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8)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08화(108/203)
108
석함도는 큰 섬이다.
동쪽 끝자락에는 해적을 가두는 감옥이 위치한다. 험준한 절벽과 깊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탈출은 불가능하다.
비교적 평지가 많고,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서쪽에는 리오넬 왕국 최대규모의 해군기지가 자리하고 있다.
리오넬 왕국에서 해군 장교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 왕실사관학교 해군학부를 졸업한다.
둘, 낙하산.
로이르 신은 후자였다.
왕실사관학교 생도를 꿈꾸었던 그는 왕국의 5왕자, 에반이라는 귀인을 만나며 벼락출세를 하게 되었다.
3성 기사임을 증명하며 소위로 임관.
에반이 조 베이리 해적단을 침몰시키는 과정에서 그를 도와 뱃길을 잡았던 공적으로 곧바로 두 계급 특진했다.
불과 17살에 대위였다.
윗분들의 사정상 대외적으로는 작년에 성인식을 치른 18살로 알려져 있긴 하다.
로이르의 업무는 7성 기사이자 현 석함도의 최상급자인 해군 대장 데릭 블랜트의 수영강사 겸 2등 보좌관.
본래는 최소 소령이 담당해야 할 업무다.
평민 출신임에도 유례없는 출세가도.
그런저런 이유로 로이르가 석함도에 왔을 때부터 텃세는 말도 못 했다.
뒷배가 에반, 레이나 같은 거물들이라 면전에서 텃세 부리는 인간은 없었지만······ 원래 그런 건 은밀히 이루어지는 게 더 짜증 나는 법이다.
빨래 후 널어놓기만 하면 팬티가 사라지는 바람에 팬티 한 장으로 한 달 가깝게 버틴 것 정도는 애교였다.
‘또 사라졌군.’
오늘도 휑하니 비어있는 빨래 건조대를 본 로이르는 나직이 한숨을 내뱉었다.
병사의 짓일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벼락출세한 그 같은 신임 장교보다 고참 병사의 주먹을 훨씬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맥질 좀 한 석함도의 고참 병사들은 신임 장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인간이 태반이다.
열받은 로이르가 한번 도난 현장을 덮친 적이 있었다. 고참들이 시켰다며 눈물 콧물 흘리며 비는 신병의 모습에 한숨만 푹푹 쉬었었다.
만약 거기서 신병에게 큰 벌을 내렸다면, 군 생활이 더 고달프면 고달파졌지, 풀리지는 않았을 거다.
“후우······.”
로이르는 한숨을 크게 토해냈다.
위관급 신임 장교, 그것도 평민 출신이라면 누구나 거쳐 가는 과정이다. 그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히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끼고 아껴놨던 새 속옷과 양말의 포장을 풀었다. 아침에 갑자기 오늘 온종일 데릭의 대외업무를 보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해군복을 칼같이 차려입은 로이르. 거울 앞에서 마지막으로 복장을 단정한 그는 해군모를 눌러쓰고 숙소를 나섰다.
출근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일찍 나서는 편이 좋았다.
“격침!”
“격침!”
“격침!”
“격침!”
“격침!”
“격침!”
.
.
.
만나는 사람마다 경례하며 이동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그를 고까워하는 귀족 출신 영관급 장교와 마주칠 때면 그런 곤욕이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로이르를 교묘히 괴롭히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얼마 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한 척하는 이들도 생겼다.
에반이 왕세자로 지목된 탓이리라.
그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로이르는 해군 대장 보좌관실에 도착했다.
똑똑.
“대위 로이르 들어가겠습니다.”
노크 후 관등성명을 댄 로이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덥수룩한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 개구쟁이 어린아이 같은 눈망울을 가진 사내가 보좌관실의 소파에 반쯤 누워 신문을 읽고 있었다.
해군 대장, 데릭 블랜트 후작이었다.
“격침! 좋은 밤 되셨습니까.”
“여, 로이르. 오늘은 팬티를 갈아입었나 봐? 상큼한 냄새가 나는데?”
코를 킁킁거리며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데릭. 로이르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능숙하게 대응했다.
“물론입니다.”
“재미없는 녀석. 저런 놈의 팬티는 왜들 그렇게 훔쳐 가나 몰라.”
데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신문에 시선을 옮겼다.
로이르는 힐끔 수석 보좌관과 1등 보좌관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모두 비어있었다.
어디 갔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것도 그렇고 왜 갑자기 나를 지목해서 오늘 본인을 수행하라 하신 거지?’
심지어 데릭의 오후 일정은 전달도 못 받았다.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묻지 않았다.
까라면 까는 게 군대였다.
로이르는 데릭이 신문을 읽는 동안 오전에 움직여야 할 동선을 점검했다.
그리고 곧 이동할 시간이 되었다.
“후작님, 슬슬 준비하셔야 합니다.”
“하암~ 졸려라. 귀찮아졌어.”
입을 쩍 벌리며 크게 하품한 데릭이 소파에 벌렁 누워 신문으로 얼굴을 덮었다.
“이쁘니 보러 가는 거 빼고 다 취소해. 아! 그리고 수석 놈 서랍에 오후 일정표 있으니까 그것도 전부 취소시켜.”
“알겠습니다.”
드르렁, 드르렁.
바로 데릭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직이 한숨을 쉰 로이르는 텔리스톤을 들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후 데릭의 방문을 취소하는 연락을 각 부대에 돌렸다.
대장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을 부대장들. 당연히 그들의 욕설과 고함을 감당하는 건 로이르의 몫이었다.
그래도.
욕설의 수위가 현저히 낮아졌어.
‘왕자님 덕분이야.’
로이르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에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추가로 해야 할 업무는 없나 살펴보고 모두 처리한 그는 기지개를 쫙 켜며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회복했다.
‘시간이······.’
딸깍, 회중시계를 열었다.
‘지금 안 깨우면 늦겠어.’
로이르는 서둘러 데릭을 깨웠다.
“후작님, 데릭 후작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으음······ 벌써?”
“지금 이동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하암~ 졸려라. 그래도 우리 이쁘니 보러 가는 것까지 빠질 순 없지. 비공정 대기시켰지?”
“바로 시간에 맞춰 대기하라 해놨습니다.”
로이르는 어기적어기적 게으름 부리는 데릭을 이끌고 건물을 나섰다.
해군 대장 전용 소형 비공정에 탑승한 그들은 리오넬 왕국의 최대 항구, 카로스항의 조선소로 향했다.
주요 관계자가 늘어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격침!”
“격치이이이이임!”
시끌벅적한 환영 인사 후, 조선장이 데릭 옆으로 다가갔다. 조선소의 책임자로 대령급 지위를 가진 이였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데릭 후작님.”
“고생은 무슨, 비공정 타면 순식간이지. 우리 이쁘니 상태는 어때?”
“직접 보시죠.”
조선장이 환하게 웃으며 데릭을 안내했다.
데릭을 수행하며 함께 이동한 로이르의 눈에 커다란 군함이 보였다.
‘조 베이리 해적단의 철갑선?’
아니다.
닮긴 했는데, 훨씬 컸다.
“오오! 저번엔 뼈대뿐이라 볼 게 없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전함 같군.”
“섬나라로 끌려갔다 고국으로 돌아온 조선공들이 이루어낸 결실입니다. 반파되었던 조 베이리 해적단의 철갑선과 에이츠상회의 막대한 지원이 없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겁니다.”
감격의 젖은 조선장이 흥분해서 침을 튀기며 계속 떠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저희도 자국의 기술만으로 1,000명의 승무원이 탑승 가능한 전함급 철갑선을 건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표준 배수량은 무려 18,322톤에 육박하며······.”
데릭이 얼른 조선장의 말을 끊었다.
“알았어, 알았어. 진정해. 내가 전함의 제원을 떠들어도 잘 모르는 거 알잖아. 하여튼 저 이쁘니, 언제 완성되는 거야?”
“마무리 단계입니다.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섬나라 사절단 놈들은 분명 배를 타고 올 텐데, 그전까지는 완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지막까지 수고해.”
“알겠습니다! 격침!”
“어, 어. 격침.”
조선장과 대화를 마친 데릭이 로이르를 바라봤다. 뭔가에 홀린 것 같은 눈으로 철갑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이르,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
“······.”
“로이르? 로이르!”
“네, 넷!”
“뭘 그렇게 보고 있길래 이 해군 대장님의 말도 못 들은 거야?”
“갑판에! 갑판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로이르의 말해 데릭이 쓱 철갑선의 갑판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었다.
“어?”
당황한 로이르와 갑판을 번갈아 바라보던 데릭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가 철저히 숨기는 비밀이 있다.
상급 마수를 칼질 한 번에 썰어대는 왕국의 7성 기사가 귀신, 유령 따위의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날 밤이면 혼자 잠자리에 들지 못하다는 건 절대 들켜선 안 될 일이다.
“하하, 하하······. 바보 같은 녀석! 갑판에 누가 있단 말이냐. 공기도 탁한 것 같고 빨리 나가야겠어.”
데릭은 황급히 철갑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로이르는 달려가듯 조선소를 떠나는 그를 황급히 쫓아갔다.
그렇게 철갑선의 건조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한 일행.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었다.
로이르가 데릭을 바라봤다.
“후작님, 식사는 석함도로 가셔서 하시겠습니까?”
“아니, 여기서 해결할 거야. 내가 기가 막힌 레스토랑을 알고 있지. 따라와, 로이르. 아, 승무원들은 이걸로 알아서들 먹어.”
데릭이 비공정의 선장에게 두툼한 금일봉을 건넸다.
“격침! 감사합니다!”
“격치이이이임!”
“됐어, 됐어.”
“후작님, 저희는 후작님을 호위······.”
“누가 누굴 호위해. 너희도 승무원이랑 같이 먹어. 로이르, 넌 따라오고.”
호위기사를 떼놓고 척척 걸어가는 데릭. 로이르는 황급히 그를 쫓았다.
데릭은 정말 근사한 레스토랑에 로이르를 데려갔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특실에 도착한 로이르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데릭 후작님.”
“어, 오랜만이야, 클리앙 백작. 그런데 옆에는 누구?”
“줄리앙이라고 합니다.”
로이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클리앙에게 인사한 후 줄리앙이라 자신을 소개한 이를 바라봤다.
빼쭉빼쭉한 수염을 한 깡마른 남자.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기이할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
클리앙, 줄리앙.
두 사람이 카로스항에 거의 도착했을 시간, 나는 아침 일과를 마무리하고 국무회의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비상대책위원장의 자리가 아닌 조금 색다른 자리에 앉았다.
회의의 주재자가 앉는 상석.
본래는 국왕의 자리다.
보통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는 국왕을 대리해 국무총리가 앉아 회의를 진행했었지만, 오늘은 허총리마저 불참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나?
변명이겠지.
국무회의의 서열은 국왕, 왕세자, 국무총리 순. 국왕이 나를 왕세자로 지목하긴 했지만, 아직 즉위식을 치르지 않았다.
누가 국무회의를 진행해야 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꼬장꼬장한 왕실 어르신들은 그 주제로 한 달은 떠들 수 있을 거다.
그러니 허총리가 깔끔하게 감기를 핑계로 불참해버린 것일 터. 허허허 웃으며 왕국 정치판에서 총리 자리까지 오른 이답게 눈치가 좋았다.
“시간이 된 것 같군.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네.”
땅! 땅! 땅!
나는 의사봉을 두들겨 개회를 알린 후 국무위원들의 자리를 쓱 훑었다.
장관을 대리해 차관이 와있는 부서가 꽤 있었다.
불가피한 출장으로 불참한 클리앙을 제외하면, 대부분 민란이 일어났던 영지의 안정을 핑계로 내려가 있는 남부 귀족들이었다.
······ 영지의 안정?
‘개뿔.’
아마 지금쯤 으슥한 비밀 공간에 집합해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권력을 보존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있을 거다.
바보 같은 놈들.
이렇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인원이 자리를 비켜주면 나야 고맙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국무회의 소집을 요청한 건 본인이네. 예전에 불완전했던 안건을 정비해서 가져왔거든. 다들 스크린을 주목해주길 바라네.”
따악-!
내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을 신호로 스크린에 글자가 떠올랐다.
『귀족명예법』
남부의 민란군을 해산시키면서 그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