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03화(103/203)
103
나는 눈이 마주친 루카스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주었다. 쓰게 웃은 그가 다시 밀로아를 바라봤다.
“밀로아, 분명 어제만 해도 내가 왕위를 계승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어?”
“검술 수련에 매진하라고 했더니, 그 틈을 못 참고 왕궁을 탈출하는 거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더라고.”
“너무한데? 그래서 나를 버리고 에반과 함께하기로 한 거야?”
밀로아와 대화하는 그의 얼굴에 배신감으로 상처받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
“루카스, 네 가장 오랜 친구로서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말해 봐. 못 들어주는 거 빼고 다 들어줄 테니까.”
“죽어줘. 남부 귀족들의 만행에 책임을 진다고. 남부인들이 보는 앞에서 에반 왕자님에게 왕위를 넘긴다고 선언하면서.”
“······ 이번 말은 나도 조금 상처받는걸.”
밀로아와 대화하던 루카스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내 옆에 서 있는 레이나를 힐끔 곁눈질한 그가 입을 열었다.
“에반, 맨날 나를 피해 다니던 녀석이 이렇게 직접 찾아온 걸 보니 내 목이 그렇게 탐이 나나 봐?”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던 자세를 바로 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저만 보면 대련 한 판 하자고 쫓아다녀서 그랬던 거 아닙니까. 그리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너무 펼치시는 거 같은데, 밀로아 백작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그가 다시 밀로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밀로아, 저게 무슨 말이지? 죽어달라며?”
“그러니까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거 아니야. 1왕비님이 살고, 네가 살고, 나도 살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네가 죽어야 해. 근데 죽기는 싫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지금도 도망칠까 말까 열심히 고민 중이야.”
“그런 놈이 가장 안전한 왕궁을 벗어나? 갈라드 단장의 곁으로 이동하는 마도구도 거리가 이렇게 멀어지면 작동 안 하는 걸 뻔히 알면서?”
“남자는 가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법이야.”
“하여간 주둥이는 살아서. 어쨌든 너 도망 못가니까 괜히 도망쳐서 일 키우지 마. 네가 가진 비상용 마도구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 내가 다 불었거든. 게다가 6성 기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비공정을 따돌릴 순 없잖아?”
“······ 아까 했던 말이나 계속해봐. 죽어달라면서 살려줄 것처럼 얘기했잖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제3의 신분을 만들어 줄게. 왕국의 1왕자, 루카스 리오넬은 죽어줘.”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긴 1왕자.
어색한 침묵이 불편해질 때쯤 그의 입이 열렸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거지?”
“네 외조부, 모리아 룬티아 공작 때문에 포기했던 마법사의 길을 다시 가셔야겠지. 2왕녀처럼 말이야.”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당연히 모르셔야지.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1왕비님도 모를 극비가 되어야 해.”
“······ 이게 네가 생각한 최선이야?”
1왕자의 질문에 밀로아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너를 왕좌에 앉혀주겠다는 약속, 결국 못 지켰어. 다만, 이거는 반드시 약속할게. 만약 루카스 리오넬이 죽은 이후에도 네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도 함께할게.”
“이제 너랑은 약속 안 할 거야. 그러니 내가 잘못되어도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밀로아가 입을 꾹 닫게 만든 1왕자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네가 약속해 줘, 에반 리오넬.”
“약속드립니다. 이름, 외모, 머리 색, 모든 걸 바꾸신 뒤 어느 자작 가문의 집사 정도로 살아가신다면, 위해를 가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 앞으로 피임도 철저히 하시고요.”
그는 대답 없이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슬슬 부담스러워지는 찰나.
드디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을 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뭐죠?”
“나와 대련해줬으면 해. 최선을 다해서 숨기는 것 없이 말이야. 네가 제안한 건······ 대련 후에 확실한 답이 나올 것 같아.”
“좋습니다.”
나는 [바리사다]에 손을 가져갔다.
1왕자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어린 시절부터 리오넬 제국을 세우겠다는 꿈을 품고 달려 온 루카스였다.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꿈을 넘겨줘도 되는 인물인지.
에반이 이룬 업적들만 보면 충분히 자격이 있다. 가족보다도 깊은 관계의 친우, 밀로아도 그를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스릉-
루카스는 검을 뽑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에반을 위해 검은 모루 부족의 족장이 만들어줬다는 명검.’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대련, 훈련 때에도 수련용 검을 사용하던 에반. 동부 해적 소탕 당시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긴 했었다.
저걸 뽑았다는 이야기는 정말 최선을 다해 자신과 대련하겠다는 대답으로 들렸다.
“그 검이 검집에서 뽑힌 건 처음 보는군.”
“숨기는 것 없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소개하지요. 제 검, 바리사다입니다.”
“바리사다?”
루카스의 눈이 커졌다.
“서, 설마 처음 검은 모루 부족을 방문했을 때부터!”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고 있던 밀로아가 경악을 터트렸다.
“뭐, 어쩌다 보니 밀로아 백작이 말한 시기에 뽑게 되어서 쭉 쓰고 있었습니다.”
루카스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바리사다]를 뽑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왕국민에게 공표되면 안 그래도 높았던 에반의 인기가 한층 더 치솟을 터.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바리사다]의 인정?‘대단해. 대단하지만······.’
검이 인정한 거지 자신이 인정 것이 아니다.
루카스는 곧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우웅- 우웅-
그의 검에 마나의 실이 휘감기고, 검명이 울려 퍼졌다.
우우웅- 우우웅─
그의 화답하듯 에반의 바리사다도 검명을 토해냈다.
‘역시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대외적으로 4성 기사로 알려져 있던 에반이었다. 저렇게 능숙하게 검사를 사용하는 4성 기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오러, 사용하시죠.”
에반의 말에 루카스가 인상을 썼다.
“정말이냐? 나는 최선을 다해 너를 공격할 거다. 죽을 수도 있어.”
“최선을 다하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다.”
“후회하지 마라!”
고오오오오.
오러의 색은 주인을 닮는다.
루카스의 검에 황금빛 오러가 피어올랐다. 그걸 바라보던 에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후회 안 합니다. 저도 사용할 거니까요.”
파앗─!
에반의 검에서 터진 태양빛 오러가 주변을 밝혔다. 루카스는 순간적으로 주변을 집어삼킨 그 찬란한 빛에 눈이 멀 것 같았다.
“너, 오러를······.”
“바리사다를 이용한 편법입니다.”
루카스도 [바리사다]가 마나를 증폭시켜준다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마나가 많다고 아무나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검에 의지를 싣는 기사만이 오러를 피워낼 수 있다.
16살에 오러?
아니, 생각해 보니 지금 저 정도 완숙하게 다루는 걸 보면 이미 15살에 오러를 피워냈을 터.
에반이 오러를 보인 시점에서 대련의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천재라는 단어조차 갖다 대기 힘든, 실로 폭력적인 재능이었다.
“오래 유지하진 못합니다. 오시죠.”
에반이 선공을 양보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건만, 루카스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여줘라. 네가 어떤 인간인지.’
타앗-!
루카스는 땅을 박찼다.
리오넬 제왕검술 5초식.
‘수왕맹진(獸王猛進).’
전방에 마주치는 모든 것을 분쇄해버리는 최강의 돌진 기술.
콰과과과과-
대련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에는 한 마리의 사자가 황금빛 갈기를 휘날리며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막아봐라! 에바아아아아안!”
루카스가 평생 일궈온 정수가 검에 실렸다.
쇄애애애액-
한 마리의 연약한 사슴처럼 서 있는 에반. 황금빛 사자가 그 목을 꺾기 위해 앞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에반의 목을 베기 일보 직전.
우뚝!
그의 검이 마법처럼 멈췄다.
루카스의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이건······.’
이 감각, 겪어봤다.
강제(强制).
에반을 벨 수 없다고 강요당했다.
암흑 속에 갇혀 온몸이 쇠사슬로 칭칭 감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 말도 안 돼.’
16살에 강제의 묘리를 깨우쳤다고?
재능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루카스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해 불가한 생물을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안색이 다소 창백해진 에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확인하고 싶으신 걸 충분히 확인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대답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루카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온몸을 옥죄고 있던 쇠사슬의 환영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루카스는 에반에게 자신이 꿈꿔온 꿈을 넘기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죽으면 되는 거냐?”
그의 말에 에반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제 비공정으로 가시죠.”
***
모두를 태운 블랙와이번이 왕궁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루카스, 밀로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선실에 틀어박혀 레이나의 삼엄한 호위 속에 진탕된 내부부터 진정시켰다.
조 베이리를 대면했을 때 레이나를 각성시키려다 무리해서 3개월 요양했어야 했던 짓을 또 한 탓이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사정이 좀 나았다.
예전과 달리 내가 좀 부유해진 상태라 이럴 때를 대비한 영약을 제작해뒀었다.
‘죽겠네.’
하지만 힘든 건 매한가지.
숨을 쉬는 것만으로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느낌이었다.
하늘꽃 수준의 진귀한 재료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다. 제작 가능한 영약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석 달 요양해야 할 것이 한 달로 줄어드는 정도?
‘끄응.’
나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프다고 티를 내면 안 된다.
“왕자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티를 안 내도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난리다.
“괜찮아.”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부축해드리겠습니다.”
“진짜 괜찮아.”
나는 손사래를 치며 선실을 나섰다.
루카스와 밀로아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똑똑.
“들어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두 사람은 탁자를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인 것 같았다.
“잠시 자리를 비워 죄송합니다.”
“안색이 아까보단 좋아 보이네? 그렇게 무리했었어?”
“대련 중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러를 사용하는 것부터가 무리였다고. 온전한 7성 기사가 되려면 멀었습니다.”
“멀기는······ 아무리 못해도 2년이면 될 것 같은데?”
나는 루카스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건 됐습니다. 어디까지 이야기하셨습니까?”
“별말 안 했어. 밀로아가 현재 왕국의 상황을 정리해서 객관적으로 이야기해 준 정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힐끔 밀로아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가 끝까지 1왕자의 왕위 계승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그와 이 자리에서 본인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밀로아가 포기하지 않았다면 루카스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남부의 민란이 더 커지기 전, 루카스와 단둘이 만나 왕위 계승을 포기하라 설득할 생각이었다. 오늘과 같은 무력 시위를 동반해 일말의 희망을 꺾으면서 말이다.
후에 생길지도 모를 분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지 않겠는가.
클리앙과 줄리앙이 그를 자살시키자는 의견과 함께 밀로아를 내 앞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거다.
클리앙, 줄리앙, 밀로아.
세 명이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낫다는 것에 기분 좋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솔로 플레이만 하다 합이 좋은 파티를 만나 함께 플레이를 한 기분이었다.
“왜 갑자기 웃으시는 거죠?”
밀로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의중을 살폈다. 나는 얼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거 아니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축하드려요. 좋으시겠어요. 저희는······ 꿈을 잃었는데 말이죠.”
“꿈? 리오넬 왕국을 제국으로 만든다는 거 말인가? 150여 년 전 하믈 제국에게 빼앗긴 엘렌베이라 지역을 되찾으면서 말이야.”
내 말에 두 사람이 눈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누가 그걸 내게 말했냐고 추궁하는 모양새였다.
곧 둘이 나를 바라보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미래’에서 왕관을 받을 때 루카스 본인에게 직접 들었었다.
“뭐, 그냥 그럴 것 같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꿈, 이제 저와 함께 꾸시면 됩니다.”
씩 웃으며 내가 하는 말에 둘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형님이 어떻게 죽을지 말입니다. 할복? 투신? 음독? 뭐가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