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ing as the 5th Prince of Hellma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13)
헬망국 5왕자로 살아남기-113화(113/203)
113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마차 한 대가 룬티아 공작가의 영주성을 통과하고 있었다.
마차의 주인은 호버트 백작.
그는 얼마 전, 영지에서 일어났던 민란 당시 죽다 살아났다. 하필이면 사냥터에서 연회 중, 마법사고 기사고 다들 만취한 상태에서 민란군이 덮쳤던 탓이었다.
기지를 발휘해 마부의 옷을 빼앗아 입지 않았다면 분명 민란군에게 살해당했으리라.
그렇게 살아남은 호버트는 앞뒤 생각 없이 기사들을 동원해 민란군을 토벌할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았다.
열받았다고 민란군을 싹 밀어버리면 결국 자신도 굶어 죽게 될 것이란 걸 이해하고 있었다.
죽음의 위기에서 겨우 살아난 탓일까?
이후 호버트의 본능과 사고는 ‘생존’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었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날치기로 명예귀족법이 통과된 이후 룬티아 공작가에서 있었던 회동을 떠올렸다.
– 귀족명예법이라니요! 이건 저희를 말려 죽이려는 5왕자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입니다.
– 저희가 잠시 영지의 안정을 위해 내려온 틈을 타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다들 중앙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 맞습니다!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결국 저희의 후계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입니다!
– 세금 규제는 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리오넬 왕국의 건국 이래 영주의 권한을 이토록 억압하려 한 적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
.
.
손에 쥔 것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리아 공작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영주들.
– 걱정하지들 마시게. 내가 누군지 잊었나? 남부의 왕! 7성 마법사 모리아 룬티아네.
그런 영주들을 별다른 방안도 없으면서 독려하던 모리아.
그때 호버트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계속 모리아라는 끈을 잡고 있으면 낭떠러지 밑으로 처박힐 뿐이란 걸 깨달았다.
당장이라도 왕도로 올라가 클리앙 백작을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 줄리앙이라고 합니다.
밀로아 백작, 클리앙 백작, 심지어 5왕자의 자필 편지까지 들고 나타난 사내. 본능이 살기 위해선 그의 말을 따르라 조언했고, 호버트는 자신의 본능을 믿었다.
똑똑, 똑똑.
접견실의 문을 노크하는 집사에 호버트는 서둘러 과거의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모리아 공작님, 호버트 백작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끼익, 문이 열리고, 호버트는 긴장된 표정으로 접견실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길래 이 야심한 시간에 날 보자고 한 거지, 호버트 백작?”
모리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있었는지 불콰한 얼굴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꼭 공작님께 직접 드려야 할 말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말해 보게.”
호버트는 힐끔 소파를 곁눈질했다.
앉으라는 말이 없는 걸 보면 빨리 할말하고 나가라는 의도가 다분했다.
하긴, 오죽 많은 이들이 모리아에게 접견을 요청했겠나. 백작쯤 되는 그이니 이렇게 야심한 시간에 만나주기라도 하는 거다.
“저희 영지는 엘프의 숲과 인접해있습니다.”
“세계수의 17번째 가지였었나?”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붉은별열병이 남부를 휩쓸 당시 엘프의 숲 중에서 특히 피해가 컸던 곳입니다. 숲지기마저 붉은별열병으로 쓰러졌다는 소문이 돌았지요.”
“그런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얼마 전, 기사단이 용병단으로 위장한, 노예 사냥꾼으로 의심되는 놈들을 덮쳤습니다.”
“그래서?”
“범상한 놈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사들의 피해가 상당했습니다. 격렬한 전투 끝에 4성 기사가 둘이나 목숨을 잃었죠.”
“호오, 일개 노예 사냥꾼들에게 4성 기사가 둘이나 당했다면, 확실히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군. 그래서 생포한 놈은 있나?”
“단장의 말로는 사로잡은 놈들이 입안의 독단을 깨물어 자결했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그다음인데······.”
호버트는 다시 한번 힐끔 소파를 바라봤다. 모리아가 픽 웃으며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서 있지 말고 좀 앉게.”
“감사합니다.”
“이제 계속 이야기해보게. 그래서 뭐가 문제였지? 엘프 여왕의 후계자라도 놈들의 마차에서 발견했나?”
“아닙니다. 놈들의 마차에서 발견한 건 작은 보물상자였습니다.”
“보물상자? 무엇이 들어있었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극소량 담긴 수십 개의 유리병이었습니다. 가문의 마법사가 성분을 분석한 결과, 엘프의 숲에서 흔히 발견되는 약초의 진액이라 하더군요.”
모리아가 픽 웃었다.
“거짓말이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속일 사람을 속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의 눈에 가득 담긴 탐욕을 제가 못 읽었을 리가 없죠. 분명, 진귀한 영초를 이용해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하늘꽃이라든지요.”
“혹시 챙겨왔나?”
“물론입니다.”
품에 손을 넣은 호버트가 새끼손가락만 한 유리병을 꺼내 모리아에게 건넸다.
유리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모리아.
마나를 관측하는 세 번째 눈을 뜬 그는 유리병에 담긴 액체가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운에 질식할 것 같았다.
‘이건······.’
모리아는 하늘꽃을 실제로 복용한 경험이 있었다.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액체의 원재료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세계수의 열매.’
힘들게 유리병에서 시선을 뗀 모리아가 호버트를 바라봤다.
“나머지는, 나머지는 자네가 보관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오직 저만 아는 곳에 숨겨놨습니다.”
모리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뜬금없이 이런 시점에 세계수의 열매?
‘함정인가?’
그는 호버트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내 주변에 소위 ‘천재’라고 불릴 만큼 비상한 머리를 가진 이가 세 사람이 있다.
클리앙, 줄리앙, 그리고 밀로아.
성향도 특기 분야도 모두 다르다.
그중 줄리앙은 행정업무 처리 능력은 클리앙과 밀로아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상대의 심리를 읽는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모습을 보인다.
– 모리아는 결코 호버트 백작을 쉽게 믿지 않을 겁니다. 그는 의심이 많은 인간이니까요.
줄리앙의 말대로 모리아가 호버트 백작이 내민 미끼에 눈이 뒤집혀서 영주성을 뛰쳐나가는 일은 없었다.
– 귀족명예법이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는 남부의 귀족들을 단합시킬 필요성이 있죠. 다시 한번 자신의 영주성에서 회동을 가질 겁니다. 호버트 백작은 그때까지 룬티아 공작가에 억류되어 빠져나갈 수 없겠죠.
룬티아 공작가를 찾았던 호버트 백작은 이후 소식이 끊겼다.
억류된 거다.
그리고 엊그제, 남부 귀족들이 다시 회동하기 위해 룬티아 공작가로 출발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밀로아가 나를 방문했었다.
– 호버트 백작에게 적절한 시기에 세계수 열매의 농축액이 보관된 비밀 장소를 알려주라 했습니다. 모리아 공작은 그곳에 가장 믿음직한 자신의 심복을 보낼 겁니다.
어제 자정 무렵, 룬티아 기사단장이 소수의 인원을 이끌고 비밀리에 영주성을 출발한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지금.
「모리아 공작님. 물건을 확보했습니다.」
「오! 정말인가? 정말 호버트 백작의 말대로 보관되어 있었나?」
「그렇습니다. 공작님이 보여주셨던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개수도 이상 없습니다.」
나는 호버트 백작의 비밀 장소에 은밀히 설치된 마도구를 통해 내 세계수 열매 농축액을 훔쳐 가는 룬티아 기사단장과 모리아의 통신을 엿들었다.
줄리앙은 에메랄드궁에서 푹 쉬고 있으라 했지만, 이런 재미있는 구경을 놓칠 수 없었다.
룬티아 기사단장이 떠나는 걸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까? 레이나.”
“네.”
타이트한 검은 옷에 검은 가면을 쓰고, 엘프처럼 긴 귀로 변장한 레이나.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숲의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엘프 사냥꾼들을 역으로 사냥하러 다니는 엘프척살대였다.
나는 그녀의 허리춤에 메인 두 쌍단검을 바라봤다.
엘프척살대를 흉내 낼 거면 활이 확실하긴 한데, 그들 중에는 쌍단검을 사용하는 이도 많으니 별문제 없겠지.
***
룬티아 기사단장이 세계수의 열매를 이용해 만든 영약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모리아는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근 반년 만에 활짝 웃는 그였다.
‘아, 이럴 때가 아니군.’
자리에서 일어나 호버트 백작을 억류한 곳으로 이동하던 모리아는 중간에 회동을 위해 소집한 남부 귀족들을 만났다.
“공작님, 표정이 밝으신 게 좋은 소식이 있으신가 보군요.”
“공작님의 요청에 부리나케 달려온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럼 내가 아무런 일도 없이 자네들을 불렀겠는가. 오늘 회동은 기대해도 좋을 걸세.”
“그거 정말 기대되는군요. 하하하.”
“아! 호버트 백작이 미리 와있다고 하던데 도통 보이지 않더군요. 혹시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호버트 백작이라면 술을 많이 마셔서 숙취로 고생하고 있네. 좀 괜찮아지면 방에서 나올 걸세.”
마주치는 이들의 마음에 기대감을 한껏 심어준 모리아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두 명의 기사가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는 방에 도착했다.
“특이사항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두 기사를 치하한 후 문을 열고 들어간 모리아. 술병을 기울이고 있던 호버트 백작이 그가 들어온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모리아 공작님! 기사단장이 물건을 발견했답니까?”
“자네가 말한 대로였네. 의심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의심하셔야죠. 공작님이 잘못된다면 저희도 다 죽은 목숨 아니겠습니까.”
“사태가 마무리되면 자네에게 큰 보답을 할 생각이니 기대하고 있게.”
호버트가 문밖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이 방을 나가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네. 안 그래도 자네를 찾는 이들이 있더군.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 적당히 맞춰주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호버트를 풀어주고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온 모리아.
그는 은밀히 보관해뒀던, 보기만 해도 황홀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꺼내 감상했다.
‘이 정도 양이 30개······.’
모리아도 영약 좀 먹어본 마법사다.
세계수의 열매 하나 분량이라기에는 많이 모자란 양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엘븐가드에게 사용하고 남은 건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상관없는 문제였다.
중요한 건 그걸 사용해 자신이 8성 마법사에 도달할 수 있느냐.
‘가능해.’
7성의 경지에 도달한 게 벌써 20년 전이다. 모리아는 자신 있었다.
‘내가 8성 마법사에 도달하면 많은 것이 바뀔 거다, 5왕자.’
그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위잉- 위잉─
그의 손가락을 장식하고 있던 반지 하나가 붉은빛을 깜빡이며 진동했다.
긴급 코드로 들어온 통신.
모리아는 서둘러 반지를 입가에 가져갔다.
“무슨 일이지, 룬티아 기사단장.”
「습격, 습격입니다! 공작령에 진입하기 직전에 엘프척살대가 따라붙었습니다!」
콰당탕!
벌떡 일어난 모리아. 그 바람에 의자가 거칠게 나동그라졌다.
“뭐라고! 현재 상황은?!”
「7성에 근접한 강자입니다! 부하들이 잠시 시간을 끄는 사이 전속력으로 도주하고 있지만, 얼마 안 가 따라잡힐 겁니다!」
“위치는!”
「조금만 더 달리면 9번 거점 지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거점 지역.
장거리 공간이동을 보조하는 마법진이 설치된, 룬티아 가문의 극소수만 알고 있는 거처.
급박한 상황에 모리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지금 당장 가야 해.’
영주성을 벗어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거점 지역이다. 기사단장과 영약을 챙겨 다시 영주성으로 돌아오는 것도 순식간일 터.
모리아는 서둘러 집무실을 나갔다.
영주성의 지하에 마련된 비밀 공간으로 이동한 그는 굳게 닫힌 철문에 손을 가져갔다.
쿠궁- 쿠구궁.
마력에 반응해 열리는 두꺼운 철문.
모리아는 9번 거점 지역으로 이동하는 마법진 위에 올라갔다.
“기사단장! 상황은!”
「······ 치익··· 치익······.」
잡음만이 들려왔다.
답변을 할 수 없는 만큼 급박한 상황인 게 분명했다.
‘서둘러야 해.’
오직 그 생각만이 모리아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고오오오-
그의 마력에 반응한 마법진이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하고, 마력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잠시 뒤.
파앗-!
비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빛과 함께 모리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모리아 공작님.”
“저를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셔서 찾아뵈러 왔습니다.”
공간을 도약한 모리아를 반긴 건 왕국의 두 7성 기사, 갈라드와 데릭이었다.
“네놈들······.”
둘의 인사를 받은 모리아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