왕자를 살려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왕위 계승 싸움에서 승리하고 패배자를 살려두는 아량을 베풀었던 군주들이 후에 얼마나 처절히 후회했는지, 세계 각국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7성 기사인 갈라드 단장과 밀로아 백작은?”
이번 질문에는 줄리앙이 나섰다.
“둘은 5왕자님이 품으셔야 합니다. 아르야 왕국의 국왕파와 귀족파가 대립하고 있지만, 전대의 리오넬 왕국처럼 국력을 갉아먹고 있진 않습니다. 또한!”
또한?
“아직 하믈 제국의 황제가 건재합니다. 왕자님이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측하셨지만, 현재로선 누가 봐도 건강한 상태입니다. 그는 탐욕스럽습니다. 지금도 향후 세계의 바이오산업을 선도할 에이츠 상회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을 겁니다. 왕국의 전력이 지금의 반토막이 되는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저희를 집어삼키려 할 겁니다.”
역시 인풋이 늘어나니 아웃풋이 좋아졌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지금이야 세계 각국이 붉은별열병의 치료제 때문에 하믈 제국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다들 살만해지면 하믈 제국이 우릴 침공하건 말건 신경도 안 쓰겠지.”
야생보다 잔혹한 것. 그것이 국제관계다.
갈라드 공작을 살려서 왕국의 검으로 쓰는 걸로도 부족하다. 추가적인 조처를 해야 할 사항이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그런데 줄리앙, 밀로아 백작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은 바꿨군?”
줄리앙이 힐끔 클리앙을 곁눈질했다.
“밀로아 백작을 쳐내시면, 왕국의 인재를 한 명을 더 잃으실 수도 있을 것 같더군요.”
클리앙이 눈가를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왕자님이 오해할만한 말은 삼갔으면 좋겠군.”
히죽 웃는 줄리앙.
그도 하루 사이에 클리앙이 제법 놀리는 재미가 있는 인간이란 걸 간파한 모양이었다.
“그러죠. 어쨌든 왕자님이 왕위를 계승 후 밀로아 백작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건 클리앙 백작님의 열변으로 잘 이해했습니다.”
“많기야 하지. 그녀의 행정 처리능력은 기사로 치면 8성 기사 수준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1왕자를 제거하고 어떻게 갈라드 단장과 밀로아 백작을 품에 안으라는 거지? 클리앙이 두 사람의 1왕자에 대한 신의가 어떤지 말 안 해주던가?”
“들었습니다.”
“묘책이 있으니까 둘을 안고 가라 하는 거겠지? 말해봐.”
“왕자님이 1왕자의 죽음에 관여한 것이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이 확신할 수 있으면 됩니다.”
무슨 소리인가 잠시 고민했다.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자살?”
클리앙과 줄리앙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